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왕벚나무' 자생지 논란
    [푸른솔의 식물생태] '진해 군항제'
        2018년 04월 04일 10:1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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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월 1일부터 경남 창원시 진해구에서는 세계 최대의 벚꽃 축제인 진해군항제가 한창이다. 이 축제를  상징하는 게 왕벚나무다. 관련한 논란을 소개하고 필자의 단상을 담고 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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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벚나무는 일본의 국화(national flower)??

    벚꽃의 일본어인 사쿠라(サクラ)는 흔히 일본의 국화(national flower)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일본은 국가에서 공식적으로 지정한 국화가 없고 황실의 상징화는 국화(菊花)이니 굳이 일본의 국화를 따지자면 사쿠라(サクラ)가 아니라 국화(菊花)인 셈이다.

    그러나 사쿠라(サクラ)는 국화(national flower)인지와 무관하게 일본인들이 예로부터 가장 좋아하는 나무임에는 틀림없다.

    경기도 탄천에 식재된 왕벚나무(쇼메이요시노종)

    제주산 왕벚나무와 일본의 쇼메이요시노[ソメイヨシノ, 染井吉野]는 원산지는 모두 제주도이고 두 종은 식물분류학에 근거할 때 같은 종인가?

    현재 일본과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식재하면서 흔히 왕벚나무라고 불리우는 일본명 쇼메이요시노(ソメイヨシノ)는 동경제대의 식물학 교수이었던 식물학자 松村任三(Matsumura)에 의하여 1901년 도쿄의 한 공원에서 발견되어 Prunus yeodoensis Matsum으로 명명되었다.

    제주도 한라산에서 자생하는 것으로 알려진 왕벚나무는 1908년 제주도의 천주교 신부로 파견되어 근무하던 프랑스인 Taquet에 의하여 한라산에서 표본이 채집되어 독일로 보내졌고, 독일에서 Kohne 박사에 의하여 Prunus yedoensis f. nudiflora (Koehne) Rehder라는 학명이 부여되었다.

    제주산 왕벚나무와 일본의 쇼메이요시노[ソメイヨシノ, 染井吉野]는 원산지가 모두 제주도인지에 관하여 어슬픈 민족주의/국수주의를 배제하고 그나마 객관적으로 쓰여진 글은 한겨레 신문의 기사로 보여진다.(관련 기사 링크)

    제주산 왕벚나무와 쇼메이요시노가 같은 종인지 문제도 정치적이거나 이념적인 색체를 걷어내고 과학의 영역에서 면밀히 재검토되어야 할 문제이다. 다만 얼치기 아마추어에 불과한 필자의 눈에는, 봄이 되면 어김없이 어슬픈 민족주의에 따라 떠들어 대는 언론들의 바램과 달리, 두 종은 같은 종이 아닐 가능성이 훨씬 높아 보인다.

    여러 논거들이 있겠지만 무엇보다 제주산 왕벚나무는 자생하고 씨앗으로 스스로 번식한다. 그러나 가로수로 흔히 식재되는 쇼메이요시노는 벚나무와 잔털벚나무 등 다른 종의 벚나무를 대목으로 하고 기존의 쇼메이요시노의 가지를 접목하는 방식으로 인위적 육종이 이루어지지 않는 한 씨앗 번식이나 삽목에 의한 번식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번식형태가 종을 구별하는 확고한 지표일 수는 없지만, 이러한 번식형태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두 종을 같은 종으로 분류하기 위해서는 다른 과학적 입증이 더 필요할 것이다. .

    그런데 왕벚나무의 자생지 논란은 왜 벌어졌는가?

    한반도에는 제주 한라산에 분포하는 소위 왕벚나무 이외에도 여러 종류의 벚나무들이 자생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역사에서 발견되는 바로는 (i) 팔만대장경을 제작한 목판의 상당수가 벚나무 종류로 이용되었던 것과 (ii) 군사용 활을 만드는 재료로 사용하기 위하여 벚나무 종류(주로는 올벚나무)를 식재한 기록 이외에 달리 인가 부근에 벚나무 종류를 식재하고 이를 관상용으로 즐겼다는 풍습이나 그에 관한 기록은 없다(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박상진, “궁궐의 우리나무”, 눌와, p461 이하 참조).

    이를 인가 부근에 식재하고 즐기는 풍습은 1906년 무렵이 일본이 한반도에 진출하여 경남 진해와 마산 부근에 식재한 것을 시발로 경술국치 이후 창경궁에 식재한 것에 이르기까지 일본인들에 이루어진 것이었다.

    그리고 해방 후 전국에 각지에 심겨진 쇼메이요시노 종들은 일제를 연상시킨다고 하여 많은 지역에서 저항감이 발생하였고 이를 베어내는 바람이 일기도 했다. 그런데 이러한 과정 중에 군인들에 의하여 진해에 심겨진 벚나무를 이용하여 축제를 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그 즈음에 고려대학 식물학과의 박만규 교수의 “왕벚나무는 제주도 한라산에서 출생하여 일본으로 건너가서 그들에게 총애를 받았고 미국까지 시집을 가서 귀염을 받고 있다”는 동아일보 기사가 게재되었고, 후원을 받아 제주도를 탐사한 결과 Taquet신부가 발견한 자생종 왕벚나무 3그루를 발견하게 된다.

    그 전후에 들어선 박정희 군사정권은 벚꽃(쇼메이요시노) 위주로 진해 군항제를 개최하려는 일부의 움직임이 있었지만 그에 대한 저항감이 강하여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그러한 상황에서 군사정권에게는 박만규 교수의 논리는 쇼메이요시노 종들을 식재하고 즐기는 데 대한 거부감을 없애는 중요한 논거를 제공하게 된다. 그리하여 진해 군항제는 당시 군사정권에 의하여 1964년에 공식적으로 허용되었고, 충무공을 기리는 군항제가 매해 쇼메이요시노의 그윽한 향기 속에 화려하게 치루어지게 되었다.

    군사정권은 그 이후 벚나무가 일본을 대표하는 종이라는 주장을 배격하고 온 나라에 왕벚나무 심기를 장려하고, 그리고 매해 봄이면 어김없이 방송과 언론을 장식하며 왕벚나무의 자생지가 제주도라는 기사와 보도들이 이어지고 있다.

    식물분류학의 관점에서 왕벚나무의 자생지가 어디이고, 쇼메이요시노와 같은 종인지 문제는 대단히 중요하고 과학적으로 연구되어야 하는 일이다. 그러나 쇼메이요시노의 자생지가 제주도 한라산인지 여부와 벚꽃을 식재하고 그것을 즐기는 것이 우리의 것인지는 완전히 별개의 문제이다. 후자는 옛사람들이 식물와 맺어 왔던 역사의 문제이고 문화적 영역에 관한 것이다. 쇼메이요시노의 자생지가 제주도라고 한들 그것을 식재하고 관상하는 것이 일본의 풍습이고 역사이었던 것은 변함이 없다.

    1962년 이래로 진행된 이 왕벚나무의 자생지 논란은 과학을 대하는 우리의 부끄러운 맨 얼굴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왕벚나무 또는 쇼메이요시노 식재에 대한 개인적 소견

    제주산 왕벚나무든 일본에서 유래된 쇼메이요시노 종이든, 두 종의 원산지가 같든 다른 것인지에 불문하고 꽃은 꽃일 뿐이다. 대도시와 찻길의 가로가 없어 굳이 가로수를 고민하지 않았던 옛 시대의 전통으로 현재에 그대로 이어갈 수도 없다. 국제화의 물결이 대세인 현재에 초밥을 즐긴다고 하여 그 자체를 친일로 볼 수 없듯이 쇼메이요시노를 식재하고 그 꽃을 즐긴다고 하여 친일이라고 배격해야 할 일은 아닐 것이다. 물론 원예학이나 육종학의 차원에서 우리의 종자를 널리 보급한다는 측면에서 자생종 왕벚나무를 식재종으로 널리 개발되고 보급된다면 그것이 보다 권장할 일이기는 할 것이다.

    그러나 벚나무 종류를 인가 주변에 식재하고 그것을 관상하는 풍습을 우리의 것이고 그것이 우리의 전통이라고 한다면 이는 역사와 문화에 대한 왜곡이다. 과학적 영역으로 자생지와 분류학을 그것에 억지로 끼워 넣는다고 해서 없었던 풍습과 문화가 절로 생겨날 리 없다. 더욱이 역사적으로 특별한 의미가 있는 충무공의 동상 아래 또는 왕궁이나 기타 역사적 유적지에, 가사 그것이 왕벚나무와 같은 자생지를 가진 같은 종이라고 하더라도 쇼메이요시노를 식재하고 충무공이나 역사를 기린다고 한다면, 역사를 망각한 정당화되기 힘든 행동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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