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는 죽었어도 소송은 끝나지 않았다”
        2006년 04월 06일 07:45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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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가면역질환(루푸스)으로 스테로이드를 장기 복용하던 딸에게 유명 대학의 한의과 교수가 별다른 병이 아니라며 약을 끊게 하고 한약 처방을 내렸습니다. 약을 끊자 상태가 점점 악화되어 사지마비에 이르렀습니다. 뒤늦게 스테로이드를 투약했지만 아이는 실명을 하게 되었고 결국 세상을 떠났습니다.”

    자신의 딸을 진료했던 부산 모 한방병원의 황 모교수를 상대로 낸 민·형사 소송을 7년째 진행중인 임미자씨의 증언이다. 임씨의 딸은 황 모교수와의 소송이 한창 진행중이던 지난 2003년 스무살의 나이로 사망했다.

    그는 “죽은 딸이 황교수를 만나기 전까지는 한쪽 눈의 시력이 남아있던 상황이었고 부축을 하면 몇걸음은 뗄 수 있을 정도여서 다시 학교에 갈 수 있는 날만을 손꼽아 기다려왔는데 황교수를 만난 이후 3년간은 앉지도 걷지도 못하고 대소변도 못가리는 등 뜬 눈으로 밤낮을 살다 하늘로 가버렸다”고 말하며 참았던 눈물을 쏟아냈다.

    의료사고피해구제법 제정을 위한 시민연대가 주최하여 국가인권위원회 배움터에서 6일 오후 진행된 의료사고 피해자 증언대회는 임씨의 눈물섞인 증언으로 인해 숙연해진 분위기속에서 시작됐다.

       
     
    ▲ 6일 인권위 배움터에서 열린 의료사고 피해자 증언대회에서 지난 2003년 잘못된 처방전에 따른 부작용으로 딸을 잃은 임미자씨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임씨는 딸이 혼수상태가 된 뒤 황 교수를 검찰에 고발했다. 그는 검찰조사과정에서 황교수의 처방전이 잘못되었다는 전문가의 소견서에 할말을 잃었고, "지병때문에 그렇게 된걸 나보고 어쩌라는 말이냐"고 큰소리치는 황교수의 태도에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절망을 느꼈다고 토로했다.

    문제의 황교수는 형사 자판에서는 과실치상 벌금 500만원 형을 받았고 민사 1심에서는 재판부로부터 임씨에게 1억5천만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임씨는 “아직까지 아무런 제재 없이 진료행위를 계속하고 있는 황교수를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면서 형사 항고심을 진행중이라고 밝혔다.

    또다른 피해자로 증언에 나선 김정자씨는 “건강하던 20대 아들이 하루아침에 두눈을 실명했다”면서 증언을 시작했다.

    병원측이 아들의 코 속에 있는 혹을 조직검사해야 한다며 억지로 혹을 터뜨렸고 이때 생긴 출혈로 균이 시신경까지 침투했다는 것이다.

    김씨는 “아들은 옷을 흠뻑 적실만큼 출혈이 심했고 온몸을 덜덜 떨면서까지 고통을 호소하는데도 병원은 ‘응급치료 했으니 나아질 것’이라고 말할 뿐”이었다면서 “그대로 열흘 이상 방치되어 끝내 다른 병원으로 옮겼는데 담당의로부터 소생이 불가능하다는 말을 들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김씨는 아들의 실명을 놓고 병원을 상대로 재판을 청구했지만, 병원은 조직검사를 했다는 진료기록을 제출하지 않고 있어 병원의 과실을 입증할 증거가 없는 상태이다.

    이 외에도 병원측이 생체조직 검사를 한다면서 심장부근의 가슴을 5cm만 절개하겠다고 했지만 실제 13cm나 절개하여 과다 출혈로 사망한 최모씨의 사례와 하지정맥류 수술에서 정맥이 아닌 동맥이 묶여 오른쪽 엄지 및 새끼발가락이 괴사된 김모씨 등 의료사고와 관련된 피해자들의 증언이 잇따랐다.

    “의료사고피해구제법 하루빨리 제정되야”

    이날 증언대회에서는 의료사고의 합리적 해결과 피해자들의 피해 구제를 위한 법·제도 정비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계속해서 제기됐다.

    당사자간 합의나 소송으로 해결되는 의료사고는 모든 사건의 내역과 정보를 가해자측인 병원이 움켜쥐고 있어 정보와 힘의 불균형이 심각한 상황이다.

    또한 소송으로 가게 되더라도 의료사고 피해자가 장기간의 소송으로 인한 정신적, 신체적 고통과 고액의 소송비를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어서 의료사고를 소송으로 해결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실제로 지난 1월 의료사고피해구제를 위한 시민연대가 의료사고 소송 기간에 대한 실태조사를 한 결과 의료소송은 평균 26개월이 걸리는 것으로 나타나 일반 소송 평균 6개월보다 20개월 더 오래 걸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의료사고피해규제를 위한 시민연대는 의료사고의 합리적 해결을 위해서는 법·제도적 기반이 되는 의료사고피해구제법의 제정이 절실한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지난 2005년부터 의료사고피해구제법 제정을 위한 국회의원 서명과 캠페인, 서명운동을 진행했고 지난 12월 2일에는 국회 입법청원안을 제출했다.

    이들은 의료사고 피해구제법 청원안의 주요 내용으로 ▲의료책임자가 무과실을 입증한다는 내용의 입증책임전환 ▲의료행위 설명 의무의 법제화 ▲진료기록 작성시간·방법·위변조 금지 법제화 ▲의료사고피해구제위원회 구성 등을 핵심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의료사고피해규제를 위한 시민연대는 입법청원안을 제출했음에도 불구하고 4개월이 넘도록 국회에서 이와 관련된 논의가 없는 데 대해 깊은 유감을 표시하면서 “의료사고가 발생한 것만으로도 힘겨운 당사자들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한 과정을 밟지 않도록 국회가 힘을 써달라”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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