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농촌계몽운동의 상징
    최용신 선생과 샘골교회
    [그림으로 만나는 한국교회] 상록수
        2018년 02월 20일 11:03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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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월성 황무지 골짜기로/ 따뜻한 햇볕은 찾아오네/ 우리의 강습소는 조선의 빛
    … 오늘은 이 땅에 씨 뿌리고/ 내일은 이 땅에 향내 뻗쳐/ 우리의 강습소는 조선의 싹
    ,,, 황해의 깊은 물 다 마르고/ 백두산 철봉이 무너져도/ 우리의 강습소는 영원무궁
    … ” 최용신 선생의 무덤 앞에 서니, ‘샘골강습소 교가’ 가 들려오는 것 같았습니다.

    샘골교회(그림=이근복)

    지하철 4호선 상록수역(심훈의 소설 ‘상록수’에서 따온 역명)에서 가까운 샘골교회(진광호 담임목사)와 최용신 기념관을 방문한 날, 눈보라가 치더니 금방 파란 하늘이 드러났습니다. 그러자 상록수공원에 있는 소나무들이 더 청청해졌습니다. 교육과 애국계몽운동으로 항일운동을 실천했던 최용신 선생의 기개가 느껴졌습니다. “저 들에 푸르른 솔잎을 보라 돌보는 사람도 하나 없는데 비바람 맞고 눈보라쳐도 온 누리 끝까지 맘껏 푸르다 ….”

    최용신 선생은 함경남도 덕원군에서 1909년에 출생하였습니다. 원산에 가까운 시골이었으나 기독교가 원산보다 앞서 전래되어 신식학교와 교회 주일학교에 다니며 신앙 속에서 성장하였습니다. 원산으로 전학하여 루씨여자보통학교와 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의 협성여자신학교(현 감리교신학대학)에 입학한 후(2001년 명예졸업증서를 받음) 농촌계몽운동에 관심이 커서 두 번이나 참여하였습니다. 여기서 ‘송죽회’와 ‘대한민국애국부인회’를 조직하여 독립운동을 지원하던 황애덕 교수에게 많은 영향을 받습니다.

    1931년, 동맹휴학 사건에 연루되어 휴학중이던 최용신 선생은 YWCA 농촌지도교사로 임명되어, 수원군 반월면 천곡(샘골)에 파견되었습니다. 당시 샘골은 일제의 극심한 수탈로 인하여 절대빈곤에 처한 농촌이었습니다. 1930년대는 일제가 대륙침략전쟁에 나서면서 한반도를 병참기지로 삼고 사람과 물자를 가혹하게 수탈하였고, 허울 좋은 ‘산미증산계획’과 ‘자력갱생’을 내세운 농촌정책은 노동력과 생산물을 침략에 이용하고자하는데 혈안이 되었을 뿐이었습니다.

    최용신 선생은 일제의 감시를 피해 1907년에 세워진 샘골교회 예배당에 아동교육 강습소를 엽니다. 처음에는 마을사람들의 냉대로 힘들었지만 헌신성, 진정성과 교육의 실용성으로 마음의 벽이 허물어집니다.

    낮에 아이들을 가르치고, 밤에 어른들을 위한 야학을 하며 쉴 새 없이 가르치자 학생수가 급증합니다. 이에 샘골사람들을 설득하여 숙원사업인 강습소 신축을 착수하자, 가난한 마을사람들이 최선을 다해 많은 재원을 지원하였고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돌과 흙을 나르고 겨울에도 공사를 계속하여 1933년 1월에 낙성식을 합니다. 봄에 110명이나 몰려들어 새 교사도 턱없이 비좁았지만 한글과 역사, 성경 등의 과목에 중점을 두고, 문맹퇴치와 농업기술은 물론 민족신앙과 애국심을 고취하는데 혼신을 다했습니다.

    그러다가 중도에 포기한 신학을 공부하기 위해 일본 고베 여자신학교에 입학하나 각기병에 걸려서 하는 수 없이 6개월 만에 귀국합니다. 샘골 사람들의 간청에 고향대신 샘골로 달려가 아픈 몸으로 수업을 강행하였고, 병세가 악화되어 과로와 영양실조로 인한 장충첩증으로 1935년 1월 23일, 26세로 별세하였습니다. “학교가 잘 보이고 종소리가 들리는 곳에 묻어 달라.”는 유언을 남겼습니다. 당시로는 파격적으로 사회장으로 치룰 때 많은 학생들과 마을 사람들이 애통해했습니다.

    1935년, 동아일보 창간 15주년 장편소설을 공모하자, 낙향하여 농촌계몽운동을 하던 심훈은 최용신 선생에 대한 신문의 부음기사(無産兒童의 慈母)와 업적을 읽고 감동받아, 최용신을 ‘채영신’으로 바꾸어 ‘상록수’를 써서 당선되었습니다. 소설 ‘임꺽정’의 저자 벽초 홍명희가 서문을 쓴 책이 발간되어 큰 인기를 얻었고, 1939년 <성서조선>의 주필 김교신 선생은 최용신의 삶에 감동받고 수원고등농림학교의 류달영에게 집필을 부탁해 그해 가을 ‘눈 속에서 잎 피는 나무’<최용신 소전>을 출판하는데 모두 감옥살이를 하게 됩니다.

    최용신 선생의 얼이 살아 숨 쉬는 샘골교회는 1907년에 세워진 안산의 어머니교회입니다. 1996년에는 반월신도시 계획으로 교회 일대가 강제철거당할 위기에 교인들의 온몸으로 싸운 결과, 교회와 최용신 선생의 유적지를 보존할 수 있었습니다. 1998년에 샘골강습소 터전에 지금의 예배당을 건축하여 아담하게 자리잡고 있습니다. 좀 미흡하지만 샘골교회에 최용신 선생의 신앙과 삶을 담으려는 흔적이 있습니다. 교회당에 기미독립선업문이 있고 매년 3.1절 기념예배를 드리며, 1월에는 최용신 선생 추모행사를 하고, 9월에는 안산시의 상록수문화제에 협력하며, ‘상록수 찬양단’도 있습니다.

    창립 110주년을 맞은 2017년, “우리 샘골교회는 이 지역에 필요한 교회, 이 지역에 소망을 줄 수 있는 교회, 이 지역을 사랑하는 교회로 새로운 이야기들을 쌓아갈 것입니다.”라는 다짐에서 최용신 정신의 부활을 기대해 봅니다.

    필자소개
    성균관대학교와 장로회신학대학원 졸업. 전 영등포산업선교회 총무, 새민족교회 담임목사,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교육훈련원장 역임. 전 크리스챤아카데미 원장. 한국기독교목회지원네트워크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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