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 큰 경제학자의 낮은 목소리
    2006년 04월 14일 07:5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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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나는 정운영 선생이 살아 있는 모습을 3번 봤다. 두 번은 내가 학생이었을 때 강연회장에서, 한번은 2년 전 국회에서.

그가 토론프로그램의 명진행자로 대중과 만났던 텔레비전이 아니라, 직접 눈앞에서 보게 되면 무엇보다 선생의 키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선생은 한국인의 평균적인 감성으로 봤을 때 유별나게 키가 컸다.

그 저음의 목소리를 듣기 전까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키 때문에 일단 알 수 없는 경계심을 가지게 된다. 그럴 만큼, 정말, 키가 컸다.

난데없이 돌아가신 양반의 키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유난히 돋보였던 선생의 신장만큼이나 그의 인생이력도 유별났기 때문이다.

* * *

지난 해 9월, 선생의 부고를 다룬 언론기사에서 가장 많이 보였던 수식이 “진보경제학자”였다. 선생이 진보경제학자라는 것은 실체적 진실이지만 그의 학문이 어떠했는지를 온전하게 설명해주지는 못한다.

게다가 한때 진보경제학자로 불리던 이들 중에서 국립대총장도 나오고, 장관도 나오고, 욕먹고 하는 양반들도 수두룩해진 세상이니, 이런 말하기도 맥이 빠지지만, 그래도 학문적 견지에서 진보경제학은 여전히 한국경제학계의 비주류다.

그런데 선생이 평소 공부했던 경제학은 마르크스 꽤나 읊어댄다던 그 무리 안에서도 또 다른 입장에 서있었다. 말하자면 비주류 안에서도 또 비주류였던 셈이다.

정운영 선생이 공부했다는 루뱅대학이 우리에게 참 생소한 이름인 것처럼 그의 경제학도 생소했다. 돌이켜보면 아직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이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이 아닌 것처럼 한국에 소개되던 시절에는 그래도 그의 학문이 제법 먹혀들었었다.

그러나 이 땅의 진보진영이 마치 분단된 조국처럼 조각조작 갈려나가고 각각의 분파들은 입장의 철옹성 속에 갇혀서 다른 것을 받아들일 수도, 스스로를 혁신할 수도 없게 되자, 선생의 설자리는 없어져 버리고 말았다.

아이러니컬한 것은 그 무렵이 <이론>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걸고 좌파지식인의 통일전선이 모색되던 시점이었음에도, 이단자들 내부의 이단에 대한 숙청이 동시진행 됐다는 사실이다.

   
▲ 정운영 선생을 두고 한국사회에서 박헌영 이래 가장 대중들에게 가깝게 다가갔던 마르크스주의자라고 평한다면 고인에게 실례가 될까?

애꿎은 김수행 선생을 끌어들여 미안하지만, 두 분이 한신대학교에서 이른바 진보적 지식인들에 의해 쫓겨난 이후의 행보를 놓고 보면 누구나 의문을 가질 것이다.

엇비슷한 나이, 똑같은 서울대 출신, 공부한 내용도 비슷하게 비주류고, 전임대학에서 사고(?)치고 쫓겨나고… 기본조건은 판에 박은 듯이 똑같았지만 이후 두 양반이 걸어간 길은 그 차이가 달라도 너무 달랐다.

영어로 논문을 썼고, 한국은행인맥이 더해져 있던 분은 몇 년 뒤 서울대학교 교수님으로, 제2외국어로 논문을 썼고 좌파 중에서도 좌파 경제학을 공부한 분은 꽤 오래 동안 명목은 언론인, 실상은 시간강사로 야인생활을 해야만 했다.

그 야인생활의 1막을 선생은 <저 낮은 경제학을 위하여>의 서문에서 이렇게 요약했다.

“대학에서 강제 해직이란 허망한 대접을 받고 나니 여러모로 난감하기 이를 데 없었다. 더구나 함부로 ‘민주’인사를 자처하는 무리들에게 당했으니 필경 나는 ‘비민주’인물이 된 셈이고, 따라서 형식논리대로라면 ‘반민주’세력에서 고무신을 거꾸로 꿰면서 달려 나와 허겁지겁 맞아줄 만도 한데 사태는 전혀 그렇게 순조롭게(?) 진행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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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도 적혀있지만 강연 때 자주 언급하던 소재들 중에 기독교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 짧게 옮기자면 진보진영은 1년에 한번 대회를 열지만 기독교도들은 일주일마다 전국적으로 전당대회를 여는데, 이래가지고서 과연 유물론자들이 유신론자들을 이길 수 있겠냐 하는 그런 내용이었다.

선생이 하고 싶었던 말은 그러니까 니들도 좀 자주 모여라라는 게 아니라, 일상정치활동이 부재한 네놈들이 당을 만들어봐야 기독교도들의 결속력조차 넘어서지 못할 텐데 이에 대한 고민이 있기는 한거냐는 질책이었다. 아직 민주노동당 같은 것은 존재하지도 않았던 때에 선생은 이미 거기까지 내다보고 계셨었다.

교단에 서있는 정운영 선생을 볼 때마다 저 양반이 서구 어느 나라에서 태어났더라면 지금 쯤 교수생활 정리하고 사민당이 됐든, 공산당이 됐든 아니면 무슨 녹색당이 됐든, 국회의원 한 자리는 능히 차지하고 남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닌 게 아니라 90년대 후반 선생이 방송에서 보여준 활동을 보면 아마 지금의 노회찬 의원보다 훨씬 나은 진보정당의 TV토론 전담요원으로 활약했을 것이다.

하지만 서양 사람들 잘 쓰는 말처럼 ‘wrong time’에 ‘wrong place’까지 타고 나셨으니 어쩌겠는가. 마지막으로 책의 글귀를 인용하면 “모든 새로운 잉태는 투쟁으로 비롯되지만 마침내 화해로 끝나야 한다.” 선생께서도 돌아가시기 전 세상과의 화해를 끝마칠 수 있으셨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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