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를 상상하자
        2006년 04월 10일 09:14 오전

    Print Friendly

    지난 25년 동안 홍콩을 중심으로 아시아 지역연구와 사회변화를 위해 활동해온 아레나(ARENA, Asia Regional Exchange for New Alternatives ; 새로운 대안건설을 위한 아시아 교류)가 지난 7일 성공회대와 교류협정식을 갖고 서울 사무소를 열었다.

    아레나는 “부와 권력의 불평등한 분배를 초래하고 아시아 지역에서 살아가는 광범위한 대중의 안전과 삶의 질을 저하시키는 기존의 지배적 개발중심주의를 반대”하며 “그것을 대체할 대안적 개발이론을 마련하고 범아시아적 차원에서의 정치적·경제적·문화적·교육적 전략을 마련하는 것”을 주요 활동목적으로 하고 있다.

    서울 사무소 개소를 맞이해 지난 8일 모히유딘 아마드 아레나 대표와 아그네스 쿠 서울 사무소 소장,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가 한 자리에 모여 지구화 시대의 아시아에 대해 좌담을 나눴다. 진행은 허성우 성공회대 연구교수가 맡았다.

    허성우 : 지금 아시아를 이해하는 게 왜 중요한지에 대해서 얘기하는 것으로 좌담회를 시작하죠.

    모히유딘 : 사실 아시아는 수백년, 수천년 동안 다른 대륙과 상당히 달랐습니다. 간단히 말해 아시아는 매우 부유했습니다. 중국과 아라비아의 무역상들은 아시아와 유럽을 이어주는 고리였죠. 당시 유럽의 봉건영주, 왕, 부유층은 아시아의 금, 보석. 비싼 향신료, 직물 등을 사들였습니다. 유럽은 아시아가 얼마나 풍요로운지를 알게 됐습니다.

    부자 아시아와 가난한 유럽,  무역에 만족한 아시아와 군사적 약탈의 유럽

    그러던 와중에 스페인, 포르투갈, 프랑스 등 해군력에 투자를 했던 유럽 나라들은 바닷길을 정복했습니다. 반면 아시아는 무역에 만족했을 뿐 군대를 갖고 항로를 통제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유럽의 약탈이 시작됐습니다. 아시아는 다른 세력들에 의해 식민지가 됐습니다. 아프리카도 마찬가지였고요.

       
     
    ▲ 모히유딘 아마드 아레나 대표. 1952년생으로 방글라데시에 민주화운동을 했다. 다카에서 NGO 단체인 공동체 발전 도서관(CDL) 대표를 맡고 있다.
     

    불교는 인도에서 창시돼 일본에까지 전해졌지요. 힌두교도 인도에서 창시됐고요. 기독교 역시 이슬람교과 마찬가지로 아시아에 기원을 두고 있습니다. 이러한 영적인 기풍이 아시아의 특성입니다. 아시아인들은 영적이고 이상주의적이고 느긋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유럽은 달랐습니다. 그들은 가난했고 6개월 동안은 추워서 일을 못했습니다. 그들은 생존에 필요한 양만큼 생산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유럽인들은 아시아인들에 비해 이동이 잦았습니다.

    아시아인들은 충분히 생산을 했기 때문에 만족하고 휴식을 가질 수 있었죠. 그래서 아시아인들은 큰 사원, 큰 궁전과 같은 많은 건물을 지었지만 군대를 키우지는 않았습니다.

    유럽은 아시아에 비해 매우 물질주의적이었지요. 약탈이 시작되면서 유럽은 아시아에 대해 온갖 부정적인 이미지를 부여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시아는 가난하고 개발이 덜 됐고 유럽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이죠. 그러면서 아시아 나라들은 수혜국이 되고 유럽 국가들은 일종의 기여국으로 됐습니다.

    더 착취하기 위해 덜 개발됐다고 묘사

    진정한 정의를 위해서는 그들이 보상을 해야 합니다. 원조라는 이름으로 그들이 주고 있는 것은 사실 그들이 약탈해 간 것에 비하면 보잘 것 없는 것입니다.

    더욱이 그들은 더 착취하기 위해 아시아를 가난하고 덜 개발되고 덜 문명화됐다고 묘사합니다. 아시아에 민주주의를 수립하는 것이 서구의 의무라고 보는 것이죠. 그래서 그들은 베트남, 한국에서 충돌했습니다.

    따라서 아시아는 서구의 그와 같은 관점에 반대하고 스스로의 자리를 찾아야 합니다. 아시아는 스스로의 능력과 문화적 풍요로움, 훌륭한 자질에 자신감을 가져야 합니다. 이러한 쇄신이 아시아의 추진력이 될 수 있습니다.

    서양 사람들은 우리에게 평화를 가르칠 생각 말라

    식민지에 반대하는 독립운동이 벌어진 곳에서 이런 문화적 부흥운동이 벌어졌습니다. 한국에서는 일본의 점령에 반대했고, 남아시아에서 영국에 반대했고, 인도차이나에서는 프랑스와 일본에 반대했죠. 이러한 문화적 부흥운동이 매우 중요합니다. 이는 앞으로의 투쟁에서도 계속될 것입니다.

    지금 전지구적으로 평화운동, 반군사운동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아시아에 있는 핵무기로 인해 아시아 민중들이 고통을 받고 있기 때문에 핵무기 없는 세계를 위한 투쟁이 중요합니다. 서구 국가들은 이란과 북한을 비난합니다. 하지만 엄청난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는 이스라엘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하지 않습니다.

    서구인들은 우리에게 평화가 무엇인지를 가르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부처나 공자와 같이 평화를 가르친 성인들이 많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평화가 무엇인지를 알고 있습니다. 평화, 희생, 사랑 등이 아시아의 기본적인 가르침입니다.

    이런 것들이 아시아의 힘입니다. 평화, 사랑, 동료의식, 공동체 생활, 이상주의 등은 바로 아시아의 약점이 아니라 힘인 것입니다.

    우리는 세계화의 긍정적 측면에 주목해야 합니다. 교통과 통신이 발달하면서 문화적 교류가 활발해졌습니다. 이는 아시아의 실체, 아시아의 공통점을 재발견하는 데 긍정적으로 작용을 하고 있습니다.

    2차대전후 50년 아시아는 없었다. 지금은 재건하는 세기

       
     
    ▲ 조희연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 NGO대학원 교수(사회학). 학술단체협의회 공동대표. 성공회대 민주주의와사회운동연구소 소장
     

    조희연 : 2차 대전 이후 40~50년 동안 아시아는 사라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아시아는 없었습니다. 우리는 아시아를 재건하는 새로운 세기를 살고 있습니다. 세계화가 민중들의 생활에 파괴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억압받는 민중들에게 새로운 저항의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는 데 동의합니다. 세계화가 식민지로서의 아시아에서 벗어나 우리에게 아시아를 다시 상상하는 새로운 공간을 제공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모히우딘 : 아시아를 다시 상상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사실 아시아의 실체는 그동안 심각하게 다뤄진 적이 없습니다. 세계화는 사람들을 모으고 저항의 공간을 만드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습니다.

    새로 만들어진 공간을 활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서구 언론은 언제나 고의적으로 아시아를 나쁜 이미지로 묘사합니다. 세계화는 아시아에 대해 서구가 만들어 놓은 허구적인 이미지를 긍정적인 이미지로 바꿀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 있습니다.

    아그네스 : 우리는 다른 형태의 세계화에 대해 이미 알고 있습니다. 40~50년 전 아시아 민중들의 독립투쟁은 국제주의와 결합돼 있었던 것이죠. “전세계 노동자여 단결하라”는 구호도 있었고요. 사실 용어상 국제화나 국제주의는 세계화의 전신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국제주의는 급진적이고 진보적이고 식민지에서 민중을 해방시키는 이념이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반둥회의의 정신이었습니다.

    하지만 세계화는 해방(liberation)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자유(freedom)일 뿐이죠. 둘은 비슷해 보이지는 의미에 있어서 차이가 큽니다. 지금은 일국적 차원에서, 그리고 지구적 차원에서 지배 엘리트로 권력이 집중되고 독점이 심화되는 새로운 세기입니다.

    아시아를 다시 상상하자, 그러나 흑백논리 분리’주의’에서 벗어나야

    아시아를 다시 상상하자는 데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서양과 동양을 나누고 아시아를 유럽, 북미, 라틴아메리카, 아프리카와 분리하는 일종의 흑백논리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 아그네스 쿠 아레나 홍콩사무소 소장. 싱가포르 태생으로 지난 20여년간 활동가이자 사회학자로 아시아 지역 사회운동에 종사해왔다.
     

    우리는 민족해방을 얘기하면서 국제주의도 함께 주장하지만 국경의 벽은 생각보다 단단합니다. 당신은 한국인이고 나는 중국인입니다. 연대는 있지만 국가적 정체성이라는 한계에 갇혀 있는 것이지요.

    하지만 세계화는 이런 국경을 허무는 효과가 있습니다. 국가간 왕래가 자유로워졌기 때문이죠. 사람들의 정체성이 다양해졌습니다. 2개 또는 3개의 국적을 가진 사람들도 있고요. 아시아나 유럽에 대한 단정이 새롭게 재평가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조희연 : 저는 제국주의적 세계화와 제국의 세계화를 다르게 보는데요. 제국의 세계화는 서로 다른 나라를 하나의 세계, 지구적으로 통합된 하나의 세계로 만들고 있습니다. 제국주의적 세계화에서 지배적 저항은 민족해방이었습니다. 하지만 제국의 세계화 시대에서 저항은 국경을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난해는 아시다시피 반둥회의 50주년이었습니다. 반둥 정신은 서구 열강에 맞선 비동맹과 자립의 정신입니다. 지금과 같은 제국의 세계화 시대에 반둥 정신의 부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국가 후원받는 해방 정신은 고갈될 수밖에 없어

    모히우딘 : 반둥회의의 맥락은 바뀌었습니다. 반둥회의의 주창자는 티토, 나세르, 네루 등 민족주의 운동의 지도자였죠. 하지만 지금은 당시 참가국 중 많은 나라가 퇴락했습니다. 예를 들어 인도네시아는 동티모르에 대해 제국주의 침략자가 됐죠.

    국가가 후원하는 반둥정신은 민족해방의 정신을 유지하는 데는 충분합니다. 국가의 후원을 받는 해방의 정신은 사실상 고갈될 수밖에 없습니다.

    조희연 : 말씀하신 대로 반둥회의는 국가가 주도한 회의였고 참가국 중 일부는 퇴보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시민사회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보는데요. 한국에서 오랜 동안 개발독재정권에 의해 억압을 받았던 시민사회는 마침내 독재정권을 무너뜨렸고 그 이후 힘이 커졌습니다.

    하지만 지금 한국의 시민사회는 매우 복잡해져 있습니다. 다양한 세력이 그 안에 있고 시장, 특히 그중 삼성은 비정부기구, 비영리기구에도 막강한 힘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또 이익단체도 많아지고 있습니다. 공적인 이해를 지향하는 시민사회의 목소리를 키워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되는데요.

    아시아 정체성을 찾는 일 위험할 수도

    아그네스 : 좋은 지적입니다. 특히 자본은 최근 들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나 ‘좋은 지배구조’, ‘투명성’과 같은 수사(레토릭)를 갖다 붙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자본의 본국에서만 작용할 뿐입니다. 한국의 자본이 아프리카로 진출하거나 삼성이 아시아의 다른 나라로 진출했을 때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죠. 독일의 유명한 초국적 자본이 베트남에서 어린 여성 노동자들을 어떻게 착취하는지에 대해 독일인들은 전혀 상관하지 않습니다.

    허성우 : 아시아의 정체성이라는 것이 자칫 위험할 수도 있다고 생각되는데요.

    모히우딘 : 아시아의 정체성은 국수주의적이거나 인종주의적인 개념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아시아가 서구보다 우월하다고 주장하려는 게 아니라 서구의 식민주의적, 인종주의적 아시아관에 도전하려는 것입니다.

    저는 아시아의 전통적인 것이 모두 가치있다고 생각지도 않습니다. 남녀관계는 매우 봉건적이죠.

    우리는 서구의 역사나 철학으로부터 배울 것도 있습니다. 프랑스 혁명은 세계 민중 공동의 역사적 유산입니다. 최초의 노동자 국가인 파리 코뮌도 그렇고요. 미국 노동자들의 투쟁의 산물인 세계 여성의 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아그네스 : 지금 네팔, 태국, 필리핀에서 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아레나가 이들 나라의 사회운동을 분석하고 도움을 주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모히유딘 선생이 지적한 대로 민중운동은 한 국가 안에서 한정돼 있는 것이 아니라 세계 민중의 역사적 유산입니다. 예를 들어 한국의 홍콩 WTO 각료회의 투쟁은 이제 세계 민중의 유산이 된 것이죠.

    조희연 : 한국의 사회운동이 매우 전투적이지만 한국이라는 경계에 갇혀 있습니다. 아레나의 서울 사무소 개소가 한국의 사회운동이 국가의 경계를 넘어설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

    아레나는 어떤 단체?

    아레나는 아시아 지역의 비판적 학자들과 사회활동가, 작가, 예술인 등의 상호교류와 연구협력을 조직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1980년 홍콩에서 발족한 국제 NGO이다.

    아레나는 현재 △전쟁·군사주의·평화 △헤게모니·가부장제·여성 △지식·문화·생존권 : 지구화된 경제에서의 환경안보 △거버넌스·민주주의·지역사회 △세계화 속에서의 아시아와 유럽 △아시아 ‘지역 학교’ 프로그램 등의 주제로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홍콩에만 사무소를 두고 있던 아레나는 한국의 사회운동의 경험을 아시아 지역에 전파하고 한국 시민사회의 관심을 아시아 지역 및 지구적 차원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새로운 사무소를 한국에 설치했다. 서울 사무소는 성공회대 내에 위치해있다. 

    (웹사이트 : www.arenaonline.org,  한국어 웹사이트 :  www.arenakorea.org)

    필자소개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