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자유주의, 제3의 길,
    그리고 유럽 정치의 위기
    [국제정치 이슈] 극우파와 진보정당
        2018년 04월 10일 09:2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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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극우정당의 약진, 진보정당의 실패

    유럽의 정치 정세가 요동치고 있다. 오랫동안 주변부 정치세력에 머물러 있던 유럽의 극우정당들이 무섭게 중심부로 도약하면서 기존의 정치구조가 빠르게 재편되고 있기 때문이다. 폴란드와 헝가리에서는 이미 극우 정당이 집권당의 반열에 올라섰고, 특히 헝가리의 경우 집권당뿐만 아니라 제1야당 또한 극우 정당이 차지함으로써 정치 구조가 극단적으로 우경화되었다. 이들이 이른바 후발 민주주의 국가들로서 상당히 취약한 민주주의 정치체제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위안을 삼을 수도 있겠으나, 유럽의 현실이 그리 녹녹해 보이지는 않는다. 서유럽의 이른바 선진 민주주의 국가들도 동일한 상황을 목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목해야 할 것은 극우정당의 약진이 진보정당, 특히 기성 진보정당의 쇠락과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맞물려 있다는 점이다. 지난 2년 사이에 치러진 유럽의 주요 선거는 모두 극우정당의 약진과 기성 진보정당의 쇠락을 확인하는 것으로 종결되었다. 2017년 프랑스 대선과 독일 총선, 그리고 얼마 전 치러진 이탈리아 총선은 그 단적인 사례들이다.

    최근의 이탈리아 총선은 마테오 렌치(Matteo Renzi) 총리가 이끄는 집권 ‘민주당’(Partito Democratico)의 참패, ‘우파연합’과 신생 정당 ‘오성운동’(Movimento 5 Stelle) 사이의 양강 구도 형성으로 종결되었다. 2007년 중도좌파 정당의 연합으로 출범한 민주당은 무려 180석의 의석을 잃음으로써 집권당의 체면은 고사하고 정치적 영향력마저 위태로운 상황에 직면했다. 이에 반해 4년 전 새로운 정치 실험을 주창하며 등장한 ‘오성운동’은 32.7%의 득표율로 단일 정당으로는 최다 득표율을 기록하였고, 4개 정당 연합체인 ‘우파연합’은 총 36.5%의 득표율로 원내 제 1당으로 부상하였다.

    우파연합에는 실비오 베를루스코니(Silvio Berlusconi) 전 총리가 이끄는 ‘전진이탈리아’(Forza Italia)를 비롯하여 ‘이탈리아 형제들’(Fratelli d’Italia), ‘가톨릭 정당’(UDC) 등의 우파정당과 파시스트의 후예를 자임하는 극우 ‘동맹’(Lega)당이 참여하고 있다. 이 중 극우 동맹당은 17.4%의 득표율로 원내 제3당이자 우파연합 내 최대 정당으로 부상하였다. 중도좌파를 표방한 집권 민주당의 참패 속에서 극우 동맹당이 무섭게 약진한 것이다.

    이번 이탈리아 총선에서 추문의 대명사인 베를루스코니의 귀환보다, 신생정당 오성운동의 무서운 성장보다 더 주목되는 것은 기성 진보정당의 참패와 극우정당의 약진이 두 개의 수레바퀴처럼 맞물려 전개되고 있다는 점이다.

    프랑스 국민전선 마린 르펜(중), 이탈리아 북부동맹 마테오 살비니(좌), 네덜란드 자유당 헤이르트 빌더러스

     

    불행히도 이러한 사정은 유럽에서 이미 하나의 보편적인 현상으로 자리 잡은 듯하다. 2017년 5월 프랑스 대선에서 극우 국민전선(Front National)의 마리 르펜 후보가 결선투표에 오르는 기염을 토하는 동안 사회당은 공중 분해되었다. 같은 해 9월 독일 총선 역시 사민당의 참패와 극우정당의 약진으로 종결되었다. 이 선거에서 메르켈 총리가 이끄는 기민련/기사련 연합은 기존 의석에서 오히려 65석을 잃음으로써 참패했다. 그러나 최대 패배자는 오히려 사민당이었다. 40석의 의석을 잃었을 뿐만 아니라 대중의 눈에 사민당은 더 이상 보수정부의 대안 세력이 아니라 공모자일 뿐이라는 점을 확인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최대 수혜자는 94석의 의석을 확보하여 단숨에 원내 제 3당으로 올라선 극우 ‘독일을 위한 대안’(AfD)당이었다. 이로써 2차 세계 대전 이후 최초로 독일에서 극우정당이 원내 주요 정당의 반열에 오르는 초유의 상황이 발생하게 되었다.

    유럽에서 극우정당의 약진이 포착된 것은 지난 2014년 유럽의회 선거에서였다. 이 선거에서 영국의 ‘영국독립당’(UKIP), 프랑스의 국민전선, 덴마크의 ‘인민당’(People’s Party) 등의 극우정당들이 해당 국가에서 득표율 1위를 차지하였고, 2013년 창당된 ‘독일을 위한 대안’당은 창당 1년 만에 유럽의회 진출이라는 성과를 내는 기염을 토했으며, 네오 나찌즘으로 무장한 그리스의 ‘황금 새벽당’(Golden Dawn Party)이 창당 후 처음으로 유럽의회 의석을 차지하는 이변을 연출하기도 하였다.

    유럽의회 선거가 부차적인 선거라는 점에서 이런 결과는 말 그대로 그저 이변일 뿐이라고 치부될 수 있었다. 그러나 지난 2년 동안 유럽 주요 국가들에서 치러진 총선과 대통령 선거는 이것이 단지 이변이 아니었음을 확인시켜 주었고, 어느덧 극우정당을 제외하고 유럽의 정치정세를 논하기 어려운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 20세기 초반 인종주의를 앞세운 파시즘의 광풍으로 몸살을 앓았던 유럽이 다시금 인종주의와 국수주의로 무장한 극우정당들의 발호라는 위태로운 순간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불행히도 그 이면에는 기성 진보정당의 실패라는 현실이 자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신자유주의, 제3의 길과 극우 포퓰리즘

    유럽에서 극우정당이 중심부 정치세력으로 급속히 부상하고 있는 현실은 기성 정당과 제도권 정치, 나아가 기성의 민주주의 질서에 대한 대중의 불만이 이미 누적될 대로 누적되었음을 보여 준다. 오늘날 유럽의 극우정당은 인종주의와 국수주의 등의 전통적인 극우 이데올로기를 포퓰리즘으로 종합함으로써 급속히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뚜렷한 실체를 특정하기 어렵지만, 하나의 이데올로기로서 포퓰리즘은 정치적 갈등구조를 부패한 기득권 ‘엘리트’와 그들로부터 소외되고 억압당하는 ‘대중’ 사이의 대립으로 이해한다는 데 근본적인 속성이 있다. 기성의 정치질서에 대한 대중의 불만이 가득할 때 기득권 엘리트와 소외된 대중의 이분법은 가장 단순하면서도 어쩌면 가장 강력한 정치적 무기가 된다. 유럽의 극우정당은 인종주의와 국수주의 이전에 포퓰리즘을 전면에 내세움으로써 급속히 성장해가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유럽에서 극우정당의 성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기성 정치에 대한 대중의 불만이 어디에서 연유하는지를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사실 이것은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기성정치에 대한 불만은 먹고 살기 어려울 때 항상 최고조에 달했다. 유럽 또한 예외일 수는 없다. 멀게는 1990년대 이후, 가깝게는 유로존 위기 이후 유럽의 대중들은 점증하는 실업과 빈곤의 문제에 직면해 왔다. 유럽 전역에 신자유주의의 광풍이 몰아치기 시작한 1990년대 이후 실업과 양극화는 어느덧 일상이 되었고, 그래도 유럽의 신자유주의가 조금은 인간의 얼굴을 하고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유로존 위기로 처참하게 무너졌다.

    유로존 위기는 신자유주의라는 이름으로 횡행하던 고삐 풀린 자본주의의 필연적 귀결이자 동시에 위기의 신자유주의적 해결이 잉태할 수 있는 파국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통상 회자되는 대로 유로존 위기는 그리스를 필두로 한 몇 몇 국가들의 방만한 재정운용과 그에 따른 채무위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 아니다. 이들의 채무위기는 투기적 행태로 도산 직전에 직면한 유럽의 금융자본을 회생시키는 과정에서 발생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2007년 미국 금융자본의 극단적 투기성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폭발했다. 이렇게 폭발한 미국의 금융위기는 촘촘히 연계된 국제금융자본의 네트워크를 통해 특히 유럽으로 급속히 수출되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2007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당시 미국의 금융자본을 제외하고 미국의 부실채권을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던 것이 유럽의 금융자본이었기 때문이다. 종종 간과되는 이 간단한 사실은 유로존 위기가 금융자본의 무분별한 투기적 행태에 따른 결과임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미국의 금융자본이 국유화에 버금가는 정부의 대규모 구제금융으로 회생할 수 있었던 것처럼, 유럽의 금융자본 또한 천문학적인 규모의 구제금융으로 기사회생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천문학적인 규모의 구제금융은 이내 유로존 국가들을 재정위기, 채무위기에 빠뜨리는 원인이 되었다. 그리고 그 대가는 엉뚱하게도 긴축재정이라는 이름으로 유럽의 민중들이 치러야 했다. 위기의 원인인 금융자본을 회생시키기 위해 정부가 막대한 재정을 쏟아 붓는 동안 유럽의 민중들은 허리띠를 졸라매도록 강요받게 된 것이다.

    유로존 위기는 신자유주의가 잉태한 위기를 가장 신자유주의적인 방식으로 해결하는 과정에서 심화되었고, 이로써 일상화된 실업과 빈곤은 기성 정치에 대한 대중의 불만이 잉태되는 토양이 되었다. 역설적으로 이러한 대중의 불만은 유럽의 기성 진보정당에게는 정치적 재앙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들이 1990년대 이후 ‘선진화’, ‘신노선’, ‘제3의 길’ 등의 이름으로 채택한 노선은 신자유주의의 적극적인 수용에 다름 아니었고, 따라서 그들은 더 이상 신자유주의가 잉태한 불만을 공유할 수 있는 세력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빈자리는 포퓰리즘으로 무장한 극우정당들이 채워 갔다. 그들은 포퓰리즘의 언어로 대중의 응축된 불만을 대변하고 인종주의적이고 국수주의적인 방식으로 그 불만을 표출할 것을 선동함으로써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었다. 불행히도 신자유주의가 잉태한 대중의 불만이 신자유주의 너머의 대안으로 표출될 수 있는 통로가 마련되지 않는 한 이러한 경향은 지속될 것이다.

    영국 예외주의 또는 좌파 포퓰리즘의 가능성?

    포퓰리즘이 기득권 ‘엘리트’와 그들로부터 소외되고 억압당하는 ‘대중’ 사이의 이분법에 기초한 것이라면, 그것이 반드시 극우정당의 전유물일 이유는 없다. 유럽의 극우정당은 정치적 주체로서의 대중을 특정의 순혈 집단으로 협소하고 배타적으로 규정함으로써 포퓰리즘과 반동적인 이데올로기와의 연계성을 극대화하였다. 그러나 이것을 포퓰리즘에 내재된 근본적인 한계로 볼 수는 없다. ‘대중’의 역능과 권한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포퓰리즘은 또 다른 가능성, 즉 기성 대의민주주의 질서의 한계를 뛰어넘는 급진적인 민주주의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포퓰리스트가 되지 않고서는 기성 질서의 진보적인 변혁이란 처음부터 불가능하다.

    유럽의 기성 진보정당은 이 지점에서 전적으로 실패했다. 제3의 길이라는 이름으로 신자유주의를 수용하는 순간 그들은 대중적 불만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집권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과거의 계급주의 노선을 버리고 중산층을 겨냥한 중도노선으로 전환해야 한다던 그들의 주장은 그들의 신자유주의가 바로 그 중산층을 무참히 파괴하는 것이었다는 점에서 약삭빠른 변명이었거나 자가당착에 불과한 것이었다. 무엇보다 포퓰리스트임으로 해서 성장할 수 있었던 그들은 더 이상 포퓰리스트이기를 거부함으로써 쇠락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다.

    이 점에서 최근 영국 정치의 변동은 흥미롭다. 2016년 브렉시트 국민투표 가결 과정에서 위세를 떨쳤던 극우 영국독립당과 보수당 내 극우 세력은 2017년 총선에서 눈에 띄게 퇴조했다. 집권 보수당은 제1당을 차지하기는 했지만 과반 의석 확보에 실패함으로써 극우 성향의 소수 정당인 북아일랜드 민주연합당과의 연정을 통해 간신히 집권당의 지위를 유지하게 되었다. 반면 제레미 코빈(Jeremy Corbin)이 이끄는 노동당은 예상을 뒤엎고 의회 의석을 30석 더 확보하게 되었다. 노동당의 승리는 아니지만, 대단한 약진임에는 분명하다.

    노동당의 약진이 흥미로운 것은 제레미 코빈이 전통적인 좌파 성향의 정치인이자, 노동당 의원들의 집단적인 반발 속에서도 대중, 특히 청년층의 전폭적인 지지로 노동당 당수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영국 노동당이 유럽을 횡행한 제3의 길 노선의 발원지이자 지난 수 년 동안 집권은 꿈도 꿀 수 없는 정당으로 쇠락해 있었다는 점에서, 제레미 코빈이 전통적인 좌파 노선을 토대로 2017년 선거에서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는 점은 그 자체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제레미 코빈이 표방하는 전통적인 좌파 노선이 신자유주의체제 하에서 누적되어 온 대중의 불만이 표출되는 통로로서의 역할을 수행했다는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가 노동당 외부의 대중적 지지를 토대로 노동당 내부 엘리트들의 반발을 극복할 수 있었다는 점은 그가 포퓰리스트가 됨으로써 정치적인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는 평가 또한 가능하게 한다. 전통적인 좌파 노선과 포퓰리즘의 결합, 그것이 제레미 코빈이 이끄는 노동당이 유럽의 여타 기성 진보정당과는 다른 궤적을 보여 줄 수 있었던 이유라는 해석이 지나친 억측만은 아닐 것이다.

    물론 2017년 총선 결과만을 놓고 영국 노동당의 미래, 나아가 영국 정치의 미래를 예단할 수는 없다. 유럽의 모든 국가들에서 극우정당의 약진과 기성 진보정당의 퇴조가 공히 나타나는 현실에서 제레미 코빈과 영국 노동당의 약진은 이른바 영국 예외주의의 또 다른 형태일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유럽에서 극우정당의 약진이 기성의 신자유주의 질서로부터 잉태된 대중의 불만에 기초한 것이라는 분석이 일말의 타당성이라도 갖는다면, 제레미 코빈이 이끄는 영국 노동당의 약진은 예외적인 현상이 아니라 동일한 대중의 불만이 표출될 수 있는 또 하나의 당연한 경로를 확인시켜 주는 것으로 보는 것이 오히려 타당할 것이다.

    어쩌면 유럽의 향후 정치 정세는 극우 포퓰리즘과 좌파 포퓰리즘의 대결 속에서 결정될지도 모른다. 그 대결의 종착점이 무엇일지는 알 수 없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극우 포퓰리즘과 좌파 포퓰리즘 공히 기성 질서가 더 이상 지속될 수 없는 낡은 것이라는 대중의 불만을 토양으로 성장한다는 점이다. 그람시는 위기란 붕괴한 낡은 질서를 대체할 새로운 질서가 아직 들어서지 않은 상황이라 했다. 기성의 질서는 이미 낡은 것이 되었지만, 미래의 질서가 무엇이 될지 아직 알 수 없다는 점에서 현재의 유럽 정치는 위기다.

    필자소개
    국민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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