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국의 꽃다지가 부른 민중의 역사
        2006년 04월 10일 12:5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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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humbawamba
    "English Rebel Songs 1381-1917"
    1988년 발표
    .

    1. The Cutty Wren
    2. The Diggers Song
    3. Colliers March
    4. The Triumph of General Ludd
    5. Chartist Anthem
    6. Song on the Times
    7. Smashing of the Van
    8. World Turned Upside Down
    9. Poverty Knock
    10 Idris Strike Song
    11. Hanging on the Old Barbed Wire
     

    1997년 전국의 나이트클럽 플로어를 뜨겁게 달궜던 노래 “열변Tubthumping”를 기억하는 사람은 많다. 이 노래를 ‘첨바왐바(Chumbawamba)’라는 독특한 이름의 밴드가 불렀다는 사실은 꽤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 제3세계스러운 이름의 밴드가 영국 친구들이고, 그것도 첨단 유흥문화와는 거리가 꽤 먼 아나키스트들이라는 것까지 아는 한국 사람은 많지 않다.

    첨바왐바는 1982년에 시작됐으니 활동경력만 20년을 훌쩍 넘긴 ‘중견 아티스트’다. 하지만 결코 직업적인 음악인들은 아니다. 작곡을 하고, 연주를 하고, 녹음을 하고, 공연을 하지만 이들의 활동은 항상 음악 그 자체가 아니라 음악을 통한 사회운동 참여와 발언을 목표로 한다.

    그래서 스스로를 직업적인 뮤지션이라고 정의하지 않는다. 같은 의미로 스스로를 밴드라고 부르지도 않는다. 대신 ‘음악 공동체’라고 자신들을 소개하고 있다. 실제로 첨바왐바의 멤버들은 리즈 근교의 공동주택에서 함께 살고 있다. 수사학적인 의미에서가 아니라 진짜 ‘공동체’인 것이다.

    첨바왐바는 음악 스타일 또한 딱히 무엇이라 정의되지 않는다. 초기에는 펑크의 영향이 강했지만 앞서 이야기한대로 자신들의 생각과 주장을 음악에 담아 퍼트리기 위해서라면 대중들이 좋아하는 그 무엇이라도 채용하고 있다. 락에서 테크노로, 포크에서 재즈로 자유롭게 옮겨 다닌다. 미국인들과 만나기 위해서는 컨트리까지 불사한다. 최근에 발표한 앨범은 월드뮤직의 스타일을 따랐다.

    관심사도 다양하다. 노동운동에서부터 페미니즘, 환경 같은 주제들은 물론이고, 언론독점, 제3세계 기아문제, 문화다양성 등 건드리지 않은 테마가 없을 정도다. 급진적 무정부주의자들답게 얼치기 사회주의자나 무늬만 좌파들은 자주 이들의 먹이감(?)이 되곤 한다. 최근에는 반세계화 운동에 대한 노래를 많이 부르고 있다.

    원래 이탈리아 좌익들의 전통적인 투쟁가였다가 2000년 이후 유럽 반세계화 운동의 찬가가 돼버린 노래가 “안녕, 예쁜 아가씨Bella Ciao"다. 첨바왐바는 이 노래의 이탈리아어 가사 대신 영어판 가사를 새로 만들어 ‘대중적 보급’에 기여하기도 했다.

    아무튼 20년이 넘는 동안 13장의 합법앨범과 수종의 불법앨범을 발표했는데 주장의 전위성  만큼이나 음악도 항상 실험적이었다. 똑같은 스타일의 앨범은 단 한 장도 없으니까. 이런 첨바왐바의 경력 중에서도 가장 이질적인 앨범은 1988년에 발표한 <English Rebel Songs 1381-1917>이다.

    ‘영국 반역의 노래들’이라는 제목처럼 이 앨범에는 1381년부터 1917년 사이에 영국 민중들이 만들고 불렀던 ‘민중가요’ 11곡이 실려 있다. 우리로 치면 고려 공민왕시절 백성들이 부르던 노래부터 일제시대 독립운동가들이 부르던 노래까지 모아놓은 셈이다.

    범상치 않은 노래들인데 모두 아카펠라(!)로 녹음돼 있다. 첨바왐바의 목소리 외에는 악기라곤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 ‘펑크밴드가 부르는 아카펠라라고? 그거 제 정신으로 들어줄 수 있는 거야?’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노래의 배경을 모르고 듣는다면 십중팔구는 ‘크리스마스 레코드’라고 생각할 정도로 아름답고 또 흥겹다.

    그러나 아름다운 가락에 숨겨져 있는 역사는 흥겨움과는 거리가 멀다. 모조리 피비린내 나는 반란이나, 전쟁, 기아와 빈곤과 연관이 있는 노래들이다.

    앨범에서 가장 오래된 곡인 ‘성미 급한 아가씨The Cutty Wren’은 1831년 벌어진 농민반란 때 만들어진 노래다. ‘와트 타일러’의 난이라고 알려진 이 봉기는 “신이 아담과 이브를 만들었을 때 귀족도 있었더냐”는 구호로 유명하다. ‘디거스의 노래The Diggers Song’은 청교도혁명시기의 ‘수평파’ 중 기독교공산주의에 기초해 급진적인 토지 개혁을 주창했던 분파인 디거스에 관한 노래다.

    ‘러드 장군의 승리The Triumph of General Ludd’는 그 유명한 러다이트 운동의 주제가다. 우리는 러다이트 운동이 단지 산업혁명에 대한 반동으로 숙련노동자들이 기계를 파괴했다고만 알고 있지만 러다이트 운동은 자본가와 관료에 대한 민중봉기로 발전해 군대와 교전을 벌일 정도로 치열하게 전개됐다.

    기록에 의하면 당시 영국정부는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와의 전쟁보다 러다이트운동 진압에 더 많은 병력을 투입하고 있었다. 노래에 나오는 ‘러드 장군’은 러다이트 운동에 참여한 민중들이 만든 가상의 지도자다.

    비슷한 시기의 또 다른 유명한 사건인 차티스트운동의 주제가도 들어있다. 러다이트 운동이 조직적 노동운동의 효시가 됐다면 차티스트 운동은 노동자 정치운동의 원형이 됐다. ‘차티스트송가Chartist Anthem’은 보통선거권을 요구하는 노동자들의 결의를 이렇게 노래했다. “길은 피와 땀으로 덮여있고, 죽음은 귓전에서 노래하지만, 역사는 우리의 편에 함께 하리라.”

    ‘선구자들의 죽음Smashing of the Van’은 아일랜드 독립을 위해 싸우다 죽은 공화주의자들에 관한 노래고, ‘거꾸로 뒤집힌 세상World Turned Upside Down’은 앞서 이야기한 디거스의 구호를 가지고 1870년대에 제작된 민요다. ‘세상이 확 뒤집히기’를 바라는 민중의 마음은 어느 시대에나 마찬가지인가보다.

    20세기로 가까워오면서부터는 노동가요가 늘어난다. ‘가난이 찾아오다Poverty Knock’는 19세기 후반 공장노동자들이 부르던 노래고, ‘아이드리스 파업가Idris Strike Song’은 1911년 벌어진 아이드리스 음료수 공장의 파업을 노래한 것이다. 특히 후자는 비록 패배한 파업이지만 이후 영국 여성노동운동의 상징이 됐다.

    마지막 노래는 영국 민중의 뿌리 깊은 반전의식을 표현한 ‘낡은 철조망 위에 걸린 시체Hanging on the Old Barbed Wire’다. 존 레논은 살아생전에 “영국 노동계급의 핏줄 속에는 경찰과 군대에 증오가 태어날 때부터 흐른다”고 말했다. 1차세계대전 당시 진흙탕으로 변한 참호 안에서 영국 병사들은 거들먹거리는 장교를 저주하고 언제 죽을지 모르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면서 이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역설적이게도 이 노래는 전형적인 군가 풍으로 만들어져있다.

    영국의 이름 없는 병사들이 낯선 유럽의 어딘가에서 이 노래를 부르다 죽은 지 9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영국의 군대는 남의 나라에서 전쟁을 벌이고 있다. 혹시 이라크의 영국 군인들도 언제 끝날지 모르는 점령전쟁에 대한 불만과 불안을 떨치기 위해 이 노래를 부르고 있지는 않을까?

    낡은 철조망 위에 걸린 시체
    Hanging on the Old Barbed Wire

    장군이 어딨는지 찾는다면
    내가 알고있지
    장군이 어딨는지 찾는다면
    내가 알려주지
    장군은 가슴에 또 하나의 훈장을 매다느라 바뻐
    난 봤어, 난 봤어
    장군이 가슴에 또 하나의 훈장을 달고 있는 걸

    대령이 어딨는지 찾는다면
    내가 알고있지
    대령이 어딨는지 찾는다면
    내가 알려주지
    대령은 느긋하게 앉아 뱃속을 채우느라 바뻐
    난 봤어, 난 봤어
    대령이 느긋하게 앉아 뱃속을 채우고 있는 걸

    상사가 어딨는지 찾는다면
    내가 알고있지
    상사가 어딨는지 찾는다면
    내가 알려주지
    상사는 보급 나온 럼주를 들이키느라 바뻐
    난 봤어, 난 봤어
    상사가 보급 나온 럼주를 들이키고 있는 걸

    이등병이 어딨는지 찾는다면
    내가 알고있지
    이등병이 어딨는지 찾는다면
    내가 알려주지
    이등병은 전선의 철책선 위에 조용히 걸려있어
    난 봤어, 난 봤어
    이등병이 전선의 철책선 위에 걸려있는 걸

    * 첨바왐바는 2003년 이 앨범에 한곡을 추가해 <English Rebel Songs 1381-1984>이라는 제목으로 재발매했다. 추가된 곡은 1984년부터 다음해까지 계속된 영국광부파업 때 광부노조(NUM) 조합원들이 불렀던 ‘실업수당이 아니라 광업재개를Cole Not Dole’이다. 영국광부파업은 대처 정권과 노동운동이 정면충돌했던 사건으로 노조가 패배하면서 신자유주의의 득세를 가져왔다. 영화 <빌리엘리어트>를 보면 당시 광부파업이 자세하게 그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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