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 간접고용 8천여명
    직접고용·노조활동 인정
    ‘무노조 경영’ 노동자 투쟁으로 폐기
        2018년 04월 17일 04:46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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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성전자의 자회사인 삼성전자서비스가 협력업체 비정규직 간접고용 노동자 8천여 명 전원을 정규직으로 직접고용하기로 했다. 삼성그룹이 계열사에서 민주노조를 인정한 첫 사례로, 80년간 유지해온 ‘무노조 경영’을 사실상 폐기한 것이다.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등에 따르면, 삼성전자서비스와 삼성전자서비스지회는 17일 협력업체 소속 간접고용 노동자들을 직접고용으로 전환하는 내용의 합의서를 작성했다.

    합의서는 ▲협력업체 직원 직접고용 ▲노조 및 이해당사자들과 빠른 시일 내 직접고용 세부내용 협의 개시 ▲노조를 인정하고 합법적 노조활동 보장 ▲양 당사자는 갈등관계를 해소하고 미래 지향적으로 회사 발전을 위해 함께 노력 ▲양 당사자는 본 합의서를 성실히 이행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노조는 4월 17일 중앙집행위원회에서 의견접근 합의서를 승인했다.

    확약서를 교환하는 노조 나두식 지회장과 삼성전자서비스 최우수 대표이사(사진=삼성전자서비스지회)

    삼성전자서비스는 삼성전자의 가전제품을 수리하고 유지보수하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삼성전자의 자회사다. 삼성전자가 직접고용하는 노동자는 삼성전자서비스와 계약을 맺은 90여개 협력업체의 8천여명의 노동자들이다. 대기업 소속 비정규직 노동자의 정규직 전환 규모로는 최대인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삼성전자서비스는 노동조합을 인정하고 합법적인 노조 활동도 보장하기로 합의했다. 삼성이 노조 활동을 인정하겠다고 공식적으로 밝힌 것은 1938년 창사 이래 처음이다. 무노조 경영을 사실상 폐기하겠다고 선언한 것으로 읽힌다.

    삼성전자서비스지회의 노조 활동 인정을 계기로 삼성그룹 내 다른 노조도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삼성엔 금속노조 삼성지회, 삼성웰스토리지회, 삼성에스원 노조 등 3개의 민주노조가 있다.

    앞서 검찰은 이명박 전 대통령 다스 소송비 대납 사건과 관련해 삼성전자를 수사하는 중에 인사팀 직원의 컴퓨터에서 6천 건의 노조 와해 문건을 발견해 재수사에 나섰다. 해당 문건엔 삼성이 계획적으로 노조 설립 자체를 차단하고, 노조 설립 이후엔 와해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회유, 탄압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지난 12일 SBS 보도에 따르면, 검찰은 삼성은 삼성전자서비스지회를 없애기 위해 외부 노조파괴 전문가들과 용역 계약을 맺고 별도의 종합상황실을 꾸려 자문을 받아온 정황을 확인했다. 삼성은 이들 전문가들에게 매달 수천만원에 달하는 거액의 용역비를 지급했다. 외부 전문가들이 노조 파괴를 위해 작성된 문건의 제목은 ‘서비스 안정화 마스터플랜’이다. SBS는 이 문건에 노조를 ‘Burn Out’(태워서 소멸시킨다, 녹초로 만든다)하게 만드는 전략이 포함돼있다고 밝혔다. 삼성이 이처럼 거액의 자문료까지 투입해 노조파괴를 벌이는 과정에서 삼성전자서비스지회 노동자 2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도 벌어졌다.

    삼성의 직접고용, 노조활동 인정 방침은 삼성 노조 와해 문건의 내용이 공개되고 검찰이 재수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것에 따른 선제 조치인 것으로 풀이된다. 삼성 스스로도 부당노동행위 혐의를 피하기 어렵다고 판단 것이다.

    삼성그룹 80년 무노조경영 폐기 선언은 지치지 않고 싸워온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이 이룬 쾌거다. 삼성전자서비스지회는 2013년 7월 노조를 설립하고 5년 동안 노조활동을 인정받기 위해 투쟁해왔다.

    삼성전자서비스지회는 이날 입장문을 내고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은 2018년 4월 17일 오늘 비로소 삼성그룹이 80년간 이어온 철옹성 같았던 ‘무노조경영을 폐기’시켰다라고 승리의 송리를 밝히겠다”며 전했다.

    그러면서 “이는 ‘삼성그룹 80년 무노조 경영’에 맞서 민주노조를 사수하고 ‘삼성을 바꾸고 세상을 바꾼다’라고 외친 삼성전자서비스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승리”라고 평가했다.

    지회는 “이제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은 삼성그룹의 감시자의 역할을 할 것”이라며 “삼성그룹의 노동자들의 노동조합활동을 확장하겠다”고 강조했다. 또한 “오늘날 초일류 기업으로 삼성이 성장한 것은 수많은 노동자들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노동자 중심의 삼성그룹으로 바꿔 나가겠다”고 약속했다.

    이들은 “천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삼성전자서비스 간접고용 비정규직 투쟁을 계기로 용기를 내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전하기도 했다.

    아울러 “수사가 진행 중인 노조 와해 문건과 관련해서 피해 당사자로서 검찰 수사에 성실히 임해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어내고 일벌백계해 대한민국에서 노동3권이 존중되는 세상이 되는 기틀을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정의당 “삼성 그룹 전반에 확산돼 삼성을 개혁하는 신호탄 되기를 기대”

    정치권에서도 삼성전자서비스의 노조활동 인정 방침 등에 환영을 표하며 향후 삼성그룹 전반에 민주노조 설립이 확산돼야 한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최석 정의당 대변인은 이날 국회 브리핑에서 “대한민국 노동현실의 가장 어두운 부분인 간접고용, 비정규직 문제를 삼성과 같은 대기업이 나서서 해결한다는 측면에서 이번 조치는 큰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다만 “삼성반도체의 백혈병 노동자 문제는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고, 철통같은 무노조경영은 삼성의 모든 노동자들을 옭아매고 있다”며 지적했다. 여전히 다른 계열사의 민주노조는 노조활동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지적한 것이다.

    최 대변인은 “삼성은 개발독재 시류에 편승해 국민의 피와 땀을 먹고 성장한 기업이다. 하지만 그에 걸맞은 사회적 책임을 제대로 보여준 일은 없었다”며 “이제야말로 삼성이 제대로 된 사회적 책임을 다할 때라고 본다. 이번 서비스 기사의 정규직 전환과 노조활동 인정이 삼성 그룹 전반에 확산돼 삼성을 개혁하는 신호탄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도 보도자료를 내고 “이러한 발표의 배경이 최근 검찰의 노조와해문건 수사 과정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대법원 상고심 재판(뇌물혐의)과 관련이 있다는 부정적 시각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다”면서 “하지만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눈물겨운 고통을 잘 알기에 삼성의 이 같은 결정을 적극 환영한다”고 밝혔다 .

    이어 “삼성의 부도덕한 경영과 노동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하며 투쟁해온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도 아낌없는 축하의 말씀 전한다”고 덧붙였다.

    을지로위는 “삼성은 이번 발표를 계기로 기존의 경영행태를 전면적으로 개선하여 사회적 책임을 강화하고 노동존중 경영으로 전환해야 할 것”이라며 “이번 발표가 아직도 불법파견 위장도급 부당노동행위를 지속하는 민간기업에 전면적으로 확산되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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