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랑스 '가두정치' 전형 보여준 CPE 사태
        2006년 04월 11일 11:3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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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세기 프랑스의 사상가 장 자크 루소는 “모든 권력은 민중으로부터 나온다”며 주권자인 시민에 의해 비준되지 않은 법은 법이 아니라는 입장을 견지했다. 그의 사상은 프랑스 혁명의 이론적 근거가 됐고 이후 사회주의 이론의 형성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지난 10일 프랑스 정부에 의해 폐기된 최초고용계약법(CPE)은 2백년도 더 지난 루소의 철학과 대혁명의 전통이 여전히 프랑스 사회에 남아있음을 확인시켜주고 있다. 의회에서 통과된 법안에 대해 대중들이 자발적으로 시위를 조직하고 거리에서의 투쟁을 통해 폐기시킨 것은 홍세화 <한겨레> 시민편집인의 말처럼 “사회적 갈등이 의회나 노사협의를 통해 해결되기보다 가두에서 힘의 역관계로 결정되는” 프랑스 사회의 특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드빌팽 총리 대선출마 발판 삼아

    21인 이상 고용하는 사업장에 26세 미만의 노동자가 처음으로 취업할 경우 처음 2년 동안은 언제든 아무 이유 없이 해고할 수 있도록 한 최초고용계약법은 지난해 방리유(도시외곽의 빈민주거지역) 시위사태가 있은 후 빈민지역 청년실업 완화를 위한 대책으로 도미니크 드빌팽 총리가 들고나온 법이었다.

    자크 시라크 대통령의 측근으로 유럽연합 헌법 국민투표 부결 이후 정국돌파를 위해 발탁된 드빌팽 총리는 자신의 정치적 명운을 걸고 이 법안을 밀어붙였다. 프랑스 사회의 가장 심각한 문제인 청년실업을 해결하겠다며 이번 법안 통과를 대선 출마의 발판으로 삼은 것이다.

    하지만 올해 초부터 대학 캠퍼스는 들썩이기 시작했고 3월7일 1백만명에 달하는 대학생과 고등학생들이 참여하는 시위를 벌인 것을 시작으로 점점 격화되는 양상을 보였다. 당초 대화를 강조하던 노조진영도 학생들의 시위에 동조해 3월28일과 4월4일 대대적인 총파업을 벌였다.

    시위가 거듭되면서 법안 추진의 강력한 의사를 보이던 드빌팽 총리의 기세는 꺾였고 시라크 대통령이 법안 서명에 앞서 고용주가 해고할 수 있는 기한을 2년에서 1년으로 줄이겠다는 등의 내용을 타협책으로 제시했다.

    빈곤층 청년고용시 기업에 인센티브 주는 방식으로 대체

    하지만 학생과 노조측은 법안의 철회 외에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고 최후통첩을 받은 시라크 대통령은 10일 드빌팽 총리를 비롯한 집권 대중운동연합(UMP) 의원들과 만나 법안철회를 결정했다.

    드빌팽 총리는 자신이 대통령에게 최초고용계약법이 빈곤층 청년들에게 초점을 맞춘 새로운 고용제도로 대체돼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말했다. 드빌팽 총리의 대안은 일자리를 구하기 힘든 빈민층 청년을 고용하는 기업에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으로 철회 발표 직후 의회에 제출됐다. 법안은 이번주 중으로 의회를 통과할 예정이다.

    대통령 관저의 법안철회 발표 이후 텔레비전으로 프랑스 전역에 생중계된 연설에서 드빌팽 총리는 굳은 표정으로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그는 실업을 해결하는 길은 “고용주를 위한 유연성과 노동자를 위한 안정성 사이의 최적의 균형”뿐이라며 자신의 “유력한” 해결책이 “모든 사람들의 이해를 받지 못해 유감”이라고 말했다.

    “위대한 승리”…“의회에서 폐기될 때까지 시위는 계속”

    이번 사태로 드빌팽 총리는 최악의 정치적 위기를 맞이했다. 올초 49%였던 지지율은 25%로 반토막이 났다. <르 파리지앵>의 여론조사에서 프랑스 국민들의 86%가 이번 사태가 드빌팽 총리를 약화시켰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드빌팽 총리보다 더 오른쪽에 있는 니콜라 사르코지 내무장관은 반사효과를 얻고 있다. 같은 조사에서 응답자의 53%는 이번 사태로 사르코지 장관의 힘이 커졌다고 판단했다.

    한편 법안 철회 결정에 대해 노조진영은 “위대한 승리”라며 일제히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하지만 프랑스 최대의 학생단체는 새로운 법안이 의회에서 통과돼 최초고용계약법을 대체할 때까지 시위를 멈추지 않겠다며 11일 예정대로 시위를 벌인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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