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말고사증후군에 걸리다
[누리야 아빠랑 산에 가자-36] 시험
    2018년 03월 30일 12:3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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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이틀 전인 12월 12일 금요일이었다. 지인과 술을 마시고 새벽 2시가 다 돼 귀가했다. 딸은 방에 없었다. 좁은 서재에 제 엄마랑 누워 반쯤 잠들어 있었다. 거실로 나오게 해서 쇼핑백을 넘겼다. 지인이 딸에게 갖다 주라며 건넨 핸드크림이었다.

“엄마는 주지 말고 혼자 써.”

나의 객담에 아내는 툴툴댔다. 딸은 예쁘다며 맘에 들어 했고, 하나씩 꺼내 살폈다. 그러다 갑작스레 울음을 터뜨리며 내 어깨에 머리를 묻었다. 까닭을 아는 듯한 아내는 딱한 표정으로 말이 없었다. 머리와 볼을 어루만지면서 이유를 물었다. 시험을 잘 못 봤다 했다. 목·금·월·화에 걸쳐 기말고사를 치르는 중이었다. 목요일 어제는 미적분과 통계기본, 오늘은 영어와 한문과 영어듣기, 월요일은 경제와 화학, 화요일은 문학과 일어와 체육이었다.

“아무래도 대학에 못 갈 것 같아. 이번에 영어가 1등급 안 될 것 같아.”

기대했다가 또 상심한 거였다.

“아빠, 나, 아빠 일하는 데 가서 일해야 될 것 같아.”

나는 풋 웃고 말았다. 아내도 웃었다. 운동이 학력을 따지지 않는다 해도 만만한 직업이 아니었다. 삶을 통째로 걸어야 하는 간난신고의 길이었다. 깊은 고민과 결단이 필요했다.

“ㄹ대 가면 되지 않냐.”

딸을 진정시켰다.

“거기도 1등급이야.”

여전히 울었고, 울다가 잠들었다. 지난 1학기에도 그러더니, 딸이 기말고사증후군에 걸렸다.

다음날 아침이었다. 토요일이었다. 10시가 넘어 늦잠에서 깬 딸이 거실로 나와 눕더니, 두 다리를 공중으로 치켜든 채 휴대폰을 검색했다.

“엄마! 어떤 사람이 햄스터 잡았다고 올렸는데, 두더지야, 두더지!”

딸은 깔깔댔다. 장난기 발동한 나는 발로 딸의 다리를 툭 밀었다.

“가시나야, 밤에는 질질 짜더니 금방 좋아졌냐. 월요일에 시험 보고 나서 또 그럴 것 같으면 휴대폰 내려놓고 공부나 해.”

딸애의 몸은 그대로 위를 향한 상태로 두 다리가 무너졌다.

“아빤 그럼 내가 계속 우울하면 좋겠냐? 아빠가 공부하지 말래도 할 거야!”

투덜대며 아내를 따라 밥 먹으로 올라갔다. 기말고사증후군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다 싶었다.

12월 24일(월) : 오늘도 술을 마시고 들어갔다. 딸아이 방문이 잠겨 있었다.

“컴퓨터가 안 돼 울고 있으니까, 들어가서 달래 봐.”

아내의 말에 문 밖에서 불렀다.

“누리야, 문 좀 열어 봐.”

응답이 없었다.

“문 좀 열어 보라니까.”

딸은 마지못해 문을 열어 주고 노트북을 만졌다. 부팅이 되지 않았다.

“벌써 여러 번째야. 저번에 고치러 가서 새로 리셋 했는데, 또 그래.”

60만 원대의 보급형을 사서 말썽인가 보다 싶었다.

“안 되면 수리하고, 당분간 엄마 컴퓨터 쓰면 되잖아. 안 그러면, 새것으로 구입하던가. 그러니까 울지 마.”

“노트북 때문에 그런 게 아니야.”

기말고사 결과 때문인 듯했다. 방을 나오면서, 딸에게 거실로 나오라 했다.

“조금 있다가 나갈게.”

아내에게 안주 좀 준비해 달라고 부탁했다. 판이 깔리고 딸이 나왔다.

“점수 나왔냐? 다 2등급이야?”

“응.”

내 물음에 딸은 풀 죽어 대답했다.

“바로 심리학과를 안 가고, 다른 과를 거쳐서 갈 수도 있는 거야. 철학도 좋고, 사회학도 좋고, 학부에선 그걸 공부하고, 그걸 바탕으로 대학원에서 심리학을 해도 돼. 너희 세대는 100년 넘게 살 거니까 사회생활 하다가 대학에 들어가도 좋고.”

“내가 심리학과를 정말로 가고 싶어 하는지 그것도 분명하지 않아. 모르겠어.”

심하게 스트레스를 받는 모양이었다.

“아직 1년 남았으니까, 천천히 생각해도 돼. 고민해도 정말 모르겠으면, 수시 원서 넣기 직전에 판단해도 되는 거고. 그냥 하는 만큼 해 봐.”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딸아이를 달랬다. 아내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아이를 쓰다듬었다.

필자소개
전 민주노총 사회연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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