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택진료비 없애라" vs "우리가 돈뜯는 도둑인가"
        2006년 04월 06일 01:0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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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자가 의사를 선택해 진료를 받았다고 해서 추가적인 부담을 환자에게 100% 부담하는 나라가 세상에 또 어디 있나”(김창보 건강세상네트워크 사무국장)

    “현재 선택진료에 해당 안되는 의사들은 멀게는 30년 밑의 나의 제자다. 똑같은 진료를 해도 그 제자와 나의 시술이 어떻게 같을 수 있나. 내가 그 제자와 같은 수당을 받아야 하나”(박창일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장)

    ‘특진’, ‘지정진료’, ‘선택진료’라는 이름으로 무려 43년에 걸쳐 환자들의 주머니 부담을 늘게 했던 선택진료비의 폐지를 놓고 이해당사자들이 모인 가운데 토론회가 진행됐다.

    민주노동당 현애자 의원실과 건강세상네트워크가 공동 주관해 5일 국회 도서관 대강당에서 진행된 이 토론회에는 선택진료비 폐지를 주장하고 있는 시민사회단체와 선택진료비 폐지 반대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병원 관계자들이 모여 열띤 토론을 벌였다.

       
     
    ▲ 민주노동당 현애자 의원실과 건강세상네트워크는 5일 국회도서관 강당에서 ‘선택진료비 폐지 쟁점과 대안모색’이라는 주제의 토론회를  개최했다.
     

    환자에 이중부담 지운 빅3, 이제 선택진료비만 남았다

    선택진료비는 환자 본인 부담으로 책정되는 비급여 진료비에서 가장 큰 비율을 차지하고 있는 이른바 ‘빅3’ 중 하나로, 지난 2004년부터 상급병실료 차액, 병원식대와 함께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차원에서 문제가 제기됐다.

    건강보험 급여에 포함되지 않아 100% 환자 본인이 부담해야 했던 빅3 중 상급병실료 차액과 병원식대는 각각 2007년 1월, 2006년 1월부터 건강보험 급여에 포함된다는 보건복지부의 방침에 따라 건강보험 적용을 받게 됐다.

    그러나 환자가 특정 의사와 진료를 선택했다는 명목으로 추가부담을 지우는 선택진료비 폐지 혹은 개선 논의는 아직 구체적 일정이 나와 있지 않은 상황이다.

    현재 3차 의료기관(대학병원 등 대형 종합병원)과 치과, 한방병원에서 채택하고 있는 이 제도는 진찰료 뿐 아니라 처치 및 수술료, 마취료 등 수가 기준액의 100%까지 진료비를 청구하게끔 되어 있다.

    소액 환자보다는 중병을 앓는 고액환자에게 더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는 선택진료비는 환자의 선택권을 보장하고 품질 좋은 의료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기존 취지와는 달리, 의료 공공성을 훼손하고 의료 양극화를 심화시킨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일례로 한 암 환자의 진료비 영수증에 따르면 2,800만원의 진료비 총액 중 본인부담금 1,200만원에서 선택진료비는 377만원으로, 환자부담금의 31%에 달했다.

    민주노동당 현애자 의원은 지난 1월 12일 선택진료제 폐지와 건강보험 재정의 2~3%(선택진료제 폐지에 따른 의료기관 손실액)를 의료기관에 지원해야한다는 것을 주 골자로 한 의료법 개정안을 제출한 바 있다. 현의원은 “의료서비스의 질을 ‘웃돈’에 의해 개선하는 방식이 의료의 공공성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선택진료비, 환자에게 선택권 있나?”

    이날 토론회에서 주제 발표에 나선 건강세상네트워크 김창보 사무국장은 “선택진료비는 그 이름이 무색하게도 환자에게 사실상 선택권이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면서 “환자가 선택진료가 아닌 일반진료를 원할 경우 병원은 의도적으로 환자에게 불이익을 주고있다”고 주장했다.

    김 사무국장은 “환자를 오랫동안 밖에서 기다리게 한다던가 특정 시간이 아니면 아예 진료자체를 거부하는 등 병원은 노골적으로 환자에게 선택진료를 받게끔 강요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김 사무국장은 또 “환자가 특정 의사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의료 서비스의 질이 어떻게 다를 수 있으며 심지어 치료율·생존율이 다를수 있냐”면서 “게다가 선택진료를 하고 있는 의사가 다른 일반 의사들에 비해 질적으로 우수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는 입증 시스템이 현재로선 없는 상태”라고 지적했다.

    김 사무국장은 “환자의 이중고만 늘게 하는 선택진료비는 즉각 폐지하고 의료기관의 서비스 질 향상을 촉진하기 위한 대체제도 마련에 나서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우리가 환자돈 뜯어서 배불리는 도둑 소굴인가”

    이날 토론에 참석한 박창일 연세대 세브란스 병원장은 김창보 사무국장의 주제발표를 들은 뒤 “도둑 소굴의 수장이 된 듯한 느낌을 받았다”며 불편한 기색을 비쳤다.

    박 원장은 “병원의 수익이 생기면 이걸 병원장이 가져가겠냐”고 반문하면서 “질 좋은 의료서비스 제공을 위해 의료 시스템을 갖추고 운용하는데 모두 재투자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대학병원을 유지하고 운영하는데 여태 국가가 우리에게 해준 것이 뭐가 있냐”면서 “세브란스 병원이 생긴지 122년이 지났지만 국가에서는 단 한번도 교육비를 투자한 적이 없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박 원장은 “선택진료 역시 달리 생각해야 한다”면서 “현재 선택진료에 해당안되는 의사들은 멀게는 30년 밑의 나의 제자들인데 똑같은 진료를 해도 그 제자와 나의 시술이 어떻게 같을 수 있나. 내가 그 제자와 같은 수당을 받아야 하냐”고 따졌다.

    박 원장은 “대학병원은 수익금으로 몇십억에 달하는 암치료기를 구입하는 등 의료시스템 구축에 투자하고 있다”면서 “선택진료비가 폐지되면 대학 병원은 7~8%의 적자가 예상되어 의료 환경 개선에 어려움이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선택진료비 폐지하면 대학병원에 환자 몰릴 것” vs “독을 독으로 풀면 안된다”

    한편 이날 토론회에 축사를 하기 위해 참석한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은 “선택진료비는 필요악”이라며 “선택진료비가 폐지된다면 의료 서비스가 월등히 높은 3차 의료기관으로 환자들이 몰릴 텐데 그에 대한 대처 방안이 현재로선 없는 상황”이라며 선택진료비 폐지에 회의적인 입장을 나타냈다. 유 장관은 또 “선택진료비는 종합 전문병원이 감당할 수 없는 환자 수를 막을 수 있는 안전판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국장은 또 “선택진료비가 대학병원의 쏠림현상을 막아주는 사회적 효용성이 있다는 주장에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다”면서 “선택진료비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대학병원에는 환자들이 몰리고 있지 않냐”며 유 장관의 주장을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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