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극기 어른들도 참여한
    정의당 이정미 대표 강연
    [기고] 행패와 난동 그리고 변화
        2018년 03월 07일 01:1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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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의당 대구 북구지역위원회와 북구풀뿌리정치네트워크가 이정미 당대표의 강연회를 준비했다. 강연 홍보 현수막이 거리에 걸리자마자 선관위에서 연락이 왔다. 또한 몇 사람은 행사 준비단체가 어디냐며 항의를 하기도 했다. 지방선거를 앞둔 시점이라 긴장이 걸린 것이다. 항의의 주된 이유는 이 대표가 주민들을 선동한다는 것이었다.

    강연회는 지난달 26일 날이었다. 오전 9시쯤 복지관 관계자로부터 급한 전화가 왔다. 대형 태극기를 든 어른이 강연회를 막겠다며 난리법석이라는 전갈이었다. 생각하지도 못한 상황이 발생했다. 갑자기 강연회가 제대로 진행될까 우려되기 시작했다.

    얼른 복지관으로 향했다. 내가 명색이 구의원인데 대화로 해결될 것이란 희망을 갖고 달려갔다. 그런데 복지관에 도착했을 땐 수습이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어른이 태극기를 흔들며 흥분된 상태로 소리를 지르며 윽박지르고 있었다. 대화 자체가 불가능했다. 복지관 직원들과 해결 방법을 찾아 봤지만 어쩔 수 없었다.

    정의당 소속 구의원이라고 밝히자 어른은 “여기가 어딘데 정의당 대표가 온다는 거냐”며 “절대 강연회를 못하게 하겠다”고 했다. 나도 화가 치밀어 올랐다. 정상적으로 대관을 해서 강연회를 진행하는데 무엇이 문제냐고 따졌다. 어른은 “그냥 정의당이 싫고, 이석기 당이 싫다”는 것이다. 해명을 해도 소리만 질렀다. 경상도 말로 ‘땡깡’ 그 자체였다. 내가 “강연회를 방해 하면 문제가 된다”고 했더니 “그럼 나를 구속시켜라“고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어떻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서 좀 더 기다려 보기로 했다.

    점심쯤에 다시 복지관을 찾았다. 여전히 복지관 현관에는 태극기가 휘날리고 있었다. 점심 이후에 7,8명의 어르신들이 더 합세한 상태였다. 한 어르신은 “우리도 카톡으로 다 연락받고 왔다”며 “나라가 망하고 있는데 뭐들 하느냐”며 큰 소리를 질렀다. 어른들 사이에서 오고가는 얘기를 들어보니 이정미 대표와 이정희 통합진보당 전대표가 같은 인물로 치부되고 있었다. 또다시 설득에 실패했다. “어떻게 하지. 강연회 장소를 변경해야 하나”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저녁시간에는 그만 두겠지 하며 뒤돌아 설 수밖에 없었다.

    5시 30분 쯤 다시 복지관에 갔다. 어른들이 15명 정도로 불어난 상태였다. 복지관이 난장판이 되었다. 태극기를 든 어른이 큰 소리로 “전부 연락해서 7시까지 다 모이도록 해”라고 말했다. 분위기가 점점 더 격앙되고 있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태극기부대의 모습과 다를 바가 없었다. 할머니들도 대거 합세했다. 어른들은 욕설도 쉽게 내뱉었다. 기분이 많이 상했지만 행사 때문에 참을 수밖에 없었다.

    계속 팽팽한 대결이 이어지면서 강연회를 취소하든가, 어른들을 설득하든가 해야 했다. 잠시 감정을 추스려서 다시 물었다. “어르신, 이정미 대표가 어떤 내용을 얘기할지 듣지도 않고 반대를 하시냐”고 했더니 “주민들을 선동해서 빨갱이로 만들기 때문에 반대한다”고 했다. “그러면 직접 강연을 들어보시고 판단하면 되지 않습니까”라고 했더니 “그럼 여기 온 사람들도 주민인데 한 번 들어보자”고 말했다. 행사를 진행하기 위해서는 어른들과 타협점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어른들도 강연회에 참석하기로 했다. 이렇게 되면 이 대표의 강연회 내용도 변경할 수밖에 없었다. 또한 강연회 취지도 희석될 수밖에 없었다. 어쩔 수 없이 ‘태극기 어른과 정의당 당원, 북구 주민’들이 함께 참여하는 강연회를 진행키로 했다. 초유의 일이 발생한 것이다.

    7시쯤 문제가 또 발생했다. 20여명으로 늘어난 어른들이 강연에 참석한다면서 행사장을 사전 점거한 것이다. 당원들과 주민이 한 편이 되어서 어른들과의 사이에서 큰 소리가 오고갔다. 어른들의 소란으로 강연은 30분 정도 지체됐다. 일부 어른은 강연 내용을 녹음해서 문제가 있다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협박하기도 했다. ‘강연이 제대로 진행이 될까?’ 의문은 떠나지 않았다.

    드디어 이 대표가 강연장에 도착했다. 힘찬 박수소리가 터졌다. 하지만 어른들은 그냥 조용히 지켜보기만 했다. 이 대표가 어른들에게 공손하게 인사를 했다. 먼저 지방선거에 대한 얘기로 시작됐다. 이어서 정의당의 정치개혁 방안과 지방의회의 변화에 대해 하나하나 얘기했다. 정치 얘기 자체를 거부했던 어른들이 조용해졌다. 소란 때문에 강연을 이어갈 수 있을까 했던 기우는 사라지기 시작했다. 강연이 10여분이 지나자 어른들은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도 보였다. 물론 이 대표가 어른들에게 쉽게 다가가도록 재치 있는 단어를 선택하고 내용도 쉽게 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강연이 끝날 때까지 이런 분위기가 이어졌다.

    드디어 강연이 끝났다. 곧이어 질문을 받는 시간이 다가왔다. 그런데 이 대표는 질문을 받지 않았으면 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강연 분위기가 좋아서 몇 사람만 질문을 받기로 했다. 가장 먼저 태극기를 들고 있던 어른이 손을 번쩍 들었다. 잠시 긴장감이 흘렀고 숨을 죽이게 했다. 그 이유는 우려의 질문을 할까봐 걱정이 앞섰기 때문이다.

    그런데 긴장도 잠시였다. 이 어른은 느닷없이 “국회의원에게 200여 가지의 특권이 있다는데 그 중에서 가장 먼저 없애야 하는 특권이 무엇이냐”고 질문을 했다. 또 다른 어른은 “심상정, 노회찬 의원 등이 TV에 나와 토론을 할 때 보수적인 인사의 발언도 존중했으면 좋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에 이 대표는 “국회의원들의 특권 중에서 특별활동비가 가장 큰 문제라며 정의당은 특권을 내려 놓겠다”고 말했다. 또한 “앞으로 토론회에서도 서로 존중하겠다”고 말했다. 박수가 쏟아졌다. 반전이었다. 어른들이 생각했던 ‘이 대표가 주민들을 선동해서 빨갱이로 만든 내용이 없었기 때문’인가 고민되기도 했다.

    순간 “이게 뭐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질문시간이 끝났다. 할머니 몇 분은 이 대표에게 다가와 손을 꼭 잡고 사진도 찍자고 하셨다. 또 한 할아버지는 “옳은 말만 했다. 여기 온 사람들 다 정의당 편이 됐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 대표가 강연 후에 페북에 올린 글이다. “저도 처음 겪은 일이긴 하지만 배제하지 않고 진심으로 대해드린 결과는 나쁘지 않았습니다. 물론 언제나 이런 상황이 펼쳐지진 않겠지만. 상황은 주도할 때 해결책도 열리는 법이라는 교훈을 다시 새깁니다”라고 올렸다.

    다음날 의회로 출근을 했는데 당일 강연회 과정이 공무원들 사이에서도 좋게 회자되고 있었다. 이뿐만 아니었다. 또한 강연회 날 태극기를 들고 강연회 방해를 주도했던 어른이 나에게 전화가 왔다. 이미 강연 때의 어른이 아니었다. 상냥하고 부드러운 목소리였다. “이 의원님, 노인복지관에 히터가 고장났는데 빨리 수리를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세요”라는 내용이었다.

    어쩌면 이 노인들은 시대가 만든 자화상이 아닌가 생각된다. 진보와 보수, 태극기 부대와의 대결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번 일을 겪으면서 어른들과 공통의 분모를 찾을 수 있겠다는 긍정의 느낌을 받았다. 공통의 분모를 찾아가는 과정의 핵심은 상대를 존중하는 것에 있음을 또한 확인했다. 특히, 동네정치를 하는 정당의 입장에서는 일상적으로 노인들과 소통할 수 있는 다양한 활동을 고민하는 계기가 되었다.

    강연 이후의 기념 사진

    필자소개
    대구 북구의원. 정의당 대구시당 북구지역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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