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친일논란 끝에 추락해버린 '푸른제비'
        2006년 04월 12일 06:4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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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글은 스포일러가 될 수 있는 부분이 포함돼 있습니다. 영화를 보시지 않은 분은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영화 <청연>은 오랜 준비 끝에 만든 영화다. 영화 제작 소식이 처음 언론에 나온 게 2002년이었다. 그러나 영화의 구상은 199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이디어 단계에서 완성까지 10년이 걸린 셈이다. 저작권 문제를 해결하는데 시간을 허비하기도 했지만 시나리오 준비에 많은 공을 들이느라 제작이 지연됐다.

    그러나 영화는 이륙을 위한 활주에 긴 시간을 들인 반면 정작 흥행이라는 하늘을 제대로 날아보지도 못하고 추락해버렸다.

    ‘추락사고’의 원인은 개봉되기도 전에 온라인상에서 영화의 모델이 된 일제시대 여성비행사 박경원의 친일미화 논쟁이 불거졌기 때문이다. 2005년 12월 중순 ‘오마이뉴스’를 통해 “제국주의의 치어걸” 박경원을 “미화한 영화”라는 비판이 처음 제기됐고 영화 제작진 쪽의 반론과 재반론이 이어졌다.

    비판의 요지는 크게 두가지였다. 하나는 박경원이 최초의 조선인 여성비행사가 아니라는 것과 다른 하나는 자신의 경력을 위해 일본에 적극적으로 협력한 반민족행위자라는 것이다. 우선 ‘최초’를 둘러싼 논란을 놓고 제작진은 민간인으로서의 최초를 강조한 것이라고 항변했지만 비판을 일부 수용해 개봉 직전 홍보문구에서 ‘최초의 조선인 여성비행사’를 삭제했다. 그러나 ‘친일미화’ 부분에 대해서는 거세게 반론을 폈다. 그럴 의도도 없었고 그렇게 만들지도 않았다는 것이었다.

    이런 경우 ‘관객들이 직접 보고 판단해 달라’고 외칠 수밖에 없지만 개봉 전에 논쟁이 불거졌으니 사람들은 지면을 통해 오고가는 갑론을박을 통해 영화에 대한 선입견을 키워나갔다. 감독과 제작진의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영화는 엄청난 제작비와 화려한 출연진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흥행 성적을 올리지 못했다. 이를 두고 ‘친일미화’ 혐의가 크게 작용했다는 분석이 주를 이뤘다.

    만약 사전에 친일논란이 없었다면 <청연>은 더 많은 관객을 모을 수 있었을까?

    영화를 둘러싼 논쟁이 벌어졌을 때 시사회 등을 통해 미리 영화를 접한 평론가 중 꽤 여러 명이 영화를 적극적으로 옹호했다. 평론가들은 친일이다 아니다 식의 접근이 아니라 실제 박경원의 삶과 작가를 통해 재창조된 영화를 분리해서 봐줄 것을 주문했다.

    영화는 식민지 조선인과 여성이라는 이중굴레를 비행을 통해 탈출하고자 했던 한 ‘근대인’의 갈등과 노력을 설득력 있게 그리고 있다. 특히 ‘여자’보다는 ‘계집’으로 살아야만 했던 시대를 뛰어넘고 싶은 여성의 욕망과 한계를 필름 안에 고스란히 녹여냈다.

    애초 논쟁을 제기한 쪽도 최초비행사 부분은 입증할만한 사료를 제시했지만 친일관련 부분은 ‘그랬을 것이다’식의 정황증거만 제출했다. 영화를 보면 오래 동안 박경원의 삶을 추적해온 만큼 감독과 제작진 쪽도 논쟁이 제기될 만한 부분을 이미 알고 있었음이 드러난다. 윤종찬 감독은 이런 부분들에 대한 판단을 관객의 몫으로 열어놓는 방향을 선택했다.

    다만 ‘친일영화’라는 식의 혐의씌우기가 없었다면 영화가 상업적으로 성공했을 것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영화가 내러티브만 가지고 완성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 청연은 종합적인 측면에서는 그다지 잘 만들어진 영화가 아니다.

    대부분의 비행장면을 재현한 컴퓨터그래픽을 포함해 의상과 세트 등 미술의 실패는 치명적이다. 특히 항공영화임에도 불구하고 비행장면의 CG가 마치 3~4년 전의 기술수준처럼 엉성한 것은 영화를 보는 재미를 크게 떨어트렸다. 연극무대를 보는 것 같은 촬영장과 시대의 질감이 묻어나지 않은 색조 등은 ‘시대극’이라는 이름에 어울리지 않았다.

    청연은 엄청난 제작비를 자랑했는데 정작 그 많은 돈이 어디에 쓰였는지 이해가 안가는 영화다.

    영화는 박경원의 삶을 효과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많은 장치들과 새로운 요소들을 대거 투입했다. 따라서 영화 속의 박경원과 역사 속의 박경원이 반드시 동일인물이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 박경원이 마지막 비행을 나서기 전 찍은 사진. 영화 속에서도 재현돼 있다.

    우선 영화는 학교에 가서 공부를 배우고 싶지만 ‘여자가 무슨 공부냐’고 어린 딸의 책을 불사르는 전형적인 ‘농촌봉건가정’의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러나 박경원은 대구의 개화된 부농의 막내딸로 태어나 어릴 적부터 별 어려움 없이 신식학교를 다니며 공부했다. 기록에 의하면 박경원은 미국에도 다녀왔고 일본 요코하마 기예학교에서 유학했다. 당시 조선의 여성으로서는 누리기 힘든 삶을 살았던 셈이다.

    드라마를 만들기 위해 동원된 가장 주요한 장치는 박경원의 연인으로 나온 한지혁과 조선적색단의 존재다. 모두 실존인물이나 실재했던 단체가 아니다.

    훗날 발견된 박경원의 일기와 당시 주변인물들의 증언으로는 한지혁에 해당할 만큼의 연인이 실제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박경원의 일기에는 당시의 ‘신여성’답게 독신주의를 주창하는 대목이 있다.

    다만 한지혁의 아버지로 조선적색단에 의해 암살되는 것으로 그려진 조선인 중의원은 실재 모델이 있다. 폭력배 출신인 박춘금은 1932년 조선인 최초로 일본 중의원에 당선된 후 노동운동과 독립운동을 탄압하고 일제의 침략전쟁에 적극 협력한 대표적 친일파다. 박춘금은 그러나 영화에서처럼 저격당하거나 하지는 않았고 1973년까지 편안한 삶을 누리다 죽었다.

    조선적색단은 가상의 독립운동단체고 한지혁의 친구이면서 한지혁의 눈앞에서 아버지를 암살하는 신문기자 또한 허구의 인물이다. 이 신문기자가 ‘자신이 박경원을 세상에 알렸다’고 떠드는 장면도 사실과 다르다. 박경원은 다치가와 비행학교 입학 당시 조선인 여성이라는 이유로 일본신문에 이미 크게 보도됐었다.

    나머지 등장인물들은 모두 실재하기는 했지만 영화를 위해 각색됐다.

    조선인 비행사로 나온 강세기나 이정희 모두 실재인물이다. 유민이 연기한 기베 시게노도 당시 미모의 여성비행사로 요즘으로 치면 인기스타에 해당하는 유명세를 자랑했던 인물이다. 그러나 박경원과는 영화속에서 그려진 것처럼 밀접한 관계가 아니었다.

    한지혁의 수양동생으로 박경원의 연적으로 그려진 이정희는 영화 속에서는 박경원이 죽음의 비행을 떠날 당시 일본에 있었던 것으로 그려지지만 그 전에 이미 조선에 들어와 있었다. 문화재 연구자 이순우씨가 2004년 조사한 것에 따르면 이정희는 박경원보다 훨씬 더 드라마틱한 삶을 살았다.

    이정희는 1927년 1월 다치가와 비행학교에서 삼등비행사 자격을 땄다. 그러나 1929년에는 무용가로 변신해 있었고, 1931년에는 택시운전사가 됐다. 거주지도 미국과 중국을 오고갔다. 해방 후에는 공군대위가 됐고 전쟁 시기에 피랍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 박경원의 죽음을 알린 매일신문 기사에 실린 사진. 가운데가 박경원 오른쪽이 이정희다. 다치가와 비행학교 시절 찍은 사진으로 추정된다.

    박경원의 스폰서로 나오는 스기하라 외무대신의 모델은 고이즈미 일본 총리의 할아버지인 고이즈미 마타지로 체신대신이다. 애초 박경원의 친일설을 제기한 연구자들은 당시 일본 신문에 보도된 고이즈미와 박경원의 스캔들을 부역의 증거로 제시했지만 이 보도는 사실로 확인된 것이 아니다.

    마지막으로 박경원의 죽음도 실재와는 다소 다르게 처리됐다. 짙은 폭풍우 속에서 비행을 강행한 박경원과 그의 비행기 ‘푸른제비(청연)’호는 산중턱에 충돌하면서 폭발하는 것으로 묘사됐다. 그러나 박경원의 마지막 비행을 방해한 것은 짙은 안개였다.

    1933년 8월 7일 조선을 거쳐 만주로 가는 장거리비행에 나선 박경원은 이륙한 지 50분 만에 시즈오카현 겐가쿠산에 추락했다. 며칠 뒤 수색을 통해 발견된 비행기는 두동강이 나있었지만 박경원은 상처 하나 없이 죽은 채로 발견됐다고 한다.

    윤종찬 감독은 영화 제작 후 한 인터뷰에서 청연의 사실성과 관련해 “멜로는 픽션이다. 나머지는 최대한 사실에 가깝게 만들었다”고 답했다. 예를 들어 박경원이 비행을 위한 후원금을 모집하려 할 때 여성이라는 이유로 같은 조선인들로부터 홀대 받는 모습 등은 최대한 있는 그대로 그리려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노력에도 픽션으로 들어간 멜로가 영화의 많은 부분을 잠식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멜로의 틀을 유지하기 위해 ‘조선적색단’과 같은 과도한 설정이 무리하게 들어가야 했다.

    이 영화의 최대의 문제는 친일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이처럼 시대와 성별의 벽을 넘어 하늘 높이 치솟으려 했던 신여성 박경원의 높은 꿈에 비해 영화의 완성도가 그리 높지 않다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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