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너를 위해서’라는 고문
    [그림책 이야기]『행복한 가방』(김정민/ 북극곰)
        2018년 04월 02일 11:36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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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험

    한 꼬마가 시험을 봅니다. 의자는 너무 높아서 발이 바닥에 닿지도 않습니다. 얼굴에는 걱정이 가득합니다. 책상 아래엔 자기만한 덩치의 가방이 있습니다. 아마도 부모님은 꼬마가 행복하기를 바라며 가방을 사주었을 겁니다. 더불어 가방을 사주는 부모의 마음은 기대와 설렘으로 행복했을 겁니다.

    수업이 끝나고 꼬마는 친구들과 헤어집니다. 근심이 가득한 꼬마는 땅만 보고 걷습니다. 귀여운 고양이를 보지도 못하고 지나칩니다. 그런데 꼬마의 행동이 이상합니다. 아마도 가방이 무거운 모양입니다. 꼬마는 가방을 머리에 이고 갑니다. 가방은 점점 더 무거워져서 꼬마가 끌고 가기도 어렵습니다.

    때마침 커다란 풍선이 날아옵니다. 꼬마는 풍선을 붙잡아 가방에 끈을 묶습니다. 마침내 커다란 풍선이 가방을 매달고 하늘로 날아오릅니다. 꼬마는 환호하며 손을 흔듭니다. 이제 꼬마는 무거운 가방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요?

    아주 위험한 그림책

    『행복한 가방』은 아주 위험한 그림책입니다. 주인공 꼬마가 다양한 방법으로 가방을 버리는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꼬마는 무거운 가방으로부터 벗어나려고 가방을 풍선에 매달기도 하고 아무나 가져가라는 쪽지를 가방에 달아놓기도 합니다.

    어른들은 이 책을 보고 아이들이 따라하지 않을까 걱정할 것입니다. 예전에 『지각대장 존』이나 『괴물들이 사는 나라』를 보고 걱정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지각대장 존은 도와달라는 선생님의 부탁을 거절했습니다. 고집쟁이 맥스는 엄마에게 심술을 부리고 괴물들이 사는 나라로 떠났습니다. 불친절하고 말 안 듣는 행동을 싫어하는 어른들이 걱정하는 것도 당연합니다.

    하지만 정말 위험한 것은 어린이들의 반항이나 방황이 아닙니다. 사람은 누구나 반항과 방황을 통해 스스로 성장하기 때문입니다. 정말 위험한 것은 우리가 죽음을 받아들이는 교육을 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죽을 만큼 힘든데 참으라고 하는 것은 분명 우리 아이들을 죽이는 교육입니다. 죽을 만큼 힘든데 회사를 다니라고 하는 것은 분명 우리 어른들을 죽이는 교육입니다. 하고 싶지 않은데도, 불행한데도 계속 하라고 강요하는 것은 분명 사람을 죽이는 일입니다. 정말 위험한 것은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우리의 현실입니다.

    고양이처럼, 새처럼!

    주인공 꼬마가 가방의 무게에 짓눌려서 보지도 못하고 지나친 고양이가 있습니다. 그런데 고양이는 꼬마를 봅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꼬마의 가방에 달린 축구공 모양의 액세서리를 봅니다. 고양이는 축구공을 가지고 놀고 싶습니다. 축구공을 만지고 따라갑니다. 그러다 새가 나타납니다. 고양이는 이제 새를 잡으려고 합니다.

    고양이는 자유롭습니다. 축구공을 보면 축구공이랑 놀고 새를 보면 새랑 놉니다. 하지만 주인공 꼬마는 가방에 얽매여 있습니다. 고양이 친구가 나타나도 보지를 못합니다. 새 친구가 나타나도 관심이 없습니다. 주인공 꼬마가 고양이처럼, 새처럼 자유롭고 행복하면 좋겠습니다.

    주인공 꼬마에게는 오로지 커다란 풍선만 보입니다. 꼬마에게 풍선은 가방이라는 현실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탈출구이기 때문입니다.

    풍선이라는 희망

    꼬마는 풍선에 가방을 매달아 봅니다. 풍선에게 희망을 걸어 봅니다. 무거운 현실로부터 벗어나고픈 희망 말입니다. 하지만 풍선은 꼬마의 희망을 이뤄주기에는 너무나 연약합니다. 풍선은 새의 호기심 어린 두드림에 펑 터져 버리고 맙니다.

    꼬마의 두 번째 희망은 쪽지입니다. ‘필요하신 분 가져가세요!’라고 쓰인 쪽지입니다. 꼬마는 쪽지를 가방에 붙여 담에 기대어 놓습니다. 그런데 하필 이웃집 할아버지가 보고 계십니다. 이번에도 꼬마의 희망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어른들이 보기에는 가방을 버리려는 못된 행동이 꼬마의 입장에서 보면 생존을 위한 몸부림입니다. 원하지 않는 학교 공부가, 관심도 없는 시험공부가, 무거운 책가방이 우리 아이들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어른들은 어린이들을 괴롭히는 걸까요?

    ‘너를 위해서’라는 고문

    어른들은 어린이들이 잘 되기를 바라서 학교에 보낸다고 합니다. 어른들은 다 너를 위해서 시키는 거라고 합니다. 하지만 사실은 어른들이 잘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어른들 스스로 후회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학교에 갈 사람들은 어른들입니다. 학교에 가서 공부하고 시험 잘 보고 싶은 어른들이 스스로 원하는 학교에 가면 좋겠습니다.

    어린이 역시 자신이 좋아하는 학교에 가면 좋겠습니다. 사실 어린이는 학교에 가지 않아도 행복합니다. 행복에 관해서라면 오히려 어른들이 어린이에게 배워야 합니다. 교육의 목적이 행복한 삶이라면 교육받아야 할 사람은 어린이가 아니라 어른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교육은 불행한 어른이 행복한 어린이를 불행하게 만들기 위한 고문입니다.

    가방은 행복해지지 않습니다. 진짜 행복한 가방은 가방을 맨 사람이 행복해지는 가방입니다. 지금 여러분의 가방에는 무엇이 담겨 있습니까? 여러분의 가방은 여러분을 행복하게 만들고 있습니까? 그림책 『행복한 가방』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입니다.

    필자소개
    세종사이버대학교 교수. 동화작가. 도서출판 북극곰 편집장. 이루리북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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