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야, 공영방송 정치판 만들려 하나
    국회 언론개입 합법화하는 방송법 합의
        2018년 04월 25일 08:27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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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야가 공영방송 이사 추천권을 나눠 갖는 것을 골자로 하는 방송법 개정안에 잠정 합의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추혜선 정의당 의원과 언론·시민사회단체는 24일 오후 국회 정론관에서 연달아 기자회견을 열고 여야의 잠정합의안을 “방송법 개악”이라고 규정하고 “정치권의 나눠먹기식 방송법 개악 시도를 즉각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뉴시스>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 우원식·자유한국당 김성태·바른미래당 김동철·평화와 정의의 의원모임 노회찬 원내대표는 지난 20일 비공개 회동을 열고 방송법 개정안에 대한 잠정합의안을 도출했다.

    앞서 자유한국당은 박근혜 정부 시절 상임위 논의조차 가로막았던 민주당의 방송법 개정안을, 야당이 되고난 후엔 국회 일정까지 거부하며 개정안 처리를 요구하고 있다. 반면 방송법 개정안을 당론 발의했던 민주당은 여당이 된 후 사실상 반대 의사를 표하며 개정안 처리에 나서지 않았다.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송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양당의 정략적 태도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번에 여야가 합의를 이룬 방송법 개정안은 공영방송 이사를 여야가 추천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언론노조 등에 따르면, 여야 공영방송 이사진을 여야 7대 6으로 추천하고, 사장 임명과 관련해선 최소 이사 8명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특히 사장 임명 과정에서 여당이 사장후보자 5명을 추천하는 등의 논의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방송법 개악 반대 기자회견(사진=유하라)

    앞서 민주당이 야당 시절에 당론 발의한 방송법 개정안은 최소한 이사 9명의 동의가 있어야 공영방송 사장을 선임할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 바른미래당 김동철 원내대표가 민주당의 방송법 개정안을 바탕으로 수정안을 제시했고, 민주당이 양보하면서 합의에 이른 것으로 알려졌다.

    현행 방송법은 8~11명의 이사들이 다수결로 공영방송 사장을 선출하지만, 이사진에 대한 여야 추천비율이 없어 사실상 여권 추천 인사들이 다수를 차지해왔다. 관행적으로 국회가 이사진 추천에 개입해왔다는 것인데 이는 어디까지나 관행이었을 뿐, 현행 방송법에 명시돼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번 합의는 사실상 여야가 국회의 공영방송 장악을 합법화하겠다는 것으로 밖에 해석할 수 없다.

    특히 여야 잠정합의안에 강력반발하고 있는 정의당 추혜선 의원과 달리, 노회찬 원내대표도 국회 정상화를 전제로 이러한 합의안을 사실상 수용한 것이라 당내에서도 적지 않은 논란이 예상된다. 정의당은 지난해 추혜선 의원이 대표 발의한 국민이 공영방송국 사장을 선출하는 법안을 당론으로 삼고 있다.

    노회찬 의원실 관계자는 “동의했다기 보단 전제가 있는 가합의”라며 “국회를 정상화되기 위한 개헌, 국민투표, 특검법 등 여러 쟁점들이 있는데 그런 부분이 합의가 되면 국회에서 처리해야 할 몇 가지 중 하나로 방송법 관련한 가합의를 한 것이다. 국회를 정상화한다는 합의가 추진되지 않으면 합의한 방송법 개정안도 의미가 없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당 입장은 추헤선 의원의 안이 당론”이라면서도 “당론이라고 해서 100% 관철할 순 없지 않나”라고 말했다.

    언론노조와 담당 상임위 소속인 추혜선 의원은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이들은 공영방송의 독립성과 공정성을 보장하기 위해 ‘공영방송 국민추천제’ 도입을 주장하고 있다. 말 그대로 일반인으로 구성된 이사추천국민위원회가 이사 후보들에 대한 공개 면접을 거쳐 추천하도록 하는 것이다. 추 의원은 지난해 11월 관련한 내용을 담은 방송법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다.

    추혜선 의원은 잠정합의에 관한 보도가 나온 직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결국 현재의 정치적 지분을 일부 조정하는 것”이자 “또 다시 공영방송을 정치적 수단으로 삼겠다는 의지의 표출”이라고 비판했다.

    여야는 국민투표법, 추경, 드루킹 특검 등으로 멈춘 국회 정상화를 위해 방송법 개정안에 대한 합의를 서두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추 의원은 “국회 정상화를 볼모로 방송법을 논한다는 것 자체가 정치권에서 이사 추천권을 쥐고 있는 한 공영방송의 정치적 독립성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것을 방증하고 있다”며 “더 이상 방송을 정치적 수단으로 삼지 말아주길 바란다”고 지적했다.

    특히 추 의원은 ‘공영방송 정상화’를 외쳤던 민주당에 대해 “정치적 욕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직접 사장후보자를 추천하는 방안에 동의하고 있다는 점은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국회는 어떤 형태로 국민들에게 공영방송을 돌려 줄 것인지에 대한 논의를 진행해야 한다”며 “방송법을 둘러싼 정치야합을 그만두고 공영방송의 정치적 독립을 원칙으로 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언론노조와 민주언론시민연합, 언론개혁시민연대, 언론소비자주권행동, KBS·SBS 노조, 서울신문통신노조협의회 등도 이날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국회 정상화를 핑계로 정치권은 공영방송에서 손을 떼라는 촛불 시민의 준엄한 요구를 묵살한 채 방송법을 거래의 대상으로 전락시켰다”면서 “국회는 오직 자신들만의 ‘정상화’를 위해 어렵게 이뤄낸 공영방송 정상화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려고 하고 있다”고 규탄했다.

    김환균 언론노조 위원장은 “여야의 합의는 법조문에 명문화해서 정치권력이 방송에 개입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겠다는 것”이라며 “절대로 있을 수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에 대해서도 “시민들의 명령을 배신하는 방송법 개정안에 촛불 함께 든 시민들의 이름으로 강력하게 저항하고 심판할 것”이라며 “야합의 시도를 당장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이경호 KBS 본부장은 “공영방송의 감시대상인 국회가 공영방송의 사장을 선임하겠다는 것이 여야 합의안”이라고 규정했다.

    이 본부장은 “당장 9월에 임기가 시작되는 이사진을 여야 7대6으로 나누면 앞으로 원내대표실, 미방위장실 앞엔 공영방송 이사가 되겠다는 사람들이 서로 줄을 대러 올 것”이라며 “이사진들은 추천권자의 의사를 반영하지 않을 수 없고, 공영언론은 정확히 국회를 옮겨다 놓는 모양새가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공영방송은 정치판이 아니다”라며 “이 합의안에 손을 뗄 힘이 여당에 있다. 여당은 아무것도 하지말고 가만히 내려놓으라”고 요구했다.

    그러면서 “공영방송 이사들이 더 이상 ‘여당 누구와 친하다’가 아니라, 국민과 시청자와 친한 방송으로 돌려 달라”고 호소했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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