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 WTO말엔 "예, 예" ILO 권고엔 "No"
    By tathata
        2006년 04월 13일 02:3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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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LO 아태지역 총회가 오는 8월 29일부터 9월 1일까지 부산에서 열린다.

    ILO 아태지역 총회는 지난 해 열리기로 정해졌으나, 당시 양노총이 악화된 노정관계 속에서 김대환 장관의 퇴진 등을 요구하며 불참선언을 해 무산된 바 있다. 이번 총회는 지난 10월 전재환 민주노총 전 비대위원장과 이용득 한국노총 위원장이 국제자유노련 아시아태평양지역(ICFTU-APRO) 집행위원회에서 총회의 한국 개최를 동의해서 열리게 됐다.

    ILO 아태총회가 한국에서 개최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하지만 ‘손님’을 맞이하기에 앞서 한국의 노동현실이 과연 국제노동기준에 얼마나 부합하고 있는지를 되돌아보는 계기가 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한국, ILO협약 비준 OECD 3분의 1수준

    한국이 지난 1991년 ILO에 가입한 이후 ILO 협약을 비준한 것은 20여개. 2004년 10월 현재 ILO 회원국 177개국이 평균 40여건을 비준한 것의 절반 수준이다. EU국가 평균이 89개이며, OECD 평균이 71개인 점을 감안할 때 한국의 비준 건수는 극히 저조하다.

    특히 한국은 ILO가 비준의 최우선순위를 부여하고 있는 기본협약 8개중 4개만을 비준하는데 그치고 있다. 한국은 기본협약 중 △강제근로에 관한 협약(29호) △강제근로폐지 협약(105호) △결사의 자유 및 단결권보호에 관한 협약(87조) △단결권 및 단체교섭권 원칙의 적용에 관란 협약(98호)을 비준하지 않은 상태다. 이들 협약을 비준하기 위해서는 병역법, 국가보안법, 집시법, 노조법, 국가공무원법 등 국내법 정비도 함께 이뤄져야 하는데 국회와 정부가 소극적인 자세로 일관하고 있는 것이 주된 이유다.

    이에 대해 이승욱 부산대 교수는 “한국의 ILO협약 비준의 지체현상은 협약비준의 책임을 부담하고 있는 국회와 비준을 위한 노력을 적극적으로 해야 하는 행정부, 국제노동기준을 국내법의 해석으로 적극 수용하지 않는 사법부의 의지부족에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고 분석했다.

    하소연 할 곳 없는 노동자들 ILO제소 밖에

    한국의 후진적인 노동현실을 반영하듯 노동계 또한 ILO제소를 통해 국제사회에 노동탄압 실태를 계속적으로 고발해왔다.

    민주노총은 2001년 복수노조 허용을 5년 동안 유예키로 한 노동법 개정안에 대해 한국정부를 ILO에 제소한 것을 비롯, 2002년에는 ILO 본부를 방문하여 한국정부가 단병호 위원장에게 징역 2년형을 선고하는 등 김대중 정부의 임기 동안 노동쟁의와 관련 740여명을 구속한 것이 국제노동기준을 위반하고 노동기본권을 짓밟고 있다며 제소했다.

    또 정부가 공무원노조 출범 이후 구속과 체포영장 발부, 징계 요구 등의 탄압을 자행하는 것이 결사의 자유 및 단결권 보호에 관한 협약 등을 위반하고 있다며 제소하기도 했다.

    지난해에는 민주노총 대표단이 ILO총회에 참가하여 이주노동자노조 위원장 강제 연행 및 노조 불허 등이 ILO의 결사의 자유 위반에 해당한다며 제소했다. 또 정부가 “직접적인 고용관계를 은폐하기 위해 위장자영업, 위장하청계약, 위장용역제공, 위장구조조정 등의 수단을 활용하고 있다”며 파견노동자의 원청의 직접적인 사용자성 불인정, 특수고용직 노동자의 노동권 불인정이 ILO의 결사의 자유를 위반하고 있다며 제소했다.

    공무원노동조합총연맹(공노총) 또한 지난달에 현행 공무원노조법이 노조 가입을 직종, 직급, 직무별로 3중 제한함으로써 결사의 자유 등의 협약을 준수하지 않았다며 ILO에 한국정부를 제소했다.

    ILO도 한국정부에 강한 권고 조치

    노동계의 잇따른 제소에 ILO도 한국정부에 ‘경고장’을 보냈다. 지난달 30일 ILO 이사회는 한국정부에 대해 강도 높은 권고문을 보내고 전임자 임금 지급 문제와 관련돼 시정을 촉구했다. ILO는 노조전임자 임금지급 문제는 노사자율에 의해 결정돼야 하며, 필수공익사업의 범위는 엄격한 의미에서만 제한되도록 수정할 것을 권고했다.

    또 5급이상 공무원이 자신의 이해보호를 위해 조합결성권리를 보장하며, 폭력 또는 파괴 행위를 한 경우를 제외하고 현행 노동법 위반을 이유로 근로자를 불구속 조사하는 관행을 정착시키는 노력을 계속할 것 등을 권고했다.

    그러나 한국정부는 ILO의 이같은 권고에 대해 ‘수긍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정형우 노동부 국제노동정책팀장은 지난 12일 <매일노동뉴스>의 기고를 통해 “ILO가 협의의 공무원에 대해서는 파업권이 제한 또는 금지될 수 있다고 해석해 온 것과는 상치”되어 “ILO의 공정성을 심각히 훼손하는, 편향된 권고안”이라며 반발했다.

    정부가 사실상 ILO의 권고에 ‘비토’를 선언한 것인데, 이에 대해 민주노총의 한 관계자는 “만약 WTO의 권고라면 그렇게 대응했겠냐”며 “정부가 신자유주의 기구 앞에서는 문구 하나하나를 따지며 꼼짝 못하면서, 노동의 국제기구 앞에서는 해석을 잘못했다며 큰 소리 치고 있다”고 비판했다.

    국제행사 사진찍기 넘어 내실있게 준비하자

    이번 ILO 아태 총회를 계기로 한국의 노동현실을 국제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계기를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특히 이번 ILO 아태총회의 주제가 ‘양질의 노동(decent work)’으로 △노동조합 조직권과 단체교섭권 인정 △동일노동 동일임금 등 차별금지 등을 논의하는 자리인 만큼 국제적인 토론과 협의를 통해 한국의 노동현실을 공유시키고, 노동의 ‘글로벌 스탠더드’를 확보해야 한다는 의견들이다.

    윤효원 보건의료노조 국제담당자는 노동계가 “단지 회의장 밖에서 구호를 외치고 반대의 목소리에 외치는 것을 넘어, 아태총회를 통해 국제적인 노동현안에 개입하여 한국의 노동운동이 세계적인 수준이 될 수 있도록 실력을 갖추어나가고 준비해 나가자”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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