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흐림과 맑음이 교차하다
    [누리야 아빠랑 산에 가자-35] 일상
        2018년 03월 19일 10:24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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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월 16일(일) :

    수능까지 1년 남았다.

    “아빠, 답답해. 3학년 되면 1년이 어떨지 벌써 실감 나. 공부하든 안 하든 3학년은 피곤한 시간이 될 것 같다는 걸 느끼겠어. 체력이 중요한 것도 느끼고. 선생님이 체력의 중요성을 강조했어. 3학년 한 언니는 저녁 먹고 운동장 1바퀴로 시작해 나중엔 10바퀴를 뛰게 되었대. 나는 매일 줄넘기 1,000개를 해야겠어.”

    딸이 도봉산을 향한 전철 안에서 말했다. 딸의 말이 이어졌다.

    “아무래도 중앙대 심리학과 못 갈 것 같아. 대학에서 이름 없는 학교의 1등을 뽑느니 차라리 이름 있는 학교의 중간을 뽑겠다고 했대. 강남이나 외고 애들 위주로 뽑겠다는 거지. 보성 같은 학교는 낄 틈이 없을 거야.”

    나는 단전 깊숙한 곳에서 치밀어 오르는 욕지거리를 참았다. 중대를 인수한 곳은 두산재벌이었다. 노조 탄압의 대명사였던 박용성이 이사장이었다. 대학을 이윤의 하위 도구로 전락시키고 있었다.

    “그런 재수 없는 대학은 합격해도 가지 마라.”

    딸에게 말했다. 성심여고 진학을 말리지 말았어야 했나. 후회의 감정이 일렁였다. 각각 휴대폰을 열고 심리학과를 검색했다. ㄹ대는 상담심리학이 아니었다. 내가 여러 번 ㄹ대를 제안할 때마다 상담심리학이라서 싫다고 한 적이 있었다.

    “봐라, 누리야. 심리학과네.”

    검색 결과를 보여줬다.

    “어, 그러네.”

    딸의 휴대폰도 ㄹ대로 이동했다.

    “중대는 인지학 수업이 있어. ㄹ대는 그게 없는데.”

    최근의 딸은 뇌의 기능과 심리를 연결하는 인지심리학에 관심이 있었다. 범죄 심리에도 관심 있어 했다. 내가 다시 학과목을 검색했다. 관련 과목이 있었다. 딸애가 찾지 못한 것은 조금이라도 이름 있는 대학에 가고 싶은 심리가 작동한 때문이라고 짐작했다.

    “우리나라 대학은 과목이 있어도 훑는 수준이야. 서울대도 세계 순위는 형편없어. 심리학을 제대로 공부하려면 유학을 다녀와. 그러려면 20대는 모두 공부에 바쳐야겠지. 독일은 박사 학위 따는 데 최소 7년이 걸린대. 그 이상의 기간에도 못 딴 채 수료만 하고 돌아오는 사람이 많아.”

    딸은 알고 있다면서 생각해 보겠다고 했다. 나는 생각했다. 딸내미는 미정의 상태야, 앞으로 1년 사이에 어떻게 바뀔지 몰라, 과를 먼저 선택하고 점수에 따라 학교를 고를지, 점수에 따라 학교를 먼저 선택하고 과를 고를지, 그리고 대학에 가서는 어떻게 마음이 바뀔지 모르는 상태야, 좀 더 기다려 보자. 전철에서 아이는 내내 우울했고, 나도 감염되었다.

    도봉산역 맞은편, 작은 만남의 광장에 위치한 한 가게로 딸아이를 데리고 들어갔다. 딸은 바지에 디자인이 들어간 것을 마다했다. 아줌마 패션이라 했다. 몇 번 권하다 말았다. 기모바지 2만 원, 윗도리는 알파인이라며 6만5,000원, 아무래도 윗도리는 바가지인 듯했으나, 아이 앞에서 머뭇거리고 싶지 않았다. 딸아이를 대동하고 물건을 구입하는 아빠의 약점을 간파한 가게 주인의 승리였다. 길을 오르다 등산화도 한 켤레 사 신겼다. 6만9,000원이었다. 아까 것까지 합치면 15만 원이 넘었지만, 까짓것 내친김이었다. 목 없는 가벼운 등산화였다. 반릿지화라서 웬만한 바위에선 미끄러지지 않을 것 같았다. 딸은 새 등산화로 갈아 신었다.

    “가벼워서 신은 것 같지 않아.”

    딸은 좋아했다. 딸애는 어둠침침한 우울의 동굴에서 탈출했다.

    우울의 동굴에서 벗어난 딸이 하산 막바지에 낙엽 더미 위에서 환호했다

    11월 17일(월) :

    퇴근해서 귀가했는데, 할매가 없었다. 딸에게 물었다.

    “누리야, 할머니 어디 갔냐.”

    “아빠가 말 안 들어서 가출했어.”

    너스레 떨며 나를 얼렀다. 약 올랐으나, 더 약 올릴 것 같아 더는 묻지 않았다. 딸아이가 사회 나가서도 잘 적응할 것 같았다.

    11월 19일(화) :

    자정에서 1시간을 넘기고서도 아이는 잘 생각을 안 했다. 냉장고에서 아이스크림을 꺼내 먹고 있었다.

    “가시나, 안 자? 빨리 들어가서 자.”

    그 소리에 딸이 내 앞으로 왔다. 그리곤 엉덩이를 좌우로 실룩이며 무릎을 살짝 구부렸다 폈다 하면서 가시나를 반복해 박자를 맞추며 덩실덩실 춤을 췄다.

    “가시나! 가시나~.”

    “아이구, 완뚱. 까불지 말고 자. 빨랑.”

    “완뚱이! 완뚱이~.”

    이번엔 완뚱이를 연호하며 거실을 좌우로 왔다갔다 춤을 췄다. 티셔츠에 팬티 차림이었다.

    “킥킥킥.”

    밤중이라 크게 웃을 수 없었다. 딸은 계속 춤을 추면서 내게 말했다.

    “좋은 말로 하면 들어가서 자지.”

    “알았어. 누리야, 들어가서 자~아.”

    딸내미는 씨~익 웃고는 방으로 들어갔다. 학교에서 배웠단다.

    11월 22일(토) :

    오전에 집을 나서려는데, 딸이 깨었다. 침대로 다가가 내일의 산행 건으로 대화했다. 나는 일이 있었고 딸은 숙제가 있었다.

    “누리야, 그럼 내일 북한산 말고 남산 한 바퀴 돌자. 2시간 정도 걸리니까 일찍 일어나서 걷자고.”

    “아빠가 제대로 깨우기만 하면 나는 일어날 수 있어.”

    피식 웃음이 나왔다.

    “허 참, 가시나 깨워도 안 일어나면서.”

    “아빠가 제대로 못 깨우니까 그런 거지.”

    딸내미의 적반하장에 아내가 나섰다.

    “저거 봐요. 매번 저래. 자기가 안 일어나 놓고 다른 사람한테 핑계를 대. 책임을 떠넘기는 것 좀 봐.”

    “아, 참, 기가 막히네. 대국민 성명서를 발표하든가 해야지. 아빠가 제대로 안 깨우니까 안 일어나는 거지.”

    딸은 실실거리며 한술 더 떴다. 아내가 다시 받았다.

    “저 가시나 봐라.”

    “내가 뭘?”

    “저거 봐. 제가 누구를 닮아서 저래. 아빠를 꼭 닮았어. 아빠 말하는 것하고 똑같아.”

    “그럼 내가 누구 딸인데.”

    분위기가 엉뚱하게 흘렀다. 모녀의 과녁이 나로 바뀌고 있었다. 내가 끼어들었다.

    “내가 뭘?”

    딴엔 반론을 제기한다고 던진 건데, 그만 평소 말투가 튀어나왔다.

    “거봐. 똑같잖아. 네 아빠 툭하면 내가 뭘, 내가 뭘, 하잖아.”

    아내가 혀를 찼고, 딸이 받았다.

    “그럼 내가 누구 딸인데. 제대로만 깨우라고.”

    딸은 천군만마를 얻었다는 표정이었다. 아내가 딸을 배반했다.

    “저 가시나 내일 깨울 때 안 일어나면 물을 끼얹어 버려.”

    “아빠, 그러면 욕이 나오더라도 이해해 줘. 평소 쓰던 말이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오더라도.”

    가벼웠던 웃음들이 빵 터졌다.

    11월 23일(일) :

    딸이 변기뚜껑을 조였다고 했다. 한동안 화장실 변기뚜껑이 덜렁거렸다. 조임쇠가 전부 풀리기 직전이었다. 마땅히 내 몫이었으나 그대로 뒀다. 딸이 할 수 있다 해서였다. 간단한 것은 수리하고 만들 수 있는 나이였다. 더 늦기 전에 시작하는 게 딸아이 앞날에도 도움 될 터였다. 어제의 입씨름 때문인지 쉽게 깨웠다. 가볍게 아침을 먹고서 남산 한 바퀴를 돌았다. 소월길을 통해 오른쪽으로 방향을 잡았고 식물원 터를 거쳐 돌아오기로 했다.

    “아빠, 어제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를 봤는데, 정말 대박이야. 류정한이 주인공인데 연기력과 음악성이 끝내 줬어. 아, 또 보고 싶다. 스토리도 치밀하고 좋았어. 지화하고 득영이하고 봤어. 어제 지화 생일이었거든. 지화 엄마가 표를 사 줬어. 득영이 엄마하고 지화 엄마도 같이 봤어. 걔네 엄마들은 친구거든.”

    딸은 뮤지컬의 감동에 흠뻑 빠져 있었다.

    “좋았겠네. 근데 누리야, 심리학 공부를 하면서 『지킬 박사와 하이드』 같은 소설을 쓰는 것도 의미 있을 거야. 넌 글 솜씨가 있어서 잘 쓸 수 있을 거야. 생각해 봐. 네가 얼마 전에 감동적으로 읽었다는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도 심리 소설이잖아. 그 책을 쓴 올리버 색스는 신경학과 교수고.”

    “알지. 근데 내가 그게 될까.”

    딸은 선뜻 긍정하지 않았다. 우리는 맞잡은 손을 놓지 않았다.

    “아빠, 대학교 들어가면 2학년은 휴학할 거야. 휴학하고 알바할 거야. 학교 다닐 때의 알바로는 등록금 낼 거고, 휴학 때의 알바로는 해외여행 비용을 마련할 거야. 유진이, 혜정이, 득영이, 미선이하고 각각 해외여행을 약속했어. 따로따로 가려면 돈이 많이 드는데 걱정이야.”

    딸은 해외여행의 상상에 부풀었다. 휴학하고 알바해서 해외여행 경비를 마련하는 것은 최근의 유행이었다. 취업문이 좁아 졸업을 늦추는 흐름도 한몫했다. 내가 제동을 걸었다.

    “유학 가서 학위 따려면 휴학이 도움 되지 않아. 그냥 학교 다니면서 아르바이트 비용으로 해외여행을 가고, 휴학은 하지 마라. 등록금은 장학금으로 해결하든가 학자금 융자로 해결하면 되잖아.”

    딸은 반론했다.

    “장학금 타려면 수석해야 하는데 쉽지 않아. 그리고 학자금 융자는 싫어. 다 빚이잖아.”

    “그러면 엄마가 식당에서 접시를 닦고, 할머니는 시장에서 배추부침개를 팔면 되지.”

    “아이 참, 아빠는 나를 패륜아로 만들려고 그래.”

    우리는 유쾌하게 웃었다. 딸내미가 어릴 때부터 종종 하던 농담이었다.

    “시장 앞에서 할머니가 전 부치고, 넌 그 옆에서 전 사세요, 전 사세요, 손님을 부르면 돈 좀 벌지 않겠어?”

    지난주엔 몹시 흐렸던 딸아이가 언제 그랬냐는 듯 이번 주엔 내내 맑았다. 산의 정령들이 힘을 준 덕이라며 혼자 속으로 견강부회했다.

    필자소개
    전 민주노총 사회연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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