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총선,
우파 포퓰리즘 정당 압승
[세계] 민주당의 참패, 미미한 좌파
    2018년 03월 06일 01:2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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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진이탈리아(FI)를 이끌고 있는 실비오 베를루스코니가 재기에 성공했지만 상처뿐인 캐스팅 보트를 쥐게 됐다. 4일(현지시간) 실시된 이탈리아총선에서 베를루스코니가 주도하는 우파연합이 36.5%의 지지율을 올리며 총 630석 중에 260석을 획득해 1당의 자리를 차지했다. 우파연합에는 전진이탈리아(100석)와 파시스트의 후예를 자처하는 극우정당인 동맹당(Lega/123석), 이탈리아형제(FDI/32석), Direction Italy(5석)가 참여하고 있다.

4년 전 돌풍을 일으키며 3당으로 화려하게 등장했던 오성운동(M5S)는 32.7%의 지지율을 올리며 221석 획득해 2당으로 한 단계 올라섰다. 단일정당으로는 오성운동이 최고득표율을 올렸다. 집권민주당은 112석(18.7%)을 차지하는데 그쳐 창당이래 최악의 득표율을 기록하면서 3당으로 추락했다. 우파연합은 전진이탈리아 14%, 동맹당 17.4%, 이탈리아형제들이 4.3%의 득표율을 각각 획득했다.

우파연합이 승리했지만 과반의석을 확보하지 못함에 따라 연정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1당을 차지한 우파연합이 연정 구성의 주도권을 쥐게 됐지만 민주당이나 오성운동이 총리 자리를 쉽게 내주지 않을 것으로 보여 상당기간 교착상태가 빠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우파연합 내부도 복잡한 상황이라는 것도 난제다. 피선거권이 없는 베를루스코니는 오랜 동반자인 유럽연합(EU) 의장 출신인 전진이탈리아의 안토니오 타이아니를 총리 후보를 밀고 있지만 우파연합의 한 축을 구성하고 있는 동맹당의 마테오 살비니가 반발하고 나서면서 내분이 일어나기도 했다.

베를루스코니는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득표율(득표수)가 높은 당에서 총리 후보를 맡자는 타협안을 제시했다. 이때만 하더라도 전진이탈리아의 지지율이 동맹당을 앞서고 있는 것을 감안한 타협안이었지만 개표 결과 예상을 뒤엎고 동맹당이 우세한 것으로 나타났다. 추문과 말 바꾸기의 대명사로 악명이 높은 베를루스코니가 순순히 총리 후보를 살비니에게 넘겨줄지 여부도 의문부호가 붙어있다.

우파연합과 오성운동의 양당체제로 재편된 이탈리아

대학 중퇴와 단기일자리를 전전하다 오성운동을 통해 정치에 입문한 31살의 디 마이오를 간판으로 내세운 오성운동은 단일정당으로는 최다득표를 올리면서 사실상 승리자라는 칭호를 획득했다. 오성운동은 그동안 당의 간판이었던 베페 그릴로가 2선으로 후퇴하고 하원 부의장인 디 마이오를 전면에 내세운 것이 적중했다는 평가다. 선거막판까지 1당 자리를 놓고 우파연합과 치열하게 설전을 벌였지만 우파연합의 동맹당이 여론조사를 뛰어넘는 득표를 올리면서 2당에 머물렀다. 연정을 둘러싼 협상과정에서 오성운동이 가장 큰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중간이 오성운동의 디 마이오 대표

집권민주당은 여론조사보다도 낮은 득표율을 올리며 향후 진로를 놓고 입지가 급격히 좁아졌다. 출구조사가 나오자마자 선거 결과에 실망한 렌치 전총리는 패배의 원인이 민주당 지도부의 무능 때문이라고 일침을 놓으며 분란을 좌초하고 있다. 선거법 개정이 실패한 후 총리에서 물러난 렌치를 대신해 총리 자리에 오른 젠틸로니는 안정적인 정부 운영으로 기대감을 모았지만 20%에도 미치지 못하는 득표율을 올리면서 정치생명이 위기에 몰렸다. 일부 이탈리아 언론들은 렌치 전총리가 당을 떠날 것이라는 섣부른 전망을 내놓고 있다.

민주당은 유럽의 추락하고 있는 사민주의정당들의 전철을 그대로 밟고 있다. 허상뿐인 중도표를 잡기 위해 좌파적 색채를 계속해서 지우면서 오른쪽으로 이동한 결과, 당이 누구를 대변하는지 희미해졌다. 탈계급적인 행보를 거듭한 행보의 대가는 극우정당과 포퓰리즘 포괄정당의 급성장이었다.

오른쪽이 그라소 자유와 평등 대표

민주당을 이탈한 좌파들로 구성된 페이퍼정당인 자유와 평등(LeU)은 3.4%(14석)를 얻는 초라한 성적표에 머물렀다. 자유와 평등은 원내대표를 지낸 로베르토 스페란차가 이끌고 있는 민주와 진보운동(MDP), 니콜라 프라토아니의 이탈리아 좌파(SI), 주세페 시발티의 Possible이 하나로 힘을 합치면서 두 자리 수 득표를 목표로 내세웠지만 기존의 좌파표를 결집시키는 전략이 전혀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식상한 기존의 좌파 정치인들을 대신해 반 마피아 치안판사로 명성이 높은 피에크로 그라소를 전면에 내세웠지만 젊은 정치인들을 대거 등장시킨 다른 정당과 달리 많은 나이가 오히려 걸림돌로 작용했다. 당의 유일한 엔리코 로시 토스카나 주지사의 텃밭에서도 참패를 거두면서 당의 존립마저 위태로워졌다.

이탈리아공산당의 후예를 자임하며 결집한 ‘민중의 권력’(PaP)은 1%를 득표하는 성적을 거두면서 향후 진로마저 불투명해졌다. 민중의 힘은 이탈리아 남부지역에서 민중의 집 운동을 주도하던 신예 비올라 카로팔로(Viola Carofalo)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기층 민중들을 파고들었지만 유권자들은 냉정하게 외면했다. 과거 공산당의 기반이 나름대로 남아있는 남부지역 최대도시 나폴리에 중앙당을 설치하는 강수까지 두었지만 유권자들은 오성운동의 손을 들어주었다. 이탈리아에서도 상대적으로 더 높은 실업률과 낮은 소득을 올리고 있다는 점에 기대를 모았지만 유권자들이 선택한 것은 오성운동의 포퓰리즘이었다. 합법정당으로는 전후 최대의 지지율을 기록했던 공산당의 재기는 당분간 불가능할 전망이다. 자유와 평등이 예상보다 낮은 지지율을 올림에 따라 민중의 힘과 향후 제휴 가능성은 과거보다는 다소 높아졌다.

포률리즘에 이탈리아를 맡긴 유권자들

이탈리아의 국가부채는 2조 유로(3천조)를 넘어서면서 그리스에 이어 유럽연합에서 두 번째로 높다. 해마다 이자만 1천억 유로(133조)를 지출하고 있는데다 국민총생산(GDP) 대비 부채비율이 133%를 넘고 있어 해마다 30% 이상씩 부채비율이 증가하고 있다. 스페인에 이어 IMF의 구제금융을 받는 나라로 이탈리아가 지목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청년실업률이 30%에 육박하는 등 경기회복의 조짐이 없는 것도 치명적이다. 유럽연합의 국가들이 이탈리아의 총선을 우려의 눈길로 쳐다보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전진이탈리아의 베를루스코니는 67세로 늦춘 연금수령 시기를 폐지하겠다는 공약을 대표적으로 내세우고 있다. 연금수령액도 월 최저 1천유로(133만원)를 지급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개인과 기업의 단일세율을 현행 30%에서 23%까지 낮추겠다는 감세공약도 내놓았다. 동맹당의 살비니는 단일세율을 15%까지 낮추겠다는 실현 불가능한 공약을 맨 앞자리에 선거기간 동안 올려놓았다. 공약이 계획대로 추진될 경우 수백조의 예산이 추가로 필요하지만 양당 모두 재원 마련의 대책은 제시하지 않고 있다. 살비니는 필요할 경우 재정적자가 GDP의 3%를 초과할 수 없다는 유럽연합의 상한선 규정을 폐지하겠다고 주장하고 있다. 유럽연합을 탈퇴하겠다는 선언이나 마찬가지다.

오성운동 역시 우파연합에 뒤지지 않는다. 디 마이오는 최저연금 780유로 지급이 대표공약이다. 액수에만 차이가 있을 뿐 전진이탈리아도 동일한 공약이다. 하지만 공약의 저작권자는 디 마이오이고 전진이탈리아가 저작권 따위는 아랑곳 하지 않고 그대로 베껴다 액수만 높여버린 것이다. 최저연금과 쌍벽을 이루는 공약은 매달 기본소득 780유로(103만원)를 전 국민에게 지급하겠다는 내용이다. 우파연합의 포퓰리즘을 무색하게 만드는 공약이고, 연금수령자들에게는 북유럽을 능가하는 복지정책으로 보일 수밖에 없었다. 오성운동 역시 재원 마련 대책이 불투명하지만 유권자들은 우파연합과 오성운동의 포퓰리즘에 몰표를 던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탈리아의 총선결과를 유럽연합이 주시하는 이유다.

안개 속에 빠져버린 연정의 승자는

과반의석을 확보한 정당이 없기 때문에 연정은 불가피해졌다. 선거 이전부터 몇 가지 시나리오들이 언론에 보도되었지만 모두 가능성이 낮다는 것이 약점이다.

첫 번째 시나리오는 우파연합과 오성운동의 연정이다. 반 유럽연합이라는 노선을 가지고 있는데다 포퓰리즘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가장 가능성이 높은 시나리오이다. 총리를 누가 맡을 것인가 하는 것이 난제다. 오성운동은 단일정당으로는 1당이라는 점을 들어 총리 자리를 양보할 수 없다는 기세고, 우파연합은 최대의석을 내세우면서 총리 자리는 당연히 자신들의 몫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오성운동이 양보할 가능성도 낮지만 우파연합이 총리 자리를 가져온다고 해도 그 자리가 극우정당인 동맹당의 살비니대표에게 돌아간다는 것이 난제다. 오스트리아처럼 우파정당이 극우정당과 연정을 꾸린 경우는 있지만 극우 총리의 등장은 전례가 없는데다 이탈리아에서는 넘을 수 없는 장벽이나 마찬가지다. 전진이탈리아가 동맹당보다 낮은 득표율을 획득하는 예기치 않은 결과가 나오면서 이런 교착상태가 발생한 것이다. 오성운동과 전진이탈리아의 연정이 현실적인 시나리오지만 모 아니면 도가 다반사인 베를루스코니가 오성운동에게 순순히 총리자리를 넘겨줄지는 미지수다.

두 번째는 오성운동과 민주당의 연정이다. 단일정당 의석수로도 동맹당에 미치지 못한 결과를 받은 민주당이 총리 자리를 요구하는 배수진을 칠 가능성은 낮다. 민주당이 내걸 수 있는 요구조건은 최악의 사태를 피하기 위해 반 유럽연합 노선을 폐기하라는 것이 가장 강력한 무기다. 집권하는 동안 민주당은 유럽연합 탈퇴가 이탈리아의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실감했기 때문에 반 유럽연합 노선 폐기가 협상테이블의 첫 번째 조건으로 올라올 것이 유력하다. 총선을 앞두고 디 마이오 대표가 유럽연합 탈퇴를 묻는 국민투표를 공약에서 제외함에 따라 합의점은 열려 있는 상태다. 하지만 오성운동의 실질적 지도자인 베페 그릴로가 1당을 차지하기 위해 우회로의 선택을 묵인한 것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하지만 베를루스코니와 닮은꼴인 베페 그릴로가 폐기 노선을 반대할 경우 자칫 당의 분열로 이어질 위험성도 존재하는 것이 현실이다. 합의가 이뤄진다고 하더라도 민주당이 연정에 참여하기보다는 우파연합의 소수정부를 선택할 가능성이 높아 5년 동안 혼란이 반복될 수 있다.

가장 낮은 시나리오는 우파연합과 민주당의 연정이다. 정치가 생물이라고 해도 이 경우는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할 수밖에 없다. 반 유럽연합 노선을 동맹당이나 이탈리아형제당이 폐기할 가능성도 없고, 민주당이 극우정당에게 총리를 넘겨주는 것은 단지 시나리오일 뿐이기 때문이다. 민주당과 전진이탈리아만으로는 과반의석에 턱없이 모자라기 때문에 역시 시나리오로의 의미는 없다. 세 가지 시나리오가 존재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어느 것도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것이 이탈리아를 긴 교착상태로 끌고 갈 전망이다. 재선거를 선택하는 길은 남아있지만 선거 결과가 뒤바뀔 여지가 없기 때문에 혼란은 장기화될 전망이다.

322석의 집권당에서 200석 이상을 잃고 3당으로 추락한 민주당의 몰락은 선거전부터 예견됐다. 그동안 실시된 지방선거에서 피렌체 시장 출신인 렌치의 토스카나지역과 나폴리를 비롯한 남부 일부를 제외하고는 오성운동과 전진이탈리아에게 계속해서 의석을 내주었다. 특히 북부지역에서 상당수 의석을 잃은 데다 베네치아는 동맹당에게 1당 자리를 넘겨주었고 상징성이 강한 로마시장을 오성운동에게 내주면서 재집권에 적신호가 켜졌다. 40%에 이르던 지지율은 계속해서 추락해 선거를 앞두고는 20% 초반까지 떨어지면서 3당은 기정사실로 여겨졌다.

유럽 사민주의정당의 전철을 밟은 민주당의 몰락

민주당은 전면비례대표(봉쇄조항 4%)였던 기존의 선거법을 227석(36%)는 소선구제에서 단순 다득표자로 선출하고 403석(64%)은 비례로 선출하도록 개정했다. 민주당이 소선구제를 도입한 이유는 전국적인 기반을 가진 유일한 정당이라는 점에 착안한 것이다. 전진이탈리아의 경우는 베를루스코니의 개인 지지도에 의존하고 있고, 네트워크정당인 오성운동의 지역기반이 허약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전진이탈리아와 오성운동의 경쟁 사이에서 탄탄한 지역기반을 활용해 소선구제에서 다수의석을 차지하면 1당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 민주당의 계산법이었다.

출구조사 결과 민주당의 계산은 완전히 빗나갔다. 토스카나 북쪽은 우파연합의 파란색으로 물들었고, 남부지역은 오성운동의 노란색으로 도배됐다. 소선구의 선거결과만 놓고 보면 민주당은 토스카나의 지역정당으로 전락한 것이다.

2017년 로베르토 스페란차 전 원내대표와 엔리코 로시 토스카나 주지사 등 민주당을 탈당한 백전노장들은 민주와 진보운동(MDP)를 결성한 후 한때 남부지역에서 최고의 지지율을 자랑하던 좌파생태자유(SEL)의 니키 벤돌라가 참여한 이탈리아 좌파(SI)와 선거를 앞두고 중도좌파정당의 재건을 내건 자유와 평등(LeU)을 창당했다. 하원의원만 29명이 창당에 참여했고, 곧이어 상원의장을 맡고 있는 피에크로 그라쏘까지 대열에 합류하자 선거를 앞두고 최대변수로 작용할 것이라는 섣부른 전망도 등장했다.

자유와 평등이 원내진출에 만족하는데 그친 원인은 남발하는 포퓰리즘 공약에 대응하는 차별화된 부재했다는 것을 들 수 있다. 토스카나의 맹주인 로시가 같은 토스카나 출신이 렌치 전총리와의 대결에서 별다른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면서 토스카나에서 저조한 성적표를 받는데 그친 것도 하나의 원인이었다. 무엇보다 민주당과 마찬가지로 기대를 걸었던 남부지역에서 오성운동에게 무기력하게 대응한 것도 저조한 득표의 원인이었다. 그라쏘의 개인인기에 의존한 탓도 컸기 때문에 향후 당 지도부의 재정비가 필수적이다.

유럽의 사민주의정당들과 마찬가지로 민주당의 몰락은 막대기를 오른쪽으로 기울이면서 지지기반이 불투명해진 탓이 크다. 민주좌파(DS)가 민주당으로 탈색할 때만 하더라도 당을 주도한 것은 중도좌파들이었다. 매주 리퍼블리카 광장에서 대중연설을 하면서 전국적인 스타로 떠오른 렌치 피렌체 시장이 대중적인 지지도를 배경으로 당내투쟁을 통해 대표에 오르자 당을 급격히 오른쪽으로 막대기를 구부렸다. 집권이라는 열매를 위해 중도좌파들은 당의 우회전을 외면했다. 렌치가 총리에 오르자 유럽의 사민주의정당들의 전철을 그대로 답습하면서 연금제도의 후퇴, 노동유연화, 복지제도의 축소를 단행하면서 GDP 성장이라는 지표에만 매달렸다. 당이 중도적 자유주의정당으로 전락하는 동안 80만 명의 당원 중에 30만 명이 당을 이탈했다. 대다수가 노동자 당원들이었다.

민주당이 현재처럼 불분명한 색깔의 정당으로 존속하는 한 (극)우파정당들과 오성운동의 경쟁체제는 계속될 것이고 재기는 요원할 전망이다. 그럴수록 노선을 재정비하고 지지기반을 복원하기보다는 새로운 명망 정치인의 발굴을 통해 단기간에 지지율을 회복하려는 시도가 계속될 가능성도 다분하다. 자유와 평등 역시 화려한 명망가들만 전면에 내세우는 방식으로는 현재의 지지율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민주당과 자유와 평등이 재도약하기 위해서는 자신들의 색깔을 분명하게 드러내고 지역을 중심으로 전진기지를 강화하는 것이 출발점일 것이다.

필자소개
인문사회과학 서점 공동대표이며 레디앙 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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