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독재 시절 노조탄압 진실 밝혀라
    2006년 04월 11일 05:3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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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80년대 군사정권 시절, 민주노조 운동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정보부, 보안사, 삼청교육대에 끌려가 모진 고문에 시달리고 일터를 빼앗겨야 했던 노동자들이 30여년이 지난 지금 노동탄압사건의 진실규명을 촉구하고 나섰다.

민주화운동정신계승국민연대와 70민주노동운동동지회, 민주노총 등은 11일 오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실·화해위원회)에 노동운동에 대한 국가폭력피해사건의 진실규명 공동신청서를 제출했다.

   
 
▲ "70~80년대 노동탄압 진실규명하라" 군사정권 당시 벌어진 노동탄압의 진실규명 및 피해자 명예회복을 촉구하는 기자회견 모습.
 

이들은 진실규명 신청서를 제출하기에 앞서 기자회견을 갖고 “국가권력이 투입되어 노동자들의 노동의 권리를 빼앗고 생존권을 압살했는데 아직까지 국가폭력에 대한 사건의 진실이 규명되지 않아 여전히 책임자의 사과 및 반성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면서 “지금이라도 철저한 조사를 거쳐 집행자와 최고 책임자를 밝히고 피해자에 대한 적절한 피해보상이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25년이 지났어도 우리는 절대로 잊을 수 없다”

동일방직, 원풍모방, YH무역, 한일 도루코 등에서 노동운동을 벌였던 앳된 ‘여공’들은 어느새 나이 지긋한 중년이 됐다. 하지만 3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어도 그들의 가슴에 멍울로 자리잡고 있는 아픈 기억들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민주노조 가입 조합원에게 인분을 퍼붓고 124명을 집단 해고한 동일방직, 회사 폐업의 책임을 묻던 여성 노동자들을 강제연행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김경숙 YH 노동자 사망사건, 노조간부에게 ‘김대중 내란음모 혐의’를 씌워 ‘회사정화’ 차원에서 집단해고를 감행한 원풍모방 등 군사정권 시절 벌어진 노조탄압사건들은 회사측과 국가권력이 결합해 노동자들을 탄압했던 과거 어두운 역사의 한 장면이다.

   
 
▲ 78년 동일방직에서 여성노동자를 향해 회사측 직원이 인분을 뿌린 모습을 찍은 사진.
 

이 자리에 참석한 박순희 70민주노동운동동지회회장은 “70년대 공장에서 쏟아지던 아름다운 상품들의 이면에는 우리 여공들의 피눈물이 배어있다. 그건 노동착취의 산물이었다”면서 “정당한 권리를 찾고자 노조운동을 벌이던 노동자들은 군화발로 짓밟히고 생존권이나 다름없는 노동권을 박탈당해 죽음의 삶을 살아야만 했다”고 전했다.

박 회장은 “사측과 군사정권은 노동자를 해고한 뒤에도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재취업의 길까지 막았고, 심지어 여성 노동자들은 경찰들이 시부모와 남편에게 접근해 ‘불순분자’라는 거짓 선동을 해 이혼을 당하는 일까지 겪어야 했다”고 토로했다.

그는 “70년대 모진 탄압을 받아야만 했던 우리의 역사를 모든 국민들은 기억해주기 바란다”면서 “진실·화해위원회가 얼마나 진실을 밝혀낼 지는 모르겠지만 민주주의의 발전을 염원하는 시민들과 함께 냉정한 눈으로 지켜보고 감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피해보상보다는 동일 ‘범죄’를 막기 위한 것

이 자리에는 YH무역에서 노조위원장 출신인 민주노동당 최순영 의원도 참석했다. 노조활동 당시 사측으로부터 해고·전출 위협을 받고, 농성과정에서 동료의 죽음까지 지켜봐야했던 최순영 의원도 당시의 기억이 아직 생생하다. 

   
 
▲ YH무역에서 노조위원장으로 활동한 바 있는 민주노동당 최순영 의원.
 

최순영 의원은 “오늘 나는 국회의원으로서가 아니라 과거에 노동탄압을 받았던 선배 노동자의 한사람으로서 참석한 것”이라면서 “80년대 민주화운동의 성과로 5·18민주화운동과 학생운동에 대한 과거사 정리는 되어가고 있지만 유독 노동운동에 대해서는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최 의원은 “군사정권 시절 받아왔던 노동탄압 희생자들의 명예회복은 현재 가해지고 있는 노동탄압 해결의 실마리를 잡는 첫 단추가 될 것”이라면서 “선배노동자로서 이 문제만큼은 꼭 풀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이 자리에 섰다”고 강조했다.

참석자들은 “생존권을 위협하던 블랙리스트는 정말 사라졌는가, 구사대 폭력은 없어졌는가, 노동자의 정당한 권리행사에 공권력이 투입되는 일은 없는가, 왜 노동자들은 아직까지도 자신의 권리를 되찾으려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스스로 끊어야 하는가”라면서 “현 정권은 과거 국가가 우리에게 저지른 불법 범죄행위를 조사하면서 자신이 현재 노동자들에게 어떠한 행위를 하고 있는지 되돌아보기 바란다”고 촉구했다.

복직권고 받은 지 2년, 대화조차 못 나눠봤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70~80년대 노동탄압 피해자들은 지난 97년 국민의 정부가 들어서면서 ‘민주화운동 탄압 피해자에 대한 명예회복 조치’로 인해 지난 2003년 보상심의위원회로부터 복직이 인정된 바 있다.

보상심의위원회는 70~80년대 부당해고를 가한 68개 사업장에게 227명의 복직 권고를 내렸지만 법적 강제성이 없는 ‘권고’ 조치를 이행하는 사업장은 단 한 곳도 없었다. 동일방직의 경우 피해자들이 사업자에게 면담을 요청했지만 이 마저도 거부하고 있다.

민주화운동정신계승국민연대 등은 지난 2003년부터 해당 사업자를 대상으로 보상심의위원회의 권고 이행을 촉구하는 활동을 전개해왔으며 지난 2005년 8월에는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노조탄압 희생자들의 복직과 제대로된 명예회복을 촉구하는 노숙농성을 2주간 진행하기도 했다.

   
 
▲ 진실화해위원회 민원실에 제출한 진실규명 신청서의 접수증.
 

이들은 이날 11개 사업장에 가해진 노동탄압 사례 진실규명 요청서를 피해 당사자 30명의 명의로 진실·화해위원회로 제출했다.

송기인 진실·화해위원회 위원장은 신청자들과 가진 간담회 자리에서 “여러분들이 바로 우리 위원회를 만든 주인공”이라면서 “능력이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열심히 조사에 임할 것이고, 법이 부족한 부분에 대해서는 법개정 청원 운동에 나서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인터뷰-박순희 70민주노동운동동지회 회장

   
 
▲ 박순희 70민주노동운동동지회 회장
 

지난 80년 섬유노조 산하에 있던 원풍모방지부에서 부지부장으로 활동하다가 신군부가 들어서면서 ‘김대중내란음모’ 혐의로 수배생활을 지내야 했던 박순희 70민주노동운동동지회 회장.

작은 체구임에도 불구하고 진실·화해 위원회의 앞마당을 쩌렁쩌렁하게 울리며 노동탄압의 기억을 환기시키는 모습은 과거 노조운동을 진두지휘했던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며칠 전 평택에서 벌어진 집회에서 몸으로 경찰들의 포크레인을 막느라 다친 어깨를 연신 주무르던 박회장은 “노동운동을 자기 삶으로 인정하고, 몸을 던지는 운동을 해야만이 현 노동운동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진실·화해위원회의 진상규명 요구의 의의는 무엇인가.

-지금 진상규명을 해달라고 요구하는 것 자체가 과거에 머무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너무 늦었다. 과거의 일을 해결 못하니 그 악순환이 현재에 이른다. 확실히 청산해야 한다. 그래야만 다른 ‘범죄’를 막는다. 우리에게 가했던 탄압은 분명한 범죄이다. 박정희 정권, 전두환 정권에서 죽어나간 노동자가 몇이고 해고당한 노동자가 몇이냐. 그러나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가 없다.

과거 노동운동의 주역은 공장에서 노조를 만든 여성노동자들이었다. 그러나 현재 노동운동에서 여성노동자들의 목소리가 많이 작아졌는데.

-상대적으로 여성노동자의 비중이 많이 줄어들은 것도 있다. 경제 구조가 바뀌면서 경공업이 중공업 위주로 가지 않았나. 그러나 무엇보다도 의식적인 부분에 안타까운 부분도 있다. 현재까지도 여성노동자의 임금은 남성노동자에 비해 낮은 편이다. 여성의 노동을 가계 보조수단으로만 바라보는 인식 때문이다. 요즘은 많이 나아진 편이지만 그래도 불평등은 계속되고 있다. 왜 이런 부분에 대한 목소리를 확실하게 내지 않고 있는지 아쉽다.

원풍모방에서 함께 활동했던 방용석 지부장이 지금은 근로복지공단의 이사장이 돼서 노조와 대립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정신병자라고 생각한다. 길이 달라졌다. 방 이사장이 국회로 진출할 때부터 상종을 하지 않았다. 한때는 동지였지만 지금은 그들 또한 청산해야할 대상이 됐다. 우리 운동을 디딤돌로 해서 또다른 민중을 죽이고 또다른 노동자를 착취하고 있다. 잘 식별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노동운동을 더 잘 만들어가야한다.

선배노동자로서 후배노동자들에게 한말씀

-아무래도 현장에 있는 당사자들이 제일 힘들고 어렵다. 내가 잘 안다. 운동은 당사자로 인해 만들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당사자들이 얼마만큼 사명감을 가지고 투혼을 바쳐서 임하는 지가 중요하다. 무엇이든지 그 일이 옳다고 생각되면 생명을 버릴 각오도 있어야 한다.

아쉬운 부분이 많다. 사명감이 없이 노동운동을 하게 되면 민중이 따라와주지 않는다. 얼마 전 울산 재보궐 선거를 보고 많이 안타까웠다. 주변을 자기편으로 만들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심지어 자기 가족까지 설득을 못시키고 있다. 지평을 넓혀야 한다. 노동자가 당하고 있는 현실은 정치와 밀접하게 연관이 되어있다. 그게 핵심이다. 노동자의 현장이 변하면 동네가 변하고 사회가 변하고 정치가 변한다. 유권자 혁명이 필요하다. 운동을 삶으로, 신앙으로, 몸을 던지는 마음으로 임했으면 하는 생각이다. 아직 미흡한 부분이 많아서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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