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앞 단식하는 민주노총 전위원장
By tathata
    2006년 04월 14일 10:0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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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이 들어선 영등포 로타리 부근의 대영빌딩 앞에는 3인용 크기의 작은 텐트가 하나 설치돼 있다.

지난 3월 29일부터 들어선 이 텐트 앞에는 ‘해고 조합원 제명철회 · KT노조 부정선거 진상규명 단식 17일’이라는 글귀가 적혀 있다. 민주노총을 오가는 조합원들마다 한번씩은 눈길을 던지며 유심히 쳐다보곤 한다.

텐트에 얽힌 이야기는 지난해 11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민주노총 IT연맹 산하 KT노조의 임원선거에서 회사의 지배 · 개입으로 인한 ‘부정선거 의혹’이 불거졌다. 선거는 90%의 찬성으로 지재식 후보가 당선됐으나, 선거 이후에 부정선거 시비가 끊이지 않았다.

이 문제는 민주노총 지도부 선거로까지 확대되어 기호 3번 이정훈-이해관 후보 진영은 KT노조의 민주노총 파견대의원이 부적격하다며 선거중단을 요구했고, KT노조 대의원들의 민주노총 대의원대회 출입을 저지하기도 했다. 이후, KT노조는 지난 3월 23일 대의원대회를 열고 ‘유덕상 전 KT노조 위원장과 이해관 전 KT노조 부위원장의 해고자 구제기금 지급중단과 조합원 영구제명 건’을 83%의 찬성으로 통과시켰다.

   
 
▲ 민주노총이 들어선 대영빌딩 앞에 유덕상 전 민주노총 위원장 직무대행이 단식농성을 하고 있다.
 

그로부터 닷새 후 텐트가 설치됐다. 현재 한때 민주노총 위원장 직무대행 직을 맡았던 유덕상 전 KT노조 위원장이 단식농성을 시작했다. 유 전 위원장은 KT노조가 제명을 철회하고, 민주노총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문제를 해결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민주노총 앞에서 민주노총을 향해 단식농성이 진행되는 경우는 드물다. 유 전 위원장을 만나 단식농성을 하게 된 배경과 심경, 그리고 KT노조의 문제점 등에 대해 물었다. 13일로 단식 17일째를 맞는 그는 다소 기력이 떨어진 듯한 모습으로 인터뷰에 응했다.

-외로운 단식인 것 같습니다. 민주노총 앞에서 단식을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민주노총 앞에서 단식을 하게 돼 마음이 착잡합니다. 자칫 민주노총에 대한 투쟁으로 비춰질까 염려스럽기도 합니다. 하지만 민주노조의 원칙과 기풍을 무너뜨리는 행위를 바로 잡기 위해 농성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민주노총이 노동계급의 대표체로서 조직적으로 단호한 입장을 밝혀 무너져 나가는 운동의 원칙을 확립해주기를 희망합니다. 

-KT 노조 대의원들은 조합원 자격 영구제명이라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 분들은 어떤 논리로 이걸 설명하는지요. 그리고 유위원장께서 볼 때 실제로 어떤 이유에서 이런 결정을 내렸다고 보십니까.

=저도 사실 이유를 모릅니다. 조합원 영구제명은 조합원에게 ‘사형선고’나 마찬가지입니다. 그에 타당한 사유가 있어야 하는데 대의원대회를 지켜보았지만 아무런 배경설명이 없었고, 갑자기 발의해서 토론도 없이 급하게 처리되는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명백한 규약위반입니다. 다만 정황 상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은 지난 선거 때 (저희가) KT노조 대의원의 민주노총 대의원대회 출입을 저지하는 등 노조의 명예를 훼손하고 실추시켰다고 해서 그런 것으로 봅니다. 하지만 KT노조의 대의원은 회사가 장악하고 있습니다.

-KT 노조의 문제는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 유덕상 민주노총 전 위원장 직무대행
 

=전두환이 체육관 선거를 통해 만장일치로 대통령에 당선되었는데 그것이 절차가 정당하다고 해서 용납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자기의사를 분명하게 표현하지 못한 상황에서 회사가 완전히 장악한 대의원에 의해 내려진 결정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KT노조의 결정은 억압적 상황에서 나온 것입니다. 

지난 선거에서 KT노조의 전국 423개 투표소 가운데 51개 개표소에서 지 후보에 대해 100% 찬성이 나왔습니다. 조합원의 97%가 투표에 참여해 90%의 찬성을 거뒀구요. 이런 선거 결과가 어딨습니까. 이것은 회사가 기표용지를 기형적으로 조작하거나, 회사의 노무관리에 반발이 심한 조합원들에게는 전보배치 등을 해서 나타난 결과입니다.

-조합원들의 선택에 따른 지도부 구성이라는 점은 인정을 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도 있는 것 같습니다. 부정 선거가 있었다면 그 자체로 진상이 규명되고 응분의 조치가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하지만 그 문제와는 다른 차원에서 조합원들의 선택의 배경도 깊이 있게 들여다봐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견해인 것 같은데요. 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것이 단위사업장의 문제라면 민주노총은 왜 기아차 비리문제나 강승규 전 부위원장 뇌물수수 문제에 대해 대국민 사과를 하고 혁신을 이야기했습니까. 그것도 단위노조의 문제인데 말이죠. 자주성이 무너지면 민주성도 무너지게 돼 있습니다. 이번 문제는 KT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제2, 제3의 사태로 이어져 나갈 것으로 봅니다.

-민주노총에 요구하는 건 무엇입니까. 조준호 위원장이나 임원들과 얘기는 나눠보셨는지요.

=두 차례 얘기를 나눴습니다. 농성에 들어가기 전에 “KT결정은 잘못된 것이다”라고 이야기했고, 조 위원장 또한 “황당하다, 당혹스럽다”고 말했습니다. 조직적 입장으로 시시비비를 가려달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래서 민주노조운동의 원칙과 기풍을 바로 세우기 위해서 제명 결정의 철회를 권고하고, 민주노총은 조직적 입장을 밝히라는 것입니다. 지난 11월에 부정선거로 민주노총 규율위원회에 제소했지만 아직까지 조사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하루 빨리 진상도 규명돼야 하고요.

-노동운동의 내부 분열 양상이 심각하다는 평가가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노동운동의 지도자 한 사람으로 어떻게 생각하고 계시는지요.

=이 문제는 정파의 문제가 아닙니다. 운동의 기풍의 문제지요. 그런 시각으로 안 봤으면 좋겠어요. 운동의 발전을 위해서 하는 일입니다. 정파, 파벌의 문제로 이 문제를 접근하면 운동의 발전에 도움이 안 됩니다.

-KT 노조 조합원들께 하시고 싶은 말씀은 무엇입니까.

=노조가 제대로 된 역할을 하지 못해 많은 조합원이 현장에서 고생이 많습니다. 언론에도 보도되었듯이, KT는 직원들을 인간이하의 대우를 하며 노동자를 탄압하고 있습니다. 강제명예퇴직자가 지금까지 5천5백명에 이르고, 분기마다 한 번씩 구조조정이 단행되어 조합원들이 신빈곤층으로 전락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현장통제가 심하다고 하더라도 포기하지 말고 극복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럴 때만이 민주노조가 재건될 것입니다.

-민주노총 전 위원장께서 민주노총 앞에서 단식하시는 심경은 어떠신지요?

=한 때 민주노총 임원으로서 단식하는 마음이 착잡합니다. 이 문제가 그냥 넘어갈 수 있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서 단식이라는 어려운 결정을 내렸습니다. 외롭지는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함께 분개하고 운동을 걱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단식농성을 바라보는 시선들

13일 오후. 화물연대 한 조합원이 담배를 피우며 텐트를 바라보고 있었다.

“텐트를 보면 무슨 생각을 하는가” 

“민주노총을 가끔씩 오가는데 사실 무슨 일로 저러는지 잘 모른다. 노조에서 해고자 때문에 싸우는 것 같은데 왜 민주노총 앞에서 농성을 하는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곁에서 듣고 있는 다른 한 조합원도 “별 관심이 없다”며 무관심한 반응을 보였다. 이같은 대답은 사건의 ‘내막’을 알지 못하는 조합원들에게 나타나는 공통된 반응이었다.

그러나 대영빌딩을 출퇴근하거나 자주 오가는 사람들의 반응은 달랐다. “볼 때마다 마음이 불편하다”, “가슴이 아프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는 이들도 있었다. 적극적으로 입장을 표명하는 이들은 조금은 상기된 표정으로 주장을 해나갔다.

"개입할 수 없다" vs "개입해야 한다"

민주노총의 우문숙 홍보부장은 “KT노조가 어용이라는 결정적 증거가 나온 것도 아니고, 조합원들이 표결을 통해 결정한 일을 민주노총이 어떻게 개입할 수 있냐”며 “상급단체가 단위사업장의 문제에 일일이 개입할 수 없는 노릇”이라고 말했다.

민주노총의 다른 한 관계자는 “단위노조에 민주노총이 개입하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어진다. 그렇게 되면 조직활동이 위축되는 것은 물론 살아남을 노조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노총이 나서서 개입할 사안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금속연맹 법률원의 한 관계자는 “KT노조의 부정선거, 사측 개입 증거가 드러난 만큼 민주노총이 살을 도려내는 아픔이 있더라도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민주노총이 자본과 정권에 대해 강경하게 싸우는 만큼 내부 징계에 있어서도 엄격하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공공연맹의 한 활동가도 “한 기업 내 노조의 문제에 그칠 것이 아니라 이 문제를 함께 토론하고 공유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만약 단위노조가 잘못 됐다면 상급단체인 민주노총이 나서서 문제를 바로 잡아 나서려는 의지를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문제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민주노총이 나서서 해결해야 한다’는 주장과 ‘해결할 수 없다’는 상반된 주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어떤 방식으로든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지적 또한 높다.

언론노조의 한 조합원은 “민주노총이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앞으로 두고두고 갈등의 불씨를 키우는 격이 될 것”이라며 “어떡해서든 논란의 종지부를 찍기 위해서라도 문제를 회피하지 말고 맞부딪쳐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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