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동과 정치의 만남,
    비례대표제 기원에 대해
    [노동자의 블루카펫] 교섭단체 단상
        2018년 04월 05일 11:26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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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4월 2일 ‘어느 교섭단체에도 속하지 아니한(통상 비교섭단체로 불리던)’ 정의당과 민주평화당 의원 연명으로 새로운 교섭단체가 출범했다. 「평화와 정의」는 한반도 평화, 개헌과 선거제도 개혁, 노동존중 사회 등 핵심의제 실현을 ‘명분’으로 내세웠다. 개헌과 남북정상회담 등 한반도 운명을 가를 봄이라고 했던가. 4월 임시회부터 어떤 전술로 소수야당 한계를 극복하고 ‘실리’를 취할 것인가는 지켜볼 일이다.

    정치가 가능성의 예술이고 결과로서 평가받는다고 하지만 공동교섭단체 구성을 두고 우려가 있었던지라 진보정당 의회전술을 둘러싼 역사적 경험(또는 이론적 배경)을 되돌아본다. 한반도 평화실현이라는 특수성을 제외하면 선거제도 개혁과 노동존중 사회실현은 ‘만국의 노동자’의 공통된 과제였다. 노동존중 사회야 당연한데 선거제도 개혁이 노동운동의 핵심과제였던가?

    자본주의 태동 초기 자생적 운동의 한계를 극복하고 노동자정치운동과 노동조합운동의 관계를 과학적으로 분석한 에르푸르트 강령(1890)은 유럽은 물론 미국과 캐나다, 일본 좌파운동에 이르기까지 20세기 노동운동의 교본이었다. 엥겔스에 의해 당대 맑스주의 최고 이론가이자 실천가로 공인받은 카우츠키와 베른슈타인의 제안은 노동자 당원들의 열렬한 지지 속에 독일사민당(SPD) 강령으로 채택됐다.

    베른슈타인(왼쪽)과 카우츠키

    자본주의적 착취에 반대하는 노동자계급의 투쟁은 “필연적으로 정치투쟁”이라는 전제하에 “노동자계급은 정치적 권리 없이 경제투쟁을 수행할 수도 경제적 조직을 발전시킬 수도 없다.” 는 명제는 ‘노동운동이라는 한 어머니로부터 노동조합과 노동자정당이란 두 아이’를 탄생시켰다. 이는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을 갖는 모든 나라에서 동일함으로 제2인터내셔널, 노동자 국제조직의 확대로 이어졌다.

    카우츠키가 강령1부에서 자본주의 모순을 타파하기 위해 만국의 노동자가 단결해야만 하는 이유를 이론적으로 분석했고, 베른슈타인(그렇다! 수정주의 논쟁으로 변절자를 ‘자처’했던 카우츠키의 절친)은 2부에서 혁명적 목표를 위한 당과 노동조합의 개량적 실천을 제안했다.

    첫 번째 실천 강령에서 차별 없는 참정권 보장과 비례대표제 도입, 투표일의 법정 휴일과 선출된 대표자 보수 지급을 요구했다. 투표일 법정휴일과 유급 공직제도의 기원이 에르푸르트 강령이라니! 당시 유산계급의 전유물이었던 정치가 노동정치로 대중화되기 위해서는 ‘일 때문에 투표를 못해서도 안 되고 돈 때문에 출마가 주저되어서도’ 안 된다는 노동계급의 요구가 관철되어야 했다.

    중앙선관위가 지난 18대 총선 투표자 조사 결과 투표에 참여하지 못한 비정규 노동자 중 69%가 “고용계약이나 임금불이익 때문에 투표참여가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답했다면 오늘날 한국사회는 여전히 19세기 말 유럽과 유사한 상황 아닌가?

    당의 정체성과 혁명적 목표를 제시한 1부와 아울러 비례대표제는 강령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다. 독일사민당이 비례대표제를 강령적 요구로 채택한 이유는(당시 독일은 소선거구제였지만 결선투표제였다는 점에서 현재 단순다수제인 한국보다는 진보적이었다.) 지역, 인종, 종교 및 계급 등 다양한 정치세력의 의회진출이 용이하다는 점과 사표 없이 ‘민심을 그대로’를 의석에 반영하는(선거 유불리를 떠나) 진정한 민주주의 제도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독일이 1차 대전 패전국이 된 이후 실시된 1919년 선거에서 사민당 압승을 우려한 보수와 자유주의 정당에 의해 비례대표제는 즉각 수용되었다. 이탈리아 역시 보통선거권을 획득한 노동자정당의 급성장에 놀란 집권세력이 보수정당의 존립 즉 ‘의회 구성의 다양성(!)’을 위해 비례대표제를 도입했다.

    나치의 출현과 참혹한 2차 대전을 겪은 후 독일은 비례제가 가질 수 있는 개별 의원에 대한 유권자의 직접 감시 부족 등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지역구와 비례의원을 50:50으로 개혁하는 혼합제, 즉 연동형비례대표제를 최초로 도입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 한국정치에서 논의되는 독일식 연동형비례대표제는 전문가들에 의해 ‘21세기의 선거제도’로 평가되며 최근 실시된 각종 여론조사에서도 우리 국민들이 가장 선호하는 선거제도이다.

    독일식의 가장 큰 특징은 ‘1인 1표’가 아니라 ‘1표 1가치’를 우선함에 있다. 다시 말해 누구의 1표이던 그 가치가 정치에 반영되지 않는다면 민주주의가 아니라는 것을 우리의 헌법과 같은 독일 기본법에 명시했다는 점이다. 따라서 어떤 선거에서 의석에 반영되지 않는 사표 발생이 기준을 초과할 경우 위헌(!)이 된다. 실제로 2008년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는 정당득표와 의석반영을 왜곡시키는 연방선거법에 대해 위헌판결을 했다. 일부 초과의석을 발생시키더라도 사표발생을 없애는 것이 헌법정신이라는 것이다.

    거대 양당이 얻은 50% 남짓한 득표로 의석점유율 90%를 넘기는 한국 지방의회와 ‘만들어진 과반’의 국회구조는 독일 관점으로 보면 선거를 할 때 마다 헌정중단, 쿠데타의 일상화이다. 물론 교섭단체를 만들어야(또는 만든다고) 선거제도가 바뀌는가? 라는 합당한 질문을 할 수 있다. 게다가 자유한국당 등 100석이 넘는 극우정당(문재인 대통령의 개헌안을 사회주의 헌법이라고 주장한다면 이론적으로 보수정당은 아니다) 존재하는 한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것이라는 전망이 일반적이다. 나는 역설적으로 현실이 그러하기에 교섭단체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제도는 ‘제도권 내’에서 만들어진다는 본질적 딜레마를 극복하는 ‘유이한’ 방도이기 때문이다.

    또 다른 유이한 방도는 촛불과 같은 ‘비제도적 운동정치’의 활성화이다. 비제도적 운동정치와 제도권 내의 교섭단체가 선거제도 개혁이라는 이행기적 과제를 위해 보다 긴밀한 연대전선을 구축할 때이다. 87년 6월 항쟁결과 만들어진 6공화국 헌법은 헌법 개정을 이끌었던 비제도권 운동정치 세력이 최종 제도화 단계에서 사라져 버린 그리하여 “결과적으로 제도화 실패”의 결과이다.

    시민들이 직선제를 쟁취했다고 환호할 때, 제도정치권은 단순다수제를 통한 재집권전략을 설계하고 있었고, 재야운동권 지도부가 강제력도 없는 야권후보 단일화라는 ‘선의’를 호소할 때 주요 외신들은 ‘제도적 근거 없는 기이한 단일화’라고 타전했다. 대통령제하에서는 직선제만큼(또는 보다) 결선투표제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지난 30년 동안 목도하지 않았던가.

    선거 때마다 숙명처럼 다가오는 ‘사표 심리’는 기실 숙명이 아니라 무지 또는 무능으로부터 기인하는 것이다. 민주사회에서 사표는 존재해서는 안 되는 ‘반정치 의식’의 기원일 뿐이다. 촛불이 열어낸 30년만의 개헌과 선거제도 개혁 국면에 제도정치가 화답해야 할 때이다. 아직 결과는 예측하기 힘들지만 분명한 사실은 제도는 스스로 변하지 않는다는 것. 그러므로 제도는 기득권에 저항한 투쟁의 결과이며 무릇 소수파에게는 파업보다 힘든 것이 교섭이다.

    필자소개
    정의당 노동본부장, 전 민주노총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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