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근로기준법만 지켰어도,
    노동부 근로감독만 제때 나갔어도”
    살인적 장시간 노동 시달리던 노동자 자살
        2018년 04월 05일 11:2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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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강의업체 ‘에스티유니타스’의 웹디자이너로 일하던 30대 노동자가 살인적인 장시간 노동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특히 고인이 극단적 선택을 한 배경엔 근로기준법 위반 사실을 알고도 근로감독에 나서지 않은 고용노동부의 직무유기가 있었던 것으로 보여 책임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이정미 정의당 의원, 고 장민순 씨의 언니, 공인단기·스콜레 디자이너 과로자살 대책위원회(대책위)는 5일 오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회사가 근로기준법만 지켰어도, 고용노동부가 근로감독만 제때 나갔어도 장민순 씨는 살아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에스티유니타스 기자회견

    에스티유니타스 웹디자이너 장민순 씨는 입사 2년 8개월 만인 지난 1월 3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장 씨는 재직기간 중 거의 1년에 가까운 46주를 법정 연장근로 한도인 12시간을 초과해 일했고, 주말이면 무료노동에 시달렸다. 일부 상사의 경우, 평일 장시간 노동도 모자라 장 씨에게 주말 독후감 숙제를 내주기도 했다. 이처럼 여러 명이 해야 할 일을 혼자 감당하면서도 장 씨는 ‘부끄러운 하루’, ‘저의 단점’ 등 반성문 성격의 업무일지를 매일같이 작성했다.

    장 씨는 죽기 직전 언니에게 자신의 출퇴근 시간을 추정할 수 있는 교통카드 기록을 남겨놓았다. 자신이 장시간 노동에 시달렸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를 가족에게 맡겨놓은 셈이다.

    게임회사 넷마블 직원인 언니 장씨는 회견에서 “IT회사의 야근은 일상과도 같은 관행이라지만, 에스티유니타스의 야근은 IT관행으로 용인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며 “작년 12월 2일 처음으로 동생은 대성통곡을 하며 업무의 과중함과 상사의 문제를 토로했다”고 전했다.

    장 씨가 생전에 주고받은 메시지와 가족들의 증언 내용 등을 보면, 휴직을 마치고 돌아온 직후인 11월 장 씨에게 맡겨진 업무는 살인적으로 많았다. 야간근무가 가장 많았던 때였던 당시에 장 씨는 “정말 너덜너덜해지는 기분이다”, “머리가 터질 것 같다” 등의 메시지를 보냈다. 그 다음달 1일 언니에게 “일이 너무 많아… 그동안 꾹 참았다”면서도, 상사가 “‘잠은 자면서 하냐? 머리가 맑을 때 일해야 한다’는 말에 폭발해 버렸다”고 말하며 대성통곡을 했다고 한다.

    장 씨의 언니는 12월 초 강남노동지청에 동생의 회사인 에스티유니타스를 근로기준법 위반으로 신고했다. 일주일 후 강남노동지청 담당자는 “2017년 근로감독 나가는 물량이 이미 끝났다”며 “2018년 2월 이후에 다른 신고업체와 묶어서 근로감독을 나가겠다”고 답변했다. 에스티유니타스에 대한 근로감독이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한 달 후 장 씨는 목숨을 끊었다.

    당시 강남노동지청이 바로 근로감독에 나섰더라면 장 씨의 죽음을 막을 수 있었을 수 있다. 현 정부가 장시간 노동을 없애겠다고 외치고 있지만 실제 현장에선 최소한의 근로감독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장 씨의 언니는 “그때 바로 근로감독을 나갔더라면, 제 동생은 살 수 있었다. 강남노동지청은 근로감독 업무태만으로 제 동생의 죽음을 방관한 것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2016년 과로사 문제로 고용노동부의 특별근로감독을 받은 이후 넷마블에선 더 이상 야근을 하지 않는다. 야근은 없앨 수 있다”며 “IT 기업의 특성상 불가피한 야근은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에스티유니타스에 대해 고용노동부에서 즉각적인 특별근로감독을 시행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이상진 민주노총 부위원장도 이날 회견에서 “이는 고용노동부의 명백한 직무유기”라면서 “촛불정부라고 자임하며 산재예방 대책을 내놓고 자살예방협의회도 만든다고 한다. 하지만 현장은 뭐 하나 달라진 것 없이 아비규환이고, 노동자들은 매일 고통스러워하며 죽어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회사 측은 장 씨 사망의 원인이 우울증이라며 ‘과로 자살’을 단순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고 있다.

    반면 유가족들은 과중한 업무부담과 스트레스를 사망의 원인으로 판단하고 ▲진정성 있는 사과 및 재발 방지 대책 마련 ▲직장 내 야근 근절, 직장 내 업무 스트레스 야기환경 개선 ▲책임 있는 직장 상사에 대한 징계 등을 회사 측에 요구하고 있다.

    유가족들이 장 씨의 사망 원인이 단순 우울증 때문이라고 보지 않는 데엔 이유가 있다. 입사 초기였던 2015년 6월 우울증이 완치에 가까울 정도로 상태가 호전되었다는 담당 전문의의 진단을 받았다. 입사 당시까지만 해도 우울증으로 인한 큰 문제가 없었다는 뜻이다.

    장 씨의 우울증이 재발한 건 회사를 다니면서다. 과중한 업무 스트레스로 인해 우울증이 악화됐지만 그는 병원에 갈 시간조차 없어 치료도 받지 못했다.

    장 씨의 언니는 “동생 회사의 동료들 중에선 평소 우울증이 없던 분들도 이 회사를 다니면서 ‘자존감이 낮아지고, 이곳 말고 다른 회사에 갈 수 없을 것 같아 두려웠다’, ‘잠이 들 때 마다 이대로 아침에 눈을 뜨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등과 같이 동생과 비슷한 우울증상을 겪었다는 분들이 적지 않았다”고 전했다.

    그는 “‘그렇게 힘들면 퇴사를 하지 그랬냐’고 하는 분들이 분명 있을 것이고 저 역시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사람이 장기간 지속적인 스트레스에 노출되면 그 상황에서 도망치려는 노력조차 하지 못하게 되는 무력감에 빠져 직장을 그만둔다는 다른 선택지를 보지 못하게 되는 상태에 이르게 된다”며 “이것은 가정폭력사건에서 매 맞는 아내가 스스로 남편의 가혹한 폭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따라서 동생의 죽음은 명백한 회사의 책임”이라고 강조했다.

    장 씨는 회사의 장시간 노동, 부당한 업무지시 등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도 해온 것으로 보인다. 그는 12월 가족들과 저녁식사 자리에서 “신입들을 위해 야근을 강요하는 지금의 불합리한 회사의 업무관행을 바꾸고 싶다”, “자기가 나서서 바꿀 수 있다면 바꾸고 싶다”, “회사를 떠날 각오도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장 씨의 언니는 그로부터 열흘 후 유서 없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동생의 마지막 말을 ‘유언’으로 받아들이고 야근 문화 근절을 요구하겠다고 밝혔다.

    끝으로 그는 “불행히도 제 동생이 그 속에서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했지만, 저는 이것이 우리 모두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제 동생이 아닌 누구라도 그 상황에 놓일 수 있기 때문이다. 가장 소중한 목숨을 잃는 사람이 더 이상 없도록, 저처럼 하루아침에 사랑하는 가족을 잃고 고통 속에 남은 인생을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 없도록 잘못된 시스템의 문제가 무엇인지 찾아서 해결해야 한다. 제 동생의 죽음을 계기로 무언가 바꿀 수 있는 시발점을 만들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것이 제동생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는 길이며 제가 바라는 모든 것이다”라고 말했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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