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反) 세계화, 그 뒤는 있는가?
        2006년 04월 06일 10:1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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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화라는 용어가 유행하지만 아직도 금융측면에서의 세계화와 실물경제에서의 세계화라는 두 가지 측면이 뒤섞여 있고, 게다가 인력과 문화의 세계화 같은 복잡한 현상을 제대로 분석하기는 쉽지 않다. 경제사에서는 역사적 분석에 의해서 지금의 세계화가 세 번째의 세계화 혹은 두 번째의 세계화라고 보기도 하지만 어쨌든 교통과 통신의 발달에 의해서 생겨나는 지금의 세계화는 ‘일국 민주주의’라는 관점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쉽지 않은 질문들을 종종 던지게 된다.

    나름대로 안정적인 시스템을 구축한 스웨덴이나 이와는 다르지만 역시 괜찮은 사회체계인 스위스 시스템 혹은 하다못해 프랑스나 일본 같은 곳에서도 세계화의 의미와 대응 방향에 대해서는 나름대로 골머리를 앓고 있고, 더욱 어려운 것은 이것들을 모아서 하나의 담론으로 만들 수 있는 방법은 그야말로 마르크스 같은 사람이 다시 등장해서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는 간결하고 파괴력 있는 테제를 만들기 전까지는 요원해 보인다.

    무역체계만 놓고 본다면 전후에 GATT 체계가 등장하면서 세계 자본주의체계라는 말이 유행하기는 했지만, 실제로는 GATT와 코민테른이 세계를 양분하고 있고, 이 두 체계에 속하지 않은 제 3세계 동맹이라는 것이 생겨날까 말까하는 상황에서 코민테른은 급격히 붕괴하고 결국은 GATT 체계로 통일이 되어버렸다. 동맹국이라는 것은 사실상 흔적만을 삼기고 사라져버린 셈이고, 보통은 ‘G77 and China’라고 불리는 77국가와 중국이라는 또 다른 그룹으로 바뀐 것이 사실이다.

    이런 흐름 속에서 WTO라는 다자체계와 FTA라는 양자체계 그리고 EU나 NAFTA 혹은 ASEAN 같은 지역체계를 놓고 전부 다 세계화의 흐름이라고 말한다.  본질을 놓고 보면 “전부 다 신자유주의야!”라고 간단하게 분류하면 편하기는 하지만 이게 영 돌아서면 과연 맞는 설명방식인가하고 찜찜하지 않을 수 없다. 중국도 WTO에 가입하기 위해서 한동안 미국과 별의별 양자외교를 벌였는데, 그렇다면 중국 공산당도 신자유주의 정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인가? 친디아(Chindia)라는 새로운 조어에 대해서도 전부 다 “신자유주의의 음모일 뿐이야!”라고 말하고 나면 속은 시원한데 뭔가 전혀 설명되지 않은 것 같은 찜찜함을 지우기 어렵다.

    마치 예전에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하던 ‘자본의 음모’ 혹은 ‘미제의 음모’라는 말 대신에 ‘신자유주의의 음모’ 혹은 ‘IMF의 음모’ 같은 것을 대체한 것 같다. 나같이 정치학에 대해서 거의 무지한 사람은 ‘신자유주의’는 뭐고 ‘세계화’는 뭐냐고 다시 질문해보게 된다. 가장 편하게 요즘 거의 도그마처럼 사용되는 정식은 “세계화를 찬성하는 것이 바로 신자유주의”라면 논리는 정말 간단해진다.

    세계화는 미국이 주도해서 미국의 기준을 다른 나라에 강요하는 것이고, 이 현상을 찬성하는 전세계적인 흐름이 바로 ‘신자유주의’이고, 현재 우리가 이렇게 살기 어려운 것은 바로 이 흐름 때문이다. 한발만 더 나아간다면 노무현 정권이야말로 바로 이 미국 중심의 세계화를 앞장서서 추진하는 “신자유주의 반(反) 민중세력이다”라는 말도 이 논리 속에서는 그렇게 어색하지 않다.

    그렇지만 역시 우리 안에 있는 모든 문제가 과연 세계화 때문에 생긴 문제가 전부인지 아니면 미국의 기준에 부합되지 않는 소위 ‘우리 자본’은 ‘좋은 자본’인지, 이미 20년 전에 끝나버린 논쟁의 주제임직한 얘기들에 대해서 다시 고민해보게 된다. 론스타건이 그렇다. “국부 유출은 막아야 할 것 아니냐”라는 말은 뭐가 ‘국부’이고 세계화의 주도 세력이 뭐고, 그렇게 해서 생겨나는 문제점은 뭐인가에 대해서 정의되어 있지 않은 온갖 개념과 상념들이 한꺼번에 뒤섞여져 있는 주장이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세계화(globalisation)의 가장 주된 현상 중의 하나가 지역화(localization)이고, 이 지역화와 같이 움직이는 전략이 delocalization과 relocalization이라는 점이다. 결국 국제자본은 어딘가 가기 위해서 해당 지역에서 보다 좋은 조건을 갖기 위해서 나름대로 협상을 하게 되고, 이 조건이 안 좋아지면 떠나거나(delocal-) 혹은 잘 해주면 다시 돌아오기(relocal-) 때문에 문제의 한 축은 결국 세계 자본과 유치국 혹은 유치 지역 사이의 힘의 관계에 의해서 나름대로 현상이 결정된다는 점일 것이다. 쉽게 표현하면 세계화 국면에서의 국제자본에 대해서 “말 잘 들어야 한다”는 나름대로 힘의 법칙이 작용하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말을 잘 듣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약자들의 팔을 좀 꺾는 일이 벌어져야 하는데, 인천 경제특구에서 교육, 의료를 시작으로 환경과 비정규직에 대해서 벌어질 일들은 “말 잘 듣겠다‘는 현상의 연장선 위에 놓이게 된다. 환경기준? 풀어줄게… 노동문제? 풀어줄게… 교육여건? 마련해줄게…

    그래서 반세계화 진영이라는 것이 조금씩 형성되기는 하는데, 실제적으로는 약소국의 약자들의 연대와 비슷한 모습이 되고, 농민들이 주축이 되고 환경보호진영이 또 다른 한 편을 형성하게 된다. 대부분의 제 3세계에서 환경진영은 사회 내에서 또 약자 중의 약자이다.

    그런데 이 약자들이 모여서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여기에 고민의 핵심이 있다. WTO를 대체하는 새로운 조약을 만들어내는 일은 약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닌데, 일종의 반미 동맹의 형태가 더 강해지지 않으면 어렵고, 결국은 유럽 몇 나라 혹은 중국까지 포함한 제 2의 코멘테른 혹은 제 2의 동맹 같은 형태 외에는 상상하기가 어렵다. 

    다른 한 축으로는 조금 더 극단적인 무정부주의의 시각이 한 가지 가능성이기는 한데, 우리나라와 같이 정부부문과 자본부문 밖에 없는 나라에서 협동부문(COOPs) 혹은 제3영역이 존재했던 흔적만 있는 나라에서 비자본-비국가 연합이라는 것은 그야말로 본 적도 없고 들어본 적도 없는 개념이라서 영 말이 씨알도 먹히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가난한 빈민이여, 단결하라”는 말은 그래서 말은 아름답기는 하지만 생각만큼 파괴력 있게 움직이지는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세계화에 입장적으로 반대한다거나 정서적으로 동조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런데 “그래서 뭘 할껀데?”라고 물어보면 일단 도망갈 길을 찾는 것이 최선의 방책 같아 보인다. “Act locally. think globally”라는 풀뿌리민주주의의 한 구호를 보거나 유기농 운동하는 농장에서 “세계화의 흐름에 반대해서” 농약을 사용하지 않은 한 뼘의 땅이라도 일구기 위해서 귀농한 사람들을 보고 나면 마음이 ‘팍팍’해진다. 정말 어려운 질문 앞에 서 있는 셈이다.

    반 세계화, 그 뒤에는 WTO를 대체하는 더 강한 세계적 연대체인가 아니면 ‘시민 연대’ 혹은 ‘국제 빈민연대’ 같이 무정부주의적 요소의 강화인가? 어느 쪽이라도 좋고, 어느 방향이라도 우리는 결정했다는 말이라도 듣고 싶기는 한데, 현재로서는 반 세계화 그 뒤에는 무엇이 있는가라는 말에 대해서 답하기가 너무 어렵다.

    그래도 돌아가지 않는 머리를 쥐어 잡고 계속 생각해보면 “대안 없으면 우리는 그냥 세계화로 간다”는 큰 흐름 때문에 그렇다. 맥도날드도 세계화가 되었고, 디즈니도 세계화가 되었고, 하다못해 재페니메이션이라고 하는 일본 만화도 어느 정도 세계화가 되었다. 그래서 세상이 별로 행복해진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세계 공동체”라는 말이나 “지구 생태계”라는 말 속에 작은 답이 있지 않을까 아무리 머리를 흔들어 보아도 별로 그럴 것 같지도 않다. 차라리 주구장창 ‘기후변화협약’이라는 질문만 쥐고 있던 나의 수 년 전이 오히려 답에 더 가까이 가 있었던 것 같다. “그래 지구가 망하면 너라고 괜찮을 줄 알아?”라는 쉬운 답이 있기는 했다.

    논리적으로 세계화 이후의 대안에 대해서 잘 상이 잡히지 않는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세계경제체계라는 것이 GATT의 결정에 의해서 달러라는 기축통화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 때문일 것이다. 물론 통화만 바꾼다고 EU의 경우처럼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지만, 미국의 화폐정책에 의해서 전세계가 움직이는 현 체계에서 불어 닥친 세계화는 통화 문제와 떠나서 고민하기가 쉽지는 않다. IMF야말로 국제통화기금에 불과한 것인데, 지금은 전세계를 쥐고 흔들고 있는 셈이 아닌가. 우리 식으로 비유를 하자면 서울시에서 한국은행까지 직접 관리하다시피 하는 체계가 세계체계인 셈인데, 마침 시장에 이명박 같은 사람이 나와서 서울이 잘 살아야 한다고 경기도 인근의 어떤 도시와 도농직거래를 하자고 하는 셈이다. 그러면 뭣부터 바꿔야 해? 제대로 하자면 시장도 바꾸고, 시의 선거체계도 좀 손을 봐야 할 것이고, 한국은행도 개혁해야 하고, 심하면 화폐개혁도 해야 할 상황이기는 한데, 불행히도 한국에서, 그것도 작게 변화를 얘기하는 각개로 찢어진 세력들이 “이것만 바꾸면 돼”라고 만만하게 할 수 있는 얘기가 별로 없어 보인다. 고칠 수 있는 건 별로 없는데, 막상 전체적으로 고치지 않으면 제대로 될 일이 별로 없는 복잡한 상황인 셈이다.

    좀 명랑한 방식으로 그리고 값싸게 반세계화 투쟁을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라고 고민을 해보는데 답이 쉽지 않다. 매번 시애틀 투장처럼 외국에 갈 수도 없는 노릇이고, 칸쿤을 거쳐 홍콩에까지 갔듯이 수많은 농민들이 종잣돈을 내어서 비행기를 탈 수도 없는 노릇인 것 같다. ‘당면한 세계화 국면’이라고 말은 하지만 무엇을 위해서 어떤 일을 해야 할 것인지가 막연하다.

    누가 반 세계화, 그 뒤에 무엇이 있는지 명랑하거나 아니면 맹랑한 답변을 줄 수 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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