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벼룩나물, 식물명의 유래
    [푸른솔의 식물생태] '일본명' 이견
        2018년 04월 17일 10:14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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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벼룩나물이란?

    벼룩나물<Stellaria uliginosa Murray(1770)>은 석죽과에 속하는 두해살이 풀이다. 가을에 싹이 트고 겨울을 난 후 이듬해 봄(4~5월)에 개화한다. 해를 넘겨 살기 때문에 두해살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한해를 사는 셈이다.

    식물체는 다 커야 15cm 내외 정도이고 하얀 꽃도 지름이 1cm 정도이니 아주 조그만하다. 추수를 끝내고 새로이 벼를 심기 전까지 논에 서식하거나 그와 유사한 습기 많은 곳에 주로 산다.

    벼룩나물의 전초

    벼룩나물의 새싹

    벼룩과 벼룩나물의 꽃

    간도 쓸개도 없는 벼룩을 둘러싼 논쟁

    최근에는 약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천봉초(天蓬草)라는 이름으로 약으로 쓰기도 한다. 그러나 옛적에는 곤궁할 때 새싹의 날 것을 초무침으로 먹거나 삶아서 나물로 식용하는 것이 주된 용도이었다. 그러나 그것마저 크기가 작아 배를 채우기는 웬만큼 뜯어서는 쉽지 않았다.

    “벼룩의 간을 빼 먹는다”. 자고로 우리말에서 벼룩은 작은 것의 대명사 아니던가? 그래서 ‘벼룩나물’이라는 이름은 잎이나 꽃의 크기가 벼룩(蚤) 같이 작고 나물로 먹기도 하는 것에서 유래하였다는 것이 정설이고 여기에 대하여는 별다른 이견이 없는 듯하다. 그런데 문제는 다른 곳에 있다.

    ​중국명 雀舌草(que she cao)는 참새 혀처럼 생긴 풀이라는 뜻으로 작은 잎의 모양에서 유래하였는데, 조선중기 문신 배응경이 저술한 안촌집(1884년 발간)은 ‘路傍多生雀舌草’(길가에는 작설초가 많이도 사는구나)라고 하여, 우리나라에서도 이 한자명을 사용한 예를 볼 수 있다. 그런데 일본명 노미노후스마(ノミノフスマ, 蚤の衾)는 벼룩의 이부자리라는 의미인데, 여기에 ‘벼룩'(ノミ)이라는 단어가 들어가기 때문에 사달이 발생한 것.

    “하지만 벼룩나물은 우리 이름이 아니다. 국수청이라는 우리 이름을 무시하고, 일본명에 맞추어 이름을 짓다보니 그렇게 된 것이다…(중략)…한글명 벼룩나물은 잎이 아주 작고 앙증스러운 데에서 비롯된 명칭일 것이다. 일본명 노미노후수마(蚤衾, 조금)와도 잇닿아 있다. 잎을 벼룩이(蚤, 조)의 이부자리(衾, 금)에 빗대고 있다…(중략)…‘국슈’는 ‘국수’이며, ‘쳥이’의 ‘쳥’은 방언의 무청(무의 잎과 줄기)처럼 뿌리 위에 달린 식물체 푸른 부분을 의미하는 ‘청’과 의존명사 ‘이’의 합성어다. 따라서 벼룩나물의 본래 명칭은 ‘국수청이’다.” [김종원, ‘한국식물생태보감1’, 자연과 생태(2013) p285 및 p291중에서]

    ​일본은 우리의 철천지 원수 아니던가? 원수가 하는 일은 절대로 따라 해서는 안 되며 일본이 밥을 먹으면 우리는 밥을 먹어서도 안 되고 똥을 싸서는 더욱 안 되지 않는가 말이다. 물론 그런 의미는 아닐 것이다. 일본식 초밥을 우리식 전통요리인 것처럼 소개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이 아니라는 반론의 의미로 적은 글일 것이다. 그런데 과연 벼룩나물은 우리 이름이 아닌 것인가?

    벼룩나물은 우리 이름이 아닐까?

    (1) 논란의 진원지?!

    정태현, 도봉섭, 이덕봉, 이휘재 공저, ‘조선식물향명집’, 조선박물연구회(1937) p62

     

    현재 우리가 부르는 식물명의 주요한 뼈대를 형성한 조선식물향명집은 일본명 노미노후스마(ノミノフスマ)를 기록하고 바로 그 아래 일본명의 벼룩(ノミ)이 그대로 들어 있는 벼룩나물을 기록하였다. 누구나 이것만을 보고 있노라면 일본명을 흉내내어 이름을 지은(!) 것이 아닐까하는 의구심이 든다.

    “過去 數十年間 朝鮮 各地에서 實地 蒐集한 鄕名을 주로 하고 從來 文獻에 記載된 것을 參考로 하여 鄕名集을 上梓케 되얏슴” <조선식물향명집의 ‘사정요지’중에서>​

    조선식물향명집의 저자들이 ​조선식물향명집의 그 머리말(사정요지)에서 명백히 밝혀 놓은, ‘과거 수십 년간 조선 각지에서 실지 수집한 향명을 주로 하고 종래 문헌에 기재된 것을 참고로 하여 조선식물향명집을 출간하였다’는 그들의 선언을 조금이라도 신뢰하고, 수집 가능한 자료들에 근거하여 귀납적인 판단을 하였다면 “우리 이름을 무시하고, 일본명에 맞추어 이름을 짓다보니 그렇게 된 것”이라는 기괴한 결론에 도달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쨌든 여기서는 일본명과 한국명은 너무도 유사하여 의심은 자연스럽다는 정도로 일단 기억하자.

    ​(2) ‘조선식물명휘’의 기록​

    모리 다메조(森爲三), ‘조선식물명휘(朝鮮植物名彙)’, 조선총독부(1921) p148

    문제는 경성제국대학 예과 교수로서 생물학자이었던 일본인 모리 다메조(森爲三)가 1921년 조선총독부의 의뢰를 받아 저술한 조선식물명휘(朝鮮植物名彙)에도 ‘벼룩나물’이 기재되어 있다는 점이다.

    위 조선식물명휘의 내용을 조금 쉽게 옮겨 보면 (i) 학명은 Stellaria uliginosa Murray이고, (ii) 제주도, 해금강, 신의주, 경성, 평양에서 표본을 채집하였으며, (iii) 일본명은 노미노후스마(ノミノフスマ)이고, (iv) 한자로는 雀舌草(작설초), 天蓬草(천봉초)라고 하며, (v) 조선명으로는 벼룩나물(Pyoruknamul)이라 하고, (vi) 이 식물은 구황식물(救)로 사용한다는 의미이다.

    이쯤되면 헷갈리기 시작한다. 어? 벼룩나물은 조선이름일지도 모르겠네? 그래서인지 “벼룩나물은 우리 이름이 아니다. 일본명에 맞추어 이름을 짓다보니 그렇게 된 것이다”라고 확언을 했던 한국식물생태보감도 흔들린다. 그러면서 슬그머니 일본명과 ‘잇닿아 있다’고 표현을 누끄러뜨린다. 한국식물생태보감1(2013) p291에서는 명백히 森(1921)(조선식물명휘를 의미함)에 ‘벼룩나물’이 존재하고 있음을 인용하고 있다.

    도대체 ‘잇닿아 있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어쨌든 여기서는 벼룩나물은 조선이름일지도 모르겠다는 정도로 기억을 하자.

    (3) ‘조선의 구황식물’의 기록

    우에키 호미키(植木秀幹), ‘조선의 구황식물(朝鮮의 救荒植物)’, 조선농회(1919) p16

    ​동경제국대학 임학과를 졸업한 후 조선에 와서 수원농림전문학교(해방 이후 서울대학 농과대학으로 편입됨)의 교수를 역임했던 우에키 호미키(植木秀幹)가 1919년에 저술한 ‘조선의 구황식물’에는 벼룩나물의 유래에 대하여 보다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내용을 조금 자세히 들여보면, (i) 18번째로 석죽과(石竹科)에 속하고, (ii) 조선의 구황식물에서 소개하는 40번째 식물이며, (iii) 경기도 수원에서는 ‘베룩나물’이라 하고, (iv) 강원도 홍천에서는 ‘베록이나물’이라 하며, (v) 경북 의성에서는 ‘비ㄹ.ㅣ기초'(비래기초)라 하고, (vi) 전남 남원에서는 ‘수시렁덩이’라 하며, (vii) 충북 영동에서는 ‘별금자리’라 하는데, (vii) 일본명은 노미노후스마(ノミノフスマ)라는 것이다.

    ​이쯤되면 벼룩나물은 경기도, 강원도, 경북지역에서 사용한 방언들에 대한 공통된 이름으로 우리의 옛 언중들이 사용하던 우리 이름이며 일본명은 아니라는 것이 명확해지지 않는가! 그래도 간악한(!) 일본인이 자신들의 이름을 문헌에 은근슬쩍 넣어 전파시키기 위해서 저런 작업을 하였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들기도 한다. 일본인의 대표적 특성은 간악함(?)이 아니던가?

    ​​(4) 국립수목원의 방언 조사

    ​모든 일본인의 기록, 더 나아가 일제강점기의 기록 일체를 믿을 수 없다고 가정해 보자.

    대한민국의 국립수목원은 근래에 주요 식물을 뽑아 전국에서 전통적으로 식물을 이용하는 지식과 지방명을 조사하여 발표하였다. 국립수목원, ‘한국의 민속식물/전통지식과 이용’, 국립수목원간(2013)이 그것이다. 그중 p249에 소개된 벼룩나물을 요약하여 살펴보자.

    ​​■ 지방명
    전라도 : 단독초나물, 벌금자리, 보리배기, 보리뱅이, 양판대기, 좁쌀쟁이
    경상도 : 나락나물, 나락냉이, 벌꾸두더기,벼룩나물, 비리두리
    충청도 :​ 벌금자리
    경기도 : 벌금다지, 비름다지, 벼룩나물
    강원도 : 나락나물, 벌굼다지, 벼룩나물

    ​위 조사 내용을 살펴보면, 우선 베룩나물이 벼룩나물이 되는 등 몇 표현의 변화가 있는 것을 제외하고 우에키 호미키(植木秀幹)가 1919년에 저술한 ‘조선의 구황식물’의 기록과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 간악한(?) 일본인이 조사한 자료도 신빙성이 있구나!

    다음으로 벌금자리(벌금다지와 벌굼다지 포함)라는 방언과 더불어 벼룩나물이 대체로는 우세하게 불렸던 이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조선식물향명집에서 기록된 벼룩나물이 ‘우리이름이 아닌 것을 일본명에 맞추어 이름을 짓다보니 그렇게 된 것’이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地方에 따라 同一植物에 여러가지 方言이 잇는 것 또는 같은 方言에 數種의 植物名이 있는 때에는 그 植物 또는 그 方言에 가장 適合하고 普遍性이 잇는 것을 代表로 採用”함(조선식물향명집의 ‘사정요지’ 중에서)

    ​조선식물향명집의 사정요지는 지방에 따라 동일식물에 여러 가지 방언이 있는 것에 대하여는 그 방언에 가장 적합하고 보편성이 있는 것을 대표로 채용한다고 기술하였다. 그들은 그 말에 따라 여러 지역의 여러 방언이 있었지만, 그들이 파악한 바에 따라 벼룩나물이 적합하고 보편성이 있는 이름으로 판단하고 그 이름을 기록하였다.

    ​(5) 참고 : 토명대조선만식물자휘와 ‘국슈쳥이’

    무라타 시게마로(​村田懋麿), ‘토명대조선만식물자휘(土名對照鮮灣 植物字彙)’, 동경목백서원(1932) p258 이하

    1932년에 일본인 무라타 시게마로(​村田懋麿)가 저술한 토명대조선만식물자휘는 벼룩나물에 대한 조선명으로 ‘국슈쳥이’를 기록하고 있다. 이것을 근거로 한국식물생태보감1(2013)은 ‘벼룩나물의 본래 명칭은 국수청이다’라고 단언하고, ‘국수청이라는 명칭은 분명 한반도 중북부 어느 지방의 명칭이었을 것이 틀림없다’고 한다. 조선식물향명집과 조선식물명휘를 믿을 수 없는데 어떻게 토명대조선만식물자휘는 믿을 수 있을까?

    토명대조선만식물자휘(土名對照鮮灣 植物字彙)는 조선과 중국 만주 지방의 향명을 서로 비교하여 정리하고, 그 식물에 관한 약간의 해설을 기록한 책이다. 그런데 그 저자 무라타 시게마로(​村田懋麿)는 1943년경에 사망하였고, 그가 조선과 만주 지역의 문화와 동식물에 관심이 많아, 1924년에 ‘​朝鮮の生活と文化 ; 渡韓のめもり’를, 1932년에 ‘土名對照鮮灣 植物字彙’를, 1936년에 ‘鮮満動物通鑑’을 작성하였다는 것 외에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일본에도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다. 분명한 것은 그는 식물전문가가 아니었으며 아마추어 수준에서 문헌과 실제 체험을 위주로 기록을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일제강점기에 저술된 식물 관련 서적 중 학명과 식물명에 오류가 가장 많은 책 중의 하나이다. 그 내용을 어떻게 신뢰할 수 있다는 것일까?

    ​​한국식물생태보감의 더 큰 문제점은, 무라타 시게마로(​村田懋麿)의 ‘국슈쳥이’라는 기록이 벼룩나물을 지칭하는 이름이 맞다고 하더라도, ‘벼룩나물의 본래 명칭은 국수청이’라고 단정해서는 아니 됨에도 그렇게 단언한다는 것이다. 식물명이 식물분류학에 따라 체계적인 정리를 시작한 일제강점기나 그 이전에는 지금과 같은 매스미디어나 교육기관들이 발달하지 않아 단일한 표준명이나 추천명을 설정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하나의 식물에도 지역마다 다양한 이름이 존재할 수 밖에 없었으며 실제로도 그러 하였다. 그런데 어떻게 하나의 이름을 본래 명칭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러한 확실한 언급에도 불구하고, 불행하게도(!), 우에키 호미키(植木秀幹)가 정리한 ‘조선의 구황식물'(1919)에도, 대한민국 국립수목원이 정리한 ‘한국의 민속식물'(2013)에도 벼룩나물에 관한 이름으로는 ‘국수청이’나 그 유사한 이름은 등장하지 않는다. 한국식물생태보감1(2013)은 벼룩나물의 본래 명칭이 ‘틀림없다’고 확신했음에도 불구하고, 국립수목원의 ‘한국의 민속식물'(2013)에 의하면 ‘국슈쳥이’와 유사한 지방명이 여전히 충청도 지역에 ‘국수댕이, ‘국수쟁이’, ‘국시딩이’라는 이름으로 남아 있지만, 그 이름은 벼룩나물이 아니라 ‘벼룩이자리'(Arenaira serpyllifolia)의 지방명이다[국립수목원, ‘한국의 민속식물’, 국립수목원간(2013) p234 참조].

    결론

    한국명 ‘벼룩나물’과 일본명 ‘노미노후스마(ノミノフスマ)’에 어떻게 공통되는 벼룩(ノミ)이라는 단어가 들어가게 되었는지 설명할 재간은 없다. 생물학적 의미의 ‘우연’이거나 ‘수렴진화’라고 하면 될려나? 두 나라의 식물명이 벼룩(ノミ)이라는 이름이 공통으로 있기에 잇닿아(?) 있다고 할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현재 남아 있는 자료에 근거하여 합리성을 갖추어 귀납적으로 판단하자면, 분명한 것은 벼룩나물은 우리 이름이며 국수청이라는 이름을 무시하고 일본명에 맞추어 이름을 짓다보니 생겨난 이름이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일본인이 밥을 주식으로 한다고 하여 우리가 밥을 주식이 아닌 것으로 취급할 이유는 없다.

    ​조선식물향명집과 그곳에 기록된 식물명이 현재 우리에게도 소중한 것은, 단순히 조선식물향명집이 근대 식물분류학에 입각하여 우리 식물명을 기록한 최초의 문헌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우리 식물명을 우리말을 사용하는 언중들이 실제 생활에서 사용하는 이름에서 찾고자 하였고, 그에 덧붙여 가장 적합하고 보편성이 있는 이름을 찾아 기록하고자 하였다는 것, 그리고 그 결과물이 우리에게 이어져 오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노력을 무시하고, 옛 선인들이 실제 식물과 부대끼며 생활 속에서 찾아내어 사용하였고 그것이 기록된 우리 식물 이름을, 정확한 근거도 없이 쉬이 일본명으로 단정하는 것이 어찌 ‘우리 식물 이름의 뿌리를 바로 잡으려는’ 일이 되겠는가?

    ​2018/4/10/ 기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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