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일 사민당 당원총투표
    ‘대연정 찬성 66%’ 통과
    날레스, 최초 여성 당대표 선출될 듯
        2018년 03월 04일 10:05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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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기민당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5개월간의 교착상태를 끝내며 4선 연임에 성공했다. 사민당은 지난 2주일 동안 46만여 명의 당원을 상대로 기민당과의 대연정을 묻는 우편투표를 진행한 결과 66%의 당원이 찬성표를 던졌다. 당의 청년조직인 유소스(JUSOS)를 중심으로 좌파들은 전국적인 반대운동을 진행했지만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낮은 반대표를 얻는데 그쳤다. 이번 찬성율은 4년전 당원총투표보다 약 10% 정도 낮은 수치다.

    지난해 9월 총선에서 극우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AfD)의 득세에 밀려 임기 중 최저의 득표율을 올리며 정치생명이 위기에 빠졌던 메르켈 총리는 사민당의 대연정을 재차 성공시킴으로서 독일 최초의 4선 연임 총리의 자리에 올랐다.

    통일 당시 평범한 물리학자였던 메르켈은 동독 통일사회당(공산당)의 해체를 주장하는 시민단체에 가담하면서 자연스럽게 정치에 발을 들여놓았다. 기민당의 콜 총리가 여성가족부 장관으로 발탁할 때만 하더라도 “동독 출신의 여성을 상징적으로 배려”한 것이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서독 출신의 기민당 차기 정치인들과의 당내투쟁을 거쳐 당대표와 총리에 오르는 뛰어난 정치력을 보여주었다.

    마지막 임기가 될 가능성이 높은 만큼, 메르켈 총리가 유럽연합(EU) 내에서 과거보다 더 강력한 맏형의 목소리를 낼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1차 타깃은 이탈리아다. 이탈리아는 독일과 프랑스에 이어 유로화 사용이 세 번째로 높은 국가다. 이탈리아는 부채 규모가 3천조를 넘은데다 청년실업율이 30%에 육박하고 있다.

    이런 상황이지만 4일(현지시간) 실시되는 총선에서 포퓰리즘 정책을 남발하고 있는 베를루스코니의 전진이탈리아(FI)는 개인과 기업의 단일세율을 23%로 낮추겠다고 공약하고 있다. FI와 우파선거연합을 꾸리고 있는 동맹당(Lega)의 살비니 대표는 한술 더 떠 15%를 주장하며 역대 최대의 지지율을 보이고 있다. 유럽연합은 국민총생산(GDP) 대비 부채율이 3%를 초과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지지율 1위와 2위를 달리고 있는 우파연합과 오성운동은 이를 무시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전체 유로화의 20%를 사용하는 이탈리아의 혼란과 이탈을 막기 위해서는 독일이 총대를 메야 하는 것이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메르켈의 4선 연임과 사민당 최초의 여성대표의 탄생

    자민당과 녹색당을 상대로 한 자메이카협상이 깨어지고 난 후 메르켈 총리에게는 사민당과의 대연정이라는 마지막 카드밖에 남지 않았다. 재선거라는 선택지가 남아있지만 지지율의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여론조사 결과가 대부분인데다 극우정당인 AfD의 지지율은 오히려 상승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후 재선거를 실시한 전례가 없다는 것도 메르켈에게는 부담으로 작용했다.

    대규모 교착상태를 만든 유권자들은 오히려 사민당과의 대연정에 더 우호적이었다. 4년간의 대연정으로지지 기반을 상당부분 극우정당에 잠식당한 사민당의 지도부들은 총선 때의 공약과는 달리 대연정을 추진하는 쪽으로 선회했다.

    유럽연합 의장을 맡고 있다 사민당의 구원투수로 등판한 슐츠대표는 기대와 달리 전후 최저의 득표율을 올리는 참패를 당했지만 카드가 한 장밖에 남지 않은 메르켈을 상대로 배수진을 치면서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어 갔다. 자메이카협상에서 자민당의 이탈을 가져왔던 디젤자동차의 단계적 생산(사용)금지를 합의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대신, 난민 허용인원을 년간 20만 명으로 제한하자는 기민당의 요구를 수락했다. 사민당의 좌파들은 인원을 제한하지 않아야 한다고 반발했지만 이미 지난해부터 난민 숫자가 20만명 미만으로 줄어들었기 때문에 합의안은 현실적으로 큰 의미가 없다고 응수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반난민 선동으로 급성장하고 있는 AfD를 견제하기 위해 기민당과 사민당 모두 유권자들에게 제스처를 취할 필요성이 작용했다.

    슐츠가 사민당에게 가져온 가장 큰 선물은 기존에 기민당이 차지하고 있던 재무장관직이었다. 베를린 임시당대회에서 협상안을 승인받을 때만해도 진정한 승자는 슐츠로 보였다. 하지만 슐츠의 단순한 생각과 대주주의 생각이 다른 것이 드러나면서 사민당은 내홍에 빠졌다.

    슐츠는 관례에 따라 대표가 대연정의 외무장관을 맡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대주주들과 협의도 없이 자신이 외무장관을 맡는다고 발표한 것이다. 당을 장악하고 있는 가브리엘 외무장관가 즉각 슐츠를 공개적으로 공격하고 나서자 당황한 슐츠는 외무장관을 맡지 않겠다고 한발 물러섰지만 사태는 거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곧바로 의회를 이끌고 있는 안드레아 날레스 원내대표가 특별당대회를 개최해 자신이 대표로 출마할 것을 선언했다. 용도가 끝난 슐츠를 대주주들이 폐기해버린 것이다. 당원총투표가 대연정을 승인하면서 4월 특별당대회에서 155년 만에 사민당 최초의 여성대표가 탄생할 예정이다.

    안드레아 날레스(중앙)

    지난 대연정 기간 동안 사민당은 지지율이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부침을 겪었지만 약간의 성과도 있었다. 최저임금을 도입한 것이 대표적이다. 최저임금을 도입한 3년 동안 단기 일자리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고 우려했던 GDP의 둔화보다는 경기가 어느 정도 활성화되었다는 지표들이 등장했다. 단기적인 결과이지만 가처분소득이 늘어야 내수가 진작된다는 명제가 최저임금 도입으로 다소 입증되었다는 평가다. 재무장관으로 내정된 올라프 숄츠가 중도적인 인물이기는 하지만 세제개혁에 적극적이어서 기민당으로부터 어떤 결과물을 끌어낼지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필자소개
    인문사회과학 서점 공동대표이며 레디앙 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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