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탈리아 총선 좌파연합 0.1%차이로 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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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04월 11일 06:3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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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정부의 재신임 여부를 묻는 이탈리아 총선이 지난 9일과 10일 이틀에 걸쳐 실시됐다. 이번 선거에서는 유럽연합 국가 중에 최저 수준을 기록하고 있는 이탈리아의 경제성장 문제가 최대 쟁점이었으며, 1996년 초대 좌파연정의 수상을 지내고 유럽연합 집행위원장을 역임한 뒤 국내정치로 복귀한 로마노 프로디가 가장 큰 관심을 받았다.

    투표율 83.6% 역대 최고

       
     
    ▲  로마노 프로디(가운데)를 비롯한 이탈리아 중도좌파연합 지도부가 총선승리를 축하하고 있다(AP=연합뉴스)
     

    쟁점과 관심은 투표율로도 알 수 있는데, 이번 총선의 투표율은 역대총선의 투표율 기록을 갱신할 정도였다. 지난 2001년 총선 투표율이 81.4%를 기록한 반면 이번 총선에서는 83.6%라는 경이적인 투표율을 기록할 만큼 이탈리아 국민들의 관심은 지대했다. 이번 총선의 최대 화두는 지난 5년간 이탈리아의 정치적 정체성과는 차이를 보이며 실정을 편 베를루스코니 연정의 재집권 가능성이었다.

    2001년 집권에 성공한 전문경영인 출신인 베를루스코니는 자신의 경영철학을 정치에 접목시키면서 화려하게 연정을 이끌었다. 수상의 평균 재임 기간이 1년이 못되는 역사적 경험 속에서 그가 5년 동안 장기집권에 성공한 배경에는 베를루스코니를 대체할만한 집권 연정 내의 인물이 없었다는 점과 정부의 입장과 정책의 방향이 곧 베를루스코니의 그것과 동일하다는 점이 있었다.

    2002년 연두기자회견에서 밝힌 40여개 개혁입법의 시도를 공언한 뒤, 노동법을 개악하고 자신의 이익과 관련된 법안을 차례로 개정했던 베를루스코니에 대해 국민들이 어떤 판단을 내릴지를 바라보는 일은 제3자에겐 자못 흥미로운 이벤트였다.

    비례대표 의석 다수당에 몰아주도록 선거법 개정

    지난해 12월21일 개정된 선거법에 따라 이번 총선은 지난 총선(1994년, 1996년, 2001년 총선)과는 다른 시스템으로 치러졌다. 지난 총선과 가장 큰 차이점은 하원의 의석수 배분방식이 1992년 시스템으로 돌아갔다는 점이다. 다수당의 과반수 확보를 용이하기 위해 소선거구제로 당선된 하원의 다수당이나 선거연합에게 일정 비율(25%)에 해당하는 비례대표의석수를 모두 배분한다는 것이다.

    현재 집권여당인 베를루스코니의 정당이 주도하고 있는 우파정당 연합인 ‘자유의 집’(Casa della Liberta)이 한 석이라도 소선거구제에서 획득한 의석수에서 앞설 경우 하원 630석 중 340석 이상을 확보해 재집권하게 되며, 반대의 경우 프로디가 이끄는 중도우파연합인 ‘연맹’(L’Unione)이 5년 만에 정권교체를 이루게 된다.

    희비 엇갈린 박빙의 개표

    총선이 끝난 직후 여론조사기관 넥서스폴이 실시한 출구조사에서 중도좌파연합이 50~54%, 베를루스코니의 우파연합이 45~49%의 득표를 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국영방송 RAI를 비롯한 현지 방송사들의 출구조사와 부재자투표 전화 설문조사에서도 중도좌파연합이 근소하게 앞선 것으로 보도되어 5년만의 정권교체가 가능한 것으로 예측됐다.

    그러나 실제로 개표에 들어간 뒤 양진영의 득표율과 의석수는 엎치락뒤치락하면서 매시간 희비가 엇갈렸다. 특히 출구조사 결과와는 다르게 자정(현지시간)까지 우파연정이 우세를 보이면서 출구조사와 정반대의 결과가 나오는 것이 아닌가라는 예측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새벽 1시가 넘어서면서 미미하게나마 중도좌파연합이 우세를 보이자 개표는 말 그대로 한 치 앞을 예상할 수 없는 혼돈의 상황으로 빠져들었다.

    좌파연합의 우세가 90% 이상 확정된 것은 국내 개표가 모두 끝난 뒤였다. 이번 선거에서 특이한 점 중의 하나가 6개에 달하는 해외 선거구였는데, 개표가 비교적 순조로웠던 국내에 비해 해외는 시차 문제 등이 얽혀 아직 개표가 끝나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러나 이탈리아 시간으로 11일 새벽 3시 22분에 거의 확정된 양 진영의 득표율은 중도좌파연정이 49.8%로 49.7%를 얻은 우파연정을 0.1% 포인트 앞선 것으로 나타났다. 표 차이는 불과 2만5천224표였다.

    선거법 개정 자승자박으로 돌아와

    아직 해외 선거구의 개표가 완료되지 않은 상황이라 변수가 남아있기는 하지만, 대다수 전문가들은 현재 결과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큰 것은 아닐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2001년까지 시행되었던 선거법을 1992년의 선거법 시스템으로 회귀시켜가면서까지 재집권을 열망했던 베를루스코니에게 선거법은 자승자박으로 돌아왔다. 불과 2만5천여 표 차이로 비례대표 의석수를 모두 중도좌파연합에 내주게 된 것이다. 이에 반해 상원에서는 우파연합이 1석이 앞서는 155석을 획득했고, 중도좌파연합은 154석을 획득했다(50,2% 대 49%).

    이와 같은 선거 결과에 대해 두 가지 요인이 결정적인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첫째는 지난 5년간 베를루스코니 정부가 보여준 실정과 장기적인 경기침체이다. 둘째는 1996년 이후 다시 한 번 중도좌파연합이 프로디를 중심으로 역량을 결집시켰다는 점이다.

    특히 공산주의재건당(Rifondazione Comunista)이 연정 안에 들어옴으로써 중도좌파 연정의 득표율을 결집시켜 베를루스코니의 재집권을 막을 수 있었다. 여기에 유럽연합 집행위원장을 역임하면서 보여주었던 프로디 개인의 인기와 능력도 표로 연결된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이번 선거결과는 향후 이탈리아 정치가 순탄치 않을 것이라는 전망을 낳고 있다. 당장 우파연정은 재검표를 주장하고 있으며, 일부 지지자들은 결과에 승복할 수 없다는 입장을 표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와 적’으로 나눠진 이탈리아 국민들의 표심 역시 치유해야할 당장의 문제로 부각하고 있다.

    더군다나 이러한 표심이 지역별로 분명하게 갈린 것은 그렇지 않아도 ‘남부문제’라는 지역문제와 북부지역 안에서도 ‘동서 문제’로 나뉜 소지역문제 등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이탈리아의 오랜 현안이 쉽게 해결되기 힘들 것이라는 전망을 낳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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