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나라당이 민주노동당원을 추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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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04월 12일 04:58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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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2년 12월, 경남 창원에서 권영길 민주노동당 대통령 후보 선거운동을 하던 나는 알고 지내던 경남도민일보 기자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노무현을 지지하는 청년?

    “양솔규씨, 민주노동당 탈당했어요?”
    “아니요. 무슨 말씀이세요?”
    “신문사로 노무현 지지 팩스가 날라왔는데 양솔규씨 이름이 있더군요”
    “띵~”

    대선을 며칠 앞둔 상태에서 어느 노무현 지지자가 마산, 창원, 진해 등 경남의 동문회 등을 통해 학생운동 출신들을 조직해서 대선날짜를 상징하는 “노무현을 지지하는 경남 청년 1219인 선언”을 한 것이다. 흥분한 상태에서 신문사에 팩스를 보낸 사람에게 항의 전화를 했다.

    “나는 민주노동당원인데 노무현 지지선언에 내 이름이 들어간 경로를 알려 달라”
    “잘못은 했으나 나도 그건 모른다”
    결국 여느 항의 전화가 그렇듯이 육두문자가 오간 후
    “너 그 자리에 있어. 내 금방 갈테니까”
    하면서 막을 내렸다.

    전화를 끊자 경남도당 당원들이 “이중당적이 아니냐”는 눈초리와 의구심을 보내는 것이 아닌가. 나 그렇게 막 살지 않았다.

    한나라당 마산시장 경선 여론조사를 민주노동당 부산당원에게?

       
     ▲ 필자에게 온 한나라당 마산시장 선출 여론조사 문자메시지
     

    2006년 4월 11일 화요일 1시 51분, 낯선 그 남자에게서 문자 하나가 날라 들었다.
    내용은, 한나라당 마산시장 후보 전수식, 황철곤의 여론조사를 통해 후보를 선정한다는 내용이었다. 이런 시덥지 않은 문자에 내 바쁜 일상을 허비하고 싶지 않아 그냥 넘어갔다. 하지만 문자는 계속 이어졌다. 항의 전화를 안 할 수가 없었다. 제발 전화 한번 걸어달라는 투다.
    문자를 보낸 이에게 항의 전화를 했다. 하지만 전화가 꺼져 있다. 꺼진 전화가 문자를 보내다니. 무서워진다.

    다음날, 다시 전화를 걸었다. 전화기 저 편의 중년의 남자는
    “자신이 보낸 것은 맞지만, 잘못 전송된 것 같다. 자기는 한나라당 당원도 아니고…”
    라는 말만 되풀이 했다. “선관위에 신고할테니 그리 알라” 하고 일단 전화를 끊었다.

    4월 12일 오후 12시 56분과 1시 45분에도 문자가 날아왔다.
    이번에는 발신자 번호가 412로 뜬다. 아마도 한나라당 마산시장 후보 여론조사일인 4월 12일을 상징하는 것 같다. 이번에는 한나라당 경남도당으로 전화를 했다.

    “우리는 모르는 일이다.”
    “그럼 귀신이 보냈나? 한나라당 두 후보가 경선하는데 열린우리당에서 보냈냐? 민주노동당에서 보냈냐? 상식적으로 두 후보 측에서 보낸 거 아니냐?”
    “왜 사람 말을 못 믿냐? 우린 보낸 적 없으니 선관위에 고발하든 말든 그건 댁이 알아서 해라”

    경남 선관위에 고발을 하고 마산 선관위에 문의를 해보니
    “지금 조사 중이다. 특정 인물을 지지하는 것은 아니고 여론조사를 한다는 정보 정도로는 어떤 판단을 하기는 어렵다. 게다가 마산 유권자가 아니기 때문에 애매한 부분이 많다”고 한다.

    한나라당 어느 후보 측에서 보냈는지, 단순한 한나라당 지지자가 보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마산과 한나라당과는 아무 상관없는 부산의 민주노동당원에게 도대체 왜 문자를 보내는 것일까?

    노무현 지지선언도 하고, 한나라당 여론조사 대상자도 되어 보고. 선거는 참 희한한 경험이 아닐 수 없다. 혹 나도 모르게 한나라당 당원이 되어 있는 건 아닌지. 언제부터 내가 이렇게 정치적이었나? 나 그렇게 어리석게 살지 않았어.

    듣자하니 한나라당 마산시장 선거에 현 시장과 전 부시장이 한판 붙는다고 한다. 여론조사 끝나기도 전부터 공정성 시비가 일고 있다. 어쩌면 여론조사 결과에 한나라당 경선 후보들은 불복할지도 모른다.

    경남선관위와 한나라당 경남도당, 지역의 언론사 게시판에는 “제발 문자 보내지 말아 달라”는 글이 꾸준히 올라오고 있다. 과거 야성(野性)이 강한 도시 중 하나였던 마산은 그러나 90년대 내내 보수와 토호의 아성이었다. 비리나 선거법 위반 혐의로 시장이 줄줄이 사퇴했고 국회의원이 구속되기도 했지만 여전히 강건한 보수의 진지다.

    더 이상 마산은 ‘파란 물이 넘실대는 가고픈 곳’도 아니고, 노동자, 서민에게는 여전히 팍팍한 삶의 터전일 뿐이다. 드라마 ‘야망의 세월’에서 정태(최수종)는 실미도에서 돌아와 마산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지금의 마산은 고향의 품과는 다르다. ‘끗나뿌린 마산의 품’을 한나라당이 채워준다고? 그 팍팍함을 더해줄 한나라당 시장 여론조사 결과는 차라리 재앙이 아닐까?

    영남노동운동연구소 사무국장 양솔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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