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쩡한 사람도 저기만 들어가면”
    2006년 04월 08일 05:01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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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60평생에 국회는 처음 들어와보네. 옛날에는 어림도 없었어요. 국회를 감히 누가 들어왔겠어. 시대가 많이 변한거지…그래도 그 안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다를 바가 없어서 좀 씁쓸하죠…”

여의도 윤중로 벚꽃축제가 시작된 8일 토요일 오후 국회 본청 앞 잔디광장에서 만난 김모 씨(60세). 모처럼 부인과 함께 봄나들이를 나섰는데 기대했던 벚꽃은 아직 꽃망울이 채 터지지 않은데다 올들어 최악의 황사까지 겹쳐 실망이 컸다. 그래도 난생 처음 들어와보는 국회 앞에서 사진도 찍고 잔디밭을 밟아보니 헛걸음은 안했다며 미소를 지었다.

   
 
▲ 여의도 윤중로 벚꽃축제가 시작된 8일 오후 국회 본청 앞 잔디광장을 찾은 시민들이 오붓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감회가 남다른 듯 국회 본청을 바라보는 김씨에게 본청 안을 구경해보는 것이 어떠냐는 기자의 말에 “저기 들어가서 뭐해, 괜히 기분만 상하지”라며 얼굴을 찌푸린다.

“국회의원들이 좀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해야지. 국민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다툰다면 모르겠지만 서로 자리 챙기려고 싸우는 것밖에 더해요? 국회는 참 이상한거 같아요. 멀쩡한 사람도 저기 들어가면 싸움질이야. 거 참 희한하다니까.”

다가오는 5·31 선거에서 제일 큰 관심을 모았던 서울시장 후보를 둘러싼 여야의 움직임이 마땅치 않은던 모양이다.

“서울시장만 해도 그래요. 서울시면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도시잖아요. 인구도 많고. 그렇다면 진정 능력있고 시민들 위할 줄 아는 사람이 자격이 있는거 아닌가? 한나라당도 그렇고 열린우리당도 그렇고 시장자리를 무슨 땅따먹기로 생각하나봐요. 정치인이라면 정당을 떠나서 국민을 위해 일을 잘 할 수 있는 사람에게 자리를 내줘야죠.”

한바탕 정치인들에 대한 쓴소리를 늘어놓던 김씨의 마지막 말. “정치 0번지라는게 생겼으면 좋겠어요. 그래야 서로 1등 차지하려는 싸움질도 그치지 않겠어요?”

7살, 5살난 아들·딸과 함께 오붓한 시간을 보내고 있던 엄마 유모씨(36세)는 최근 여기자 성추행 사건으로 파문을 일으켰던 한나라당 최연희 의원을 둘러싼 공방에 “대신 가서 때려주고 싶다”면서 언성을 높였다.

술을 마시고 추태를 부린 최의원도 최의원이지만 한쪽에선 책임을 회피하고 한쪽에선 정치공세로 이용하고 있는 정치인들의 모습을 보면 부아가 치민다고 한다.

“딸을 키우는 사람으로서 최연희 의원 사건 봤을 땐 정말 화가 났죠. 저 사람이 과연 국민을 대표한다는 사람 중에 하나인지… 당연히 물러날 줄 알았어요. 스스로 잘못했다고도 했잖아요. 그런데 물러나지도 않겠다고 하고 소속 정당도 뒷짐지고 책임도 안지고 있잖아요. 국회 환경만 이렇게 잘 꾸며놓으면 뭘 해요. 저 안은 썩을대로 썩어있는데.”

옆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7살 아들이 “저는 국회를 좋아해요”라며 천진하게 외쳤다. 엄마, 얼른 아들 입에 쥐포를 물린다.

   
 
▲ 8일 윤중로 벚꽃축제 거리. 아직 꽃이 채 피지않은데다 올들어 최악의 황사까지 겹쳐 거리를 찾은 시민들이 이내 발걸음을 돌리고 있다.
 

엄마와 딸이 멀리 의정부에서 벚꽃축제를 보러 나왔다가 개나리만 보고 간다며 울상을 지었다. 그래도 모처럼만의 모녀간 나들이여서 엄마는 기분이 좋다고 말한다.

50대 엄마와 20대 딸, 세대차이가 분명히 있을텐데 유독 정치인들에 대한 생각은 똑같다.

“선거때 모습과 당선된 뒤의 모습이 너무 다르잖아요. 자기 이익만 챙기고 남을 배려 안하는 모습이 정치인들의 공통된 모습인 것 같아요. 바라는거요? 제발 선거 때 모습 그대로 정치해줬으면 하는 거죠.”

여의도를 누렇게 휘감아돌고 있는 황사가 마음 밖의 상황이라면, 적어도 정치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내면도 그 못지않게 황사로 뒤덮여 있다는 사실이 새삼 확인되는 토요일 오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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