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떤 ‘비주류 잡놈’의 정치학
    [책소개] 『정치인에게 안 속고 정치판 꿰뚫는 기술- 탄핵과 대선의 재구성』(이광수/ 레디앙)
        2018년 02월 17일 09:3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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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은 악하고, 정치는 더럽고, 인간은 탐욕덩어리다. 착한 세상이 올 거라고? 그런 꿈은 아예 꾸지도 말라. 정당 민주주의는 패싸움에 불과하다. 정치의 꽃은 ‘쇼’다. 문재인은 유능한 마키아벨리스이다.”

    스스로 ‘비주류 잡놈’을 자처하는 비관주의자인 저자는 이런 도발적 주장을 거침없이 털어놓는다. 저자는 또 자신은 “진보정당 당원, 지잡대 교수, ‘잡사’ 인도사 전공자, (부산에 사는) 전라도 놈”으로 ‘4중의 마이너리티’라고 규정한다. 그런 그가 자신의 전공도 아닌 한국 정치에 대한 책을 썼다. 왜 썼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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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을 바꾸고자 한다. 그러나 악한 세상을 선한 세상으로 바꾸겠다는 철없는 꿈은 꾸지 않는다.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은 악한 세상을 조금 덜 악하게 만들고 싶은 것이다. … 세상이 악하고, 그것을 바꾸는 데 꼭 필요한 수단인 정치가 더럽다고 해서 정치를 하지 않고 그냥 놔두면 세상은 그야말로 악만 창궐하게 된다. … 그런데 세상은 그리 만만하지 않다. 그래서 싸워야 하지만, 적당히 싸워서는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 집요하게 싸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기는 방법으로 싸워야 한다. 정치를 익히고 실천해야 하는 이유다. 이 책은 정치의 속성을 익히고자 쓴 것이다. 이기는 싸움을 위해서. – 본문 중에서

    저자는 세월호부터 탄핵과 뒤이은 대선을 되돌아보고 현실에서 벌어졌던 정치적 사건들의 맥락을 분석하면서 어떻게 하면 세상의 모든 대의와 명분을 가진 듯 행세하는 정치인들의 속셈에 속지 않고, 정치판 실상을 알 수 있는지 그 방법을 함께 모색한다. 특히 숨 가쁘게 돌아갔던 ‘탄핵과 대선’ 정국을 섬세하게 재구성하면서 주요 정치인들의 발언과 행태, 정치 사건의 이면을 분석하면서 거기서 한국 정치의 속성과 메커니즘을 끄집어낸다.

    저자는 특히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농단과 이에 맞선 촛불시민의 저항, 문재인 대통령의 당선까지 급박하게 흘러갔던 안개 정국에서 나름의 시각으로 예측한 정세 평가를 검토하고, 그 같은 평가를 도출하게 된 배경을 설명하면서 한국 정치의 특성을 찾아낸다.

    저자는 촛불 정국 훨씬 이전부터 2017년 대선이 정상적으로 치러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전망을 공개적으로 밝히고 다녔다. 물론 탄핵과 조기 대선을 예상한 것은 아니다. 저자가 전망했던 근거는 무엇이었을까? 저자는 권력이 이동하는 시기 한국 정치에서 나타나는 중요한 공통적 특징들과 박근혜의 비정상적 리더십을 비교해 볼 때 필연적으로 도달할 수밖에 없었던 결론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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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년 봄, 대선이 약 3년 남았을 때 일을 상기해 보겠다. 차기 대통령은 누가 될 것 같으냐는 물음에, 대통령 선거는 없을 거라고 말하고 다니던 때다. 난 김대중부터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까지 대통령 당선자를 차례로 다 맞추어서, 그것도 노무현을 제외하고는 보통 2~3년 전에 예측한 것이라 내 주변에서는 이런 저런 장난스러운 점괘 문의가 많이 들어왔다. 난 쿠데타가 일어날지, IS가 쳐들어올지, 창세기 홍수가 터질지, 개헌이 일어날지는 모르겠지만, 대통령 선거는 없을 거라고 말하곤 했다.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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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박은 타고난 야바위꾼이라 부정선거를 저질러 박근혜를 당선시키고, 그것을 무기로 박근혜 모가지를 쥐고 겁박해 감출 수 있었다. … 그러나 박근혜는 주도면밀하게 작전을 짜서 부정선거를 자행할 정도로 ‘유능’하지 못하다. 그런 그가 세월호 참사를 맞았다. … 이런 상황에서 그가 그나마 정상적인 정치인이라면 선거를 1년 반 정도 앞두면 김무성이나 유승민 혹은 또 다른 인물을 별의별 쇼를 해서라도 키운다. 그렇지만 박근혜는 그들을 차기 권력으로 용납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 정권은 상상을 초월한 적폐를 안고 있어 죽어도 정권을 내주려 하지 않을 것이다. 후계자는 안 만들고, 정권은 못 내주겠다면, 답은? 간단한 논리다. 대통령 선거를 안 하는 것밖에 없다. 대선을 치르지 않는다? 그러기 위해서는 헌정 중단이나 개헌밖에 없는데, 무엇일까? 나는 그 가능성을 전자에 뒀다.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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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가 하면 문재인 후보 당시 민주당과 정의당 사이의 다양한 층위의 정치 연대에 대한 자신의 전망이 보기 좋게 빗나간 사실을 털어 놓으며 자신의 예상이 틀렸던 이유를, 바둑을 복기하듯이 되새기며 정치 전망이 현실과 동떨어진 결과를 가져오게 만드는 위험한 요소가 무엇인지 살펴보기도 한다.

    세상은 악하고 정치는 썩었으며 착한 세상을 바라는 것은 헛된 꿈일 뿐이라는 저자의 시각이 때로는 독자를 불편하게 만들 수도 있다. 또한 이 책은 정교한 이론 체계를 구축한 프레임 안에서 진행되는 정치 분석이 아니다. 권력 투쟁을 둘러싼 정치 현상 이면을 좌충우돌 헤집어 놓은 ‘한 마키아벨리스트’의 조금은 낯선 정치 평론이다. 주류 정치학계 일부의 그럴싸하지만 현실 설명력이 부족한 평론보다는 권력 쟁취를 위해 벌어지는 노골적이고 저열한 정치 행태를, 저자의 조금은 특별한 세계관 위에 올려놓고 분석한 글을 읽다 보면 재미와 함께 한국 정치를 ‘꿰뚫는 기술’이 늘어나는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지난 대선을 박근혜의 반정치, 분단과 북풍, 지역주의라는 세 개의 키워드를 가지고 재구성하면서, 민주당 문재인 후보가 이를 어떻게 극복하고 대통령에 당선이 됐는지를 정교하게 추적했다. 저자는 또 정치적 힘의 동력원으로서의 유연함, 정치적 경쟁자나 적을 다루는 기술로서의 ‘미워하지 않기’, 정치의 꽃으로서의 ‘쇼’ 등 한국 정치뿐 아니라 정치 행태의 보편적 속성 분석을 통한 정치 정세 읽기의 구체적 방안도 제시하고 있다.

    특히 정치가 기본적으로 말을 통해서 이뤄진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일상의 정치 언어 분석에 공을 많이 들였다.

    ‘정치인의 언어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믿을 수 없다’라는 전제를 깔고서 고찰하기 시작한다. 원래 언어는 전달하는 방식이 매우 다양하다. 논술이나 연설같이 논리적이고 지시적인 언어도 있지만 선문답 같이 해석 여지가 무한으로 열려 있는 것도 있고, 사랑 고백같이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소통되는 것도 있다. 정치에서 언어는 때로는 논리적으로 때로는 선문답 식으로 때로는 감정을 건드리는 방식으로 때로는 이도 저도 아닌 묘한 방식으로 사용된다. 정치 판세를 읽으려면 바로 이 복합적이고 이질적인 정치인의 언어를 잘 분석해야 한다. – 본문 중에서

    저자는 이 책의 말미 부록으로 실린 ‘아주 짧은 문재인론’을 통해서 마키아벨리스트 문재인을 분석한다. 지난 2016년 총선, 2017년 대선을 통해서 본 문재인 대통령은 저자가 보기에는 천운을 타고난 정치인이다. 2017년 대선 필패론의 큰 원인을 제공했던 정치인 문재인이 분당과 촛불을 거치면서 총선과 대선에서 승리를 일궈 낸 데 대한 평가다. 하지만 이 같은 운만으로는 지금의 문재인 대통령을 다 설명할 수 없다. 저자가 보기에 문 대통령의 정치의 본질을 잘 꿰뚫고 있는 ‘내공의 정치인’이기도 하다.

    난 세계는 악(惡)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본다. 세계를 조금이라도 더 선하게 만들기 위해선 그 악과 싸우는 또 다른 악의 방편이 필요하다고 본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인도의 간디는 위대하지만 가장 처참한 결과를 낳은 우둔한 도덕주의 정치인이다. 악은 용서로 없애는 것이 아니고 처단으로 없애는 것이다. 바로 이 차원에서 나는 마키아벨리스트이고, 문재인 또한 마키아벨리스트다.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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