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재인 정부 노동개혁, 벌써 후퇴하나?
    [상선여수] 지금처럼 진행되면 싹수 노랗다
        2018년 04월 10일 09:1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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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공부문 비정규직 전환, 어디까지 왔나?

    “저 사람들은 지금 우리가 징징댄다고 생각하나?” 그런 느낌을 받았다. 지난 3월 30일 국회 토론회 자리였다. 주제는 [공공부문 비정규직 전환, 중간평가와 개선과제]였다. 모처럼 고용노동부, 기획재정부, 행정안전부 관료들도 토론자로 나왔다. 여당인 민주당 을지로위원회가 주최였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날 발언을 하는 그들의 태도를 보면서 대통령이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말하던 만큼의 진정성을 볼 수 없었다. 가장 일선에서 비정규직 전환을 챙겨야 하는 그들에겐 그저 대통령이 바뀐 상황에서의 업무일 뿐인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강하게 들었다.

    지금 정국을 주도하는 것은 문재인 대통령이다. 그는 “노동이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겠다고 했다. 그리고 노동계가 채 준비를 하기도 전에 인천공항을 방문했다. 그리고 2020년까지 공공부문 비정규직 17만명이 넘는 인원을 정규직으로 만들겠다고 했다. 그리고 작년 말까지 92,509명에 대해 전환결정을 했다. 지난 9년 동안 탄압만을 일삼던 이명박, 박근혜 시대를 벗어나 대통령이 주도하는 노동개혁이 진행 중이라는 점에서 엄청난 변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개혁이 퇴색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우려가 드는 것은 왜 일까?

    토론회 모습(사진=공공운수노조)

    중간 점검을 해보니

    이날 발표를 한 공공운수노조에 따르면 문제는 심각하다. 기간제 노동자는 올해 상반기까지 전환을 완료한다는 계획이었지만 지난 3월 16일 기준으로 보면 대상기관 835개 중 696개만이 전환 결정이 완료되었고, 139개 기관은 여전히 전환 결정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특히 출연연구기관, 기초자치단체 등에서 전환이 늦어지고 있다. 파견‧용역은 더 심각하다. 전환 대상이 존재하는 656개 기관 중 노·사·전문가 협의체가 아직 구성되지 조차 않은 기관이 248개(37.8%)나 된다. 전환 대상 기관 중 전환을 결정한 기관은 241개로 36.7%에 불과하다.

    *전환결정인원 및 기관은 전체확정 및 부분확정된 기관을 모두 포함한 수치임

    물론 워낙 많은 사람을 정규직화해야 하기 때문에 반드시 계획대로 진행될 수는 없다는 점은 안다. 전환이 지체되고 있는 것만 가지고 뭐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조금만 더 깊숙이 살펴보면 조짐이 안 좋다. 위로부터의 개혁을 틀어막는 아래로부터의 저항이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가 생길 정도다. 이날 발제문을 통해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사례 1. 전환심의기구에 노동조합의 참여를 배제한다. 언론진흥재단은 사내 인터넷 게시판에 협의체 구성 참가를 공고했다. 그러나 사내 전산망에 들어갈 수 없는 미화노동자들은 협의체 구성 사실 자체를 알지 못했다. 한전KPS, 한국과학기술연구원은 특정 직종을 중심으로 노조를 배제하거나 최소화하고 자의적으로 구성해 버렸다. 학교의 경우가 가장 문제가 심각하다. 실제 전국 17개 시도교육청 정규직전환심의위원회 구성위원 163명 중 비정규직 노동조합의 추천위원은 전체의 12%인 19명에 불과하다.

    사례 2. 한국수자원공사, 예술의전당, 발전 자회사, 부산시설관리공단 톨케이드 요금 징수원 등에서는 파견·용역 전환과 관련된 노·사·전문가협의체에 들어가는 노동자 대표단을 용역업체 관리자가 주도하고 있다.

    사례 3. 대표적인 사례는 고용노동부 산하 한국잡월드(http://www.koreajobworld.or.kr)의 경우다. 현재 한국잡월드는 정규직 50여명, 비정규직은 7개 용역업체에 고용된 338명이나 된다. 사측은 고용노동부의 가이드라인에 대한 해석을 맘대로 하고, 노동자들이 고용노동부에 확인한 사실을 주장해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노·사·전문가협의체에 들어가는 대표 구성의 수적 비율이 맞지 않은 상황에서 다수결이라는 결정 방식을 고집한다. 진행자는 협의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의 회의장 분위기를 연출하고, ‘협의지 합의가 아니다’라는 식으로 한다. 일방적이고 압박적인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고용노동부 산하기관에서조차 이런 상황이라면 결과는 뻔하다.

    다시 원위치로?

    전환 지연과 비정규 당사자 배제만이 문제가 아니다. 상시지속업무임에도 불구하고 다수의 전환 제외자가 발생하는 경우도 많다. 사실 정부가 말하는 전환대상 17만명도 공공부문 전체 비정규직의 42.1% 수준에 불과하다는 주장도 있다. 각 기관에서 자의적으로 ‘전환 예외’라며 자의적으로 확대해석하기 때문이다. 학교 비정규직의 여러 직종, 전산 관리직, 경비 업무 등에서 보이는 것처럼 일관된 기준 없이 비슷한 기관의 유사업무에 대해서 전혀 다른 결론을 내리기도 한다.

    전환 방식도 문제다. 대다수를 ‘중규직’에 불과한 무기계약직과 자회사로 전환시키려 한다. 발전 자회사, 강원랜드처럼 정규직이 될 경우 정년이 60세로 되어 고령자가 해고된다거나, 경쟁 채용을 해야 하므로 자회사로 전환해야 한다고 현장 노동자를 호도하기도 한다. 한국수자원공사에서는 용역업체 전환대상자 희망자와 비희망자로 구분하는 서면 제출을 요구, 전환대상자를 축소하려 시도했다. 비정규직의 정규직으로의 고용전환임에도 신규채용을 남발하는 경우도 많다. 전환 정책의 기본 취지가 기존 노동자의 고용안정임에도 불구하고 “청년 선호 일자리”를 자의적으로 폭 넓게 해석, 절차의 공정성을 이유로 갈등을 만들기도 한다.

    지금, 당장 종합 점검을 해야

    공공부문에서부터 상시지속 업무를 정규직으로 전환한다는 정책은 시대적 과제를 반영한 정책으로서 커다란 의미가 있다. 그러나 실제 실행과정에서는 다양한 이유로 애초 정책이 추진된 취지가 크게 훼손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말한 “노동이 존중되는 사회”는 단지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바꾸는 것만은 아니다. 그것은 한 사회의 패러다임을 바꾸겠다는 선언이다. 따라서 우선은 비정규직을 ‘인간’으로 대우받도록 하는 과정이지만 동시에 사회 전체가 노동의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도록 자리매김하는 것이어야 한다. 비정규직 전체는 IMF 이후 진행된 잘못된 신자유주의 정책의 희생자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첫 단추인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가 지금처럼 진행된다면 싹수가 노랗다. 벌써부터 노사관계 개혁 의지가 후퇴한다면 그것은 불행한 역사의 반복으로 이어질 것이다.

    필자소개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전 정책실장. 정치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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