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사회는 누구에게 빚을 지고 있는가
    [에정칼럼] 핵발전소 비정규직 해고노동자 J에게
        2018년 03월 06일 11:04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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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칠 전 J에게 연락이 왔다. 영광과 광주를 오가며 생활하고 있는 J는 가끔 서울에 올라올 일이 생기면 차 한 잔 마시자는 연락을 하곤 한다. J를 처음 만난 건 지난 2014년 가을의 어느 날이었다. 당시는 ‘한-일 핵발전 노동 워크숍’을 준비하면서, 국내 핵발전 노동의 구체적 실상을 소개해 줄 핵발전소 노동자를 찾아 동분서주하던 때였다. 몇 달에 걸쳐 공공노조를 비롯해 평소 안면 있는 노동운동 선배들에게 자문을 구하고, 연결을 부탁하였는데,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그때 우연히 연결된 이가 영광핵발전소 방사선안전관리 분야에서 해고된 비정규직 노동자 J였다.

    핵발전소 안전관리 분야의 외주화

    J가 들려준 핵발전소의 현장은 충격 그 자체였다. 그러리라 짐작은 했지만, 만 명이 넘는 한수원 정규직 노동자는 피폭의 위험이 있는 곳에는 절대 가까이 가지 않으며, 피폭 위험이 높은 발전소의 유지․관리․보수는 하청노동자나 일용노동자들이 도맡아 하고 있었다.

    한수원이 세월호특조위에 제출한 “국내 원자력발전소별 원전 사내하청 및 협력업체 현황(2016.01.)”을 보면, 총 178개의 용역에 8,577명(상주인력 5,237명)이었고, 한전KPS의 하청노동자는 3,724명(상주인력 1,464명)이었다. 참고로 한수원 경영공시에 따르면, 2016년 12월 현재 한수원 정규직 노동자는 11,545명이고, 1인당 평균 연봉은 88,920천원이었다.

    J의 설명에 따르면, 한수원은 용역 입찰을 통해, 3년 주기로 2기의 핵발전소를 묶어 방사선안전관리용역업체를 선정하고 있다. 계약금액이 2백억 원이 넘는 용역인데, 몇 개의 업체가 돌아가면서 수주하고 있었고, 선정과정의 공정성 시비와 짬짜미, 그리고 비리의혹이 매번 반복되고 있었다. 이는 우리사회의 고질적인 적폐의 전형일 뿐만 아니라, 국민의 안전을 볼모로 하는 ‘안전의 외주화’라는 점에서 혁신의 최우선 과제이다.(그러나 아직까지 바뀐 것은 없다!)

    방사선안전관리 노동자들은 발전소 내의 오염도와 방사선 선량을 측정하고, 오염물질을 제거(제염)하고, 작업복을 세탁하거나 폐기물을 처리하고, 작업자들의 피폭량을 확인하는 등 핵발전소의 방사선 안전관리를 위한 대부분의 업무를 담당한다. 피폭 구역에 다가가지 않는 한수원 정규직 노동자와 달리 이들은 핵발전소 구석구석 위험구간을 꿰뚫고 있는 현장 전문가들이다.

    핵발전소 단지마다 J와 같은 방사선안전관리 노동자들이 수 백 명씩 있는데, 이들은 용역사가 바뀔 때마다 재계약을 해야 하는 사실상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자격증을 가진 10년 이상의 숙련노동자들의 연봉이 3천만 원이 채 안되고, 재고용의 불안에 처해 있고, 열악한 노동환경에 노출돼 있으며, 심지어 은행대출마저 여의치 않다고 하소연한다.(그러나 아직까지 바뀐 것은 없다!)

    사진=뉴스타파

    핵발전소 업계의 블랙리스트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J와 같은 노동자들은 용역업체가 교체될 때마다 재계약을 해야 하는데, J는 십수 년 동안 월급 주는 용역회사의 사장이나 간부가 아니라, 핵발전소 안의 같은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한수원 정규직 직원의 일상적인 지휘를 받아 왔다는 것이다. 명백한 불법파견이다.

    2013년 가을 J는 동료 노동자들과 함께 불법파견의 소지가 있다는 취지의 근로자 지위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그런데, 소송을 계기로 한국노총 지부에서는 J 등의 조합원 자격을 박탈하고, 용역사에서는 소송을 했다는 이유로 보직 해임시켰다. 이에 J는 광주지법에 전보관련 가처분신청을 제기해, 전원복직과 정상근무 판결을 받아냈다.

    그러나 지난 2014년 한수원이 방사선안전관리 도급업체를 바꾸는 과정에서 문제를 제기한 노동자들을 해고했다. 이들은 소위 핵발전소 업계의 블랙리스트가 된 것이다. 이때부터 J와 동료 노동자들은 생계를 위한 막노동을 해가며 방사선안전관리 정규직화를 요구하는 1인 시위 등을 지속해가며, 영광과 서울을 오가는 고단한 삶이 시작되었다.

    오늘은 평소와 달리 내가 먼저 J에게 전화를 걸었다. 새로운 소식이 없냐는 질문에, J는 여전하다며 사람 좋은 너털웃음으로 답한다. 함께 해고된 동료 10명 중 현장에 복귀하거나 안정적인 직업을 구한 이는 아직 없냐는 질문에는 웃음기 없이 대부분 막노동으로 근근이 견디고 있다고 소식을 전한다. 또 최근에 동료 하나가 방사선폐기물 드럼통 분석하는 용역회사에 지원했다가 낙방했는데, 그 회사 노조의 아는 이가 J에게 회사 차원에서 소송 관련자임을 알고 있고, 앞으로도 발전소에서 일자리 구하기 힘들 거라고 했단다.

    ‘사회적 가치’는 어떻게 실현되나

    문재인 대통령이 국회의원 시절 발의했다는 ‘공공기관의 사회적가치기본법’이 다시금 주목받고 있고, 새 정부 100대 국정과제 중의 하나로 ‘사회적 가치 실현을 선도하는 공공기관’을 선정했다고 한다. 또 공공부문 정규직화를 추진하겠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적폐청산, 사회적 가치, 공공부문 정규직화 등 문재인 정부의 정책지향에 동의하는데, 허전하고 공허한 느낌은 왜일까? 국정감사장의 증인으로, 뉴스타파 등 언론과의 인터뷰로, 시민단체와의 토론회에서 지난 4년 동안 핵발전소 일선의 부조리함을 지속적으로 문제 제기한 J와 동료 노동자들의 고단한 삶에 대해 나는, 우리는 책임이 없는 것일까?

    오늘까지 J를 포함한 방사선안전관리 해고 노동자 11명의 삶은 지난 정권 때와 그리 다르지 않다. 국가이념을 실현하는 행정 권력을 잡았다는 것이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이러저러한 핑계가 있을 수 있으나, 구체적인 변화의 실체를 보여줄 때, 혁신의 효능감이 생기는 것은 아닐까. 공공기관의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출발, J와 그의 동료들이 핵발전소 안전관리 현장으로 복귀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줄 것을 문재인 정부에 요구한다.

    그리고 이 자리를 통해 J에게 미안하다고, 동료들에게 연대의 마음을 전해달라고, 조금만 더 힘내시라는 응원을 전한다.

    필자소개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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