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 번째 죽음, 두 개의 희망퇴직
    [기고] 한 한국지엠 군산공장 희망퇴직자의 죽음
        2018년 03월 27일 09:1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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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지엠 군산공장의 희망퇴직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두 번째 희망퇴직자의 죽음이다.

    그의 죽음은 너무나 외로웠다. 연락이 없어 찾아간 누이동생에 의해서 발견되기까지 3일간 그의 주검은 방치되었다. 고독사의 모습을 닮았다. 죽음도 외롭게 선택했다. 유서도 발견되지 않았다. 2년 전 부인과 사별하고 하나뿐인 딸도 해외에 유학하고 있어 그는 썰렁한 집에서 직장을 잃은 상실감과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홀로 삭혀야 했다.

    그의 죽음이 언론에 보도되었다. 그리고 그의 죽음을 두고 ‘그 많은 돈을 받고서 왜 죽었나? 이해할 수 없다’ 식의 ‘잔인한 댓글’들이 달리기 시작했다. 나는 그 ‘잔인한 댓글’들을 보면서 무엇이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갔는지 곰곰이 생각하기 시작했다. 죽음을 선택한 그의 심정을 알 수는 없지만, 그의 깊고 깊은 절망과 서글픔 속으로 한번 들어가 보고 싶었다.

    한국지엠에 두 개의 희망퇴직이 있었다

    3월 1일 희망퇴직 마감을 하루 앞두고 친한 동료에게서 문자가 왔다. ‘이00 희망퇴직은 고민 안 해봤는감?’ ‘별로 고민은 안했는데 000는 고민 중인겨?’ ‘솔직히 고민 많습니다’ 아침 7시를 조금 넘은 시간이다. 밤새 잠 못 이루고 줄담배를 피면서 고민한 흔적이 역력하다. 그리고 다음날 이 동료는 희망퇴직을 안 하기로 했다는 말을 전해왔다.

    정년을 몇 년 남지 않은 이 동료는 이번 기회에 힘든 노동에서 벗어나 다른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과 밖에 나가도 딱히 할 일도 없다는 생각 사이에서 고민을 하다가 결국 후자의 판단으로 기운 것이다.

    이 동료에게 희망퇴직은 두 가지 삶의 선택의 가능성이 열려있었다. 특히 정년을 얼마 남지 않은 그에게는 충분히 고민하고 선택할 정도의 위로금 등의 조건이 걸려 있었다. 나도 현재 상황에 노동조합 활동가로서의 책임감이 무겁지 않다면 아마도 희망퇴직을 심각하게 고민했을 지도 모른다. 부평공장은 요즘 희망퇴직자들에 대한 송별회로 공장 주변의 술집들이 북적거린다. ‘선배님들의 제 2의 인생을 응원합니다.’ 주로 이러한 내용의 덕담과 격려가 오간다. 물론 떠나는 사람들이나 남는 사람들이나 마음이 편치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희망퇴직이 삶을 짓누르는 절망감으로 다가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군산공장의 희망퇴직은 전혀 다른 희망퇴직이다. 희망퇴직 지원을 받기 시작하고 얼마간 시간이 흘렀지만 기대했던 인원이 나오지 않자 회사는 조바심이 나기 시작했다. 특히 군산공장에서 희망퇴직 지원자가 많지 않았다. 군산공장은 나이대가 3~40대의 젊은 노동자들이 다수이기 때문에 희망퇴직보다는 회사를 더 다니는 선택을 하고 있었다. 노사협력부 직원들과 임원들이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직공장 등 관리자를 중심으로 임원들이 면담하면서 희망퇴직을 종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희망퇴직 마감일 3월 2일을 하루 앞둔 3월 1일부터 언론에서 ‘군산공장 직원들 희망퇴직안하면 정리해고 할 수도’ 라는 기사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정리해고는 없을 것이다’는 믿음을 갖고 있던 군산지회 조합원들 사이에 불안감이 급속히 확산되기 시작했고, 1000여명의 군산공장 희망퇴직자의 70%가 이때부터 하루 사이에 희망퇴직을 신청했다.

    나는 죽음을 선택하신 그 분의 나이에 주목한다. 47세. 정년까지 근 15년 가까이 남았다.

    그 분이 희망퇴직을 선택한 동기를 알지는 못한다. 하지만 희망퇴직의 조건과 자신의 앞으로의 삶을 계산적으로 따져서 희망퇴직을 했다기보다는 정리해고라는 불안감에 휩싸여 희망퇴직을 선택했을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고 본다.

    그래서 한국지엠에는 두 개의 희망퇴직이 있었다. 두 개의 선택의 가능성을 놓고 저울질하면서 선택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려있는 희망퇴직과 정리해고라는 협박에 몰려 원하지 않은 선택을 강요당한 희망퇴직이 있다. 그래서 그 분을 죽음으로 몰고 간 하나의 원인은 정리해고의 협박을 동반한 사살상의 강요된 희망퇴직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만일 정리해고의 협박을 언론을 활용해서 퍼트리면서 군산공장의 희망퇴직 수를 늘리려는 작업을 한국지엠 회사 측이 주도를 했다면 한국지엠 회사도 그의 죽음에 명백한 책임이 있다.

    그 많은 위로금을 받고 왜 죽었냐고?

    이제 그동안 잘 먹고 잘 살았고, 위로금도 두둑히 챙겼는데 왜 죽음을 선택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질문에 답할 차례다.

    돌아가신 그 분은 47세, 입사년도 1996년 25살의 젊은 나이에 한국지엠에 입사해서 22년을 다녔다. 아마도 할 줄 아는 건 조립라인에서 볼트 죄는 것 밖에 없을 것이다.

    나는 『위장취업자에서 늙은 노동자로 어언 30년』이라는 책에서 정년 후의 ‘비어버린 삶’에 대한 두려움을 이야기하면서 다음과 같이 썼다.

    “잔업, 특근을 많이 하는 이유 중에 하나는 정년 이후 노년의 삶에 대한 두려움이 크게 작용한다. 노후에 대한 불안은 정규직으로 일할 때 한 푼이라도 더 벌어야 하고, 퇴직하면 비정규직으로라도 빨리 취직해야 한다고 판단하게 한다. 과연 그런가? 내가 정년퇴직한 선배들을 지켜본 바로는 돈이 없어서라기보다는 관계의 상실, 일상적인 삶의 의미의 상실 때문에 고통 받는다. 정년퇴직은 돈을 벌 수 있는 기회가 끊어지는 것이기도 하지만, 자신에게 삶의 의미와 내용을 제공해 주었던 인간관계와 낯익은 일상이 끊어지는 것이기도 하다.”

    관계의 상실, 일상적 삶의 의미의 상실은 정년의 경우는 천천히 다가오고 여기에 대응할 수 있는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는 시간이 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이 급작스레, 폭력적으로 다가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가 일하던 군산공장은 썰렁한 폐허가 되어 버렸다. 그가 자동차를 조립하던 컨베이어 라인과 손때가 묻은 공구는 고철덩어리가 되어 뜯겨져 나갈 것이다. 22년간 함께 땀 흘려 일하고 소주잔을 부딪치던 동료들은 뿔뿔이 흩여져 버렸다. 자동차 공장의 노동자들에게 직장 동료들을 대신할 수 있는 인간관계를 만들기는 쉽지가 않다.

    내가 일하는 부평공장에서는 남아 있는 동료들이 희망퇴직자들에게 환송식도 해주지만 군산에 남은 동료들은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을 치고 있기에 희망퇴직을 한 동료들을 돌아볼 마음의 여유가 없다. 그리고 정들었던 군산지역은 먹고 살기 힘든 유령도시가 되어가고 있다. 관계의 파괴, 일상적 삶의 의미의 파괴에서 오는 상실감과 절망감은 정말 견디기 힘든 일이었을 것이다.

    여기에 앞으로의 삶에 대한 두려움이 몰려왔을 것이다. 2년치의 위로금을 다 까먹고 나면, 앞으로 뭐 먹고 살까라는 불안감에 휩싸였을 것이다. 더 힘든 처지에 살아가는 사람도 죽지 않고 사는데 왜 죽음을 선택하느냐고 반문할지도 모른다. 정글 같은 사회에서 살아온 사람들은 나름 정글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어떻게든 찾아나가겠지만 스물 다섯에 입사해서 22년간 자동차 공장에서 볼트만 죄어 온 그에게 ‘정글 같은’ 사회는 두려움 그 자체였을지도 모른다. 그렇다. 그는 당장의 경제적 곤궁 때문에 죽음을 선택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돈 보다도 소중한 것들을 그는 한 순간에 빼앗겨 버렸다.

    남아있는 사람들이 해야 할 반성, 그리고 던져진 과제

    희망퇴직자의 두 번째 죽음을 접하면서 사람들은 쌍용차동차 해고자들의 죽음의 행렬의 반복이라는 불길한 예감을 던진다.

    희망퇴직이라는 이름으로 2500여명의 동료들을 떠나보내고 남은 우리들은 우리 앞에 닥친 어려움에 몰두하느라 떠나간 2500명의 동료들의 고통에 눈을 돌리지 못했다. 특히 군산의 1,000여명에 달하는 희망퇴직자들에게는 특별한 관심이 절실하다. 남아 있는 우리 모두가 희망 퇴직한 동료들의 손을 잡아주지 못하면서 이들을 극심한 외로움과 불안감의 상태에 빠뜨려 왔던 것을 반성해야 한다.

    한국지엠 지부 군산지회도 희망퇴직자와의 소통과 연대를 강화하겠다고 한다. 우리 모두 희망퇴직한 동료들의 손을 잡아주고, 함께 따뜻한 만남과 관계를 만들어 가야 한다. 극심한 공황상태에 빠져 있을 희망퇴직자들을 위해서 한국지엠 노사는 희망퇴직자를 대상으로 한 심리치료, 재취업 알선, 사회적응을 위한 공동의 프로그램을 즉각 가동시켜야 한다. 그리고 회사는 어떠한 경우든 군산공장의 조합원들을 대상으로 정리해고 협박을 해서는 안된다. 정리해고의 협박으로 희망퇴직을 늘리고자 했던 시도가 당사자들에게는 죽음을 생각할 정도의 상처로 다가온다는 것을 이번 기회에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그리고 지엠은 5000명의 구조조정의 필요성, 다시 6000명의 구조조정의 필요성을 운운하면서 추가적인 인원구조조정에 대한 지속적인 협박을 하고 있다. 더 이상의 동료들이 공장 밖으로 쫓겨나지 않도록 우리는 한국지엠의 미래와 고용을 지키는 싸움을 결연하게 해나가야 할 것이다. 또한 ‘그 많은 돈을 받고서 왜 죽었나? 이해할 수 없다’는 식의 ‘잔인한 댓글’을 보면서 우리 정규직 노동자들은 화를 내기에 앞서 반성해야 한다. 한국사회의 수많은 가난한 노동자들의 고통에 무관심하고 연대하지 못한 결과의 하나라고 본다.

    하지만 설사 그렇다고 할지라도 22년간 묵묵히 자동차를 만들어 온 그의 삶은 정직한 삶이었다. 죽음을 앞에 놓고 저런 ‘잔인한 댓글’의 대우를 받을 만한 삶을 살지는 않았다. 고인의 죽음 앞의 ‘잔인한 댓글’의 폭력은 중단되어야 한다.

    필자소개
    한국지엠 부평공장 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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