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혹독한 시련 맞고 있는
    155년 역사 독일 사민당
    [세계는 지금] 또 기민·사민 대연정?
        2018년 02월 26일 10:5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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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 사회당이 창당 50년 만에 혹독한 겨울을 맞고 있다. 센 강에 위치하며 대저택의 위용을 자랑하던 중앙당사는 부동산 개발회사로 넘어갔다. 280석이던 의석수는 27석으로 급감했고 당원 수는 4만여 명까지 떨어졌다. 당사를 매각한 캉바델리 서기장이 정계를 떠나면서 지도부마저 공석인 상태다. 4월 당대회에 하마평에 오르는 서기장 후보조차 보이지 않는다. 불과 2년 전까지 집권당이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당은 초토화되었다. 하지만 이웃 독일 사민당도 남의 일이 아니었다.

    지난해 9월 총선을 앞두고 독일 사민당은 최악의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었다. 당을 이끌고 있는 가브리엘 당수의 지지율도 계속해서 추락하고 있었다. 가브리엘의 장점은 당을 안정적으로 운영한다는 것이지만, 반면에 유권자들이 보기에는 무색무취한 것이 약점이었다. 총리 후보로서는 치명적일 수밖에 없었다. 사민당의 지지율은 연일 추락하고 당의 간판인 가브리엘은 속수무책이었다. 유럽연합(EU)의장인 슐츠가 대안으로 떠오른 것은 그때였다.

    사민당이 슐츠를 총리 후보로 내세울 경우를 가상할 때의 지지율이 집권 기민당의 메르켈에 오차범위까지 접근하는 것으로 나타나자 당에서는 과거 라퐁텐 당수 대신에 슈뢰더를 내세워 집권했던 당시를 들먹이는 목소리까지 등장했다. 슐츠는 명확한 입장을 회피했지만 당내외 압력을 견디지 못한 가브리엘이 당수와 총리 후보를 양보하면서 2선으로 전격 후퇴했다. 구원투수로 등판한 슐츠는 눈에 띄게 지지율을 회복하면서 1당 탈환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선거가 본격화되자 당과 슐츠의 지지율이 다시 하락하기 시작했다. EU 의장일 때와 정치인 슐츠가 확연히 다르다는 것이 드러난 것이다. 고비 때마다 슐츠는 갈지자 행보를 보여주면서 이미지 정치의 한계가 언론에 속속 노출되었다. 사민당은 20.5%라는 전후 최저득표율을 기록하는 참패를 거두었다. 사민당의 충격적인 패배에도 불구하고 기민당이 승리를 거둔 것도 아니었다. 기민당 역시 60석 이상의 의석을 잃으면서 메르켈총리는 퇴진위기까지 내몰렸다.

    사민당의 딜레마 대연정이라는 독배

    메르켈은 자민당과 녹색당을 포함하는 이른바 ‘자메이카 연정’을 카드로 꺼내들었다. 자메이카 테이블은 시작도 하기 전에 실패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자본가들을 위한 정당이라는 닉네임을 가지고 있는 자민당과 녹색당 모두의 요구조건을 만족시키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라고 언론들은 전망했다. 좌우 언론 모두가 예상한 전망은 빗나가지 않았다. 녹색당이 화석에너지 자동차 생산의 단계적 폐지라는 요구조건을 테이블에 올리자 자민당은 논의 대상 자체를 거부했다. 기민당이 기한조정을 통해 타협을 모색했지만 자동차회사들의 대리정당이나 마찬가지인 자민당은 연정 논의 중단을 선언하고 테이블을 이탈했다.

    자민당과 기민당 중 하나만으로는 과반의석이 불가능한 기민당은 더 이상 내놓을 카드가 없었다. 선택지는 조기총선이냐 사민당과의 대연정이냐 둘 중에 하나였다. 기민당 일각에서는 메르켈의 2선 후퇴를 전제로 하는 조기총선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메르켈의 마지막 선택지는 사민당과의 대연정뿐이었다. 문제는 사민당의 내부사정이 복잡하다는 것이었다.

    사민당은 선거 내내 기민당과의 대연정은 없다는 것이 대표공약이나 마찬가지였다. 지난 4년 동안의 대연정은 지속적으로 사민당의 지지기반 이탈을 가져왔기 때문이었다. 대연정 기간 동안 사민당은 전통적인 지지기반인 블루칼라들을 엄호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집권 기민당과 협의 과정에서 언제나 난항을 겪었다. 2015년 사민당의 강력한 요구로 최저임금이 도입되면서 고용율이 점차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했다. 특히 하르츠 도입으로 생겨난 미니잡(일종의 파트타임)이 줄어들고 정규직이 늘어난 것은 획기적인 성과였다. 최저임금 도입으로 월 450유로 미만의 노동자에게는 고용주에게 보험료와 소득세를 면제해주는 미니잡은 빠르게 줄어들었다. 하지만 사민당의 지지율은 좀처럼 회복되지 않았다. 최저임금을 도입하지 않았으면 고용율이 더 늘어났을 것이라는 자민당과 보수언론의 주장이 여전히 노동자들에게 위력을 발휘했다.

    사민당은 집토끼가 돌아오지 않는 근본적인 이유는 대연정이라고 진단했다. 대연정은 없다고 단언했지만 사민당은 최악의 성적표를 손에 쥐었고, 자메이카 테이블이 깨지면서 민중들의 여론은 다시 대연정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메르켈도, 사민당도 선택지가 남아있지 않았다. 조기총선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높아졌지만 여론은 부정적으로 나타났다.

    퇴로가 없는 사민당의 슐츠 대표는 당내 우파들과 손을 잡고 대연정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좌파들은 거세게 반발했지만 당을 장악하고 있는 가브리엘 외무장관과 안드레아 날레스 원내대표가 전면에 나서 반대파를 진압했다. 몇 차례의 고비를 넘기면서 기민당과의 대연정에 합의하는데 성공했지만 곧바로 사민당은 내분에 직면했다. 국민들 사이에서는 호감도가 높지만 당내 기반이 전무한 슐츠가 외무장관을 맡겠다고 나서자 가브리엘이 공개석상에서 슐츠를 비난하고 나선 것이다.

    당 대표가 대연정의 외무장관을 맡는 것은 일종의 관례인 것은 사실이지만 당내에서 논의되지 않은 사안인데다 가브리엘은 장관직을 양보할 의사가 전혀 없었던 것이 문제였다. 슐츠의 영입을 주도한 가브리엘은 슐츠에게 자신에 대해 “존경심이 없는 인물”이라는 극단적인 발언을 마다하지 않았다. 슐츠는 장관직을 맡지 않겠다고 한발 물러섰지만 사태는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날레스 원내대표가 슐츠에게 대표직 사임을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슐츠는 당원투표로 당 대표의 신임을 묻자고 배수진을 치고 나섰지만 날레스는 당 대표 신임을 위한 특별당대회를 소집하겠다고 선언했다. 당내 우파들이 성적을 내지 못한 슐츠를 잔인하게 용도폐기 해버린 것이다. 8개월 전, 독일 언론의 주목을 받으며 화려하게 정계에 데뷔했던 유럽연합 의장은 백기를 들고 정계를 떠났다.

    아래 왼쪽이 슐츠, 오른쪽이 날레스

    155년 만에 사민당 여성 당대표의 탄생

    라인란드 팔츠 주 코블렌츠 외곽의 소도시에서 태어난 날레스는 20대 초반에 주 청년대표에 오른데 이어 20대 중반에 사민당의 청년전국조직인 유소스(Jusos)의 의장에 선출되면서 두각을 나타냈다. 1998년 슈뢰더가 이끄는 녹색당과의 적록연정이 시작되면서 사민당의 우회전이 급속도로 진행되자 이를 비판하면서 좌파의 새로운 희망으로 떠올랐다. 슈뢰더가 Agenda 2010을 내세워 노동유연화를 추진하자 당내 좌파들은 민주좌파21을 결성한 후 노동조합과 손을 잡고 적록연정 내내 지도부와 대립했다. 이 기간 동안 좌파의 상징이었던 라퐁텐이 당을 떠났지만 날레스는 남아서 싸우는 쪽을 선택했다.

    2005년 조기총선에서 기민당에게 1당을 넘겨주면서 슈뢰더가 당을 떠나자 당은 갑작스럽게 진공상태에 놓였다. 뮌터페링이 당 대표에 오르면서 대연정을 추진하자 날레스는 이에 반대하면서 주류에 승선하는 것을 거부했다. 날레스가 좌파의 색깔을 벗기 시작한 것은 2009년 총선 때였다. 총리 후보로 나선 발터 슈타인마이어 원내대표가 그림자내각의 장관을 제안하자 이를 수락하면서 당내 좌파들에게 실망을 안겨줬다.

    총선이 끝난 후 드레스덴에서 열린 당대회에서 가브리엘이 대표로 선출되자 날레스는 사무총장에 선임됐다. 날레스가 사무총장을 맡은 것이 당의 좌회전 신호탄이라는 전망도 있었지만 현실은 날레스가 우파들의 주류에 연착륙하는 것을 의미했다. 2013년 총선에서 사민당이 재차 패배한 후 기민당과의 대연정 합의를 승인하는 당원투표에서 찬성을 독려한 것은 다름 아닌 날레스 자신이었다.

    세 번째 대연정에서 노동부장관으로 입각한 날레스는 최저임금법 도입을 강력히 추진했다. 메르켈은 최저임금이 기업의 임금 결정권한을 침해하는 것이며 회복세를 보이고 있는 독일기업의 경쟁력을 악화시킬 것이라며 물러서지 않았다. 하지만 과거와 달리 메르켈의 당 장악력은 현저하게 떨어진데다 대연정의 특성상 기민당이 추진하려는 정책이 있으면 사민당에게도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것은 상식적인 문제였다. 날레스는 기민당과의 줄다리기 끝에 최저임금법을 도입하면서 이전과 달리 성과를 보여주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사민당으로서는 어떻게 보면 하르츠와 아젠다 2010을 도입한 원죄를 일부 되돌리는 성과였지만 노동자들의 반응은 달랐다. 사민당의 대가로 내준 것은 기업과의 단체협상을 다수노조 하나에게만 허용하는 노동법 개정은 노동자들의 반발을 불러왔다. 특히 소수노조의 대부분이 좌파들이라는 것이 노동자들의 분열과 대립을 가져왔다. 유럽연합 이주민들에게 5년 동안은 실업수당을 주지 않기로 결정한 것도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슐츠가 물러나면서 4월 특별당대회에서 날레스가 대표에 선출되는 것은 기정사실이다. 하지만

    날레스와 가브리엘은 3월에 실시되는 대연정 승인 당원총투표라는 관문을 남겨놓고 있다. 당원총투표에서 부결될 가능성은 낮다는 것이 대체적인 전망이지만 청년조직인 유소스가 이미 전국적으로 부결운동에 돌입한데다 평당원들의 정서도 2013년과는 다르지 않다는 것이 변수로 남아있다. 찬성과 반대의 격차가 크지 않을 경우에도 날레스의 대관식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기 때문에 당 지도부들은 승인을 위해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155년 역사에 사민당 최초의 여성대표로 가는 길은 여전히 험난하다.

    사민당의 재기 가능성과 좌파당의 현재

    대연정이 타결된 이후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사민당은 20%대가 무너지는 결과가 등장했다. 일부 조사에서는 극우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AfD)과의 격차가 1%로 나타나면서 충격을 주었다. 사민당의 끝없는 추락의 근본적인 원인은 전통적인 지지기반인 블루칼라의 이탈이 가져온 결과다. 1998년 적록연정으로 집권한 슈뢰더는 신자유주의와 노동유연화 정책을 대거 도입하면서 라퐁텐을 중심으로 좌파들의 집단탈당을 불러왔고 노동자들도 대대적으로 등을 돌리는 계기가 되었다.

    2005년 총선에서 참패한 후 7년간의 집권이 끝나고 야당으로 돌아왔지만 권력에 안주하면서 자신의 이력서만 쌓아온 우파들은 기민당이 던진 대연정이라는 덫을 물면서 지지자들과 당원들의 분노와 이탈을 방치했다. 대연정을 거듭할수록 사민당의 지지율은 추락했고 당원수는 줄어들었다. 지난해 총선을 앞두고 대연정은 없다는 선언이 재차 공수표로 전락하면서 사민당의 지지율은 브레이크 없는 기차관차처럼 멈출 줄 모르고 추락하고 있다. 게다가 부총리 겸 외무장관을 놓고 전현직 당대표가 공개적으로 대립하면서 지지자들의 눈에는 새로운 대안은 없는, 자리욕심에만 연연하는 사민당이 더 이상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기에 충분했다.

    사민당의 현재는 프랑스 사회당의 전철을 밟을 위험성이 존재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당내 우파들은 날레스에게 ‘사민당의 메르켈’이라는 칭호를 수여하면서 차기 당대표의 지지율을 바탕으로 재기를 모색할 수 있다는 자기최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아래로부터 당 지지기반을 재건하지 않는다면 흔적도 없이 사라질 수 있다는 유럽의 다른 중도좌파정당들의 현실을 외면하고 있다. 사민당의 급락과 기민당의 추락의 사이를 계속해서 파고들면서 지지기반을 급격히 확대하고 있는 AfD에 대해 양당 모두 속수무책이다. AfD가 단순히 난민과 이주민들을 공격함으로서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독일 전역에서 노동자들의 지지율이 급상승하고 있다는 것도 사민당에게는 치명적이다.

    좌파당은 굴곡을 딛고 당을 재정비하는 데 성공하고 있다. 2013년 총선에서 좌파당의 상징이었던 그레고르 기지(Gregor Gysi)의 지도력이 한계를 보여주자 그동안 기지와 라퐁텐의 양두마차를 청산하고 당의 지도력을 교체하자는 목소리가 힘을 얻었다. 기지 역시 당의 후견인으로 남을 준비를 해온 터라 지도부 교체는 자연스럽게 진행됐다. 당의 간판을 맡은 인물은 오랫동안 당의 재정과 조직을 관리해 온 디트마르 바트쉬(Dietmar Bartsch)였다.

    2009년 총선에서 라퐁텐이 이끄는 좌파당은 76석(11.9%)을 얻으면서 녹색당을 제치고 4당으로 뛰어오르면서 자민당을 턱밑까지 추격했다. 승리의 결과에도 불구하고 좌파당은 곧 내분에 빠졌다. 당 내부에서 이견이 생기면서 권력투쟁의 양상으로 변질된 것이다. 당의 사무총장을 맡고 있는 디트마르 바트쉬에 대해 라퐁텐이 지도부의 견해를 존중하지 않는다고 경고를 내리면서 축제가 되어야 할 당대회는 분열의 서막이 될 수 있는 극단적인 전망까지 등장했다.

    단순하게 보면 라퐁텐 당수가 바트쉬 사무총장에게 지시를 내리는 것은 상식적인 행동이었다. 하지만 바트쉬는 당수가 사무총장의 고유권한을 침해하는 것이라면서 반발했다. 라퐁텐과 한 몸이나 다름없던 기지가 처음으로 바트쉬의 손을 들어주자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됐다. 분란의 본질은 사민당 탈당파와 동독 통일사회당 청산파가 손을 잡은 좌파당은 다른 당 문화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 확인된 것이다. 사민당의 대표는 전권을 행사하는 자리지만 동독의 경우 당 서기와 사무총장의 권한은 서로 고유한 영역이 존재한 것이 차이점이었다.

    당의 분열까지 몰고 갔던 문화적 차이를 해소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했다. 건강상의 문제로 라퐁텐이 물러나고 기지마저 당의 후견인을 자처하면서 좌파당은 바트쉬를 중심으로 빠르게 수습되었다. 지난해 총선에서 좌파당이 약진했지만 바트쉬가 동독 출신인데다 관리형이라는 것과 여전히 서독지역에서 지지기반을 확대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좌파당의 오랜 한계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오히려 AfD의 약진으로 향후 지방선거는 대부분의 주에서 기민당과 사민당의 연정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대규모 교착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사민당이 새로운 선택을 하지 않는다면 독일은 기민-기사-사민 연합당이 마치 하나의 정당으로 작동하는 것이 현실이 될 전망이다.

    필자소개
    인문사회과학 서점 공동대표이며 레디앙 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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