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제대로 싸울 것인가?
'GM 스트레스 증후군' 벗어나기
1972~2018년, GM과의 질긴 악연 (3)
    2018년 04월 16일 09:2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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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지엠 군산공장의 폐쇄와 희망퇴직, 이어서 부평 등 전 사업장에 대해 GM본사는 정리해고와 부도처리 등에 대한 협박을 하면서 노동조합과 노동자에게 일방적인 양보와 희생을 강요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지엠의 현 상황에 대한 진단과 지속적인 발전 계획에 대해서는 계속 유보적이거나 침묵하고 있는 게 GM의 태도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GM의 태도는 최근의 사태에서만 발견되는 게 아니라 대우자동차, 그리고 그 이전 신진-새한자동차 시기부터 계속 나타난 문제였다. 이에 필자가 GM 사태에 대해 역사적으로 살피고 현재의 쟁점들에 대해 정리했다. 6개의 주제로 이어지는 글인데, 2개 주제를 묶어 3회에 게재한다. <편집자>

① GM 지겹다, ‘ 차라리 부도내고 떠나라! ’
② 김우중 회장이 GM과의 결별을 선택한 이유는?
③ 해외매각 방침, 다시 GM을 불러오다
④ 아더 앤더슨 보고서, GM인수를 위한 구조조정 보고서
⑤ 단협을 양보하지 않으면? 인수하지 않겠다! & 부도 내겠다!
⑥ 부평공장 인수조건, 숨죽이고 노예처럼 일해라!

앞 회의 글 “18년 전 ‘아더 앤더슨 보고서’의 부활?”

단협을 양보하지 않으면? 인수하지 않겠다! & 부도 내겠다!

정리해고 등 대규모 인력구조조정이 GM의 대우자동차 인수의 ‘숨은 조건’이라고 이야기한 바 있다. 이 ‘숨은 조건’은 1,750명의 정리해고를 포함해서 7,000여명에 달하는 인원의 구조조정으로 충족되었다.(해고된 비정규직 노동자까지 계산하면 그 인원은 만 명을 훌쩍 넘을 것이다.) 그러자 GM은 공개적으로 대우자동차의 인수의사를 공개적으로 표명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GM은 노동조합 단체협약의 개정은 ‘명백한 인수조건’이라고 공개적으로 분명하게 이야기하였다.

2001년 2월 16일 대우자동차는 1,750명의 조합원들에게 정리해고를 통보하였고, 2월 19일, 이에 항의하고 공장을 점거하고 농성을 하고 있던 노동조합과 정리해고자들을 수천 명의 공권력을 투입하여 진압하였다. 그리고 공장에서 쫒겨난 노동조합과 정리해고자들은 대우자동차 근처에 있는 산곡동 성당에 투쟁의 거점을 마련했다.

산곡동 노조 지도부의 경찰 출두 전 기자회견

처절하면서도 지루한 정리해고 철회투쟁이 진행되던 어느 여름날 대우자동차 노사부문을 책임지고 있던 장동우 전무가 산곡동 농성텐트로 찾아와 김일섭 대우자동차 노조 위원장을 만났다. 그가 던진 메시지는 두 가지다. ‘GM이 단체협약 개정을 요구하고 있다. 이것이 되지 않으면 인수할 수 없다고 한다. 정리해고자 문제를 논의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말을 전해들은 우리는 앞 대목은 잘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모두 ‘정리해고자 복직 논의 가능’ 이라는 뒤 구절에 집중했다.

장동우 전무는 GM이 왜 단체협약 개정을 요구하느냐는 질문에, ‘인수의 걸림돌이 되는 단협문구’를 이야기했다. 특히 단협 12조.

단체협약 12 조 (합의 의무)
회사는 다음의 사항에 대하여는 조합과 사전에 합의하여야 한다.
1. 기업의 합병, 정리, 해산, 양도 및 공장이전

2. 사업장 단위 및 차종 단위의 사업 양도
3. 조합원과 관련된 모든 작업 일체 또는 일부를 외주 처리할 때
단, 상기 각항 이외의 사업내용이 변경될 때에도 조합원의 신분에 관하여는 합의하여 결정한다.

지금 다시 봐도 정말 엄청난 단협 조항이다. 이전에 산업은행이 갖고 있었던 비토권은 이에 비하면 견제구 수준이다. 당시 노동조합 지도부는 GM 인수라는 현실을 불가피한 현실로 받아들이면서, 정리해고자 복직을 할 수 있다면 단협 12조를 포함한 일부 단협 조항의 양보를 할 수 있다고 판단하게 된다. 그래서 노동조합은 직무대행체제로 전환하고, 상집 개편을 하면서 투쟁보다는 협상에 무게중심을 두고 노동조합을 재편했는데, 이때 나는 교섭의 실무를 책임지는 정책실장의 임무를 맡게 되었다. 그리고 노동조합은 해외매각 반대의 깃발을 내리고, 정리해고자 복직과 GM 인수협상에 적극적 개입하는 것으로 방향을 틀었다.

대우자동차의 단체협약은 당시 전국에서 가장 앞선 단체협약이었다. 다른 노동조합들이 단체협약 개정 협상을 할 때 우리의 단체협약은 하나의 모범이자 목표로 기능했다. 노동조합의 역사가 오래되기도 했고, 87년 이후 강력한 파업투쟁으로 쟁취한 투쟁의 성과물이기도 했다.

나는 지금 GM이 임금과 성과급의 양보를 넘어, 단체협악의 대폭 양보를 요구하고, ‘이것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부도내겠다.’ 는 협박을 접하면서, 17년 전의 쓰라린 기억들이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는 것을 느꼈다.

처음에는 순진하게 ‘인수의 걸림돌’이 되는 몇 개의 조항만 개정해주면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GM은 자신의 법률자문회사에서 단체협약을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치밀하게 준비를 했고, 단체협약의 전면적 개정을 목표로 삼고 있었다. GM은 노동조합에 핵심적인 조항의 개정과 삭제 요구에서, 아주 사소한 문구들의 수정 요구까지 단협 개정 요구의 긴 리스트롤 대우자동차 사장과 임원을 통해 보내왔다. 여전히 순진했던 우리는 ‘GM이 이렇게 세세한 부분까지 요구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마도 대우자동차 경영진들이 추가적인 요구를 덧붙였을 것이다. 그러니 GM에게 직접 확인하자!’ 면서 당시 GM 인수팀을 직접 찾아갔다.

나 : GM은 왜 단협 개정을 요구하는가? 그리고 요구하는 단협 개정 항목은 무엇인가?

제너 GM 부사장 (인수팀장) : 이영국 사장과 장동우 전무로부터 요구의 사본을 받지 않았는가? 우리는 구성원들의 고용과 근로조건의 변화에 대한 어떠한 요구도 하지 않았다. 우리가 요구한 것은 경영과 회사 정책에 관한 경영자의 권리이다.

경영자의 권리! ‘경영은 우리의 권리다. 그러니 경영, 인사에 관련된 모든 조항과 문구를 삭제, 조정하라!는 말이다. 이때부터 한편으로 정리해고자 복직의 요구를 관철시키고, 또 한편으로는 단체협약을 최대한으로 지켜내는 힘겨운 싸움이 시작되었다.

지금도 컴퓨터 앞에서 선배들의 땀이 깊게 배어 있는 대우자동차 단체협약의 문구를 넣다 뺐다, 다른 노동조합의 단협 문구로 이래저래 바꾸는 고뇌의 순간들이 나의 기억 속에 생생하게 떠오른다.

힘들게 수정한 단협 개정안을 회사에 제시하면 이들의 대답은 이랬다.

‘GM 요구대로 다 내 놓아라. 단협 개정안은 GM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회사는 결단을 내릴 것이 아무 것도 없다.’

GM을 찾아가면 이들의 대답을 이랬다.

‘우리는 노사 간의 협상의 당사자가 아니다. 단협 개정 협상은 노사 간의 문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가 원하는 대로) 단협 개정이 되지 않으면 인수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황당한 모순어법에 대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항변은,

‘ 정리해고자 복직에 합의해주지 않으면 단체협약 단 한 글자도 개정해줄 수 없다.’였다.

게다가 이들은 교섭 중에 ‘GM의 단협 개정 추가요구’라는 것을 들이밀기도 했다. GM법률자문회사에서 놓쳤던 것을 다시 찾아냈겠지. 그리고 노사 간의 이견차로 단체협상이 지연되자, 언론은 노동조합 때문에 GM과의 본 계약 체결이 늦어지고 있다고 호들갑을 떨면서 노동조합의 일방적인 백기투항을 요구하기도 했다. 실제로 지연되고 있는 이유는 다른 곳에 있었는데도 말이다.

지난한 협상의 결과 단체협약 양보와 정리해고자 복직을 맞바꾸는 노사 간의 협상은 마무리되었다. 비록 정리해고자 복직이라는 성과를 얻기는 했지만 단협은 처참할 정도로 뜯겨져 나갔다. 전문을 포함해서 21개 조의 개정이 이루어졌는데, 7개 조항은 통째로 삭제되었다.

노사 합의는 노사 협의로, 협의는 통보로, 단협의 구속력은 현저히 떨어졌다. 그리고 경영참여등과 관련된 소중한 합의들은 송두리째 날아가 버렸다. 기업공개에 관한 합의, 사외이사, 감사제의 실시와 사외이사, 감사의 노동조합 추천 등 시대를 앞섰던 합의들이었다. GM은 ‘민주적 경영’, ‘투명한 경영’ ‘국민경제발전에 기여’ 같은 선언적인 문구조차 인정하지 않았다.

수십 년 동안 선배노동자들의 피와 땀이 서려 있는 대우자동차 노동조합의 단협은 그렇게 누더기가 되어버렸다.

물론 누구도 GM에 단체협약을 양보했다고 손가락질 하지는 않았다. ‘단협을 개정하지 않으면 인수하지 않겠다’라는 협박에, 정리해고자 복직이라는 절박함에 그런 선택을 했다고 이해를 하기는 한다. 이미 강도의 칼이 목을 겨누고 있는데 지갑을 던져주고 목숨을 건지는 것이 현명한 행동이 아니겠는가? 나 역시 단체협약 양보에 대한 실무교섭을 책임지고 있었지만, ‘그래도 정리해고자 복직을 얻었으니까?’ 라고 위안을 삼고 살았다.

그런데 지금 임금과 성과급뿐 아니라, 단체협약까지 양보하지 않으면 부도를 내겠다는 베리 앵글의 협박을 듣고 옛날의 그 순간이 떠올라 화가 솟구쳐 오른다.

나는 17년 전 GM의 단체협약의 개정 요구에 분노하는 것은 아니다. 충분히 할 수는 있다. 그 방식에 분노하는 것이다. 노동조합을 딱 궁지에 몰아넣고 ‘우리가 원하는 항목을 개정해주지 않으면 인수하지 않는다’는 협박으로 자신의 목적을 관철시키는 방식에 분노하는 것이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GM이 임금과 단협에 대한 노동조합의 양보를 요구하는 것에 분노하는 것이 아니다. 노동조합의 양보를 관철시키기 위해서 ‘단체협약을 양보하지 않으면 부도내겠다.’라는 협박에 분노하는 것이다. 이미 노동조합은 GM이 장기적 발전전망과 고용유지 방안을 제시하면 양보할 수 있다고 하지 않았나? 다만 협상하고 대화를 하자는 것이다. 협박질만 하지 말고.

부평공장 인수조건, 숨죽이고 노예처럼 일해라!

나는 아더 앤더슨 보고서를 언급하면서, GM은 아더 앤더슨 보고서대로 부평공장을 인수하지 않겠다고 했고, 결국 인수하지 않았지만 부평공장이 폐쇄되지 않았다고 말한 바 있다.

GM은 군산과 창원공장, 기술연구소, 공기부 등 대우자동차의 일부만을 인수했고 이를 Newco A라고 불렀다. GM은 부평의 2개의 생산공장을 인수하지 않는 대신에 ‘위탁생산공장’으로 운영을 했고 이를 Newco B라고 불렀다.

GM이 인수한 Newco A는 ‘지엠 대우’라는 법인으로 출범을 했고, 인수하지 않은 Newco B는 ‘인천 대우’라는 법인으로 출범을 했다. 그런데 이 ‘인천 대우’라는 기업은 참으로 희한한 기업이었다. 독립법인이긴 한데, 차를 아무리 많이 만들어도 이익을 낼 수 없는 소위 ‘코스트 센타’라는 방식으로 운영이 되었다. 즉 GM은 ‘인천 대우’에 자동차 생산을 위탁하고, 여기에 들어가는 재료비와 인건비 등 경비만 지불하는 방식인 것이다.

혹시 ‘인천 대우’ 만이 아니라 , 지엠대우, 그리고 지금의 한국지엠도 이렇게 이윤을 낼 수 없는 ‘코스트 센타’가 아닐까? 아니 손실까지 덤터기를 쓰고 있으니 이보다 더한 처지인지도 모른다.

여기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동일한 단체협약을 적용받았기에 근로조건에서는 차이는 없었다. 하지만 색깔은 같았지만 다른 회사 로고가 붙은 각각의 작업복을 입고 일했다. 그래서 식당에서 GM에 인수된 ‘지엠 대우’의 동료들을 만나면, ‘야, 우리는 너희 회사 하청공장 노동자야!’ 라고 말하곤 했다.

당장의 근로조건상의 차이는 없었지만 커다란 차이는 바로 미래에 대한 불안정성이었다. GM에 인수되지 않으면 폐쇄될 운명의 조건부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이다.

은행들도 부평공장의 이러한 미래에 대한 불안정성을 인지하고 있었다. 당시 인천대우 소속의 한 동료가 은행에 신용대출을 신청을 했더니 한도가 500만원이라고 했단다. 정리해고 된 경험도 없고, 장기간 근속을 했는데 왜 그러냐고 했더니 ‘인천대우’ 직원에 대한 신용등급이 거기까지란다. 얼마 후에 GM이 부평공장을 인수한 후에 ‘지엠대우’ 직원이 되어 다시 은행을 찾았더니 신용대출 한도는 5,000만원으로 10배가 뛰었다고 한다.

그러면 GM은 부평공장을 위탁생산공장으로 유지하다가 향후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가? GM은 부평공장 인수를 약속 하지 않았다. ‘단, 조건을 충족시키면 인수할 수 있다’고 했다. 그것이 바로 ‘부평공장 인수조건’이다.

GM은 부평공장 인수에 6년의 기한을 제시했다. 6년 기한 내에 GM이 제시한 조건을 충족시키면 인수하는 것이고, 그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하면 인수하지 않고 폐쇄되는 것이다.

GM이 제시한 ‘부평공장 인수조건’은 부평공장 전 구성원들에게는 다시금 강도가 목에 칼을 겨누는 것과 같은 것이었다. ‘죽을래? 지갑을 내어 놓을래?’ 이 조건을 충족시킬래 ? 아니면 부평공장이 폐쇄되어 거리로 나 앉을래 ?

4가지 항목으로 된 ‘부평공장 인수조건’을 살펴보자.

1) 전반적인 사업상황 : “전체생산능력”이, 적어도, 완전 2교대 기준으로 가동되며 부평공장 자체도 6개월 동안 연속해서 2교대제로 가동되면, 조건이 충족된다.

이 조건은 가장 중요한 조건이면서, 부평공장의 노사가 아무리 노력을 해도 자력으로 충족시킬 수 없는 조건이다. 2교대 가동을 유지하려면 그만큼의 생산물량이 있어야 하고, 그 생산물량은 시장 상황과 GM의 전략적 판단에 좌우하기 때문이다. 즉 GM은 부평공장을 위탁생산공장으로 유지하면서 향후 전반적인 사업상황을 판단한다. 쉽게 말하면 짱을 보다가 2교대 정도 돌아갈 정도로 잘 유지되면 인수하고, 아니면 가차 없이 버리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GM이 대우자동차를 인수하고 완전 대박이 났다. 전 공장이 2교대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2) 평화적인 노사관계 : [평균] 노사쟁의로 인한 연간 손실시간이 전 세계에 있는 GM의 공장의 2001년 평균[노사쟁의로 인한 연간 손실시간]과 동등하거나 보다 좋을 (낮은) 때 그 조건은 충족된다.

이 조건은 노동조합의 쟁의권을 사실상 박탈하는 ‘무쟁의’를 강제하는 조건이다. 그 평균손실시간을 어떻게 계산했는지, 그것이 맞는 건지 틀린 건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 평균손실 시간이 몇 시간인가가 중요하다. 회사는 연간 3시간 이내라고 했다. 연 3시간 이상을 파업을 하면 GM 인수조건에서 벗어나게 된다. 2004년 임금인상 협상 때 노동조합이 4시간의 파업지침을 내렸다. 그러자 회사는 수백 명의 용역들을 동원해서 조립공장으로의 노동조합 간부들의 진입을 필사적으로 막았다. 당시 현장 분위기는 상당히 위축되어 있어서 노동조합 간부들이 들어가 라인을 잡지 않으면 생산라인이 흘러가던 그런 상황이었다. 회사는 GM이 제시한 조건보다 1시간을 더 파업을 하면 GM의 부평공장 인수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하기 때문에 불가피한 조치였다고 변명을 했다.

3) 글로벌 기준의 경쟁력 : 부평은 대당 기준시간( Hours per Car )을 Newco가 출범 이후 최소한 연간 4%씩 줄여야 한다.

각 직장 사무실마다 ‘GM 글로벌 최고의 제조전문공장 달성’ ‘부평공장 조기인수’라는 구호가 내걸렸다. 현장의 관리감독자들은 매년 생산성 향상과 인원감축을 닦달했다.

노동강도와 인원문제로 현장에서 일상적으로 충돌했다. 다른 이유도 없이 ‘GM에 인수되려면 어쩔 수 없다’고 막무가내로 달려드는 데 대화가 되겠는가? 그래서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부서는 데이터를 조작해서 허위보고를 하기도 했다.

4) 글로벌 기준의 품질 : 공장의 품질을 측정하는 GM의 GDS(Global Delivery Survey)와 초기품질을 측정하는 GM의 Direct Run이 적절한 조건이다. 부평공장이 통합되기 전 6개월 기간 동안 GM의 전 세계적인 평균점수보다 나을 때 그 조건은 충족된다. GDS와 GM의 Direct Run은 논의해야 한다.(GDS 와 Direct Run은 GM의 글로벌 품질측정지표인 듯 싶다.)

품질지수는 워낙 다른 GM공장들 보다 좋으니 크게 문제로 부각되지는 않았지만 불량을 내면 시말서를 쓰게 하고, 철저하게 품질개인책임제를 관리했다.

5) 6년 이내라도 이러한 조건이 충족되면 GM은 3개월 이내에 부평공장을 통합한다.

GM 인수 후에 부평공장뿐 아니라 한국지엠(당시 지엠대우)의 전 공장의 생산은 급속히 늘어났다. 과거 대우자동차 시절에 개발했던 젠트라(소형), 라세티 (준준형), 마티즈는 전 세계로 팔려나갔다. 한국지엠은 몇 년이 되지 않아서 완성차 100만대, CKD 백만대 도합 200만대를 판매하는 GM의 경·소형차 글로벌 생산기지가 되었다.

제대로 된 경 소형차 라인업도 없고, 연비절감 기술도 확보하고 있지 못했던 GM은 한국지엠 덕택에 구조적 위기를 벗어나면서 자동차 기업 세계 정상의 지위를 탈환하게 된다.

한국지엠의 역할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중국은 GM에게 미국과 더불어 최대의 생산과 판매시장이다. 그런데 상하이GM을 이 정도 성장시킨 장본인은 바로 한국지엠이다. 상하이GM은 한국지엠이 수출하는 CKD를 조립하는 단계에서 출발해서, 독자적으로 제품개발과 완성차 생산능력을 급속히 키워나갔다. 이 과정에서 한국지엠의 기술이 체계적으로 이전되었다.

2000년대 중반에 중국 상하이 공장의 노동자들이 대거 한국지엠의 공장으로 몰려들어왔다. 직장과 관리자를 한 팀으로 해서, 한국지엠의 각 공정에 달라붙어서 제조기술을 익히고, 사진을 찍고, 관련 자료들을 복사했다. 생산공정의 제조기술 만이 아니라, 금형과 지그를 만드는 기술도 고스란히 이전이 되었다. 그렇게 상하이GM은 한국지엠이 수십 년 동안 쌓아온 모든 생산의 노하우들을 고스란히 복제해갔다.

GM은 이렇게 한국지엠이 갖고 있는 모든 잠재력과 능력을 최대한 쥐어짜내어 본사의 위기에서 벗어나고, 중국시장이라는 거대한 생산기지와 시장을 얻은 것이다.

이후 한국지엠(당시 지엠대우와 인천대우)의 생산량이 급증하면서 GM의 부평공장 인수도 조기에 성사되었다. 대우자동차를 인수한 GM은 너무나 행복해했고 한국지엠을 ‘꿈의 공장’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GM의 ‘부평공장 인수조건’이라는 굴레에 묶여 불안감을 안고 숨죽여 일했던 한국지엠 노동자들에게 이 시기는 굴욕의 시기였다. 그리고 한국지엠 노동자들에게 GM은 ‘우리 등골 빼먹는 날강도’ 같은 존재로 인식되었다. 그래서 지금 한국지엠 사태를 겪으면서 한국지엠 노동자들은 이 말을 달고 사는 것이다. “지겹다, 지겨워 GM 놈들…”

맺는 말 : GM 스트레스 증후군에서 벗어나기

나는 이번 연재의 서두에서 이 글을 쓰게 된 동기를 밝힌 바 있다. 알 수 없는 분노의 뿌리를 찾아내어 나를 치유하는 것이 중요한 목적 중의 하나다. 나름 GM도 잘 알고, 노동조합 활동을 중심에서 해 온 나도 이럴 정도인데 평범한 한국지엠 노동자들의 심정은 어떻겠는가?

지금 한국지엠 노동자들은 극심한 ‘GM 스트레스 증후군’을 앓고 있다. GM에 대한 극심한 분노를 갖고 있으면서도, 혹시 GM이 떠나면 어떻게 하나 하는 불안감이 공존하고 있다. 매 맞는 아이가 매일 술 마시고 와서 자신을 때리는 아버지가 ‘나를 버리고 떠나면 어떻게 하나’ 하는 불안감을 갖고 사는 것과 마찬가지다.

앞으로 어떠한 상황이 벌어질지도 모르고, 또 일시적으로 수습이 된다고 하더라도 조만간 또다시 이런 상황이 반복될 것은 분명한 데 앞으로 한국지엠 노동자들의 정신건강이 상당히 우려될 정도다. 이러한 ‘GM 스트레스 증후군’에서 벗어나는 길은 빨리 어른이 되는 것이다.

두들겨 맞으면서도 아버지가 떠날까 두려워서 ‘잘못했어요…’를 반복하는 아이가 아니라 GM에 당당히 맞서서 싸우고, 대화하고 협상하는 그런 어른이 되어야 한다.

또한 내가 새삼스레 오래된 옛날의 기억을 들추어내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반복되는 GM의 행태에 대한 분노를 표현하고자 하는 것인가? 단순히 그것만은 아니다. 과연 GM이 이런 줄을 몰랐는가? 이러한 강도와 같은 협박의 행태가 다시금 반복될 것을 몰랐단 말인가? 이 점을 반성하고자 함이다. 그동안 우리는 매년 돌아오는 임단협의 시기에 임금 한 푼이라도 더 올리려고만 했지 GM에 대응할 준비를 갖추지 못했다. 위기의 조짐은 감지가 되었지만 이에 대비하지 못했고, 막상 폭탄이 터지고서도 일사분란하게 대응하지 못했다.

앞으로 GM의 협박의 행태가 어떻게 나타날지 모른다. 모든 가능성에 대비해야 할 것이다.

4월 20일 GM은 부도를 내겠다고 협박을 하고 있다. 지금 현장의 동료들의 반응은 ‘에이 부도야 내겠어?‘ 라고 말하다가고, ’GM은 무슨 짓이라도 할 놈들이야!‘라면서 부도낼 수도 있다고 말이 바뀌곤 한다.

지금 GM은 한국지엠 노동조합만 협박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정부를 협박하고, 지자체를 협박하고, 납세자인 국민들을 협박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GM에 맞선 폭넓은 대응 주체가 형성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대응 주체는 한국지엠 지부를 넘어선 폭넓은 형태가 되어야 한다.

이번 한국지엠 사태는 한국지엠을 훨씬 넘어선 문제다. 고용문제만 보더라도 한국지엠에 걸려있는 고용은 연관되어 있는 관련 산업 노동자들의 고용의 1/10밖에 되지 않는다. 한국지엠 노동자들의 정리해고의 아픔, 고용불안을 넘어서, 보이지 않는 수많은 노동자들의 삶의 문제에 집중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이번에 출범한 ‘GM 횡포 저지·노동자 살리기 범국민대책위원회’가 어떻게 GM에 맞선 힘 있는 당사자–주체가 되게 만들지 고민해야 할 것이다.

지엠대책위 출범 기자회견(사진=노동자연대)

마지막으로 당장은 그 길이 보이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脫지엠의 가능성을 집요하게 모색해야 한다. 나는 공장의 젊은 동생들에게 이렇게 이야기를 한다. “너희들 여기서 오래 다니려면 GM을 어떻게 쫓아낼 수 있는지를 고민해라.” 脫지엠의 가능성은 결코 쉬운 길은 아닐 것이다. 지금 그럴 수 있는 조건이 갖추어져 있지도 않다. 하지만 시간이 걸리더라도 그 가능성을 찾아내야 한다. 반복되는 GM의 협박에 더 이상 상처받지 않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지금까지 나는 한국지엠 노동자들에게, 연관 산업의 수많은 노동자들에게, 그리고 한국 국민들에게 GM은 어떠한 존재인가? 이것에 대한 작은 실마리라도 던져주고 싶은 생각에 과거의 기억을 끄집어내었다. 이 글 이후(대략 2005년 이후)의 GM의 행태는 많은 분들이 잘 정리하고 있다. 문제는 바로 눈앞에 있는 GM에 어떻게 맞설 것이냐다. 이제 다시 앞으로 벌어질 일에 대한 고민에 집중해야겠다.

필자소개
한국지엠 부평공장 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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