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의당-민평당 공동교섭단체,
    진보 성장에 도움 안 되고 실익도 미약
        2018년 03월 12일 11:27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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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의당 의원총회에서 민주평화당의 공동교섭단체 구성 제안에 대해 적극적으로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정했다. 이후 당원 의견 수렴과 당 내 절차를 거쳐 최종 확정될 예정이지만 당 지도부의 입장은 적극 추진으로 기울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진보진영에서는 중요한 정치적 의제이고 정의당 내외에서 찬반 의견들이 있을 거라고 본다. 레디앙은 이 의제와 관련한 적극적 토론의 공간을 제공할 생각이다. 먼저 일주일 정도 이전에 자신의 페이스북에 공동교섭단체 구성에 대해 반대 입장을 비교적 자세하게 올린 양경규 전 노동정치연대 대표(전 민주노총 공공연맹 위원장)의 글을 동의를 얻어 게재한다. 찬성 의견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게재할 생각이다. 현재의 진보진영은 토론과 논쟁의 과잉이 아니라 결핍이 문제이다. 찬성과 반대 또는 기타의 의견에 대해, 당원이든 아니든, 지도부이든 평당원이든 적극적으로 발언하기를 바란다. 기고 의견이 있으면 webmaster@redian.org로 보내주시면 된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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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 10월 정의당 당대회 자료사진(사진=정의당)

    민주평화당(민평당)이 교섭단체 구성을 공식 제의했고 정의당이 공식 논의하겠다고 한다. 그런데 그 수사가 긍정적인 듯하고 또 언론도 그렇게 될 것 같다고 보도하는 것을 보면 그저 논의만은 아닌 모양이다. 정의당원으로서 참으로 당혹스럽다. 조금 긴 글이 될 듯하다.

    1.

    대체적으로 실리와 명분, 혹은 전술과 정체성 문제로 접근하는 것이 일반적인 의견들인 듯하다. 실리적으로는 이익이 되는데 명분이나 정체성에 우려가 있다는 이야기들이다. 거기 한술 더 떠 정의당이 정치를 좀 할 줄 알아야하는 것 아니냐고 안팎에서 훈수를 두는 사람들도 있다.

    2.

    국회 운영에 대한 주도적 참여로 정의당의 위상을 높일 수 있다는 점. 상임위원장과 간사를 배정 받아 정의당의 역할을 크게 할 수 있다는 점, 의회 내의 전술을 다양하게 구사하고 특히 선거법 개정에서 일정하게 우리 의견을 반영할 수 있는 통로를 가질 수 있다는 점. 현재 교섭단체가 민주라는 개혁과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 두 보수 교섭단체이니 민평-정의 교섭단체 구성은 개혁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점 등이 실리로 거론된다.

    3.

    이런 측면들이 실제 실리가 되는 것인지 판단해 보아야 할 것 같다. 정의당에게 가장 큰 실리는 진보정당으로서의 성장이다. 그래서 현재의 논의가 실리와 명분, 혹은 정체성을 놓고 대립적으로 논의될 성질의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정치적 유연성이 진보정당의 성장에 도움이 된다면 검토할 수도 있다고 본다. 합법적인 공간에 있는 의회 내 정당으로서 교조적인 언술과 행동만으로 진보정당의 역할을 다했다고 하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다. 판단의 가장 중요한 잣대는 민평당과의 교섭단체 구성이 그 발판이 될 것인지를 판단하면 되는 일이다.

    4.

    실리는, 잘만하면 교섭단체 대표도 될 수 있고 상임위원장 한 자리도 배정받고 간사를 배정받아 국회 운영에서 일정한 역할을 확장하고 이를 통해 정의당의 위상을 제고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리라면 실리다. 그런데 교섭단체 대표가 된들 민평-정의 교섭단체 대표이고 그 한계는 정체성의 차이로 분명할 것이다. 또 민평-정의 대표로 규정되어 정의당의 이름은 실종될 개연성이 높다. 물론 교섭단체 대표를 민평당이 양보하지도 않겠지만. 의석 6석의 정당이 상임위원장을 배정받는 것이 의원의 이름을 날릴 수는 있겠지만 오히려 국회 운영에서 파행이 거듭되거나 아니면 진보정당으로서 비판의 대상이 되는 일에 책임을 지는 일이 발생할 것이다. 현재 국회의 운영을 보면 빤한 일이다. 간사를 배정받을 수 있으나 당대표, 원내대표, 3선의 대선후보 등이 간사를 맡는 것은 적절치 않아서 간사의 수도 적고 또 그 역할도 얼마나 효율적으로 수행할지는 의문이다.

    5.

    선거법 개정을 위해서라면 악마와도 손을 잡아야 하는데 교섭단체를 구성하면 유리할 것이라고 말한다. 선거법 개정은 교섭단체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당이 사활을 건 당략과 관련된 문제이고 특히 민주와 자한당이 키를 쥐고 있는 구조에서 교섭단체 구성이 결정적인 교두보가 될 것 같지는 않다. 또 원내 교섭단체의 구조가 진보2 보수2가 되어야 된다고 내세우는 민평당의 명분은 실제로 민평.정의 교섭단체가 민주당에 종속되는 구조를 만들 것이고 이는 정의당을 매번 고민스러운 구조에 처하도록 만들 것이다. 민평당과의 최소한의 정체성 확인도 어려운 구조에서 교섭단체별 협의에서 정의당이 무슨 수로 민평당과 민주당을 넘어서며 진보적 내용을 관철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6.

    민평당은 정체성을 서로 인정하고 각기 개별 당으로서의 활동은 존중하고 그저 의사일정을 포함하는 국회 운영에 대한 것에서만 힘을 합치기 위한 것이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더욱 교섭단체 구성에서 얼마나 실리가 있는 것인지 의심스럽다. 그 정도의 실리를 위해 교섭단체를 구성하는 것이 그렇게도 정의당에 필요한 일인가?

    7.

    민평당과의 교섭단체 구성은 정치적 불안정성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지방선거 결과에 따라 정치 지형은 변화의 가능성이 있다. 지방선거 이후 양당체제로의 회귀가능성이 돌고 있다. 민주당이 승리하면 승리하는 대로 아니면 부진하면 부진한 대로 민평당은, 그리고 민평당의 의원들은 민주당의 정국 구상의 종속변수에 불과한 상황이다. 의원 1~2명만 탈당해도(바른미래당에서 제명을 요구하는 3인은 논외로 하고) 교섭단체는 소멸된다. 가치 중심의 정당이 아닌 민평당의 구조상 이런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교섭단체를 구성한 부분에 대해 민평당이 정치적 책임을 가질 리도 없고 오로지 의원 개개인의 정치적 이해가 우선할 수밖에 없는 구조에서 이런 불안정하고 별로 실리도 없는 교섭단체를 고민해야 될 이유가 있는가? 한 번 해보고 아니면 말자라는 의견도 있던데 이 문제는 한 번 그렇게 된 이상 정의당에 지워지지 않는 낙인이 될 것이다.

    8.

    물론 아무런 실리가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실리라는 것이 별로 크지 않다는 것이다. 적어도 실리를 이야기하려면 이후 지금의 5% 내외의 지지율을 넘어서 두 자리 수의 지지율을 갖는 진보정당으로 가는 것이어야 한다. 위에서 이야기한 것들이 과연 이를 담보하고 있는가? 아니라고 본다. 더구나 치러야 할 비용을 감안하면 그 실리라는 것이 더 왜소해 보인다. 오히려 정의당의 성장에 치명적인 한계가 될 것 같은 우려가 크다.

    9.

    가뜩이나 문재인 정권 아래에서 그 존재감이 없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또 한국 사회에서 새로운 급진적인 요구와 여성, 성소수자, 청년, 비정규직 등 다양한 분야에서의 급진대중의 기반이 형성되고 있는 상황에서 그 어느 때보다 진보정당으로서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는 것, 그것이 정의당에게는 가장 큰 실리다. 정체성의 문제는 그저 명분이 아니라 당의 성장을 위해 가장 큰 실리이다. 5% 지지율 정의당에게 실리와 명분 혹은 정체성은 분리되는 것이 아니다. 교섭단체를 통해 존재감을 확인시키고 국민적 지지를 높여 보겠다는 생각은 민주당보다도 오른쪽으로 평가되는 민평당과의 이미지와 혼재되면서 정의당의 존재감은 민평당의 파트너로서의 존재감만 부각되지 진보정당으로서의 독자적 존재감은 오히려 반감될 것이다.

    10.

    지방선거에서도 치명적이다. 민평당의 이미지, 즉 지역정당, 민주당의 개혁에 대한 안티정당, 구태의 정치 등과 겹쳐지며 정의당이 갖고 있는 그나마의 진보적 이미지마저도 퇴색될 것이다. 교섭단체 구성을 일반국민은 합당과 분리해서 사고하지 않을 것이다. 지방선거에서 진보적 대중이 정의당을 선택하는데 주저하게 만들 것이다. 민평당과의 자연스러운 선거연대? 민평당 지지자들이 정의당을 찍어주고 반대의 경우 정의당 지지자들이 민평당을 찍을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당의 정체성과 지지 대중이 너무나 다르기 때문이다. 그럴 경우 민주당만 좋은 일이 생기지 않을까 싶다. 정의당 후보들은 진보정당의 후보가 아니라 민주당이나 민평당의 아류라는 인식 속에서 고전할 것이다. 진보후보로서의 자긍심도 약해지지 않을까?

    11.

    진보정당으로의 정체성의 상실에 따라 진보정당운동에서 주도적인 지위를 놓치게 될 것이다. 당 밖에서는 정의당에 대해 또 다른 부정적 알리바이를 만들 것이다. 대선에서 노동이 당당한 나라를 내세움으로써 일정하게 극복한 진보정당으로서의 자신감과 정체성을 단번에 상실할 우려가 크다. 민주노총이나 전농 등 대중단체 내에서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정의당에 대한 비판적인 기류가 확산될 것이다. 그 틈을 뜷고 민중당을 비롯한 다른 진보정당들은 조직화된 대중적 지지기반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노력을 해나갈 것이다. 민주노총과 산별, 전농 등의 각종 회의 단위에서 노동자 농민 당원들이 정의당을 변호하고 대중적 지지 기반을 확장하는데 장애가 될 것이다. 정의당은 진보정치의 중심으로 진보정치세력과의 연대도 좀 고민했으면 싶다.

    12.

    이 논쟁을 진행하는 것 자체가 당에 심각한 파쟁을 불러 오고 상처를 남길 것이다. 이는 어떤 실리와도 비교할 수 없는 부분이다. 이미 현실에서 이런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탈당, 지도부에 대한 비판, 당원간의 분열 등이 나타날 것이다. 물론 진보정당은 중요한 진로를 결정하기 위해, 또 다른 성장과 도약을 위해 필요하면 대가를 치러야 한다. 그런데 이러한 대가를 치러야 할 만큼의 가치와 실익이 있는 사안인지 참으로 의심스럽다. 공론화를 통해 논의를 모으고 당원총투표를 하겠다는 것은 이러한 분란을 더욱 확장시킬 뿐이다. 논의를 확대하는 것은 의원단이나 지도부가 이를 추진하겠다는 의사표시이다. 공론화하지 말고 당 지도부 차원에서 조속히 거부의 입장을 정리해야 한다.

    13.

    이 사안이 정의당의 중요한 문제로 대두된 것은 당의 지도부와 의원단의 책임이 크다. 당의 지도부가 교섭단체 구성에 대해 일정하게 긍정적인 신호를 보냄으로써 이 문제는 당내에 심각한 문제로 확장되었다. 의원들의 경우 확실히 교섭단체 구성은 이득이 많을 것이다. 의원으로서 존재감을 더 발휘할 수 있을 것이고 그렇게 존재감이 확장되면 당의 성장에 도움이 된다고 주장할 것이다. 정의당의 경우 의원의 역할이 당의 지지를 확장하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적어도 이 건과 관련해서는 의원 개인의 실리에 비해 당의 실리가 크지 않고 오히려 당에게 마이너스가 될 것이다. 의원들이 당을 위해 복무하는 것이 아니라 당이 오히려 의원을 위해 희생하는 꼴이다. 지도부나 의원 개개인이 자기 중심으로 사고하고 있지 않은지 우려스럽다. 의원 개개인은 물론 당 지도부 모두는 분명하게 이 문제에 대해 자기입장을 밝혀야 할 것이다.

    필자소개
    정의당 당원. 전 노동정치연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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