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년 전 나의 '빨간 책'
        2006년 04월 06일 04:4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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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보현 (성공회대 사회문화연구원 연구교수, 한국정치)

    ‘빨간 책’. 그것은 내게 아마도 15살 어느 때부터인가, ‘모범생’이라면 접해서는 안 되는 금단의 영역이었다. ‘빨간 책’의 주요 테마, 아니 유일한 테마는 섹스였다. 특히 활자로 된 그것이었든 사진 내지 그림 위주의 그것이었든 비주얼한 … (이후 텍스트의 형식성이 확장됨에 따라 비디오테이프로 바뀌어갔지만 그냥 통칭하여 ‘빨간 책’으로 부르련다).

    15살 전에는 아직 ‘빨간 책’의 존재를 몰랐다. 실제로는 늘 될 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또한 외양으로는 적잖이 은폐되었을지라도, ‘모범생’ 콤플렉스에서 허우적댄 것이 나의 중고교생 시절 단면들 중 하나였음에는 틀림없다. 우스꽝스러운 일은 얼마간 시간이 흐른 후 보니, 자타가 공인하는 ‘모범생’들이 그 분야에서 나보다 훨씬 앞서갔다는 사실이다. 아무튼 그랬기에 난 종종, 디즈니 만화처럼 천사와 악마가 서로의 선택지를 권고하고 충동하는 갈림길에서 서성댔다.

    ‘빨간 책’ 보기는 금기사항이었기에, 발각될 경우 물리적 처벌과 도덕적 비난이 기다리게 마련이었다. 그러나 그 맘 때 나나 나의 친구들에게나, 바로 그랬기 때문에 더욱 더 욕망했던 대상이 ‘빨간 책’이었다. 그리고 일단 결행을 마음먹으면, 약간의 공모행위들 속에서 긴장과 불안을 감지하며 아울러 기대감의 증폭을 맛보았다. 종국에는 적당히 하나로 요약할 수 없는 그 ‘느낌’에 잡혀버렸다.

    때로는 당초 예상한 것과 얼추 들어맞지 않나 싶은 쾌락을, 때로는 전혀 바라지 않은 매우 불편한 기분을, 또 때로는 너무 싱겁다는 생각에 공연한 위험부담을 진 것에 대한 후회를. 분명한 것은 횟수를 거듭할수록 기대치 대비 쾌락이 점감되어갔다는 사실이다.

    지금 되돌아볼 때 그것은 부지불식간 두 가지 점들을 깨닫는 과정이었다. 하나는 텍스트의 내용이 결코 그다지 ‘불온한 것’이 아니며, 실은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사를 구성하는 한 부분이었다는 점이다. 또 하나는 ‘저렇게 만들어서야…’ 하는 텍스트 비판의 정신!!

    어느덧 ‘빨간 책’ 과정을 졸업한 줄 알았건만, 대학을 들어가니 거기에 또 다른 ‘빨간 책’ 과정이 있었다. 1987년 다소 무료한 새내기 생활을 보내던 중, 익히 아는 고등학교 선배와 마주쳤다. 그 선배는 고등학교 도서부 시절 나를 한 ‘언더 서클’로 유혹한 바 있는 이였는데, 이번엔 ‘교지편집위원회’라는 곳을 가보라고 강력히 추천하는 것이었다.

       
    ▲ 해방전후사의 인식, 옛 기억 속의 책표지와 새로 나온 판본의 표지
     

    “서클들(동아리들)은 대체로 운동권들인데 성향이 별로 권할 만하지 않고… 니가 행정학과라고 했지? 사회과학대 학생회도 그다지… 그래, 교지에 가 봐라. 공부도 할 수 있고 책 만드는 일이 매력 있잖아.”

    고등학생 시절 가입한 ‘언더 서클’은 제법 마음에 드는 곳이었다. 그래서 선배의 말에 어느 정도 신뢰감을 가질 수 있었다. 거기에다 정규 교과과정에서 불가능한 ‘폭과 깊이’가 있는 공부를 할 수 있다는 말에 혹하여 선뜻 권유를 받아들였다.

    그런데 가보니 ‘운동권’이기는 마찬가지였다. 사무실을 들어서자 케비넷과 벽에 붉은 스프레이로 써놓은 ‘민족해방’과 ‘민주주의 만세’란 구호들이 나를 맞이하였다. 편집 실무에 관한 기초 지식을 배우거나 다음호 특집/기획을 잡기 위한 자료 및 정보 조사 등에 일손을 보탰지만, 우선해야 했던 과제는 이른바 ‘기초 세미나’에 참여하는 것이었다. 정확히 얼마 동안이었을까.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운동권’에 대한 막연하나마 호기심이 없지 않았으나, 최근 나왔던 교지들의 목차와 표지를 보고 또 세미나 교재들이 주는 이미지, 선배들의 ‘수위 높은’ 발언 등등을 생각하면 ‘빨갱이’란 단어가 머리 속에서 공전하기도 하고, ‘이거해서는 안 되는 공부만 하다가 불온한 길로 빠져드는 것 아니야…’ 하는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무엇인가 금기사항과 마주하고 있다는 기분은 왠지 자꾸 나를 그 쪽으로 더욱 더 밀어 넣고 있었다. 두려움과 긴장은 계속되었으나 또한 약해지고 이완되어 갔는데, 무엇보다 ‘기초 세미나’에서 새로이 읽게 된, 혹은 알게 된 ‘빨간 책’들을 통해 ‘쾌락’을 얻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차츰 깨닫게 되었듯이 선배들이 그리 ‘무시무시한’ 사람들은 아니라는 사실도 도움을 주었다.

    그러나 ‘87년’의 정세가 안겨준 형언할 길 없는 격정을 논외로 두자면, 역시 결정적인 것은 ‘빨간 책’들의 ‘재미’였다. 당시 그 ‘빨간 책’들에는 <철학의 기초이론>, <자본주의의 구조와 발전>, <페다고지>, <모순과 실천의 변증법> 등등과 함께 <해방 전후사의 인식>이 포함되어 있었다. 특히 <해방 전후사의 인식>은 내게 각별한 ‘의미’가 되어버렸다. (1학년 때는 총 6권 중 3권까지만 읽을 수 있었고 나머지는 추후 출간되는 대로 보았다).

    ‘재미’는 우선 완전히 낯설고 전복적이라는 데에 있었다. 모든 이야기들이 그 동안 알고 있던 것들과 정반대이거나 아니면 난생 처음 듣는 것들이었다. 흥미진진함을 한층 북돋운 것은 새로울 뿐만 아니라 대단히 설득력 있게 다가온 까닭이다. 거기에는 여타 ‘빨간 책’들과 달리 ‘논리’ 이상으로 충실한 ‘역사’가 담겨 있었다.

    해방 후 정세에서 열려 있던 가능성들과 미국 정부의 행적, 한국전쟁의 발발 배경과 그 성격, 이 모든 것들을 ‘아래로부터’ 규정하고 있던 반봉건의 요구들, 민족주의적 열망들, 이른바 ‘해방8년사’와 정전 후 한국 현대사 전반 사이의 연관 등등. ‘진실’은 ‘다른 곳’에 있었던 것이다. ‘재미’는 그 경계를 넘어 ‘마음속의 울림’이 되었다. 이제 국정교과서들이 가공하여온 ‘허구’의 굴레에서 벗어나자, 그리고 참 ‘진실’이 있는 곳으로 나아가자, 한발 더 한발 더.

    이내 곧 ‘마음속의 울림’은 기성 지식들과 그 주조자들에 대한 ‘분노’로 이어졌다. 그러한 유형의 ‘분노’는 지금 생각해보면 치기어린 행동들로 표출되기도 하였지만, 이후 20년의 시간이 경과한 현재 여전히 나의 사고 층위들 저변에 남아 중요한 ‘힘’을 발휘하지 않나싶다.

    그 점에서 분명히 <해방 전후사의 인식>은 나에게 특별한 ‘의미’였다. 더욱이 교지편집위원회에 들어간 이후 하나하나 읽었던, 해방 후 1980년대에 이르는 국면들을 다룬 정치사, 사회-경제사 관련 책들과 소논문들이 ‘진로’의 대전환을 결단하게끔 한 기폭제 역할을 하였고, 따지고 보면 그 출발점이 바로 <해방 전후사의 인식>이었기 때문이다. 공부를 하자, 대학원을 가자, 전공을 바꾸자!! 이 ‘의미’가 적어도 나에겐 소중한 것으로서, 앞으로도 계속 남아 있겠지.

    그러나 소년 시절의 ‘빨간 책’이 그러했듯이 <해방 전후사의 인식> 또한 회피할 수 없는 ‘운명’을 맞이하였다. 이 ‘운명’은 앞에서 말한 ‘의미’와는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하나의 텍스트가 변화하는 그 외부 세계와 상호 침투하는 가운데 어느 순간 공식화-제도화되었고, 또 그렇게 된 연후 진부해지기까지 한 것이다. <해방 전후사의 인식>은 더 이상 ‘빨갛지 않다’. 기성 지식들에 대한 전복과 비판은 잔여 범주로서만 느껴진다. <해방 전후사의 인식> 자체가 기성화된 것이다. <해방 전후사의 인식>이라는 텍스트는 이제 나에게 성찰과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근대주의와 민족주의를 넘어선 미래를 꿈꿀 수는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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