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의 재발견' 이끈 근본적 실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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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04월 10일 11:3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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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테비데오의 참여민주주의

   
 
▲ 몬테비데오 시장을 지낸 우루과이의 타바로 바스케스 대통령(사진=연합뉴스)
   

이 즈음에 우루과이에서도 수도 몬테비데오에서 확대전선(FA)의 타바레 바스케스가 시장에 당선되어 포괄적인 참여와 분권화를 추진했다. FA는 다양한 좌파 정치세력이 모인 정치 연합이자 사회운동 조직으로서의 정체성을 갖는다.

1989년부터 5년간 몬테비데오 시장을 역임하면서 바스케스는 중앙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한 저항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중앙정부와 몬테비데오 시정부 사이의 갈등으로 인해 급기야는 정부의 교부금 지급 중단 사태까지 벌어졌지만, 이 과정에서 바스케스는 전국적 명성을 획득했다.

‘이상주의적 실용주의(visionary pragmatism)’로 요약되는 몬테비데오 FA 행정부의 기본 노선은 분권화와 사회적 투자의 확대였다. 분권화는 단순히 행정기구의 세분화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었다. 브라질 노동자당의 참여예산제와 마찬가지로 분권화는 기존 관료기구의 권한을 제한하고 대중 참여를 촉진하기 위한 것이었다. 다양한 사회적 투자 계획은 항상 노동조합·사회단체·지역주민의 참여 아래 기획되고 집행되었다.

바스케스 행정부는 기존의 지자체 단위보다 더 세분화된 지역사회평의회를 건설하여, 참여예산제의 주민총회처럼 주민들의 요구를 취합하고 이를 지역위원회가 검토하여 입안토록 했다. 지역위원회는 각 정당에서 지명한 5인의 위원으로 구성되는데, 3인은 시정부의 집권당에서, 2인은 야당에서 지명하게 했다.

바스케스는 분권화와 시민참여 시스템을 통해 다양한 정책들을 펼쳤다. 대형 마트를 규제하고 재래시장과 노점상을 보호했으며, 주택협동조합에 토지를 분배하여 서민주택을 다수 건설했다. 상수도를 설치하고 공원을 늘리는 등 도시 환경 개선에 나섰고, 보육·의료 등 복지시설을 확충했다.

70% 이상의 몬테비데오 시민이 확대전선 시정부 덕분에 몬테비데오 시가 개선되었다고 평가했다. 시정부는 5년간의 참여민주주의 실험에 대한 평가 역시도 노동조합과 사회단체들의 참여 아래 추진했다. ‘몬테비데오 포럼’이라는 이름 아래 대회를 개최하여 이제까지의 분권화 실적을 평가하고 향후 5년간의 계획을 수립했다.

중앙정부와의 마찰에도 불구하고 수도의 성공 사례는 전국적인 관심과 지지를 이끌어냈다. 그 결과, 1996년 12월에 국민투표를 통해 몬테비데오의 지방 분권 모델을 전국으로 확산하는 헌법 개정이 이뤄졌다.

난관들

라틴아메리카의 좌파 지역정치의 실험은 일부 성공 사례를 낳기까지 무수한 난관과 많은 좌절을 겪었다. 무엇보다 의사결정을 개방하고 민주적 형태의 대중권력을 고무하려는 시도는 엘리트들의 공격을 받았다.

페루의 통합좌파(IU)와 베네주엘라의 근본적 대의(CR)는 재선에 실패하면서 참여주의적 기획을 더 이상 지속할 수 없었다. 민주혁명당(PRD)도 멕시코시티에서 첫 임기 동안은 큰 어려움을 겪었다. 경제적 사회적 효과를 가시적으로 보여주지 않고서는 가용 재원 확보에 필요한 증세나 동원에 주민과 지역 조직들은 호응하지 않았다. 우루과이에서는 참여적 민주주의가 ‘위헌’으로 간주되었다.

좌파정당 내부의 노선논쟁이나 혼란도 쉽지 않은 문제였다. 지역 사회주의 실험이 갖는 의미를 두고, 말하자면 이를 혁명을 예비하는 이중 권력의 한 형태로 이해할 것인가 아니면 지역 수준의 민주주의를 공고화하거나 대안적 성격의 정치를 형성하는 것으로 볼 것인가 하는 논쟁이다. 혹자는 이를 고전적인 레닌주의 전략과 라틴 아메리카의 그람시주의의 좌파적 적용 사이의 대립으로 언급하기도 한다.

십 수년 간의 실험 속에 고전적 좌익 노선은 패퇴한 것으로 보인다. 1985년 처음으로 PT 출신으로 포르탈레자의 시장이 된 폰타넬레는 민중평의회를 구성하고 이를 ‘혁명의 맹아’로 키우려 했지만 대중 동원과 행정적 호응을 얻지 못하고, 결국 노동자당(PT)이 폰타넬레를 축출하기에 이르렀다.

한편 2004년의 지방선거는 PT에게 큰 타격을 입혔을뿐 아니라, 좌파의 지역정치가 가장 강력했던 곳에서조차 안온한 성장을 보장할 수 없음을 보여주었다. PT가 장악하는 자치체는 29개에서 20개로 줄었고, PT의 영향력 하에 있는 유권자 수도 1천9백70만명에서 1천만 명으로 감소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사웅파울루와 포르투 알레그레 등 자원이 풍부한 주요 도시들을 잃었다는 것이다. 사웅파울루시에서는 룰라의 2002년 대선 맞수였던 PSDB의 주세 세하에게 패배했고, 포르투 알레그레에서는 민중사회당(PPS)의 주세 포가까에게 패배했다.

무엇보다 큰 이유는 전국적인 ‘반-룰라’ 정서와 PT에 대한 실망감이었지만, PT의 성과를 그대로 지속하면서도 참신한 인물로 교체할 것으로 호소한 반대당들의 선거 전술이 먹혀들었던 것이다. 포가까는 참여예산제를 비롯한 PT의 주요 정책을 지속하겠다고 약속했다. 세계사회포럼(WSF) 개최를 위한 편의 제공까지 다짐했다.

시사점

라틴아메리카 좌파의 지역정치 실험이 갖는 의미는 앞으로 열려진 문제다. 다만 고전적 레닌주의 모델과 참여적 모델을 혁명 대 개량 식으로 대립시키는 것은 비생산적이다. 이들 실험이 갖는 ‘민주주의 자체의 급진화’와 ‘행정의 우선순위 뒤집기’ 라는 공통적 함의는 충분히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이러한 사례들은 정치를 재발견하고 변혁의 경로와 양태도 다시 생각하게끔 만든다. 최근 이탈리아나 프랑스 같은 서구의 급진적 진보정당들이 제3세계의 진보적 지역정치 경험을 자신들의 상황에 맞게 변용하려는 것은 이러한 측면에 대한 깊은 인상 때문이다.

   
 
▲멕시코시티 시장을 지낸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는 오는 7월 멕시코 대선에서 당선이 유력하다.(사진=민주혁명당 선거 웹사이트)    
 

또 하나, 이들 지역적 실험들이 국가적 및 국제적 변혁이라는 좌파의 보다 넓은 목표와 갖는 연관성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공공서비스의 사회적 효과를 증진하고 부패를 줄이고 자원을 빈곤층에게 우선 재분배하는 좌파 지방정부의 긍정적 경험들이 좌파가 ‘좋은 통치’를 할 수 있는 능력에 대한 신뢰를 주었음은 틀림없다. 이는 브라질이나 우루과이 등에서 보이듯 좌파에게 선거 상의 성공을 위해서도 매우 결정적임이 증명되었다. 룰라에 이어 바스케스가 재작년에 우루과이의 첫 좌파 대통령으로 당선될 수 있었던 데에는 몬테비데오 시장 시절의 성과가 커다란 역할을 했다. PRD의 멕시코시티 시장 로페즈 오브라도르도 2006년 대선에서 유력한 후보로 점쳐지고 있다.

베네주엘라의 CR은 비록 1997년에 분열되어 정치 지도상에서 사라졌지만, 카라카스에서 CR이 펼쳤던 참여민주주의의 언술과 분권화된 민중참여라는 정책은 우고 차베스의 노선에 영향을 주었고 그의 정책으로 되살아났다.

각국에서 전진과 후퇴를 거듭하고 있음에도, 라틴아메리카 지역정치의 실험이 좌파 정치의 교과서에 나오지 않는, 새로운 정치학 교재가 될만한 이유는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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