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 대통령 개헌안 발의
    누구, 무엇을 위한 개헌?
    총리 추천제 반대하며 권력 분산?
        2018년 03월 27일 12:50 오전

    Print Friendly

    문재인 대통령이 26일 국회에 개헌안을 발의했다. 박정희·전두환 전 대통령 이후로 대통령 개헌안 발의는 역대 세 번째다.

    이에 앞서 아랍에미리트(UAE)를 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를 통과한 개헌안의 국회 송부와 공고를 전자결재로 재가했다.

    문 대통령은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이 대독한 입장문을 통해 “이번 지방선거 때 동시투표로 개헌을 하겠다고 한 국민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헌법이 대통령에게 부여한 개헌발의권을 행사한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국회의 반대에도 개헌안을 발의하는 이유에 대해 “개헌은 헌법파괴와 국정농단에 맞서 나라다운 나라를 외쳤던 촛불광장의 민심을 헌법적으로 구현하는 일”이라며 “그러나 1년이 넘도록 국회의 개헌 발의는 아무런 진척이 없었다. 지금 대통령이 개헌을 발의하지 않으면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기 어렵게 되었다”고 밝혔다.

    이어 “민생과 외교, 안보 등 풀어가야 할 국정현안이 산적해 있는데, 계속 개헌을 붙들고 있을 수는 없다”며 “모든 것을 합의할 수 없다면, 합의할 수 있는 것만이라도 헌법을 개정해 국민과의 약속을 지켜야 한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대통령을 위한 개헌이 아니라 국민을 위한 개헌이기 때문”이라며 “개헌에 의해 저에게 돌아오는 이익은 아무 것도 없으며, 오히려 대통령의 권한을 국민과 지방과 국회에 내어놓을 뿐”이라고도 했다.

    문 대통령의 이날 대통령 개헌안 발의는 군사정권 이후 처음이다.

    최초로 개헌안 발의권을 행사한 대통령은 박정희 전 대통령으로, 1972년 전국에 비상계엄을 선포한 후 대통령 직선제 폐지, 대통령 연임 제한 철폐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유신헌법’을 발의해 통과시켰다. 두 번째로 개헌안을 발의한 전두환 전 대통령은 1980년 9월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대통령으로 선출된 후, 대통령 간선제·7년 단임제로 하는 헌법개정을 진행해 10월에 공포했다.

    대통령의 개헌이 국회 문턱을 넘을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은 거의 없다. 여권 내부에서도 대통령 개헌안 발의로 자칫 판 자체가 깨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이 때문에 개헌에 호의적인 민주평화당과 정의당까지도 대통령 개헌 발의에 반대한 바 있다.

    문 대통령은 “촛불 정신을 헌법적으로 구현하는 일”이라며 개헌안 발의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국회 통과 가능성이 전혀 없는데다, 적폐청산을 뒷받침할 법안 처리 과정에서 보수야당이 대통령 개헌안 발의를 이유로 발목을 잡을 가능성도 있어 개헌안 발의의 진정성까지 의심받고 있다. 문 대통령이 개헌 의지가 없으며 지방선거를 앞두고 개헌을 정략적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청와대와 여당은 개헌 내용과 시기에 있어서도 한 치의 물러섬도 없다. 개헌에 소극적인 자유한국당과 청와대·여당 사이의 이견을 좁힐 타협안으로 제시된 국회 총리 추천제에 대해서도 청와대·여당은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국회 총리 추천제는 제왕적 대통령제 폐해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이자 타협점으로 정의당과 민주평화당이 제안했고, 최근 바른미래당도 이에 동의하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은 개헌안 발표하는 브리핑에서 국회의 총리 추천제와 선출제를 싸잡아 “의원내각제를 대통령제로 포장한 것에 불과하다”고 밝혔고, 여당도 같은 주장을 펼치고 있다.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수석대변인은 26일 오전 YTN 라디오 ‘출발 새아침’과 인터뷰에서 “국무총리를 선출하든, 국회에서 추천하든, 다 의결의 형태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용어상의 표현에 불과하고 결국 대통령제에서 의원내각제로의 변형에 가깝다”고 말했다.

    이번 개헌 논의는 대통령의 권한을 분산해 제왕적 대통령제 폐해를 극복해야 한다는 데에서 시작됐다. 개헌의 핵심 목표이기도 하다. 그러나 자유한국당이 주장하는 ‘총리 선출제’가 아니라 정의당 등이 제안하는 ‘총리 추천제’마저도 수용하지 못하겠다는 것은 사실상 대통령 권한 분산에 반대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여권 중진 사이에서 “청와대가 국회 총리 추천 정도는 받아야 하지 않겠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양대 정당이 독점한 국회의 구조를 바꾸고 제왕적 대통령제 폐해 극복을 위해 야당에 대통령의 권한을 분산해야 한다는 주장은 과거 민주당에서도 나왔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지난 2005년 지역구도 극복을 위해 선거구제 개편을 받아들인다면 한나라당(현 자유한국당)이 주도하는 대연정을 하자고 공식 제안한 바 있다. 대통령 권력을 내각제 수준으로 야당에 이양하되, 대신 망국적인 지역구도 타파를 위해 소선거구제를 중대선거구제로 바꿔야한다는 것이 제안의 핵심이었다. 이보다 앞서 2004년 대선을 앞두고, 제왕적 대통령제 폐해를 시정하는 것을 목표로 민주당은 국민통합21과 ‘분권형 대통령제’를 근간으로 하는 개헌을 추진하기로 합의한 바도 있다.

    대통령의 권한을 국회와 나누는 것이 ‘제왕적 대통령제 폐해 극복’과 ‘지역주의 구도 타파’를 위한 것이라던 민주당이 이제 와선 ‘의원내각제’의 변형이나 다름없다며 반대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노 전 대통령의 제안을 거부했던 당시 한나라당은 지금에 와선 분권형 대통령제를 주장하고 있다.

    여야는 문 대통령의 개헌안 발의에 따라 내일인 27일부터 개헌 논의에 착수하기로 했다.

    더불어민주당 우원식·자유한국당 김성태·바른미래당 김동철 원내대표는 이날 오후 정세균 국회의장 주재로 국회에서 회동을 갖고 여야 원내대표 협상을 시작하기로 합의했다. 여야 협상 의제는 권력구조 개편, 선거구제 개편, 권력기관 개혁, 개헌 투표일 등이다.

    민주평화당과 정의당의 참석 여부와 관련해선 공동교섭단체가 구성되면 참여할 것으로 보인다. 필요할 경우 헌정특위 간사까지 포함해 ‘2+2+2 회담’도 진행하기로 했다.

    어렵게 국회의 논의 테이블이 마련되긴 했지만, 대통령 개헌 발의에 대한 야당들의 반발은 상당하다.

    자유한국당은 “졸속으로 만들어진 개헌안”, “독재정권에서나 볼 수 있었던 희대의 대통령 개헌안”이라고 규정했다.

    전희경 대변인은 이날 논평을 내고 “정권을 잡기 전 그토록 주창하던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은 어디에 없고, 오히려 대통령제를 강화하는 내용으로 점철되어 있다”고 이같이 비판했다.

    전 대변인은 “모든 야당이 국회에서 머리를 맞대고 국민 중심의 개헌안을 만들기 위해 노력 중인 상황에서 국회에서 통과되지도 못할 개헌안을 제시하며 대한민국을 개헌과 호헌으로 편 가르기 하려는 것이 지방선거만을 목표로 하여 개헌 쇼를 하겠다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냐”며 “자유한국당은 국민을 속이고 우롱하며 더욱 더 불행한 역사를 쓰겠다는 문재인 정권의 오만한 좌파 개헌안에 맞서 국민과 함께 모든 것을 걸고 투쟁해 나갈 것”이라고 주장했다.

    권성주 바른미래당 대변인 또한 논평에서 청와대에서 마련한 개헌안의 국무회의 심의가 50여분 만에 끝난 점을 언급하며 “청와대가 자행한 개헌쇼에 더불어민주당은 거수기로 전락하더니 국무총리와 장관으로 구성된 국무회의는 고개만 끄덕이는 마네킹이 됐다”며 “오늘 국무회의 모습이야 말로 제왕적 대통령제의 표상이 아닐 수 없다”고 지적했다.

    권 대변인은 “이낙연 국무총리를 비롯한 각 부처 장관 국무위원들은 헌법에서 규정한 국무회의의 의무를 저버리고 스스로 청와대의 하부조직임을 자처했다”며 “이낙연 총리를 비롯한 각 부처 장관들은 헌법에서 규정한 국무회의를 부정한 책임을 지고 스스로 물러나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개헌과 선거제도 개편에 강력한 의지를 갖고 있는 민주평화당과 정의당의 경우, 대통령 개헌 발의로 인한 개헌 좌초를 우려하며 국회의 조속한 합의를 촉구하고 있다.

    최경환 민주평화당 대변인은 이날 국회 브리핑에서 “개헌안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할 상황이 자명한데도 대통령이 개헌안을 발의한 것은 심히 유감”이라며 “개헌에 대한 청와대 진정성을 심히 의심케 한다”고 밝혔다.

    특히 최 대변인은 “개헌의 내용에 대해서는 전문, 기본권, 지방분권 분야에서는 대체적으로 공감하지만 개헌을 해야 할 핵심 이유였던 제왕적 대통령제 극복, 즉 대통령 권한 분산문제가 빠졌다”면서 “대통령 권한 분산 개헌은 촛불민심이며 권한 분산 없는 4년 연임제 개헌은 시대정신에 어긋나는 개헌”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문재인 대통령은 입장문에서 ‘대통령 권한을 국민과 지방과 국회에 내어놓겠다’고 했지만, 제왕적 대통령제가 그대로 유지되는 한 대통령 권한은 아무런 변화가 없다는 것을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최 대변인은 “이제 국회가 개헌안을 합의해야 한다”며 “민주당과 자유한국당도 국무총리 추천제와 선거제도 개편을 매개로 한발씩 양보해서 반드시 국회의 개헌안이 마련되도록 해야 한다. 청와대도 제왕적 대통령제 극복을 위한 국무총리 추천제를 적극 수용할 수 있음을 공개 천명할 것을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추혜선 정의당 대변인은 “오늘 대통령의 개헌안이 발의될 것인 만큼 공은 국회로 넘어왔다”며 “무엇보다 대통령의 개헌 발의가 국회의 임무 방기에서 비롯되었기에 국회는 조속히 책임 있게 개헌 논의에 착수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추 대변인은 “대통령의 개헌안이 국민들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얻고 있는 현 상황을 엄중하게 인식하고 대통령 개헌안보다 더 나은 안을 도출해 국민들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필자소개
    유하라
    레디앙 취재기자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