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정권의 골프정책과 소금 그리고 수영강사
    By
        2006년 05월 01일 03:55 오후

    Print Friendly, PDF & Email

    아마 골프라는 특별한 스포츠가 아니었다면 내가 수영에 대해서 지금처럼 관심을 가질 일은 별로 없었을지도 모른다. 노무현 정부가 제대로 키우지 못해서 안달이 난 것이 몇 가지가 있는데, 그 중에서도 으뜸은 골프라고 할 것이다.

    노무현 정부의 골프정책과 소금의 깊은 관계

       
     
    ▲ 2004년 3월 환경운동연합과 여야 국회의원 30명이 ‘무분별한 골프장 증설에 반대하는 노골프 선언’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조한혜진
     

    가장 최근의 흐름만으로 본다면 참여정부에서의 골프 정책은 소금과 깊은 관련이 있다. 우스워 보이지만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해안 생태계를 지켜주고 있던 것이 환경영향평가나 혹은 국립공원제도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고, 실제로는 천일염이 지켜주고 있다.

    새만금 인근의 옥구 염전을 비롯해서 서해안과 남해안의 많은 소금 염전이 갯벌과 하구생태계들을 지키고 있었고, 나름대로는 한국적 특색을 가진 염생 생태계를 형성하고 있었다. 혹시 인천공항에 가면서 갯벌 위에 빨갛게 핀 꽃 무더기를 보았다면 그게 바로 우리나라 염생 생태계의 대표적 우점종인 칠면초다. 잠시 후에는 이곳에서 사라지게 될 꽃이다.

    우리나라 해안생태계를 지켜주던 천일염은 중국제 소금이 수입되면서 가격 경쟁에서 밀렸다. 따라서 천일염장들이 망하게 되었고, 이걸 언론에서는 ‘폐염전’이라고 표현한다. 그곳을 어찌 해야 좋을까. 재벌의 지주회사 격인 모 회사 간부들이 ‘무식한 386들’에게 술자리에서 몇 차례 건의했다. “그곳은 폐염전보다 골프장이 좋을 것 같다”고.

    폐염전보다는 골프장이 좋지 않겠어요?

    386들의 화답. “지킬 곳은 지키고, 개발할 곳은 개발하라.” 이들의 사이비 개발논리가 작동하면서 전국에 골프장 붐이 일어났다. 정책이 뒷받침되면서.

    슬픈 일이지만 무식한 청와대의 386들과 재경부가 딱 서로의 코드가 통했던 첫 번째 사업이 바로 골프장 사업이었다. 그 후에는 케인즈 우파 정책인 ‘한국식 뉴딜’에서 기업도시를 거쳐 농지법 개정에 이르기까지 그렇게 죽이 잘 맞아 돌아갈 수가 없었다.

    슬픈 일이기는 하지만, 운동권에서 관변으로 나가 출세한 사람들 만나면 “적들의 심장을 치기 위해서는 적을 알아야 한다”며 골프를 잘 치는 것이 개혁의 유력한 수단인 것처럼 말하던 때가 있었다. 할 말이 없었다. 어쩌면 386들의 배신은 그들의 ‘머리 올리기’와 함께 준비되어 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여담이지만 그렇게 골프장으로 몰려간 운동권 중에서 다시 지역 운동이나 현장 운동으로 돌아온 사람은 아직 못 봤고, 구름에 달 떠나가는 듯 세계평화니 특수인권이니 잘 알아듣기 어려운 말만 하더니 나중에는 한미 FTA가 우리나라 최후의 개혁이라는 요상한 지경에 이르게 된 셈이다.

    개혁 위해 골프 배우자?

    그들의 배신은 이 정도에서 끝이 난 것인가? 유럽의 경우를 생각하면 아직 조금 더 남았다. ‘제 3의 길’ 이론에 따라서 영국에서 했던 것처럼, 남은 집권 기간 안에 더 극단적이고 전격적인 신자유주의 도입으로 한층 업그레이드 된 새로운 배신을 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어쨌든 이렇게 386들이 골프장으로 떠나버리던 시절에 ‘노 골프 선언’을 국회의원들에게 좀 시키려고 하니까 보통 일이 아니었다. 아이러니한 일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국회 골프장 토론회에서 한나라당을 대표해서 골프 안 치겠다고 선언하러 나온 사람이 이재오 의원이었다.

    “이재오, 변했다 변했다 하지만, 아직 골프는 안 칩니다.”
    내 바로 옆 자리에서 앉아, 북한산에 올라가면 파주까지 시커먼 안개가 가득 차 있다고 골프장과는 별 관련이 없어 보이는 말을 하던 이재오 의원이었지만, 솔직히 그 순간만큼은 이재오 의원이, 한때 치를 떨었던 오래된 기억들에도 불구하고 고마웠다.

    바로 그 순간에 한 포털사이트에서는 온라인 골프게임을 광고하는데 사운을 걸듯이 공격적인 경영을 하고 있었는데, 진짜 바로 그 날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젊은 386 의원들이 온라인 골프 오락을 하던 것과 묘하게 대비되던 순간이다.

    대통령-총리-경제부총리가 골프에 푹 빠져있는데 어떻게 막나

    우리나라의 골프장 건설 반대 싸움은 참여정부 이후에 거의 전패를 기록하는 중인데, 지리산에서 약간 공사재개를 뒤로 미룬 적 한 번이 있고, 초등학교 담벼락에 붙어있는 이천의 어느 초등학교에서는, 초등학생이 노무현 대통령에게 직접 편지를 보내서 유명해지기도 했지만, 그것도 잠깐이고 이해찬 총리가 지휘하던 총리실이 개입해서 결국 골프장이 들어서게 되었다.

    전체적으로 본다면 지리산 능선 정도가 약간 버틸 수 있고, 해안선에 들어서는 건 실질적으로 막을 방법이 없다. 대통령에서 총리 그리고 경제 부총리와 하다못해 교육부 장관에서 지자체의 말단 공무원들까지 자기 스포츠라고 푹 빠져있는 골프붐을 무슨 수로 막을 수 있겠는가?

    그 와중에 최소한 한겨레 정도는 골프 붐에서 다른 입장을 보여야 하지 않겠느냐고 이런저런 경로를 통해서 숫하게 간접적으로 건의를 해보기도 했는데, 오히려 아주 유명하던 어느 여성 개그맨에게 골프를 배우게 하는 걸 특집으로 기획하는 한겨레를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마음에 깊은 상처를 받기도 했다.

    내 주위의 한겨레 창립주주들이 그 때의 골프 사건과 제 2 창간 때의 황우석 띄우기 사태로 한겨레를 결국 끊었는데, 지켜보는 입장에서는 맘 아픈 순간들이었다.

    창간 주주들이 한겨레 끊은 두 가지 사유, 골프와 황우석

    하여간 그렇게 몰리다보니까 다른 스포츠의 대안을 찾고 사회체육에 대해서 좀 새로운 시각을 가져야 한다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는데, 축구는 이미 쇼비니즘 극우파 코드로 그렇게 나서서 얘기하지 않더라도 이미 열심히 극우파들이 밀어주고 있기 때문에 대안이 되기는 어려웠다. 야구의 지역리그 같은 걸 통해서 그야말로 건전한 사회체육에 대해서 고민해보자는 의견이 나오기도 했는데, 이미 공터가 사라진 대한민국에서 야구가 사회체육이 되기가 어려웠다.

    이 빈 공간을 요가와 ‘마사이 워킹’ 같은 것들이 치고 들어왔고, 엘리트 체육과 사회체육이라는 80년대식 체육사회학의 담론이 사라진 스포츠 시장에는 극단적인 쇼비니즘 마케팅과 뷰티 마케팅 딱 두 가지만 남았다. 그나마 근근이 버티고 있던 것이 사회체육이라는 관점을 끝까지 밀고 간 유소년 리그였다.

    그래도 토호들이 완전 장악하지 않은 지자체 일부에서 유소년 리그를 사회체육으로 도입을 하는 편이고, 무슨무슨 축구교실 같은 것들이 문제가 좀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체육이 가지고 있는 사회적 기능을 조금은 수행할 근간이 생긴 셈이다.

    수영이 이 빈 공간에 딱 서 있는 셈이다. 생태적인 시각으로만 본다면 수영은 굉장히 도시형 운동이고, 작지 않은 난방비를 필요로 하는 시설 체육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수영장을 좀 늘려서 많은 사람들이 골프 대신에 운동으로 하면 좋지 않겠냐라는 생각들이 당연히 등장하게 됐는데, 여기에도 만만치 않은 문제들이 버티고 있다.

    국회는 수영장을 좋아하지 않는다

    국회에서는 수영장을 새로 늘리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지난 몇 년 동안의 국감 자료를 검토하면서 알게 되었는데, 골프장이 흑자 시설인데 비하여 수영장은 기본적으로 적자시설이다. 그래서 사회체육 시설로서의 수영장을 줄이고 그 대신에 골프장에서 국민체육 기금으로 걷은 돈을 골프에 환원하라는 방식의 담론이 국회 내에 폭넓게 형성되어 있었다.

    황당한 일이기는 한데, 사실상 담론은 이렇게 형성되어 있고 여기에 국민체육진흥공단에 대한 ‘경영합리화’ 담론이 같이 배치되면서 흐름상으로는 기존의 시설도 민영화하면서 민간에 매각하고, 새로 매각된 시설의 사회체육 비용을 높이면서 남는 돈으로 골프장을 늘리는 정책이 이미 뒤로 돌릴 수 없을 정도로 형성되어 있었다.

    “국민들이 골프장을 바래? 아니면 수영장을 바래?”

    이 질문 앞에 딱 서 있는데, 이 흐름을 잠깐이지만 멈추었던 사람은 영화 <말아톤>의 초원이다. 자폐증을 비롯한 지체부자유자들의 교육에 수영이 도움을 준다는 사실이 공감을 받으면서 일부 지자체에서 수영을 장애인 프로그램으로 적극 도입하기 시작했다. 하마터면 전부 문 닫을 뻔했던 수영장들이 통폐업과 민영화 바람 앞에서 잠깐 숨통을 트고 서 있는 셈이다.

    골프장에 다 먹혀버린 수영장

    그야말로 동네에 작은 수영장 하나라도 공공 수영장으로 유지되기 위해서 뭔가 해야 하는 황당한 공화국에 살고 있던 셈이다. 그러나 수영장이 골프장 앞에서 앞으로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 결국 다 먹혀버린 다음에야 이 흐름이 정지될 것이다.

    한참 골프장 싸움의 맨 앞에 서 있을 때 캐디들이 증언이 필요했고, 이 때 비정규직인 캐디들의 슬픔을 조금 알게 되었다. 농약도 농약이지만 제초제가 장기적으로 후유증을 낳을 것이라고 생각 하고 또 두려워하기도 하지만, 이걸 개인적으로 입증하기가 어렵고 그래서 일종의 직업병으로서의 정상적인 산재 처리가 잘 되지 않는다.

    가임여성에 대한 보호 없이 기계적으로 임금이라는 경제 논리만 들이대는 것은 사실 좀 야만적이기는 하다. 아마 골프장의 캐디들이 비정규직이 아니고 조금 더 노동조합 같은 형식으로 조직을 갖추고 있었다면 골프장과 보건 문제가 여러 가지로 사회적인 논의 테이블로 왔을 것이지만, 상황 상 비정규직인 캐디들에게 그러한 행동을 기대하기가 쉽지가 않다.

    수영강사의 직업병이 뭔지 아십니까

    골프장의 대안으로 여러 가지로 고민 중인 수영장에도 유사한 형태의 고민이 있다는 걸 안 때는 얼마 되지 않는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수영강사가 되는 일 특히 올림픽 수영장이나 88수영장 같이 50m 레인을 갖춘 제대로 된 수영장에서 수영을 가르치는 일은 확률로만 따지면 법대를 졸업하고 사법시험을 통과하는 일보다도 어려운 일인 것 같다.

    그만큼 수영선수로 활동하기도 어렵고, 시설에 대한 일종의 사회간접자본으로서의 규모가 작아서 생기는 일이다. 인맥을 통해서 추천되고, 특정 몇 개 대학의 체육학과과 상당히 힘을 쓰는 전근대적 구조가 여기에도 남아있다.

    그런데 따뜻한 실내 수영장에서 수영을 가르치는 강사들에게도 직업병이 있다니?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그들은 저체온증이라는 직업병을 가지고 있다. 수영을 하는 사람은 계속 수영을 하니까 그렇지는 않은데, 물 밖에 있다가 잠깐 물에 들어가서 자세를 잡아주거나 시범을 보여야 하는 수영강사들은 어쩔 수 없이 저체온증을 직업병으로 가지게 된다.

    비정규직 노동자인 수영강사 노조 만들기 어려운 이유들

    그야말로 ‘마이크로’ 권력관계의 일이다. 외국에서의 내 경험으로는 수영 강사는 따뜻하게 옷을 입고 물 밖에서 강습을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인권이나 권리를 내세울 작은 부문의 일들에 대한 논의가 형성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매번 물에 들어와야 하고, 그래서 저체온증과 습관성 감기 같은 게 직업병이 된 셈이다.

    그렇다고 비정규직 수영강사들이 노조를 만들 수 있을까? 우리나라의 강사 시장의 인력수급과 수영장과 강사 사이의 비대칭적 권력관계로는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어렵다고 생각한다.

    해안 생태계를 어떻게 하면 지킬 수 있을까라는 고민에서 시작된 골프장에 대한 작은 고민이 거치고 거쳐서 수영강사들의 저체온증이라는 직업병 문제에까지 온 셈이다. 이것도 좌파들이 고민해야 하는 문제야? 생각하기 나름인데, 이건 인권의 문제이기도 하고, 계약관계의 비대칭성에서 오는 노동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에 그냥 돈만 벌면 된다고 생각하는 우파들과는 좀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다면 풀고 싶은 문제이기도 하다.

    어떻게 하면 문제를 풀 수 있을까? 수영선생님들이 저체온증으로 아프다는 사실을 수영을 배우러 온 사람들이 이해하면 쉽기는 한데, 그런데 관심 있을 매체나 사람들은 우리나라에 별로 없어 보인다. 게다가 어려서부터 수영을 삶으로 알았던 수영강사가 사회문제에 눈을 뜨고 좌파적 각성을 가지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그래서 이 간단한 직업병 문제를 이 사회는 풀 수가 없다.

    사람들이 무섭긴 무섭다

    캐디의 직업병과 수영강사의 직업병의 본질은 마찬가지이고, 사실상 생태계에서 생겨나는 여러 가지 일들도 그 본질은 그렇게 다르지는 않다.

    수영장에 가면 수영을 배우러 온 학생들이 수영 선생이 계속 물에 들어오지 않으면 도대체 언제까지 저렇게 무성의하게 강의를 할 것인지 독사눈을 뜨고 선생을 노려보고 있다. 가임여성인 젊은 여강사들이 저체온증으로 시달리는 것이 현실이다.

    아, 사람들이 무섭기는 너무 무섭다.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