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성의 눈으로 본 한미 F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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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04월 11일 03:46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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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3월 26일 열린  ‘비정규직 철폐, 한미FTA 저지를 위한 범국민대회’  참가자들이 행진하고 있다.(사진=미디어오늘)

    ‘한미 FTA는 여성을 위한 고용대책?’

    지난 3월 21일 버시바우 주한미대사가 여성경제단체 회원들을 초청하여 가진 간담회를 보도한 한 경제일간지의 기사 제목이다. 제목대로 버시바우 대사의 드럼실력이 수준급이라는 일화가 기사의 3분의 2를 차지하고 있다. 놀라운 이야기는 기사 마지막쯤에야 발견된다.

    “한미FTA가 체결되면 투명한 비즈니스 환경이 조성돼 양국 여성기업인들에게 교역 기회가 늘어날 것”, “미국 무역 대표부에서는 ‘한미FTA팀은 여성을 위한 고용대책(employment promotion policy)’이라는 농담이 펴져 있다.”

    이날 미 대사가 여성경제단체 회원들을 만나고자 했던 목적은 바로 이것, 한미FTA 체결에 대한 여성기업인의 지지를 호소하기 위함이다.

    그동안 한미FTA가 각계각층에 미칠 파급력에 대해 이를 찬성하는 입장에서 또 반대 입장에서 여러 주장이 제기됐다. 농업, 영화산업을 중심으로 촉발된 한미FTA의 폐해에 대한 논의는 노동·보건의료·교육·미디어 등 다양한 분야로 확산되고 있다. 그러나 정작 한미FTA가 우리나라 여성에게 미칠 영향에 대해서는 눈에 띄는 분석이 거의 없었다. 그런 와중에 한국의 여성기업인을 FTA 지지 세력으로 포섭하는 미국의 움직임은 이렇게도 발 빠르게 진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한미FTA와 여성을 둘러싼 쟁점

    버시바우 대사의 말처럼 한미FTA가 여성고용을 대폭 확대할 것이라는 논리는 한미FTA를 통해 수십만 개의 신규 일자리 창출이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우리나라 정부의 논리와 맞닿아 있다. 노무현 대통령의 말대로 일자리 창출이 곧 양극화 해소 대책이라면 한미FTA야말로 제대로 된 양극화 처방전이다.

    그러나 진보진영이 비판하는 것처럼 한미FTA가 97년 IMF 이후 이루어진 구조조정에 버금가는 소위 글로벌 스탠다드를 기업에 강제한다면 새로운 고용 기회가 늘어난다 하더라도 고용의 질은 장담할 수 없다. 이미 우리나라 불안정 고용의 확산이 ‘젠더화’된 현상이라는 점에서 한미FTA가 괜찮은 여성고용대책이 될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정부는 특히 이번 한미FTA가 우리나라 서비스산업의 경쟁력을 한 단계 끌어올릴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예측한다. 96년 유통시장 개방에도 불구하고 대형할인점 업계 1·2위를 다투는 기업은 이마트, 홈플러스 등 국내기업이란 게 대표적인 예이다.

    이들 대형마트가 여성 비정규직 확대에 톡톡히 기여하고 있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다. 서비스분야 개방에 따른 국내외 기업 간 경쟁은 곧 여성노동자의 노동조건을 누가 더 열악하게 만드느냐 하는 경쟁이 될 수밖에 없다. 그 승자가 국내 기업이든 외국 기업이든 관계없이 말이다.

    한미FTA가 여성에게 미칠 또 다른 영향으로 의료, 교육, 수도 등 공공서비스 분야의 시장화가 가져올 이중노동 부담을 들 수 있다. 여성문화이론연구소 문현아 연구원은 공공서비스의 민영화가 자녀교육, 노인부양의 부담을 여성에게 고스란히 떠넘길 것이라고 주장한다. 간병도우미 등 시장에서 돌봄서비스를 주로 담당하는 여성의 낮은 임금이 지금보다 더 심각해 질 수 있다는 것이다.

    또 과도한 의료, 교육비용을 부담하기 어려운 저소득층 여성의 경우 가족을 돌보는 일을 스스로의 무급 노동에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된다. 아직 거론되진 않고 있지만 그나마 공공서비스의 최후 보루라고 할 수 있는 보육까지 개방의 압력을 피하지 못한다면 이 두가지 측면에서 모두 여성은 제1의 희생양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미FTA가 OECD 평균 수준을 크게 밑도는 우리나라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을 높이고, 여성의 전문직 진출 기회를 늘일 것이라는 기대 또한 공존하고 있다. 여성경제인들을 만난 자리에서 버시바우 대사는 ‘한국에 진출해 있는 다국적 기업들이 여성 채용에 앞장서고 있다는 점’을 예로 들며 우수한 여성 인재가 더 많이 활용될 것이라고 낙관했다. 한 여성주간지 또한 교육·의료·법률·컨설팅 등 지식서비스 분야 개방은 전문 여성인력의 고용 및 관리직 승진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렇게 보면 한미FTA를 바라보는 여성의 입장은 계급 계층에 따라 매우 다르게 나타날 수도 있을 것이다. 한미FTA가 가져올 효과가 곧 여성 내부의 양극화, 여성노동시장의 분절 그 자체일 수 있다는 예측도 가능하다. 그러나 문제는 여성의 이해관계가 엇갈릴 수 있다는 점 자체가 아니다. 최근 몇 년간 이른바 ‘여성인력 활용’을 둘러싼 지배 담론, 즉 여성인력 활용이 곧 국가경쟁력이며 도전하는 여성에게 여풍의 주인공이 될 기회는 널려있다는 논리가 한미FTA 논란을 타고 더욱 공고해 진다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신자유주의의 여성 동원 논리에 대한 비판이 관건

    연초 장하진 여성가족부 장관은 한 일간지에 기고한 “성장의 새로운 동력 ‘여성’”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우리 사회가 성장 원동력으로서 여성인력에 주목해야 한다는 주장과 함께 ‘여성 스스로도 사회진출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과감히 걷어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한 바 있다. 그러나 말 그대로 더 많은 여성을 노동력으로 ‘활용’하는 주체는 여성이 아니라 자본이다. 그 대상이 되는 여성의 노동권은 이 담론의 맥락에서 빠져 있다.

    사실 여성들이 스스로 – 여성이 아닌 기업의 입장에서 ‘여성인력 활용’을 강조하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초반부터다. 다음주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있는 한명숙 총리지명자가 초대 여성부장관을 지내던 시절부터 여성 고용 의제는 이미 여성을 대상화하기 시작했다. 당시 모성보호와 여성고용 차별해소에 대한 사회적 동의를 이끌어내기 위해 사용되었던 담론이 이제는 우리 사회에서 가장 강력한 이데올로기 중 하나인 발전주의·성장제일주의와 끈적끈적하게 결합된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미FTA가 여성에게 득이냐, 실이냐’는 질문이 우리 사회에 던져졌다. 최근 각종 언론매체를 장식하고 있는 여풍신드롬, 여성 고위직·전문직 확대 등 이른바 여성의 성공신화는 한미FTA 또한 여성에게 ‘기회의 천국’이라는 논리를 제공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언젠가 미국측 협상팀 15명 중 10명을 대표하는 웬디 커틀러 대표보와 한국 헌정사상 첫 여성 국무총리의 만남이 ‘한미FTA가 여성친화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로 포장될지 누가 알겠는가.

    문제는 이에 대한 비판의 근거와 대안 담론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먼저 한미FTA가 여성노동자, 농민의 유급·무급노동에 미칠 영향에 대해 보다 구체적인 분석이 필요하다. 아직 한미FTA저지 범국민운동본부에 함께하고 있는 여러 시민사회단체, 학계의 노력은 미약하지만 이제부터라도 시작해야 한다.

    한미FTA의 긍정성을 포장하는 논리가 신자유주의가 여성 불안정 노동을 확산하는 데 동원해왔던 논리의 연장선상에 있는 만큼 그동안 잠식되었던 여성노동권의 현실을 알리고 대안 담론을 만들어가는 데 힘써야 할 것이다. 이는 여성만의 문제가 아니다. 신자유주의와 FTA에 맞선 투쟁이 ‘성 인지적 관점’에서 재조직되지 않으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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