• 제화 노동자들의
    ‘탠디’ 본사 농성 이유는?
    노동자에겐 한 켤레 당 7천원 주고, 소비자에게는 30여만원 판매
        2018년 04월 30일 09:01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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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 유명 수제화 브랜드 탠디의 신발을 만드는 제화 노동자들이 탠디 본사를 점거해 5일째 농성을 벌이고 있다. 8년째 7천원으로 동결된 공임비를 2천원 인상해달라는 요구를 회사가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민주노총 서울일반노조 제화지부에 따르면, 탠디 제화 노동자 95명은 지난 26일부터 탠디 본사 3층을 점거해 농성을 벌이고 있다. 공임비 인상, 특수공임비 제공, 정당한 사유 없는 일감차별 금지, 직접 고용 등을 요구하고 있다. 공임비란 신발 한 켤레를 만들고 제화노동자들이 받는 돈을 뜻한다. 탠디 제화노동자들은 신발 한 켤레를 만들고 7천원을 받고 있다.

    탠디 제화노동자 5일째 점거농성···회사는 용역깡패 투입으로 맞대응

    탠디의 제화 노동자들은 지난 4일부터 작업을 중지하고 8일부터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회사엔 6차례 공문을 발송해 대화 창구를 열어달라고 요구했다. 그렇게 21일 동안 일손을 놨지만 회사 측에선 어떤 답변도 돌아오지 않았다. 이들이 본사 점거농성을 벌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제화 노동자 대부분이 60세 이상의 고연령층이다. 탠디 제화노동자 중 50대인 박완규 씨가 이들 중 가장 막내다. 그는 32년 차 제화노동자로 현재 점거 농성장의 현장 대표를 맡고 있다.

    박완규 씨는 30일 <레디앙>과 통화에서 “21일째 회사 앞에서 기자회견도 하고 공문도 보냈지만 회사에선 전혀 우리와 대화를 할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하루 일해서 하루 먹고 사는 사람들이다. 한 달 이상을 회사 밖에서 버티는 건 힘든 일이었다. 이렇게라도 하면 우릴 만나주지 않을까 싶었다”고 말했다.

    점거 농성 5일째. 탠디는 여전히 제화 노동자들의 대화 요구에 응하지 않고 있다. 회사는 이날 용역 깡패 12명을 투입하는 것으로 제화 노동자들의 요구에 대한 답변을 대신했다.

    박 씨는 “농성장에 계시는 분들 내일 모레면 환갑이고, 그 이상인 분들이다. 또 저도 그렇고 여기 있는 분들 전부 인생 살아오면서 데모나 이런 농성은 단 한 번도 경험이 없다. 그래서 오늘 용역이 투입된 후로 다들 엄청난 위압감을 느끼고 있다. 우리는 대화를 하자고 들어온 거지, 싸움을 하자고 들어온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제화노동자의 농성 모습(사진=서울일반노조)

    하루 16시간 일하고, 신발 한 켤레 당 7천원

    탠디 제화 노동자들이 이토록 회사에 대화를 요청하는 이유는 뭘까. 탠디 제화노동자들은 8년째 신발 한 족을 만들어 고가제품은 7천원, 저가 제품은 6천5백원을 받고 있다. 7천원을 받고 만드는 신발은 매장에서 평균 35만 원 정도에 팔린다. 저가제품도 최소 14만원은 줘야 구입이 가능하다. 이들은 신발 한 족당 공임비 2천원을 올려 9천원을 달라고 회사에 요구하고 있다.

    이들은 성수기에 고가, 저가 제품 포함해 25족 정도의 신발을 만든다. 이 정도 물량을 감당하려면 평일 하루 16시간을 꼬박 일해야만 한다. 그마저도 부족해 토요일에도 출근해 5~6시간 정도 작업을 해야 물량을 맞출 수 있다. 그렇게 손에 쥐는 돈은 식대 등을 제외하면 15만원이 전부다. 사실상 주6일제 근무를 하며 성수기에 버는 돈은 350만 원 정도, 여기에서 개인사업자라는 이유로 3.3%의 세금을 떼인다. 그마저도 비수기엔 이 정도 소득도 올리지 못한다.

    신발 한 켤레를 직접 손으로 만들고 7천원을 받는 이들은 시간당 7580원을 받는 아르바이트보다도 못한 대우를 받고 있다고 울분을 터뜨린다.

    장인으로 불리며 오랜 세월 신발 만드는 일을 해온 이들은 손가락이나 팔 등에 대부분 크고 작은 장애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들의 장애와 맞바꾼 노하우나 경력은 임금과 연결되지 않는다. 50년 이상 신발만 만든 장인도 1년 차와 같은 돈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신발을 만드는 일은 기본적으로 체력이 요구되는 작업이라 나이가 든 제화노동자들은 오히려 더 적은 임금을 받는 것이 현실이다. 나이가 들수록 그들의 삶은 더 열악해지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들이 경력 수당을 요구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신발 한 켤레를 만드는 데에 7천원 주던 것을 9천원으로 올려달라는 것뿐이다.

    “내가 사장님? 난 사업자 필증 본 적도 없다”

    더 큰 문제는 제화노동자 대부분이 소사장님(개인사업장), 즉 특수고용노동자라는 것이다. 이들은 본사에서 직접 일감을 받거나 5개 하청업체에 속해 탠디가 지시한대로 신발을 만든다. 그런데도 법적으로 탠디에 속한 노동자가 아니라 ‘사장님’이다.

    하루 16시간 장시간 노동이 가능했던 것도 제화노동자가 특수고용노동자이기 때문이다. 이들이 밤잠 안 자고 일만 해도 탠디 측엔 책임이 없다. 4대보험 등 사회보험 부담금도 피할 수 있고, 퇴직금을 주지 않아도 법적으로 문제될 게 없다. 제화노동자들은 ‘개인사업자’라는 신불은 탠디가 채워놓은 ‘족쇄’라고 말한다.

    애초부터 제화노동자들이 개인사업자였던 건 아니다. 2000년도 이전엔 이들도 탠디의 소속으로 신발을 만들었던 ‘노동자’였다. 퇴직금도 받았고 매년 임금도 올랐다. 그러다가 개인사업자로 전환된 건 회사가 ‘명의만 빌려주면’ 퇴직금과 공임비 1천원을 인상해주겠다고 제안하면서였다. 회사는 제화노동자들에게 신분만 ‘개인사업자’로 전환되는 것일 뿐, 퇴직금 제도 등 달라지는 건 하나도 없다고 그렇게 설득했다. 한 식구라고 생각했던 회사의 설득에 제화노동자들은 흔쾌히 승낙했다.

    회사는 시간이 흐르자 제화노동자들과의 약속을 없는 취급했다. 회사가 이렇게 등을 돌릴 줄은 상상도 못했다고 한다. 평생을 구두 만드는 일 말고는 해본 적 없는 이들은 노동조건을 동일하게 유지하겠다는 회사의 약속을 문서화해놓지도 못했다. 현재 탠디 제화노동자들은 퇴직금도, 어떤 사회보험 제도의 보장도, 노동법의 보호도 받지 못하는 노동자가 됐다.

    박 씨는 “개인사업자로 바꿀 땐 퇴직금도 그대로 준다고 해놓고 시간이 흐르고 나니까 다 없어졌다. 전부 안 주는 식이 돼 버렸다. 우리가 사장님이라는데 우리는 사업자 필증도 갖고 있지 않다. 구경도 못해봤다. 그것마저도 회사에서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평생을 구두 만드는 기술밖에 없는 사람들이다. 어떻게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제도를 만들어서…우리는 노동자이지, 사업주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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