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질문,
대중적 진보정당의 정체성
또 다른 세상을 향한 꿈 포기 말자
    2018년 03월 16일 01:4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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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노조와 민주노총 위원장을 역임하고 현재는 정의당의 노동본부장을 맡고 있는 김영훈씨의 칼럼을 새로 연재한다. 많은 관심 부탁드린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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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민주평화당의 국회 공동교섭단체 구성 제안을 두고 정의당은 내부 토론중이다. 용어 자체가 생경한 공동교섭단체를 언론을 통해 접한 당원들은 당혹스러워 했고 지방선거를 앞두고 논란이 불가피한 제안을 받은 지도부도 부담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내각 배분이나 정책 수용 여부 등 협상에 따라 판단을 내릴 근거가 있는 연립정부 구성도 아닌 소수야당들의 교섭단체 구성 논의는 시작부터 “얻는 게 뭘까?”라는 질문에 봉착한다.

선거제도 개혁과 같은 소수당의 핵심의제 실현을 합의할 수 있지만 어떻게 결과를 내올지 미지수다. 그나마 ‘현찰’로 확보될 권리는 국회 운영에 개입하여 의제를 제출하고 여차하면 ‘원활한 의사일정’을 가로막는 비토권일 터. 무엇을 얻었는지는 모호하고 이것만은 못하게 해서(또는 지렛대로 삼아) 지지자들의 이익을 도모하겠다? 해 본적도 없고 설명하기 쉽지 않다.

2대 주주인 산업은행 비토권이 소멸된 다음 곧바로 철수론으로 협박하는 GM의 만행을 보고 있노라면 비토권이라도 있는 게 어디냐고 위안해보지만 그래도 어렵게 지켜온 진보정당의 정체성 논란을 불러올 만큼 공동교섭단체가 절실한가? 라는 물음에 대답하기도 어렵다.

노동자 당원들은 찬성하는 쪽이나 반대하는 쪽이나 걱정이 많다. 너나 할 것 없이 지난 시기 진보정당 진로를 둘러싸고 벌어졌던 상처가 아물지 않았고 그래도 포기할 수 없는 노동정치를 위해 조합원을 만나고 스스로 치유해가는 와중에 ‘무슨 날벼락’인가. “합당도 아니고 의회 전술의 문제”라는 설명으로 해소할 수 없는 트라우마는 겪어본 사람만 안다.

진보정당에는 왜 이런 문제가 반복되는가? 세계노동절 유래로부터 오래된 질문의 답을 찾아가 보자.

자본주의가 본격적인 발전경로로 진입한 19세기 중반 사회구성원의 다수가 된 노동계급은 산업별노조로 조직되고 노동자정당과 결합했다. 1890년 역사적인 제2인터내셔널 창립은 유럽노동자들의(아메리카 포함) 5월1일 총파업 결의로 이어졌다. 8시간 노동제와 보통선거권 쟁취를 내건 총파업 결의는 조직된 노동자들의 주류 정치세력화 선언이었다.

‘무계급 사회를 향한 궁극적 목표와 전술적 수단으로 의회주의 승인’이라는 그들의 실험은 1차 세계대전 발발과 자국 전쟁 가담이라는 비극적 결말에 이르기까지 계속됐다. 혁명적 목표와 개량적 수단이라는 조합 자체가 모순을 내제했다는 평가가 있는 반면 개량의 축적 없이 도래할 혁명은 무엇인가? 라는 반론이 가능하다. 제2인터내셔널 시기 프랑스 사회주의자 밀레랑의 부르주아 내각 참여 논쟁을 통해 오늘날 시사점을 검토해보자.

프랑스 사회를 뒤흔든 드레퓌스 사건 이후 실시된 1898년 선거에서 왕당파가 공화파와 사회주의 진영에 패하자 군부, 교회, 국수주의자들은 쿠데타를 준비했다, 찬성파는 반동의 공세로부터 공화국의 위기를 막는 전술적 차원에서 밀레랑 입각이 용인된다고 주장했다. 반면 반대파는 개인 입각은 부르주아 정부 위기 해소를 도와줄 뿐 궁극적으로는 노동자계급 조직화에는 해가 된다고 주장했고 논쟁은 유럽으로 확산됐다.

1900년 소집된 파리대회에서 카우츠키는 “개별 사회주의자의 부르주아 정부 입각은 정치권력 획득의 정상적인 출발점으로 간주되어서는 안 되며 항상 잠정적이고 예외적인 임시방편으로서 어쩔 수 없는 경우에만 있을 수 있다. 어떤 주어진 상황이 그런 불가피한 상황이냐 아니냐 하는 것은 전술적인 문제이지 원칙상의 문제는 아니다. 그런 문제에 대해 대회는 어떤 결정도 내릴 수 없다”는 동의안을 제출했고 결의안으로 채택됐다.

결국 찬반 양론에 대한 입장을 수용하면서 아무런 판단도 내리지 않는 ‘결정할 수 없음을 결정’한 의미는 무엇인가. 근본목표와 당면과제의 변증법적 결합을 실현하는 진보정당 정체성에 대해 한 연구자는 “평범한 사람들의 지지와 참여를 바탕으로 선거라는 합법공간에서의 경쟁을 통해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지향하고, 궁극적으로는 불평등과 차별 등 불합리한 사회관계의 민주적 변혁을 통해 ‘또 다른 세상’을 추구하는 정치적 결사체(조현연)”라고 정의했다.

필자의 소견은 정의당의 공동교섭단체 구성 논의가 정체성을 위협할 수 있다는 우려는 감안하되, 역으로 대중적 진보정당의 정체성을 획득해 가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필연적인 논쟁이라는 관점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이다.

다시 말해 공동교섭단체 논의가 연정이나 개별입각(또는 이에 준하는 공직 임용)과는 다른 수준이지만 진보정당 정체성으로부터 기인한 토론이라는 점에서 구성원들이 결정하면 될 일이다. 노동계급 출현과 참정권 획득, 대중정당 건설과 소수파 연정참여, 비례성 높은 선거제도 관철과 단독집권으로 가는 기나긴 여정의 출발인 셈이다.

토론과정에서 의원단을 비롯한 지도부와 현장 당원들의 고민을 상호 이해하고 일치시켜 나간다면 공동교섭단체 구성보다 더 큰 수확이 될 것이다. 소수정당으로서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만들어 내야 하지만 또 다른 세상을 잊지 말아야 함은 물론이다.

※ 본고에서 인용한 1900년 파리대회 결의안은 강신준 「제2인터네셔널 시기의 마르크스주의」 참조함

필자소개
민주노총 전 위원장. 정의당 노동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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