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표류하는 비정규직 투쟁
    비정규직 투쟁의 방향 정립 위해 ①
        2018년 03월 14일 09:3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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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사회의 가장 뜨거운 화두인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현실 진단과 대응 방향에 대한 고민을 담은 김정호씨의 “비정규직 투쟁의 새로운 방향 정립을 위하여” 기고 글를 몇 차례 게재할 예정이다. 다소 딱딱하고 긴 글이지만 함께 고민해야 할 주제이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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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동지의 문제제기

    지난해 하반기 울산 지역에서는 <미조직 비정규 노동자 조직화,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주제로 세 차례 토론회가 열렸다. 이 토론회는 지역 활동가연합단체인 ‘울산노동자공동행동’이 기획한 것인데, 2017년 10월부터 12월까지 매달 한 차례씩 모두 세 차례가 개최되었다. 이 토론회에서 광주자동차부품사, 현대중공업, 구미 아사히글라스, 현대자동차, 포스코 사내하청, 대구 성서공단, 울산 동진오토텍, 안산 반월공단 등 전국 각지의 사업장과 단체에서 온 대표들이 미조직 비정규직 조직화문제와 관련된 자신들의 사례를 발표하였다.

    필자는 몇 차례 토론회와 사례발표 중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투쟁을 오랫동안 직접 수행해온 한 동지의 발언이 가장 인상 깊게 뇌리에 남는다. 이 동지는 다음과 같은 문제제기를 하였다. “그간 사내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정규직화’ 일변도로 투쟁을 수행한 것은 잘못되었다. 비정규직 투쟁은 제도철폐를 위한 입법투쟁이 반드시 함께 병행되어야만 한다.”는 것이었다.

    알다시피 현대자동차의 비정규직 투쟁은 2003년부터 본격화되었다. 이들은 길고 긴 정규직화를 위한 투쟁과정에서, 수많은 우여곡절을 거친 끝에 정규직 노조의 협조를 얻어 2016년3월 사측과 2020년까지 단계적으로 정규직화를 이루기로 합의를 보았다. 이렇듯 현대자동차의 비정규직 투쟁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공조, 그리고 마침내 사측을 굴복시켜 단위사업장 내에서나마 ‘정규직화’라는 소기의 목표를 달성했다는 점에서, 그동안 한국의 노동운동계 내에선 비정규직투쟁의 모범적인 사례로 꼽혀 왔으며 다른 많은 비정규직들의 부러움을 사왔다. 그런데 이 같은 ‘정규직화’ 요구를 중심으로 한 투쟁이 잘못되었다고 하는 것은 도대체 무슨 이유에서 일까?

    이 동지는 그 점에 대해, 현대자동차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일단 정규직화라는 목표를 달성한 후에는 더 이상 노조활동 하기를 꺼려한다는 새로운 사실을 털어 놓았다. 이들은 자신이 애써 획득한 ‘정규직’이라는 자리를 지키기 위해 오히려 ‘보수화’ 하는 경향을 보인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그간 십년 넘게 애써 투쟁해온 활동가로서는 과연 무엇을 위한 활동이었는지 회의가 들더라는 것이다.

    우리 주변을 둘러보면, 필자는 이 같은 위험성이 현재 비정규직 투쟁을 수행하는 많은 다른 사업장에도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이들 사업장들도 대부분 ‘정규직화’ 요구만을 즉자적으로 내걸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비정규직 문제와 관련한 투쟁은 정규직화 요구 외에도, 해고철회와 원직복직, 고용승계, ‘노조사수’라는 다양한 형식으로 전개된다. 그러나 그 본질에 있어 볼 때 이들도 모두 비정규 문제로부터 파생되는 경우가 많으며, 그 때문에 우리는 ‘정규직화’를 이러한 제반 형식을 집약하는 요구로 간주할 수 있다.

    이때 이들이 ‘정규직화’를 비정규직 투쟁의 기본 요구로 삼는 이유는, 그것이 제도 자체의 철폐를 주장하는 것보다 상대적으로 쉽게 쟁취될 수 있는 ‘눈 앞의’ 목표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경우 자칫 투쟁 주체들의 시야가 단위사업장 차원으로 갇히면서, 정작 비정규직 문제의 구조적 성격을 이해하지 못하게 되기 십상이다. 사측은 당연히 이 같은 기존 비정규직들의 심리를 파고들 것이며, 그리하여 자신들이 필요하다고 판단될 경우 마치 시혜라도 베풀 듯이 정규직화를 일부 시켜줄 수도 있다. 자본가들은 이렇게 해서 정규직화한 비정규직들을 회유하고 겁주면서 전선에서 이탈하게 만든다. 현대자동차 비정규직들의 정규직화는 대체로 위와 같은 방식으로 진행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 때문에 이 같은 정규직화에도 불구하고, 사측이 과연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할 진정한 의지가 있는지 의심스러운 부분이 많이 있다. 예컨대 위의 합의에도 불구하고 현대자동차 내부에는 지금 사내하청이라는 기존의 불법파견 형식 말고도 ‘단기촉탁직’이라는 형식이 나타나는 등 각종 비정규직이 여전히 횡행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어찌 되었거나 현대자동차처럼 정규직화 목표를 달성한 사업장은 그나마 나은 편에 속한다. 현실에선 단사 차원의 정규직화도 쉽게 쟁취될 수 있는 목표는 결코 아니다. 물론 일부 공공부문에서 이 같은 요구가 관철되는 사례가 간혹 언론에 보도되기도 한다. 예컨대 서울시나 성남시처럼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비교적 진보적 인사가 시장으로 당선된 경우이거나, 문재인 정부와 같이 비교적 진보적 성향의 정권이 들어서는 경우가 그것이다. 그러나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는 대부분 극히 예외에 속하며, 제조업에 있어선 특히 그러하다. 지금도 한국의 비정규직 비율이 전체적으로 전혀 줄어들지 않고 있고 오히려 꾸준히 늘어만 가고 있는 현실은 필자의 이 같은 판단의 정당성을 뒷받침해준다. 이러한 상황에 비추어 본다면 현대자동차 비정규직의 경우는 분명 특수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본래의 화제로 돌아와서, 앞서 문제제기한 동지의 지적은 필자가 보기엔 최소한 다음 두 가지 측면에서 나름의 일리가 있다고 본다.

    첫째, 비정규직 문제는 성격상 단사 차원의 사안이기보다는 사회 전체의 ‘구조적 문제라는 성격이 짙다는 점이다. 정리해고제의 도입, 기간제노동의 다양화, 파견근로 범위의 점진적 확대 등 한국의 각종 노동악법은 그간 여러 방식을 통해 한국사회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를 끊임없이 양산하도록 만들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눈앞의 당장의 목표가 달성되었다고 해서 기존의 투쟁 주체가 하나씩 전선을 이탈하게 된다면, 그것은 분명 비정규직 철폐투쟁이라는 거시적 관점에서 보면 잘못된 싸움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같은 싸움은 전술상에선 승리하였지만 전략적으로는 실패한 싸움이 된다.

    둘째, 이 같은 전술상의 승리 역시도 사실은 대단히 취약하고 불완전한 것일 수밖에 없다. 주변의 비정규직이라는 큰 ‘환경’을 그대로 둔 채 자신들만이 전선을 이탈한다는 것은, 정규직으로서의 자신의 더 나은 삶에 대한 추구를 끊임없이 제약받게 만들 것이며, 심지어는 언젠가는 스스로도 구조조정 당하거나 다시 비정규직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게 만든다.

    따라서 앞서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투쟁의 사례는 개별적인 것으로만 치부될 수 없는 보다 깊은 의미를 지닌다고 볼 수 있다. 그것은 현재의 비정규직투쟁에서 널리 나타나고 있는 우리 운동의 일반적인 경향, 즉 개별전투와 전체전선 간의 괴리를 잘 보여주는 좋은 사례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즉자적인 ‘정규직화 요구’를 내거는 단위사업장 차원의 투쟁과, 마땅히 ‘비정규직 철폐’를 목표로 삼아야 하는 전체 노동자계급의 투쟁 간의 모순이 날로 격해지고 있는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비정규직 관련 집회 모습(사진=노동과세계)

    ‘정규직화’ 와 ‘제도철폐’ 요구의 대립

    우리는 앞서 현대자동차의 사례를 통해 우리 운동의 개별전투와 전체전선 간에 심각한 괴리가 발생하고 있음을 깨달을 수 있다. 그러나 여전히 이 같은 지적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동지들이 주변에 적지 않게 있다.

    이들 동지들은 시기가 무르익으면 밑으로부터의 투쟁을 동력 삼아 다시 한 번 민주노총을 앞세운 ‘노동악법 철폐투쟁’이 대대적으로 추진될 것이라고 생각하며, 이는 일종의 ‘암묵적 전략‘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 동지들의 이 같은 주관적 바람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비정규직투쟁이 개별 ‘정규직화’를 요구하는 수준을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현실을 부정할 수 없다. 특히 제도투쟁과 개별 단사투쟁의 연계를 실현시켜줄 주체가 부재하다는 사실은 지금 누구의 눈에도 분명하다. 이 같은 상황에서 이들 동지들이 생각하는 ‘암묵적 전략’이 언제 실현될지는 아무도 기약할 수 없다.

    사실 비정규직 문제의 해결을 위해 단사투쟁과 제도투쟁이 병행되어야 한다는 생각은 일찍부터 존재해왔다. 1998년 한라중공업의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비정규직노조 건설 투쟁을 시발점으로 비정규직 투쟁이 정식 시작된 이래, 이 문제는 몇몇 사업장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는 전 사회적 차원의 문제로 간주되었으며, 궁극적으로는 ‘법’이 고쳐지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인식이 사람들의 공감을 얻었다. 그리하여 이 투쟁은 단사 차원에 그치지 않고 민주노총으로 대표되는 전계급적 차원의 투쟁으로 발전하였으며, 마침내는 민주노동당이라는 제도정당의 건설을 통해 정치적으로 해결하려는 노력으로까지 발전하였다.

    김영삼 정권 시기 정리해고제와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에 반대하며 총파업을 수행한 1996년, 1997년의 노동법개정투쟁은, 이러한 의식이 투쟁 초기부터 이미 상당정도 높은 수준으로 존재하였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 투쟁은 이후 ‘민주노동당’을 창립하기 위한 중요한 원동력이 되었으며, 2000년대 들어서서는 민주노동당의 의회진출을 통해 일차적인 결실을 맺었다. 노동자들은 지금도 이 같은 의회진출을 통한 해결방식에 상당한 기대를 걸고 있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이 역사 뒤편으로 사라지고, 그 뒤를 이은 진보정당들도 군소정당으로 뿔뿔이 흩어져 힘이 약화된 지금, 정치권에서의 이 같은 ‘제도투쟁’은 매우 흐지부지해진 실정이다. 이제는 촛불정국의 힘으로 등장한 문재인 정부의 ‘비정규직문제 개선’ 관련한 공약의 이행만을 바라보고 있는 상태이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의 공약이 얼마만큼 실현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우리는 이미 문재인 정권과 똑같은 뿌리의 노무현 정권, 그리고 김대중 정권 등 한국 자유주의 보수정당의 한계를 충분히 경험하였다. 문재인 정권이 집권한 지 일 년이 다 되어가지만, 전교조의 합법성 회복처럼 행정명령만으로도 가능한 노동현안에 대해서조차 미적미적 눈치를 보며 별반 ‘가시적’인 성과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현실은 이 정부에 너무 많은 기대를 하지 말 것을 요구한다.

    또 일부에서는 금년 하반기로 예정된 대법원의 ‘근로자지위 확인소송’에 관한 최종판결에 기대를 걸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이 역시 노동자에게 다소는 유리할지 몰라도 전체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선 별반 도움이 되지 않는 ‘애매모호’한 절충적 판결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 결코 총자본에 불리한 즉각적이면서도 분명한 효력을 갖는 판결이 나오지는 않을 것이며, 모호한 내용을 통해 자본가들이 충분히 시간을 가지고 지연작전을 펼치거나 무시하는 태도를 보일 수 있는 여지를 많이 남겨둘 것이다. 설령 이 판결에서 ‘의외의 수확’이 나올지라도, 이렇듯 ‘근로자지위 확인소송’과 같은 부분적 사안의 성과만으로는 노동자계급이 비정규직문제 전반의 의미 있는 승리를 거두기는 어렵다고 할 것이다.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전선

    지금 전국적으로 완강하게 장기투쟁을 수행 중인 사업장이 한 두 개가 아니다. 4년 차의 울산과학대 청소노동자들의 투쟁, 3년 차의 현대자동차 촉탁직노동자 정규직쟁취 투쟁, 3년 차의 구미 아사히노동자 투쟁, 100일을 넘어선 파인텍노동자 굴뚝농성 투쟁 등 전국에는 현재도 수백일 심지어는 수년간 지속된 투쟁이 끊이지를 않는다. 이러한 싸움들은 각각으로 보면 세계 그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을 정도의 완강한 투쟁들이지만, 그러나 고립 분산적이기 때문에 자칫 각개격파 당하기 십상이다.

    울산과학대 청소노동자 집회 모습(울산저널)

    필자가 최근 만난 울산과학대 청소노동자 한 분은 이렇게 질문한다. “요즘 싸움은 왜 한 번 시작하면 끝도 없이 길어지는지 모르겠어요. 과거에는 1백일만 되어도 장기투쟁으로 보았는데 요즘은 일 년 넘기는 게 예사에요.” 이분들은 대부분 육십을 넘기셨는데, 집에서 손주의 재롱을 즐길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교문 앞에서 천막을 치고 학교당국을 상대로 이미 3년9개월째 농성중이다. 이 분들의 질문에 활동가들은 반드시 답을 하여야 한다.

    필자는 현재 누구도 전선 전체에 대해 책임지려 하지 않으면서, 그냥 관성대로 자신이 처한 위치에서 눈앞의 싸움만 계속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마치 개별투쟁만 열심히 하면 전체의 문제는 누군가가 해결해 줄 것 같은 태도이다. 이러한 무책임한 상태는 빨리 종식되어야만 한다. 필자가 볼 때 지금 우리 운동의 문제는, 우선 앞서도 언급하였듯이 주체의 문제로 요약될 수 있다. 한국의 비정규직 투쟁이 객관적으로는 제도철폐 투쟁으로의 상승을 요구받고 있지만, 현실에선 그것을 수행할 주체가 명확하지 않다. 그리하여 현실 투쟁은 기껏해야 개별 단사 차원의 혹은 지역과 공단 차원의 ‘정규직화 요구’에만 매달리고 있다.

    이 같은 싸움은 비유하자면 몸통은 전혀 건드리지 못한 채 문어발 한두 개 정도 잘라내는 식의 싸움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싸움에서 적들은 필요할 경우 조금만 양보해도 되지만, 우리는 그 ‘작은’ 성과를 위해 온갖 죽을힘을 다 쏟아내야만 한다. 결국 적의 급소를 건드리지 못하는 싸움은 스스로 제풀에 지쳐 나가떨어지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왜 지금 시기 이처럼 전선의 책임주체 부재로 인해 비정규직 투쟁이 표류하는 문제가 생기는 것일까? 이 모든 것을 단지 민주노동당의 해체라는 우연의 탓으로만 돌릴 수 있을까? 그것은 분명 중요한 원인 중의 하나임을 부정하지는 않겠다. 6·25 전쟁 후 최초로 노동자가 주축이 되어 창당되었던 민주노동당은, 한 때 지지율이 20%에 육박할 정도로 제도권투쟁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물론 정파 간 연합으로 탄생한 민주노동당은 다른 한편에선 각종 파벌들의 내부 알력과 야합 때문에 애초부터 많은 약점을 갖고 있었다.

    그중 민주노동당의 한계 중에서 가장 큰 것으로는 무엇보다도 당시 이미 노동운동 차원을 넘어 한국사회 전반의 최대 현안으로 등장한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중시가 부족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 문제에 당의 사활을 걸고 전력투구하는 자세가 필요하였지만, 평소 선거활동에만 주력하고 현장 활동을 등한시한 민주노동당은 그러지를 못했다. 그것은 근본적으로는 한국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당 관계자들의 불철저한 인식과 관련이 있다. 과연 한국사회에 있어 비정규직 문제가 차지하는 위상은 무엇인지, 그리고 이 같은 심각한 비정규직 문제를 단지 의석의 단계적 확대 전략에 기대어서 해결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부족하였다. 이점은 민주노동당이 해체된 것이 단지 우연적인 사건만은 아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비정규직 투쟁과 관련한 우리 운동의 두 번째 문제는 싸움의 ‘대상‘이 누구인지, 누구를 타격해야 할지가 불명확하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우리는 부분적 요구에만 매달린 채 진작 적들의 ‘몸통’은 전혀 건드리지 못하고 있으며, 그 때문에 적들은 별반 아픔을 느끼지 못하고 느긋이 싸움을 즐기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혹자는 현재 싸워야 할 대상이 누구인지 불명확하다는 필자의 지적에 이의를 제기할 것이다. 예컨대, ‘원-하청’ 관계에서 파생되는 불법파견 문제의 경우 싸움의 주 대상은 원청 대기업이 될 것이고, 또 지역공단의 경우 공단 내 입주기업들이라는 것이다. 이 말은 겉으로는 맞을 수 있다. 즉 개별적 투쟁 차원에서 볼 때만 그러하다는 것인데, 그러나 앞서 얘기한 대로 비정규직문제는 이처럼 개별적 투쟁만으로 해결 될 수 있는 사안은 결코 아니다. 만약 우리가 전체 제도철폐투쟁을 목표로 할 경우라면 과연 그 싸워야 할 대상은 무엇이란 말인가? 우리는 한때 잘못된 ‘법’이라고 생각하고 노동악법을 고치기 위하여 싸워왔다. 하지만 ‘법’은 우리의 싸움 상대가 될 수는 없다. 즉 법 문구 자체와는 투쟁할 수 없다는 것이며, 무언가 구체적인 실체가 있어야만 한다.

    그렇다면 그 법을 만든 보수정치인이나, 그들 정치인에게 돈을 대주는 자본가들은 어떠한가? 이는 뭔가 구체적 실체에 가깝다는 느낌을 주기는 하지만 여전히 미흡하다. 만약 보수정치가나 자본가가 맞다고 한다면 이들은 또 어떠한 정치집단이며 어떤 자본가계급에 속하는 사람들인가? 이미 전 지구적 차원의 초국적 자본이 운동하고 신자유주의가 판치는 세상이기 때문에, 전 세계 자본가계급을 상대로 싸워야만 하는 것일까? (실상 ‘신자유주의’ 탓만을 강조하는 자들은 이렇게 생각한다!) 문제가 간단치 않음을 알 수 있다. 이 문제를 올바로 해결하기 위해선 한국사회의 비정규직 문제의 진정한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를 그 본질부터 규명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은 다음 회의 과제로 삼기로 하자.

    종합하자면, 지금 ‘비정규직 투쟁’의 방향이 표류하고 있는 것은 그간 십년 넘게 전개해온 한국의 비정규직 투쟁에 있어 무언가 근본적 결함이 존재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 핵심은 앞서 지적한 것처럼 주체와 대상의 문제로 집약될 수 있으며, 이는 한마디로 우리가 아직도 한국 ‘비정규직문제’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즉 본질을 모르기 때문에 진정한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것이며, 우리가 싸워야 할 ‘대상’ 또한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포착하지 못하는이다. 이렇게 본다면 앞서 투쟁주체가 불명확하다는 지적도 따지고 보면 우연이 아니다. 투쟁의 ‘대상’을 모르는데 그에 맞설 ‘주체’가 어찌 제대로 형성될 수 있다는 말인가?

    이번 회를 마치기 전에 민주노총의 현행 ‘비정규직 조직화’ 전략과 관련한 문제점을 잠깐 짚고 넘어가도록 하자. 그간의 자료를 보자면 민주노총의 ‘비정규직 조직화’의 방향이 잘못 잡혀있음을 알 수 있다. 민주노총은 현재 자신의 낮은 조직률 때문에 노동조합의 대표성 위기에 휘말리면서 사회·정치적 영향력의 축소를 겪고 있다. 민주노총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 ‘미조직 노동자 조직화의 한 방안‘으로 비정규직 조직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민주노총,<비정규노동자 조직화방안 연구>, p473) 즉 민주노총은 비정규직에 대한 조직화에 대해 그 목적을 ‘민주노총의 조직률을 높이는 것’으로 설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비정규직이 한국처럼 상식을 초월하여 광범위하게 존재하는 조건에서는, 단사 비정규직노조든, 하청서열 노조든, 지역노조든지 간에 ‘정상적인’ 노조활동은 사실상 거의 불가능하다. 민주노총이 그간 적지 않은 노력을 쏟았음에도 불구하고 왜 전체 조직률이 여전히 10%안팎에서 맴돌고 있는지를 곰곰이 새겨 볼만 하다.

    필자는 그것이 민주노총이 비정규직문제를 소홀히 하면서 대기업 정규직만을 중시하였기 때문이라고 하는 비난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비정규직 조직화의 ‘기본’ 목적이 애초부터 ‘비정규직 철폐’와 관련해서 설정되었어야 하며, 활동의 중심 역시 일관되게 그 같은 목적을 실천하는 데 두어졌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그 경우 비정규직의 조직화와 노조건설은 그 싸움을 진행하기 위한 ‘진지’ 확보 측면에서만 진정한 의미를 갖는다.

    ‘조직’이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며 어떤 목표를 체계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도구일 뿐이다. 비정규직 문제에 있어 그것은 궁극적으로는 ‘제도철폐’ 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그런데도 단순히 ‘노조 조직률 높이기’로 설정할 경우 이는 자칫 정상적 상황에서 노조를 세우는 사업과 혼동될 우려가 있다. 이 경우 초점이 ‘비정규직제도’ 자체의 철폐 혹은 노동악법 철폐가 아니라, 현재의 열악한 조건을 인정한 상태에서의 비정규직 노조의 건설과 유지에 놓이게 된다. 이렇게 되면 ‘조직문제’ 자체에 우리의 소중한 정력이 지나치게 허비될 우려가 있다. 알다시피 자본의 중요한 통치전략으로서의 비정규직 제도의 활성화는 노동자들을 시·공간적으로 분산시켜 놓기 때문에, 우리가 만약 일단 그 같은 조건을 인정(기정사실화)하게 되면 그 다음의 조직화 작업은 쉽지가 않게 된다. 이 때문에 그 같은 조건 위에서 전개하는 민주노총의 조직화사업은 당연히 노력에 비해 별반 뚜렷한 성과가 나타나지 않는다. 이 또한 민주노총이 현재 비정규직문제에 있어 전선 전체에 대한 응당한 책임을 방기한 채 국부적 사업에만 매달린 결과이자, 그 후퇴적인 모습의 반증이라 할 수 있다.

    비정규직 문제에 관한 필자의 연재가 계속될수록 이후 분명해질 것이지만, 이와 관련한 전선 책임주체의 형성은 오직 ‘새로운 정치세력화’의 형태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민주노총은 과거 민주노동당 결성에 있어서 중심적인 주체로서의 역할을 수행하였듯이, 앞으로 비정규직 문제의 해결을 위한 새로운 정치세력화에 있어서도 중심주체로 나서야만 하며, 그럴 경우라야 비로소 자신의 위상에 걸 맞는 책임을 다한다고 할 수 있다. (다음 회에 계속)

    필자소개
    북경대 맑스주의학원 법학박사 , 노동교육가, 현재 민주노총 정책연구원 정책자문위원, 맑스코뮤날레 집행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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