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결한 몸을 점령하려는 지긋지긋한 판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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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04월 10일 09:34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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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판타지의 초절정에 있는 것이 ‘어머니’와 ‘섹시녀’ 그리고 ‘소녀’이다. ‘섹시녀’가 남성의 성적 판타지를 뒤집어쓴 채 ‘뿅’간 표정의 얼굴로 남성을 기다리고 있다면, 어머니와 소녀는 그런 세계에 무지한 채 고결한 남성의 또다른 이상(理想)으로 자리한다. ‘소녀’를 규정하는 핵심적인 정체성은 무성적(無性的)이며, 탈성화(脫性化)되어 있다는 것이다.

   
 

어릴 적 버스를 탈 때마다 보았던 그림 중의 하나가 <소녀의 기도>이다. 앳띤 소녀가 하늘을 쳐다보며 기도하는 그림인데, 이 그림에서 중요한 것은 소녀를 둘러싼 성스러운 분위기이다. "오늘도 무사히"라는 메시지를 전달해주는 이 분위기는 실상 누구도 범접할 수 없을 것 같은 깨끗하고 순결한 소녀의 아우라와 구분되지 않는다. 예전부터 ‘소녀’들은 깨끗하다는 사실, 범접할 수 없을 것 같은 순결한 이미지로 상상되었다. 언젠가, 사춘기 소녀들이 CF에 나와서 "깨끗해요"를 외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CF속 소녀들은 하얗고 말간 얼굴을 내밀면서 마치 잡티없는 얼굴을 선전하고 있는 듯 보이지만, 사실은 천진난만하게 깔깔대는 그런 ‘아이’다움 혹은 탈성화된 기호를 팔고 있는 것이다. 아무것도 모른다는 얼굴로, 그렇게 섹슈얼한 코드를 빼고 남는 낭만적 사랑과 그 사랑이 낳은 마법의 울타리에 갇혀 얼굴만 빨개지는 소녀. 이같은 소녀의 전형적 이미지를 재판하고 있는 것이다.

월경을 시작하며 성의 세계에 눈떠가는 소녀에게 몸에 대한 관심 대신 고결하고 순결한 세계를 설파한 후, 소녀를 ‘처녀성의 신화’에 가두는 것. 이것은 여성의 몸에 대한 가부장제의 오래된 기획이다. 소녀는 사춘기 기간동안 잠자는 숲속의 공주처럼 육체적인 죽음의 상태를 버텨야 한다. 성년이 되어 남자의 키스를 받기 전까지 깨끗한 ‘처녀’로 보존되어야 한다.

소녀의 전형적인 이미지가 흐리마리해지고 있다는 요즘에도 이같은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다. 사춘기 소년들의 성적 판타지를 그린 <몽정기>가 소년들의 들끓는 욕정을 코믹하게 그리면서 소년들의 욕망을 실체화하고 있다면, <여선생여제자>에서는 소녀의 욕망 한가운데 ‘여선생’(어머니)이 있다고 얘기하며 소녀들의 코르셋을 다시한번 조인다.

국민의 여동생으로 불려지는 문근영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발랄 깜찍함의 전형적 캐릭터인 그녀는 요즘 나오는 CF에서 여성앵커를 흉내내며 한껏 ‘까분’다. 그녀가 귀여울 수 있는 것은 그렇게 여성 앵커를 흉내내며 천진난만하게 ‘까불’ 수 있기 때문이다.

어른들의 옷을 빌려 입고서 그렇게 귀여울 수 있는 건 아직까지 순수한 아이의 이미지를 차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때로 섹시한 옷차림을 할 경우에도 어딘가 어색해 보여야 하며, 여전히 ‘애티’가 가시지 않은 볼살을 트레이드 마크처럼 드러내야 한다. 발랄한 소녀들이 사랑받기 위해 끝까지 놓지 말아야 하는 덕목은 ‘모르는 척’ 수줍어하는 ‘깨끗해요’의 이미지이다.

그러나 분명한 건 ‘소녀’란 여아가 여자로 성장하면서 몸의 변화를 경험하는 시기라는 것이다. 가슴이 생기고 월경을 시작하며 자신의 섹슈얼리티에 대해 감지할 수 있는 기간, 다시말해 어느 시기보다 자기 몸에 일어나는 급격한 변화를 체감하는 시기이다. 자기 몸에 일어나는 변화를 외면하거나 혹은 억압하면서 ‘깨끗해요’만을 외치게 하기 보다 몸의 변화에 대해 오히려 직시하게 해야 한다.

그래서 자기 정체성을 능동적으로 탐색하는 시기에 몸의 경험을 주체적으로 구성할 수 있게 도와주어야 한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여성들의 몸은 합법적인 울타리 안에서 결혼을 통해 교환되거나 아니면 불법적인 ‘교제’의 형태를 통해 교환될 것이다. 합법이든 불법이든 소녀들은 자기 몸에 일어난 경험 속에서 소외된다. 자신의 몸을 재물로 교환하는 이 거래에서 소녀들의 선택은 강요된다.

‘소녀’의 이상은 ‘처녀성의 신화’를 통해 남성의 정체성을 안전하게 유지하려는 판타지이다. 성에 눈떠가는 여아에게 육체적인 죽음 상태를 명령한 뒤, ‘깨끗한’ 몸을 독점하려는 기획이기도 하다. 합법이든 불법이든, 깨끗하고 순결한 몸을 점령하려는 이 판타지는 지긋지긋하게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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