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민한 지도자 독단적 결정보다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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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04월 10일 08:4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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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국민투표를 요구할 때가 되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두 가지 사실이다.

    한미FTA의 경제적 효과가 불투명하고, 직접적이라기보다는 이데올로기적인 신념에 가깝다는 것이 첫 번째 사실이다. 한미FTA를 통해서 안보효과가 높아진다는 주장을 하지만 미국 주도의 국방체계 개편에 대해서 중국을 비롯한 다른 나라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기 때문에 이는 불투명하다.

    서비스업으로 개편을 한다고 하지만 어느 서비스업이 어떻게 경쟁력을 회복할지에 대한 제시가 없기 때문에 이것도 현재로서는 막연한 주장일 뿐이다. 좀 심하게 얘기하자면 건설업이 서비스업종에 속해 있다는 것도 잘 모르는 ‘도상 전문가’가 하는 말에 가깝다.

    논쟁에서 밀린 자들의 ‘외부충격론’의 위험성

    초기 논쟁에서 밀리니까 한미FTA 같은 외부 충격이 없으면 개혁이 안 된다는 말이 있기는 한데, 이거야말로 너무 공부를 못하니까 조기 해외유학을 보내서 사회 적응에 실패한 초등학생으로 만들어버린 부모의 과감한 선택과 다름이 없다.

    또 다른 사실은 노무현 대통령을 정점으로 한 국무위원들은 거의 종교적으로 한미FTA 자체가 무조건 도움이 된다고 믿고 있다는 사실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모든 공무원들이 한미FTA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직접 말한 것으로 보면, 모든 공무원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운데, 최소한 장관급 국무위원들 중에서 한미FTA가 경제적으로 문제가 있을지도 모르고, 혹시라도 제 2의 IMF 같은 경제위기를 불러일으킬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

    반면에 소위 좌파 인사들이 가지고 있는 고민은 대체적으로 두 개의 문장으로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1) 한미FTA는 절대로 안 된다.
    (2) 그렇지만 현실적으로 막을 수 없을 것이다.

    자, 민주주의라는 원칙을 유지한다고 할 때 이 시스템에서 할 수 있는 것은 프랑스의 국민총파업 혹은 국민 불복종과 같은 소위 ‘직접 행동’의 방식 밖에 없을 것인가? 이럴 때 쓰라고 준비해놓은 제도가 보통은 ‘레퍼렌덤’이라고 불리는 국민투표이다.

    이럴 때 쓰라고 준비해놓은 게 국민투표 제도

    EU와 EU 화폐통합 같은 것들이 국민투표에 부쳐졌고, 스위스의 경우는 최근에 극우파들이 이라크 파병에 반대해서 국민투표가 시행된 적이 있다. 정상적인 민주주의 국가의 경우 국가에 중요한 일이지만 손해보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혹은 전체적인 이해가 엇갈리는 다양한 사례들을 국민투표라는 절차를 통해서 해결한다.

    원칙적으로 국민투표는 좌파나 우파나 공평하게 사용하는 방식이고, 가장 최근으로는 우리나라에서 행정수도 이전과 관련되어 한나라당 일각에서 국민투표에 부치자고 주장했던 적이 있다.

    논리적으로는 87년 헌법에 처음 대통령에게 부의권이 부여된 이 국민투표는 국민들이 원하면 대통령이 시행한다는 9차 개정헌법의 정신에 부합한다고 할 수 있는데, 군부독재로부터 직선제를 만들어낸 이 87년 헌법은 국민발의권을 부여하고 있지는 않다.

    이런 정신의 연장선에서 가장 최근에 사회적 의사결정과 관련된 법안을 살펴보면 부안의 방폐장 사건 이후에 제정되어 경주 방폐장 결정을 이끌어낸 ‘주민투표법’의 정신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한미FTA는 경주 방폐장 문제보다 국민적 영향력 커, 주민투표 정신 살려야

    지역의 중요한 사건에 대해서 1/50 이상의 주민발의에 의해서 주민투표를 실시할 수 있는 이 법은 지역사회의 주요한 의사결정에 대해서 주민들이 의사결정을 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 있다. 물론 구체적인 비율과 방법은 조례를 통해서 결정하도록 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법체계를 살펴본다면 논리적으로 한미FTA가 과연 경주의 방폐장보다 국민들에게 큰 문제인가 혹은 그렇지 않은가라는 질문과, 어느 정도의 국민이 요구한다면 대통령이 헌법상 보장된 국민투표를 발의할 수 있을 정도가 될 것이라는 질문이 있을 것이다.

    한국과 미국의 특수한 경제적 · 정치적 조건을 생각해본다면 방폐장 건설보다는 국민 개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이 크다고 할 수 있는데, 지난 대선 때의 유권자 3,500만 명을 기준으로 생각해본다면 1/50은 70만 명, 그리고 1/10은 350만 명이므로, 그 사이 어떤 숫자가 유효한 요구 숫자일 것이다.

    민주주의 절차상 현재 가장 최적의 대응방안은 한미FTA에 대해서 좀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국민투표를 요구하고, 유의미한 숫자를 통해서 대통령의 부의권이 발동되고, 정부는 나름대로 소신껏 협상을 하고, 협상 결과가 국민적 토론을 통해서 국민투표에 상정되는 것이 가장 부드럽게 현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방안 중의 하나일 것 같다.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서도 국민투표 필요하다

    사실상 한미FTA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70만 명 이상의 서명을 받아내고 한미FTA로 저절로 나라가 잘 살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다른 국민들을 설득하고 이해시키는 일도 보통 일은 아닐뿐더러, 현실적으로 투표에 이긴다는 보장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스크린쿼터에서 농업을 거쳐 방송, 그리고 의료, 교육에서 도시 자영업들까지 일일이 결코 작지 않을 영향을 미칠 이런 큰 사건에 대해서 국민적 토론 없이 넘어간다는 것은 한국 민주주의의 발전상 그렇게 좋은 일은 아니다.

    나는 단식을 포함한 직접행동 보다는 국민투표를 요구하고 실제로 국민투표를 관철시키는 방식이 현 상황에서의 한미FTA에 대해서 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이라고 생각한다. 국민보다 많은 정보를 알고 있고 먼저 멀리 판단한다고 생각하는 지도자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많은 ‘무지한’ 국민들의 잘못된 판단이 부딪힐 때 우리가 알고 있는 민주주의는 토론과 토론 뒤의 투표를 통해서 해결하라고 제시하고 있다.

    원래 우리는 그런 시스템 내에서 살고 있는 것이고, 그렇게 나름대로 결정하는 것이 ‘영민한 지도자’의 독단적인 판단보다는 오히려 길게 보면 전체에게 유리하다는 것이 민주주의 정신이라고 알고 있다.

    진짜 중남미형 양극화 구도로 빠지는 것 막아야

    한미FTA는 스크린 쿼터가 축소된 후의 영화인들의 일만도 아니고, 전면 개방으로 붕괴될 농민들만의 일도 아니고, 교육개방으로 파면될 사립학교 선생님들만의 일도 아니고, 대규모 미장체인점의 한국 진출에 의해서 일자리를 잃을 동네 미용가게 주인만의 일도 아니다. 누구에게는 생존권의 문제이고, 누구에게는 조금 불편한 일이고, 또 어떤 사람들에게는 일생일대의 역전의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어쨌든 모두에게 관련된 일이다.

    이 정도의 사안이라면 한 번도 정책사안을 놓고 국민투표를 해본 적이 없는 우리나라이지만 앞으로 1년간 계속될 사회적 갈등을 줄이면서 최적의 판단을 위해서 국민투표를 할 충분할 이유가 있다. 반대하는 사람들이 투표에서 지더라도 최소한 FTA 협상조항에서 조금이라도 더 나은 양보를 미국으로부터 받아낼 수 있지 않겠는가.

    만약 100만명 정도의 국민투표를 요구하는 서명이 불가능하다면 더 이상 한미FTA로 논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시민단체에서 추진한 여러 가지 서명 중에 내 기억으로는 효순이 미선이 사건 때 한미 소파 개정서명만이 100만명이 되었다. 그보다 작은 사건이라면 길게 얘기할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농업이 붕괴하고 도시 자영업자들이 붕괴하게 될 것이고, 온 사회가 신자유주의로 개편되어 한 번도 경험해보지 않은 진짜 중남미형 양극화 구도가 벌어질 이 결정이 국민투표에 상정되지 않을 정도로 작은 사건일 것 같지는 않다.

    혁명도 개혁도 아닌 정상 절차

    국민투표를 매개로 한 토론과 진실규명 그리고 이해당사자의 참가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진짜로 필요한 절차일 것 같다. 이건 혁명도 아니고 개혁도 아니고 정상적인 선진국들이 사회적 문제 해결을 위해서 갖추어놓은 정상적 절차일 뿐이다.

    그 절차가 지금 필요하다. 수 년 후에 자신의 작은 가게가 놓인 땅이 미국 체인점에 강제수용된다고 하여도 그 때 절차를 물어볼 수는 없을 것이다. 일단 결정되면 뒤로는 돌아가지 않은 한미FTA 협상에서 한 뼘의 양보라도 얻어내기 위한 현실적 이유로라도 국민투표가 필요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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