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족노조’ 조롱,
새로운 노동운동 위한 주문”
『위장 취업자에서 늙은 노동자로 어언 30년』을 읽고
    2018년 03월 19일 10:1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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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 집요하게 솟구치는 의문을 풀고 싶어서 이 책을 집어 들었다.

지지리 궁상으로 살던 사람들이 고생 끝에 잘 먹고 잘 살게 되면, 모두 부러워하고, 그들의 성공담을 칭찬하며 본받으려 한다. 적어도 그것이 유사 이래 이 나라에서 통용되어 오던 방식이다. 그들이 사기를 쳐서 부를 축적한 게 아닌 한. (실은 2000년대 초부터 사기를 쳐서 쌓은 부의 정황이 또렷해도, 그것을 묵인하려는 경향이 한국 사회에 생겨나긴 했다. 이명박의 당선은 이러한 집단 무의식의 결과였고, 9년간 이어진 이명박근혜 시절의 단서를 제공했다)

그런데 유독 열심히 땀 흘려 일해서 안정적인 직장과 높은 연봉을 보장받고, 비로소 사람답게 살게 되었으나 온 국민으로부터 손가락질을 당하는 집단이 있다. 바로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이다.

‘귀족노조’라는 놀라운 단어를 입에 올리며, 민주노총을 향해 돌팔매질 하는 게 국민스포츠가 된 작금의 상황을 이해하고 싶었다. 자본가도, 정부도, 주류 언론도, 자영업자들도, 심지어는 좌파들도 거침없이 그들을 향해 손가락질했다. 함께 깃발을 들고 공동의 적을 향해 싸우던 촛불집회 와중에도, 촛불이 권력을 갈아치웠을 때도, 새 대통령이 한상균을 사면 명단에서 배제했을 때는 더욱 심하게, “귀족노조 너희들이야말로 적폐”라는 말이 세상을 제멋대로 굴러다녔다. 그렇게 좌우 양쪽으로부터 매질을 당하는 집단은 찾아보기 힘들다.

노조 기사만 나오면, 내용에 상관없이 자동적으로 “귀족노조 꺼지라”는 외침이 당연한 듯 댓글 1위를 차지하곤 했다. 왜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안정된 노동조건을 확보한 그 노동자들을 증오하게 된 것일까? 왜 그들처럼 싸워서 그들만큼 얻어내자고 다짐하는 게 아니라, 그들을 깎아내리고, 저주하는 사람들만 있는 걸까? 이 질문에 해답을 들려줄 것 같은 한 책을 발견한다. 바로 그 대표적인 귀족노조인 GM대우의 늙은 노동자가 들려주는 지난 30년간의 얘기였다.

처음 접하는 귀한 목소리

책을 펼치자, 처음 듣는 목소리가 들렸다.

30년 전, 대학을 다니다가 세상을 구하겠다는 결심으로 공장으로 스며들어간, 숱한 학출 노동자들 중 한 사람. 선배들 중에도 그 길을 떠난 사람들이 있다. 그들 중 다수는 어느 시점에 거기서 나와 학원 원장이 되거나, 그 경력을 훈장처럼 달고 어딘가에서 다른 일을 한다. 간혹 심상정, 노회찬처럼 정치인이 된 사람도 있다. 저자는 서울대를 중퇴하고 나선 노동자의 길에 여전히 서서, 공장에서 손에 기름 묻히며 일하는 진짜 노동자다. 80년대에 학교를 떠나 공장으로 간 후, 다시 만나보지 못한 그 선배들은 어떤 생각을 갖고 살아가는지, 그 때의 선택을 후회하진 않는지 간간히 궁금해 했었다. 그들의 도박은 성공했을까?

두 번의 해고, 두 번의 구속. 두 번의 복직. 결혼, 두 딸의 탄생. 30년 된 숙련된 노동자, 귀족노조라 불리는 바로 그 노조에서 활동가 노릇으로 점철된 그의 30년은 결론적으로 행복한 것이었나? 학교를 떠나며 다짐했던 대로 그는 노동자들의 삶을 바꾸어 놓았는가? 그 길을 가면서도, 남들처럼 사랑하는 여자와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큰 아파트와 멋진 차를 소유하고, 아이들 원하는 만큼 공부시키면서, 살게 되었는가? 결론부터 말해볼까? 그렇다.

이것은 완벽하게 성공한 인생이다.

정년을 눈앞에 둔 57세 늙은 노동자는 신념을 저버린 적도 배반한 적도 없다. 노조가 없던 공장에서 강력한 노조를 만들었다. 그 노조는 그가 감옥에 가도, 해직을 당해도 가족을 먹여 살려 주었다. 지금은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아파트도, 큰 차도 높은 연봉도 가졌다. 두 번 해고 되고, 두 번 구속되었지만, 공장이 잘 돌아가 노동자가 더 많이 필요해 졌을 때, 노조는 가장 먼저 사측에 해고자 복직을 조건으로 걸어 그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었다. “노조가 튼튼하면, 노동자는 인간답게 살 수 있다”는 신념을 동지들과 나누며, 힘센 노조를 건설했고, 그들이 싸워서 얻은 열매를 누리고 있다. 심지어! 아내와 사이도 돈독하다.

아내와의 각별한 사이는 우연히 얻어진 것이 아니다. 같은 학출 출신의 노동자이자 노조운동가인 아내 역시 자신의 길을 갈 수 있도록 늘 배려했다. 주말 특근을 하면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지만, 그는 아내의 요구에 따라, 주말을 철저히 집에서 가족들과 보냈다. “눈치 보려고 노동운동했어?” 아내의 이 한마디에 조합원들과 말 잘 통하는 노조활동가가 되려고 그들처럼 주말 특근을 해보려던 마음을 깨끗이 접는다. 그 결과 그는 또래의 많은 남자들처럼, 돈만 벌어오고, 집안에서 겉도는 아빠가 아니다. 딸들하고도 말이 잘 통한다.

책도 전적으로 아내의 권유에 의해 쓰게 되었다. 쇠락하고 병든 노조, 여기저기서 몰매를 맞고 있는 노동운동이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한다는 생각에 잠기기 시작한 그에게, 당신이라면 책을 쓸 수 있다고 일러준 아내의 충고를 따랐다. 일하면서도 언제나 책을 놓지 않았고, 생각을 메모로 정리하길 게을리 하지 않았던 그의 습관이 한 권의 책을 후딱 써내게 하는 근간이 되어주었다. 더 많은 임금을 위해 자신의 자유를 송두리째 공장에 갖다 바치지 않고, 적절한 임금과 자유를 함께 취하며 살아온 덕에 그는 지나온 날들을 복기하며 새 길을 모색하는 역할까지 맡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처음 그가 노동자로 살 것을 결심하고 공장에 갔을 때, 지인들은 격려도 하고 지원도 해주면서 “정말 힘들지?” 하고 말했다. 몇 년 후 수많은 위장취업자들이 공장을 빠져나가던 시기, 그들은 “너 아직도 그러고 있니?” 말했다. 이제 그들은 부러움과 질시의 시선으로 이렇게 말한다. “넌 좋겠다. 연봉도 높고, 정년도 있고.”

바로 그들의 높은 연봉. 강력한 노조가 보호해 주는 안정적 고용. 정년도 보장되고 신념도 지켰던 그들. 바로 그것이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을 질시의 대상으로 만들었다. 거기서 떨어져 나간 사람들, 연대의 힘을 믿지 못하고, 노조의 힘을 간과하던 사람들은 여전히 자본이 휘두르는 칼날 아래 하루하루를 불안하게 살아간다. 그들에겐 자본에 맞설 용기도 구조도 없다. 하여, 노조의 토대 위에 안정적 삶을 구축한, 몇 년 전까지 자신들과 비슷했던 그들을 폄하할 뿐. 이러한 심리에 지배계급의 집요한 의지가 개입하면서,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은 ‘귀족’으로 이름 붙여지고, 인민의 적으로 조작된다. 마치 ‘저들’ 때문에 ‘내가’ 불행해진 것처럼.

“적대의 선은 소수 특권층과 다수의 민중 사이에 그어져 있다. 그래서 소수 특권층은 다수 민중의 분노가 첫 번째 균열과 문턱으로 향하는 것을 막기 위해 두 번째 균열과 문턱으로 적대의 선을 돌리려 한다.“

이건희에 분노 못하는 이들이 찾은 분노의 대상

지구촌 8명의 부자가 절반의 부를 차지하고 있다. 부의 편중은 21세기에 접어든 세계가 맞은 최악의 재앙이다. 한국에서는 삼성을 비롯한 재벌들이 모든 걸 가진다. 법 따위가 그들의 가는 길을 막지 못한다. 국민연금까지 건드리며, 부의 바벨탑을 쌓으려 했던 이재용은 1년 만에 감옥 문을 유유히 걸어 나왔고, 1900만 노동자들 생존권을 위해, 더 정확히는 비정규직 양산하는 노동악법 저지를 위해 박근혜 정권과 앞장서 싸운 한상균은 여전히 3년째 감옥에 있다.

3년 전 구속 수감되기 직전의 한상균 위원장(사진=민주노총)

사유재산제가 싹튼 이래, 세상은 늘 소수의 자본가들이 다수의 인간들을 지배하고 착취하면서 유지되어 왔으나 19세기 말, 자본주의가 노동자들의 숨통을 끊어놓을 지경까지 이르렀을 때, 다수의 힘없는 자들이 존엄을 유지하며 생존하는 방법을 인간은 발견해 냈다. ‘노동조합’이라는 발명품이 그것이다. 그 노조의 힘을 키우면서, 저자는 노동자인 자신의 삶과 그 힘을 함께 키워온 다른 노동자들의 삶을 구해 왔다.

소수의 지배자들은 이러한 발명품이 확산되길 원치 않으며, 남의 몫을 갈취한 자신들이 99%의 타깃이 되는 것도 원치 않는다. 하여,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을 악마화하여 자신들에게 날아들 화살을 대신 맞을 대상을 세우는 전략을 세운다. 자본의 삽살개인 주류 언론들이 거기에 앞장섰고, 감히 회장님에게 돌을 던지지 못하는 숱한 인생들이 이들에게 신나게 돌을 던졌다.

대기업 정규직 노조를 향해 비난을 퍼붓는 또 다른 부류는 자영업자들이다. 우리나라 고용인구 중 자영업자 비율은 27%다.(OECD 평균치 17%를 훨씬 웃돈다) 소위 사장님들인 이들의 목숨은 파리 목숨일 뿐. 창업한 지 1년이 안돼서 폐업하는 경우가 80%에 이르기 때문이다. 그들은 카드회사에도, 건물주에게도, 정부에게도 감히 맞서지 못하기에, 자신들보다 이미 더 잘 먹고 잘 살면서 간간히 파업까지 한다는 자들, 비정규직 철폐를 주장하고, 최저임금 인상 투쟁을 하는 민주노총을 사회악으로 삼는다.

생존이 목표인 세상

“분단과 전쟁에 대한 공포가 우리 부모 세대들로 하여금 반공 이데올로기의 쉬운 포로가 되게 했다면 1997년의 경제 대란은 이후 세상에 나온 모든 세대들에게 믿을 것은 오직 돈뿐이라는 맹목적인 생존에의 공포를 지니게 했다. 그것은 전쟁을 능가하는 공포였다.”

환란 이후, 세상은 재편되었다. 구조조정은 전쟁처럼 한 집 건너 한 집씩 폭탄을 터뜨렸다. 폭탄을 피하기 위해 몸을 피하는 일만이 가능하던 그 시절을 틈타, 기업은 노조라는 울타리가 더 이상 자본을 위협하지 못하도록, 새 전략을 구상했다. 그것은 바로 계약직, 하청, 파견 근무라는 새로운 노예 계급의 도입이다. 그리하여 노조를 하겠다는 마음을 먹는 것 자체가 생존의 위협이 되는 계급이 탄생하고, 노조에 접근할 수 없는 노동자의 수가 늘어났다. 민주노총이 비정규직 양산을 저지하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조직화 사업에 힘을 쓴다 해도, 여전히 전체 민주노총 조합원 가운데 17% 만이 비정규직인 것이 현실이다(한국 노동자들 가운데 비정규직 비율은 통계청 기준 32.8%,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기준으로는 44.5%이다).

환란 이후의 사회가 빚어낸 더 심각한 문제는 비정규직이 늘어났다는 사실보다 모두에게 생존이 꿈인 세상이 전개되었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환란이 우리에게 안겨준 집단적 트라우마의 징후였다. 초등생들마저도 정규직을 꿈의 목록에 새겨 넣는 세상에서 생존을 확보한 자들조차 더 안전한 생존만을 유일한 목표로 삼게 된 것이다. 생존 지대를 확대하는 것도, 자신의 삶의 질을 높이는 것도 바라지 않게 된 것이다.

정규직 노조 노동자들을 비난할 ‘자격’을 가진 정당한 권리를 가진 사람이 있다면, 이들과 같은 노조에 가입하고자 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일 것이다. 기아차 정규직 노조가 비정규직이 들어오는 것을 막았다. 얼마 전엔 자동차판매연대가 금속노조에 가입하려는 시도가 저지되기도 했다. 다수의 노동자들이 연대하지 않는 노조는 노조가 아니라고 소리를 높였으나, 현대기아차 정규직 판매 노조원들은 자신들의 생존권을 그들이 위협했다고 맞섰다. 연대를 숙명으로 하는 노조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그들은 더 이상 노조이길 거부하고 스스로를 한줌의 이익집단으로 전락시키며 세상으로부터 자신들을 고립시키는 구덩이를 팠다.

이 또한 온전히 그들만의 잘못만은 아니다. 노동자들을 조각내어 그 사이에 고랑을 파놓은 자본, 그들과 손잡은 정부가 이 비극의 주범이다. 생존이 모두의 목표가 된 세상에서, 정규직 노동자들 역시 자신의 더욱 더 안전한 생존을 추구하겠다는 것은 각자도생의 사회에서 모두가 추구하는 삶의 방식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런 태도는 노조의 존재 이유를 뒤흔들었다. 모든 정규직 노조가 비정규직을 배제하지도 않으며, 그들에게 돌을 던지는 모든 자들이, 비정규직을 정규직 노조에서 배제한다는 이유로 돌을 던지지도 않지만, 이는 그들에게 돌을 던져도 좋은 명분을 제공한다. 이유가 무엇이든, 사방에서 날아드는 돌을 맞는 조직이 오래 안전을 유지할 방법은 없다.

이 시점에서, 저자는 전태일이 우리에게 남긴 여전히 유효한 교훈 “연대는 아래로 흐르는 것”이라는 사실을 환기시킨다.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이유

사방에서 날아드는 돌의 부당함에 억울해 돌아가실 필요는 없다. 돌멩이가 날아오지 않았더라도, 그들은 자신들이 선 자리를 다시 돌아보아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 그들은 진실로 행복한 삶을 추구하지 않았고, 그리하여 진정으로 행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환란과 구조조정의 공포를 경험한 그들은 자본이 파놓은 함정대로, 옆을 돌보지 않으며 자신의 생존만을 돌보는 차가운 개인들이 되었다. 잔업과 휴일근무를 최대한 더 많이 해서, 불안한 미래를 지우는 데 그들은 몰두한다. 마침내 자유로운 미래가 현실로 다가왔을 때, 그들은 자유를 누릴 줄 모르고 삶으로부터 소외되어 갔다. 삶이 안정된 후엔, 그 삶을 누리기보다, 투기적인 욕망에 관심사를 옮겼다. 유럽노조들이 정년을 낮추기 위한 투쟁을 할 때, 우린 여전히 더 많은 노동을 하기 위해 정년을 늦추기 위한 투쟁을 하고 있었다. 심지어 노조가 힘이 셀수록 노동자들의 근무시간은 늘어만 갔다. 그렇게 그들은 또 다른 방식으로 자본의 포로가 되어갔고 낮은 곳으로 연대를 확장하는 노동운동의 철칙을 잊어갔다. 그것은 노동운동의 죽음을 의미한다.

저자 이범연은 이렇게 말한다.

“정규직 노동자의 꿈은 노동자로서 당연히 누려야 할 삶의 표준을 만드는 것이어야 한다. 벌어들이는 돈의 크기가 아니라 여가를 누리고, 문화적 삶을 향유하고, 사회에 대해 관심을 갖고 다양하게 참여하는 풍부한 ‘삶의 형식’을 만들어야 한다.”

“변화를 통해서 따내야 할 것보다 현재 상태 유지를 통해서 지켜야 할 것이 더 많으면 보수적이 된다. 우리의 꿈과 요구가 기업 안에 갇히면서 사회적 역할과 책임을 다해야 할 대기업 정규직 노조의 시야와 전망도 닫혔다. 또한 노동조합의 사회적 역할과 실천이 닫히면서 조합원들의 의식도 닫히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 갖고 있는 것을 지키는 보수성을 뛰어 넘어, 기업에 갇힌 꿈을 밖으로 열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풍부한 꿈을 꾸어야 하고, 그 꿈은 지금과는 다른 것이 되어야 할 것이다.”

지금 이대로 완벽하게 행복하다면, 이런 이야기에 귀 기울일 필요가 없다. 그러나 귀족이라 는 터무니없는 조롱을 당하는 그들은 세상의 질시의 대상일지언정, 행복하지 않다. 자유도 평등도 여유롭고 평화로운 일상도 없는 삶이 행복할 수는 없다. 87년 노동자 투쟁에서, 그들은 무쇠를 녹이는 열정으로 노동자가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만들었고, 그들의 적인 자본은 노동자 계층 분화라는 새로운 무기로 그들을 교란한다. 노동자들을 분열시킨 책임이 노동자들에게 있진 않지만, 새로운 무기로 무장한 적들을 향해 노동자들은 전열을 가다듬고, 생존을 넘어서는 새로운 꿈을 실현해야 하는 시점에 그들은 이르렀다.

언제나 역사를 새로 쓰는 것은 민중의 몫이었다. 귀족노조라는 조롱은 바로 그들이 지금의 자리를 박차고 새 질서를 만들어 가야 한다는 주문에 다름 아니다. 알제리 독립전쟁에서 알제리 게릴라들이 프랑스군을 무찌르고, 베트콩이 미국이란 제국을 압도하며 승리한 배경은 세상의 여론을 자기네 것으로 이끌 수 있었던 데 있다. 비정규직을 배제하는 노조의 존재는 그것이 극히 일부일지라도 여론을 얼어붙게 하며, 노조를 파괴하려는 적들에게 날개를 달아준다. 노조가 팔을 활짝 열고 더 많은 노동자들이 함께 세상의 주인이 되는 통로를 열어두지 않는다면 그 노조는 무너진다. 당장 무너지지 않아도, 조만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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