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상에서 누구나 관계를 뒤집는 혁명
    [책소개] 『노멀 레볼루션』 (조건준/ 매일노동뉴스)
        2018년 04월 14일 09:53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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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직도 민주노조인가?

    공항에서 지하철에서 학교에서 평등을 외치는 노동자에게 “너희와 평등해지고 싶지 않다”며 차별에 앞장서는 노조가 민주노조라는 간판을 걸고 활동한다. 평소에는 거들떠보지 않고 비정규직 잘려나갈 때 외면하더니 자신에게 닥친 구조조정에 대해서는 “해고는 살인”이라며 악을 써대는 조합원이 민주노조 조합원인가? 노조 상급단체 대의원대회에 제출한 사업계획에는 비정규직 철폐 구호가 버젓이 자리 잡고 있는데 바로 그 장소에서 노조 가입을 원하는 비정규직의 노조 가입을 반대하면서 여전히 자신을 민주노조라고 말하는 모습을 ‘개그’로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

    진보정치 한다면서 이게 무슨 짓입니까

    “처음 노조를 만들어서 뭐가 뭔지 몰랐죠. 그냥 도와주니까 고마웠죠. 이때 00당 가입하라고 해서 다 가입했어요. 나중에 보니까 이상하더라구요” “황당하더라구요. 신생노조인 우리가 모일 사무실도 없어서 폐업한 조합원들이 00당 사무실 좀 빌려서 회의를 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돈을 내면 빌려준다고 하더라구요. 폐업당한 조합원들에게 돈을 내래요. 아니면 자기 당에 전부 가입하면 공짜로 빌려주겠다고 하더라구요. 보수정당도 아니고 뭔 깡패 같은 짓인지”

    “노조에 가입하면 무조건 00당에 가입하는 것인 줄 알았아요. 이건 아니잖아요. 그래서 가입 거부했더니 계속 가입하라고 권유하고 귀찮게 하더라구요. 진보정치 한다면서 이게 무슨 공산당입니까?”

    “그쪽 당에 가입한 사람들이 다른 간부들 뒤에서 엄청나게 씹더라구요. 이게 민주주의라면 좀 이상하지 않아요?”

    노조 조합원과 간부들이 모 진보정당에 대해 털어 놓은 이야기는 아주 드문 사례로 치부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러기엔 사례가 너무 많다. 민주노조와 함께 정치세력화를 추진해 오던 이런 정치가 과연 민주정치고 진보정치인가?

    딸 아들과 함께 할 수 있는 노조를 만들어 주세요

    청년노동자는 오래된 민주노총 간부에게 이렇게 말했다. 민주노총이나 금속노조를 생각하면 어떤 느낌이 드냐는 질문에 “꼭 전쟁터에 나가는 사람들 같아요. 전장에 나가 목이라도 베어야 할 것 같아요”라고 솔직한 느낌을 털어 놓았다. 오랜 민주노조 간부들 앞에선 청년은 저성장기를 “부모보다 자식이 못사는 시대”라고 했다. “민주노총에 있는 부모들은 그럴만한 회사에 다니지만 우리 청년들 대부분은 그런 직장 다니기 힘들어요. 그러니 우리가 부모님 세대가 가입한 노조에 가입하기 힘들죠.” 대부분 청년이 불안정노동을 하는 시대에 새삼스런 얘기가 아니다. 아니 청년만이 아니라 대부분 노동자가 불안정노동을 한다.

    어쩜 그렇게 똑 같은지

    시민단체가 만든 행사에 참여했다. 민주노총과 노조에 대해 조심스런 눈치를 보이며 이렇게 말했다. 민주노총이 보여주는 일관성에 대한 칭찬이 아니다. 하나도 변하지 않고 시대에 뒤떨어진 노조를 꼬집는 얘기였다. 30년간 노동운동을 해온 나는 모든 민주노조가 그런 것은 아니라고 했다. 비정규직을 위해 경기지역 정규직 조합원 전체가 파업하고 몰려갔던 일, 세월호 참사에 가족과 함께하는 헌신적인 노조의 노력, 무권리 노동자와 권리를 함께하려 지역노동자들이 돈이고 사람이고 모두 몰빵해서 노조설립에 성공한 사례를 쭉 얘기했다.

    그렇다. 민주노조는 그냥 고리타분하게 죽어있지만 않고 살아 있다. 그렇지만, 그렇지만 물과 수증기가 함께 있는 끓는점에 이른 상태와 닮아 있다. 아니 이런 비유는 너무 점잖다. 한쪽은 썩은 물이 있고 다른 쪽에는 새로 솟아나는 물이 섞이고 있다.

    열심히 정신교육 하고 잘 실천하면 될까

    시대가 바뀌었다. 민주화 시대에 ‘민주’라는 단어 붙인 정당과 노조와 단체가 중요했다. 지금은 양극화와 저성장기에 있다. 제도가 바뀌었다. 예전처럼 노조 만들면 사용자와 바로 교섭 못한다. 눈앞엔 바지사장만 보이고 뒤에 원청이 리모컨을 들고 있다. 기업이 변했다. 플렛폼과 네트워크로 엮인 기업조직에 적절한 노조 형태가 필요하다. 노동이 변했다. 더 이상 정규직을 중심에 두고 나머지를 비정규직으로 규정하는 이런 이상한 분류방식으로 답을 찾을 수 없다.

    성향체계가 바뀌었다. “해고는 살인”이라면 밥 먹듯 해고 당하는 사람들은 도대체 몇 번이나 죽었던 귀신 중의 상(上) 귀신이란 말인가. 여전히 일자리 이데올로기, 성장이데올로기를 공유하고 있는 노동자 세대와 다른 노멀크러시, 워라밸, 소확행 등 새로운 트랜드가 등장하고 있다. 아직 이런 단어를 ‘듣보잡’으로 여기는 민주노조 간부가 적지 않다. 이 모든 것에 조응하는 새로운 노조가 절실하다.

    노조할 권리를 막는 것은 대체 뭔가

    노력보다 노조가 필요하다. 그렇다. 그래서 노조 할 권리가 무엇보다 중요하고 노동운동, 노조운동이 모든 힘을 쏟아야 할 일이 바로 ‘노조 할 권리’에 있다. 복수노조 창구단일화 제도도 문제다. 다단계하청으로 플렛폼화 된 산업구조도 문제다. 여전히 반노조 정서를 퍼뜨리는 기업도 문제다. 그러나 제도, 구조, 기업권력은 늘 우리를 제약하곤 했다.

    진짜 문제는 노조다. 시대를 앞서가기는커녕 따라가지도 못하는 노조의 사고방식에서부터 행동에 이르는 전부가 문제다. 비정규직 가입을 막는 노조가 노조 할 권리를 막는다. 여전히 (일)자리 이데올로기에 빠져 자리싸움을 하는 노조가 문제다. 여전히 반폭력과 대항폭력을 구분하지 못하고 무대에 오르면 “투쟁”으로 인사하고 썰(說)풀다가 “투쟁”으로 마무리하는 노조문화가 문제다. 여전히 문화·구조 폭력과 직접폭력을 구분하지 못하고 직접폭력을 막기 위한 낡은 “투사형” 간부에 집착할 뿐 문화·구조폭력에 어떻게 맞서야 하고 어떤 실력을 키워야 할지 모르는 노조 자체가 문제다.

    구린 창으로는 구린 풍경만 보인다

    “제3노총 만들자는 겁니까?” 새롭게 보면서 대안사회운동과 대안노조를 만들자는 토론에 가면 듣는 얘기다. 아니라고 하면 “뭐 그냥 민주노조 잘하자는 거죠?”라고 한다. 답답하다. 공감을 만들지 못하는 내가 문제다. 신생노조를 만들면서, 기존 민주노조를 바꾸기 위해 노력하면서 쉼 없이 얘기하고 생각했다. 마침내 결론은 “노멀 레볼루션”이다. 무슨 소리냐고 묻는다. “아무나 혁명이다.”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역시 내 한계다. 그래서 나는 책을 통해 사회를 보는 눈을 바꿔 ‘관계먼저’를 주장한다. 관계에서 나오는 이익종자, 권력종자, 권리종자라는 ‘인간종자론’에 이르렀다. 권리종자가 만드는 대안노조 시대를 열자고 제안한다.

    탄핵촛불, 미투운동 등 지속적인 축적의 시간들 끝에 어마어마한 정세가 펼쳐진다. 노조 할 권리를 막는 가장 상징적이고 가장 완고한 장벽인 삼성에 혁명이 진행되고 있다. 과거의 창을 통해 보면 구린 풍경만 보인다. 이미 깊이 온 봄처럼 ‘노멀 레볼루션’은 지금 진행 중이다.

    필자소개
    금속노조 경기지부 집행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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