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관광열차의 그늘
    [철도 이야기] 남자기생 역할의 안내원
    By 유균
        2018년 04월 18일 02:34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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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가 『운수마을』 2009년 9월 회원마당에서 발췌한 글이다. 운수마을은 철도노동조합이 민주화되기 전 운수직종의 활동가 모임이다. 필자가 관광열차의 문제점에 대해 쓰기도 했는데 이번에는 필자 개인이 겪는 일을 중심으로 정리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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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년 전 처음 관광열차를 탔을 때 일이 생각납니다. 그때만 해도 역무계장의 말을 감히 거역할 수도 없었고, ‘차호’까지 지정을 하여 주었기에 별 생각 없이 승차하였습니다.

    짐을 옮기고 ‘가라오케’를 설치하는 등 한동안 북적거렸습니다. 20분 쯤 지났을까? 가라오케를 설치하시는 기사 분이 갑자기 난색을 지으며 “고장이 나서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관광열차의 생리를 몰라 “괜찮아요, 조용히 가면 되지요”라고 오히려 내가 기사를 다독였습니다. 그리고 육성으로 갈 곳을 소개하고, 가라오케의 고장을 설명하며 양해를 구했습니다.

    하지만 상황은 저의 예상과 정반대로 진행되었습니다. 손님들이 벌떡 일어나 항의하는데 “돈을 물려 달라. 차를 세워라 내리겠다. 역장 책임져랴” 조금 전까지 양순해 보이던 아줌마들이 갑자기 돌변하는 것이었습니다.

    어이쿠! 지금 생각해도 아찔합니다.

    얼른 역무계장에게 달려가 자초지종을 설명하니 “네 칸은 네가 책임지고, 어떻게 잘 해 보자”는 말뿐이었습니다. 돌아가자니 두렵고, 할 수 없이 옆칸 뒷자리에 앉아서 춤추는 것을 구경하니 정말로 가관이었습니다. 즐긴다기보다는 거의 ‘몸부림’이나 ‘광기’라는 표현이 맞을 듯 싶습니다. 한 10분쯤 구경했을까! 우리 칸에서 재미없다며 놀러온 손님에게 걸려서 다시 잡혀가다시피 했습니다.

    또 많은 비난이 쏟아졌습니다. “어떻게 고쳐볼 생각은 안하고 옆 칸에서 놀고만 있느냐, 방송실에서 일괄적으로 음악을 틀면 되지 않느냐”는 등등. 그날 저는 7시간 동안 육성으로 노래를 불러야 했습니다.

    교행 때문에 차가 서기만 하면 문을 닫고 못내리게 하면서 아양 떨고 달래고, ‘참 재수 더럽게 없는 날’ 중 하루였습니다.

    손님들을 사고 없이 무사히 보내고 집으로 걸어가며 많은 생각을 하였습니다.

    목 쉬었지, 몸 피곤하지, 손님에게 시달렸지, 비번 날 쉬지도 못하고 하루 깨졌지, 그렇다고 보상을 받지도 못하는데….

    내가 정말로 공무원인가, 마누라에게 뭐라고 말해야 되나, 이짓을 하면서도 일을 계속해야 되나, 정말로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습니다.

    6년이 지난 지금도 달라진 것이라곤 별로 없는 듯합니다.

    전만큼 안내원으로 가라고 강요는 하지 않지만 여전히 무언의 압력이 존재하고, 관광열차 모객행위 하기 위해서 열심히 전화해 대고, 손님에게 남자기생이 되어서 접대하는 것들이. 굳이 바뀐 것이 있다면 전보다 더 활성화되어 안내원 자격을 스스로 원하는 직원이 많아졌다는 것을 들 수 있습니다.

    손님들은 스트레스도 해소하고, 관광도 할 수 있어 “좋다”고들 합니다. 물론 인정합니다. 하지만 서로 술에 취해서 싸움이 일어나고, 고객 만족을 위해서 몸까지 바치는 것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실제로 관광열차로 인해서 불륜이 시작되고 이혼하고 가정 파탄나는 직원을 여러 명 목격한 적이 있습니다. 비록 일부분이기는 하지만 그 만남의 원인이 관광열차에서 비롯된 점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또한 가라오케가 없고, 직원들이 분위기를 띄워주지 않으면 다음 관광열차는 기약할 수도 없는 형편입니다.

    그런데 철도원의 입장은 어떻습니까? 직원들에게 안내원으로 따라가지 말라는 것이 철도청의 방침 아닙니까? 실제로는 등을 떠밀면서…

    그것이 모든 책임을 회피하고 시간외수당마저 지급 안하겠다는 속셈인지, 아니면 안내원 없이도 관광열차 유치에 자신이 있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관광열차를 유치한 역에서는 직원들에게 안내원으로 따라가라고 종용하고 있는 것 또한 현실입니다.

    혹시 사고의 책임이나 시간외수당을 준다 치더라도 외부적으로 ‘퇴폐풍조 조장’이라는 지적을 면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나는 가족을 데리고 관광열차에 타기 싫습니다. 아내에게 남자기생의 역할을 보이기도 창피하고 술 먹고 춤추며 추태부리는 장면 역시 자식들에게 교육적으로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또 부모님에게 권장하기도 낮 부끄럽습니다.

    특히 놀이문화를 올바르게 선도해야 할 공기업이 돈에 논이 멀어 퇴폐관광을 조장하면서도 자랑하는 철도청을 보면 더 이상 할 말이 없습니다.

    그런 식으로 돈 한 푼 안들이고 고객만족과 수입증대를 동시에 만족시키는 것도 대단하고. 직원에게 충분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으면서 서로 경쟁을 시키고 강요하는 관광열차는 이제 가증스럽기까지 합니다. 그런 것들은 숨기고 밖으로 나타난 수입만 가지고 자랑하는 철도청이 몹시 부끄럽습니다.

    72억을 벌었으면 뭐 합니까? 가정 파탄나고 사회적으로는 퇴폐라고 지탄받는 것을 어떻게 돈으로 계산할 수 있겠습니까?

    이렇게 운영되는 관광열차가 얼마나 더 많은 황금알을 낳게 될지 모르겠지만 관계법령과 직원에 대한 배려, 또 외부적인 문제를 검토하지 않는다면 머지않아 철도청을 그 대가를 톡톡히 치를 것입니다.

    필자소개
    철도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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