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내 악습인 ‘태움’ 문화,
장시간 노동이 그 원인
고 박선욱 간호사 사망사건 진상규명 재발방지 위한 공대위 출범
    2018년 04월 17일 11:09 오후

Print Friendly

병원 내 ‘태움’에 시달리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고 박선욱 간호사 사망사건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가 출범했다.

‘고 박선욱 간호사 사망사건 진상규명과 산재인정 및 재발방지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는 17일 오전 광화문 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태움, 인력 부족, 미흡한 신규간호사 교육제도, 장시간 노동 이 모든 것들이 고 박선욱 간호사를 죽음으로 몰아갔다”며 “1차적인 책임이 있는 서울아산병원은 공식적으로 사과하고 고인의 명예를 회복하라”며 촉구했다.

공대위에는 간호사연대, 건강권 실현을 위한 행동하는 간호사회,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과로사OUT 공동대책위원회 등이 참여하고 있다.

사진=공대위

박선욱 간호사는 서울아산병원 입사 6개월 만인 지난 2월 15일 오전 병원 인근 아파트에서 투신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공대위에 따르면, 고인은 사망하기 20여분 전에 남긴 메모에서 ‘업무에 대한 압박감’, ‘의기소침해지고 불안한 증상’, ‘하루에 세 네 시간의 잠과 매번 거르게 되는 끼니’ 등의 괴로움을 호소했다.

그러나 경찰은 참고인 조사 등을 벌인 결과 가혹행위인 ‘태움’은 발견되지 않았다며 내사종결 처리하겠다고 지난 19일 밝혀 논란이 됐다.

‘태움’은 선배 간호사가 신임 간호사를 괴롭히며 가르치는 악습을 일컫는 용어로 ‘재가 될 때까지 태운다’는 말에서 나왔다. 일선 간호사들은 ‘태움’이 교육을 빙자한 가혹 행위라고 비판하고 있다. 박 씨의 사망 직후부터 이른바 ‘태움’이 사망의 원인으로 제기됐다.

공대위는 “태움의 배경에는 고질적인 간호인력 부족 문제가 자리 잡고 있다”며 “한국의 간호사들은 밥 먹을 수 있고 화장실 갈 수 있는 부서가 희망부서일 정도”라고 지적했다.

병원은 인력부족을 이유로 2개월 간 짧은 교육을 끝낸 직후 신규간호사를 바로 실무에 투입한다. 신규간호사를 교육하는 선임간호사의 경우도 원래 담당하던 환자 수를 그대로 유지한 채 신규간호사 교육까지 맡고 있는 형편이다.

공대위는 “과중한 업무와 스트레스 속에서 선임간호사는 신규간호사를 태우게 되고, 생명을 다루는 직업이라는 명분과 인력부족이라는 배경 속에서 태움은 정당화된다”면서 “태움은 대물림되고, 30%가 넘는 신규간호사들이 입사 후 1년 안에 이직하고 있다. 병원은 다시 신규간호사를 채용하면 그만이고, 정부는 간호대 입학정원을 증가시켜 이를 뒷받침할 뿐”이라고 비판했다.

병원 내 악습인 ‘태움’ 문화는 장시간 노동이 그 원인으로 꼽힌다. 박 씨는 오후 1시에 출근해 새벽 5시에 퇴근하며 하루 16시간을 근무했다. 이러한 장시간 노동에 박 씨뿐 아니라 많은 신규 간호사들이 시달렸다는 것이 공대위의 주장이다. 초과근무에 대한 수당도 지급되지 않았다. 환자의 생명을 살리는 병원이 이윤을 위해 부족한 인력을 간호사의 장시간 노동으로 채우며 간호사들을 죽음으로 몰아갔다는 비판이 나오는 대목이다.

공대위는 “대통령은 연간 노동시간을 1800시간대로 줄이겠다고 발표했지만, 현장에서는 기록되지도 않는 장시간 노동으로 노동자들이 고통 받다가 죽음까지 선택하고 있다. 이것이 우리 사회의 현 주소”라고 지적했다.

‘태움’ 문화의 원인이 되고 있는 인력부족, 장시간 노동엔 이윤 창출에만 몰두하는 병원과 장시간노동을 사실상 방치하고 있는 정부의 책임론이 제기된다.

공대위는 “정작 인력을 줄이고 노동시간을 늘려서 이익을 얻었던 서울아산병원은 침묵하고 있다”며 “현장의 간호사들은 심지어 자신이 태움의 가해자였던 경험들을 고백하는데, 병원과 경찰은 죽음에 이를만한 태움은 없었다고 하고 있다”고 질타했다 .

정부에 대해서도 “(장시간 노동) 규제의 책임이 있는 정부는 근로기준법 59조 특례업종으로 보건업을 남겨놓아 장시간 노동에 면죄부를 주었다”면서 “최근에 발표한 간호인력 대책에서는 간호인력 배치수준 강화라는 핵심도 없고 신규간호사 교육제도 개선도 없었다”고 비판했다.

공대위는 서울아산병원의 공식적인 사과와 고인의 명예회복은 물론, 정부의 재발방지대책도 뒤따라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우선 정부가 박 씨의 사망사건에 대한 산업재해를 인정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들은 “고 박선욱 간호사의 죽음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인 문제오랫동안 열악한 노동조건으로 고통받아왔던 간호사들의 현실을 개선하는 시작점이 돼야 한다”면서 “나아가 한국 사회에 만연한 장시간 노동을 근절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공대위는 ‘박선욱법’ 제정을 위한 토론회와 서명운동, 내달 12일 국제산호사의 날 집회 등을 계획하고 있다.

필자소개
유하라
레디앙 취재기자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