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거사 왜곡 미국도 만만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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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04월 11일 08:53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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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이프러스에 취재차 갔을 때의 일이었다. 재무성에서 고위공직자로 은퇴한 한 관계자를 만나서 사이프러스의 분단문제에 관해 대화를 나누다 내가 한국인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한반도 분단문제로 넘어오게 됐다.

    그는 한반도의 분단이 6.25로 인해 시작된 것으로 알고 있었다. 즉, 남북한이 서로 전쟁을 한 뒤 한반도가 분단됐다는 식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나의 설명을 듣고서는 한숨을 내쉬면서 그 동안 속아왔음을 분해했다. 그와 얘기를 나누면서 교육수준이 높다는 유럽의 지식인들까지 한반도의 분단시점을 6.25로 알고 있다는 사실이 충격적이었다.

    어느 유럽 지식인의 한숨과 분노

    1981년 2월 2일, 군사쿠데타와 광주학살로 정권을 잡은 전두환이 당시 미국의 대통령이던 레이건을 방문하여 가졌던 중식시간에서 레이건이 했던 연설문의 일부이다.

    “…조선왕조와 미국은 상업과 항해에 관한 조약을 맺은 이후로 두 민족은 특별하게 가까운 관계를 유지해왔다. 좀 더 가까운 과거사를 돌이켜본다면 북한 공산주의자들이 1950년에 대한민국을 침공했을 때 미국인들이 한국에 가서 싸웠고 자유와 독립을 방어하기 위해 엄청난 희생을 치렀다…”

    6.25전쟁 전, 1945년 9월 미국의 하지장군을 선두로 한 군대가 서울로 진군하여 미군정청을 세우고 남한을 점령한 사실은 빠뜨리고 있다. 조선왕조와 미국의 조약이 나왔으면 그 다음 순으로 미군정의 역사가 나와야 올바른 순서이다. 하지만 바로 6.25전쟁으로 건너뛰고 있다. 마치 미국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상태에서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 미국이 한국을 도우러 갔다는 식으로 말하고 있다.

    미국 언론, 학자, 군인들의 한반도 인식은 식민사관이 기반

    이런 시각은 최근까지도 전혀 변하지 않고 여전함을 잘 보여주고 있다. 지난 3월 22일 육군사관학교 총동창회 주최로 재향군인회대강당에서 있은 버시바우 주한 미대사의 연설문의 일부이다.

    "…1953년, 한국은 3년 동안 지속된 동족상잔의 포화가 채 가시지 않은 폐허의 땅이었습니다. 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에 대한 이해는 희박했고, 살아남은 사람들도 해외원조에 크게 의존해야만 했습니다. 미국은 한국의 민주주의, 인권, 시장경제의 발전 과정을 지원할 수 있었던 점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또 한국에 필요한 경제 지원을 제공할 수 있었던 사실도 기쁘게 생각합니다…"

    미국 대사로서 한국민의 정서를 상하지 않게 가장 완곡하게 표현했다는 외교적 수사가 이 정도이다. 그렇지만 일반적으로 미국의 군인들이나 학자들, 언론인들이 갖는 미국의 한반도역사에 대한 인식은 전적으로 식민사관에 기반하고 있다.

    남한 주둔했던 미군 퇴역장병 “우리는 너희를 50년 동안 보호해줬다”

    몬타나 출신의 미군으로 한반도에 주둔했던 한 퇴역장병과 대화할 기회가 있었다. 그가 한국을 바라보는 관점은 더욱 직설적이었다. “6.25전쟁 이후 미국이 한국을 50년 동안 보호해줬다”는 말을 군인답게 그대로 내뱉었다. 결국, 그가 내뱉었던 말은 나의 조국에 대한 자존심을 건드려 멱살잡이로까지 갔다. 이미 10년이란 세월이 지났지만 나의 가슴 속에서는 그의 말이 지워지지 않고 그대로 남아있다.

    이런 식의 사고방식은 미군 병사들 사이에서만 자리 잡고 있는 것이 아니라 소위 학계에서 연구를 통해 자신의 분야를 개척했다는 소위 ‘싱크탱크’들의 사고방식이기도 하다. 대표적인 예를 든다면, 카토연구소의 석좌연구원인 덕 반도우는 자신이 쓴 칼럼에서 한국을 ‘보호국(protectorate)’이라 공개적으로 몇 번이나 지칭하기도 했다.

    또한 미국신문이나 언론에 보도된 한반도의 현대사에 관한 내용을 보면 당연히 미국과 한국과의 관계는 6.25전쟁에서 시작된다. AP통신의 2004년 5월 17일자 ‘남한의 미군 이라크로 갈지도’라는 제호의 기사를 보면 미국이 한국을 어떻게 보는지 잘 알 수 있다.

    ‘남한을 방어하기 위한 미국의 노력은 가장 지극한 것으로 …1950년 6월 미군은 북한의 예고 없는 공격에서 남한을 구원했다.’

    의도된 과거사 왜곡, 이미 굳어진 상태

    당연히 미군이 1945년 9월에 남한을 점령했다는 사실을 생략하고 있다. 이런 사례들은 한반도 역사를 언급하는 미국의 기사나 학술지 어디에서나 수도 없이 발견할 수 있다.

    이렇게 의도된 미국의 과거사 왜곡은 정책적으로 상당히 오랫동안 진행돼왔기 때문에 이미 굳어져 온 느낌마저 든다. 이렇게 왜곡된 역사는 이미 수많은 교수들에 의해 대학 강단에서 언급됐을 것이며 언론인들에 의해 언론매체나 출판물을 통해 확대재생산 돼왔을 것이다.

    러시아(소련)도 공범자의 입장이기 때문에 당연히 반론을 제기할 수 없을 테고 정부나 학계에서는 신경을 꺼버렸거나 아니면 알면서도 입을 다물어왔을 수도 있다. 외교가에서는 괜히 잠자는 사자의 코털을 건드려 좋을 게 없다는 식으로 눈감아왔을 것이라 추정된다.

    미 · 소에 의한 한반도 분할 현대사 비극의 출발점

    1905년 미국과 일본은 카쓰라-태프트밀약을 통해 미국은 필리핀을 취하고 일본은 조선을 취한다는 것을 상호승인하는 조약을 맺으면서 조선을 일본의 한 부분으로 승인한 바 있다. 당연히 일본이 전쟁에서 패하자 미국과 소련은 패전국 ‘일본의 소유였던 조선’이라는 전리품을 취한 것이다.

    미국은 패전국인 일본을 완전히 점령하기를 원했고 큰 비중을 두지 않았던 한반도는 간단하게 지도상의 38도선에 따라 분할한 뒤 소련에 통고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미국정부는 미군을 남한에, 소련정부는 소련군을 북한에 보내 한반도를 점령했다.

    한반도가 미·소에 의해 분단된 뒤, 5년이 지나 6.25전쟁이 터졌고 남북한 통틀어 수백만의 인명이 살상되고 국토는 완전히 파괴됐다. 또한 남북한은 화해할 수 없을 정도의 깊은 상처를 남기고 갈라섰다. 한반도가 분단된 것은 바로 미·소의 점령 때문이었고 6.25가 벌어진 것도 바로 미·소에 의한 한반도 분할 때문이었다.

    그러나 어느 때부터인가 미국 정부의 인사들이나 언론은 한미관계를 언급할 때면 언제나 6.25전쟁 때 미국이 참전했다는 얘기부터 시작하면서 항상 1945년도의 미국의 한반도 점령을 빠트리고 넘어왔다. 미국이 그런 사실을 얘기할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다. 물론 러시아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역사는 중요한 사실을 생략하게 되면 왜곡이 된다. 물론 미국측에서는 왜곡하지 않았고 단지 빼먹었을 뿐이라고 항변할 수 있다. 만약에 미·소의 한반도 점령역사가 빠진다고 가정해보자. 미국은 한반도의 분단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게 되고 자연스럽게 한반도의 분단책임에서 손을 터는 셈이 된다. 한 발 더 나아가 미국은 ‘어느 날 갑자기’ 6.25전쟁에 참전하여 무고한 미군들의 희생을 치르면서 남한을 구해준 구원자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전후 복구시기에는 강냉이가루를 보내줘 남한사람들을 허기에서 구해준 천사의 나라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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